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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215화 (215/307)

215화. 서민 경제 지원

“혜주 아범을 지켜 줘라.”

“서 회장님을요?”

김상균의 커진 눈을 보고 김세동이 말을 이었다.

“코너에 몰린 네게 위로는 못할망정 내 욕심만 채운다고 욕해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너도 이번 일을 직접 옆에서 지켜봤으니, 놈이 얼마나 무모한 행동을 했는지 잘 알 것이다. 쇼다 대신이 놈에게 무릎을 꿇는 모습에 나는 통쾌함보다 불안감을 느꼈다.”

“……!”

“너도 알다시피 일본 놈들은 앞에서 웃으면서 뒤로 칼을 가는 족속들이다. 지난번에는 중국 정부가 놈을 제거하려고 했다. 허구한 날 해외로 돌아다닐 팔자라 언제 어디서 총을 맞아 죽어도 이상할 게 없다. 지민이가 혼자되는 꼴을 절대 못 보겠다. 네가 옆에서 지켜 줘라.”

김상균도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던 문제였다.

젊어서인지 아니면 너무 갑작스럽게 성장해서인지 진혁은 경호의 중요성을 너무 경시하고 있었다.

이번만 해도 자신의 조언을 무시하고 직접 미끼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흔들리는 김상균의 모습을 보고 김세동이 다시 말했다.

“놈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긴다면 우리나라가 받을 타격이 적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도 네가 잘 알 것이다. 네가 어렵다면 나라도…….”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고맙다.”

“이집트에서 큰 도움을 받은 이후로 계속 지켜본 분입니다. 기회가 되면 언젠가는 꼭 옆에서 지켜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지민이도 제 조카고요. 선배님 덕분에 소원을 이뤘으니 감사는 오히려 제가 드려야지요. 고맙습니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웃었다.

* * *

진혁이 콕스바자르에서 도착해 경제특구 건설 현장으로 가자 몰라볼 정도로 변해 있었다.

케이슨이 해변은 물론 수로를 따라 쭉 설치되어 있는 것이 장관이었다.

임시로 개설된 도로를 따라 대형 트럭들이 끊임없이 흙을 퍼 나르고 있었다.

사무실로 가자 한인갑이 보고했다.

“발전소 건설이 거의 끝나 갑니다. 그러면 전기, 가스 등 기본 인프라 구축을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다음에는 바로 건축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힘드신 줄 알지만 난민 캠프에서 고생하는 분들을 위해 조금만 힘을 더 내주십시오.”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인갑과 헤어진 진혁이 위층의 AS사무실로 가자 아노아르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손민한이 얼른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김 고문님은요?”

“인도를 둘러보시겠다면서 혼자 떠나셨습니다. 이영석 부장이라도 데리고 가시라고 했는데도 마다하시고요. 파키스탄을 거쳐 동남아시아까지 들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고문님도 참.”

진혁은 입맛을 다셨다.

항상 마음만 있지 챙기지 못한 시장이었던 터라 반가운 소식이지만, 김선혁을 생각하면 괜히 불러 무리시키는 건 아닌지 마음이 쓰였다.

그 모습에 손민한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최근에 뵌 것 중에 가장 밝은 모습이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요?”

“회장님도 아시다시피 요즘은 인터넷으로 다 통하는 시대라 해외 현장을 나갈 일이 별로 없잖습니까. 게다가 경기가 어렵다 보니 실적이 저조해 마음고생이 심하셨거든요. 팽팽 돌아가는 건설 현장을 보시고는 여긴 신천지라고 하시면서 크게 웃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진혁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자리에 앉자 손민한이 정식으로 업무 보고를 했다.

“먼저 카나풀리 EPZ 입주 업체 신청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쪽에서 이미 신청을 받은 업체에다가 한국의 황영재 사장의 소개로 연락 온 업체까지 더해지는 바람에 이미 정원을 넘어섰습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방글라데시에 처음 진출하는 소규모업체 위주로 선정해 주십시오.”

“차라리 이곳에 익숙한 기존 기업을 입주시키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러면 일은 편하겠지요. 하지만 그들은 이미 자체적인 판매처를 확보해서 우리와 함께 갈 수가 없습니다. 전 카나풀리 EPZ를 알라딘 그룹의 생산 기지로 삼을 작정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회장님이 말씀하신 기준으로 선정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선정 작업도 만만치 않을 텐데도 손민한은 전혀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그 역시 한국에서 사무실만 지키다가 다시 현장으로 나오니 활력이 넘치는 모양이었다.

“다음으로 건축 자재 반입 건입니다. 인프라 구축이 끝나면 주택 건축이 바로 시작될 거라고 합니다.”

“한 사장님께 들었습니다.”

“이왕이면 함반토타 항을 이용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언제쯤이나 정상 가동 됩니까?”

“준비하는 게 있어서 그렇게 일찍은 안 될 겁니다. 건축이 우선이니 기존대로 차우크퓨항을 이용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우세요. 단, 계약은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단기로 해서 언제든지 옮겨 갈 수 있게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다음으로 업무 파악하면서 알게 된 건데, 그간 정 사장이 여러 군데로부터 문의를 받았는데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서 보고를 안 한 모양입니다.”

다른 일이란 협박을 받아 알라딘을 배신한 일에 가담한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입 안이 썼다.

이곳에 오면서 마주친 사람들 모두 즐거운 얼굴로 그를 반겼지만 시선 한편에는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다.

정호영과 김연희 때문이었다.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암묵적으로 이곳에서 금지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진혁이 잡생각을 떨치고 물었다.

“어떤 문의였답니까?”

“투자 유치를 발표했던 기업들이 직접 땅을 매입해서 건물을 짓겠다고 했답니다. 그들만이 아니라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세계적인 부동산 투자 회사들이 이곳에 투자하겠다며 땅 매입을 문의해 오고 있습니다.”

“그래요?”

“자기들도 이제 회장님 소문을 들었을 테니 이곳이 앞으로 얼마나 발전할지 알게 된 거지요. 박 이동 실장님께 말씀드렸더니 조만간 복부인들까지 원정 투자를 하러 몰려들 거랍니다. 그렇게만 되면 한국의 강남은 저리 가라 할 정도 땅값이 뛸 거라면서요.”

잠시 생각하던 진혁이 말했다.

“박 실장님과 상의해서 기업들의 요구는 전향적으로 검토하시고 나머지는 무시하십시오. 투기꾼들에게 불로소득을 안길 수는 없지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손민한은 이런저런 현안에 대해 보고를 했는데, 짧은 시간에 업무 파악을 다 마친 듯 시시콜콜한 현황까지 다 보고를 했다.

마지막 보고까지 받은 다음에 진혁이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런데 알라딘 그룹은 이미 책임 경영 체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아니면 사장님이 결정하고 시행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손민한의 머뭇거리다 답했다.

그 역시 보고하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지만 평생을 위에 보고해 온 터라 습관이 되어 버렸다.

진혁이 믿어 준 것은 고마웠지만 느껴지는 부담감이 만만치 않았다.

가끔 결정을 미루는 AK 고용준 회장이 답답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진혁은 그 이후로도 샤물과 함께 이곳저곳 현장을 둘러봤다.

다들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해 주고 있었다.

로힝야들도 얼굴에 어둠이 많이 걷혀 있었다. 건설 일을 하면서 생활이 풍족해진 데다, 곧 있으면 제대로 된 집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전국에서 몰려온 방글라데시안들도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었다.

다들 즐거운 얼굴로 반기는 모습에 흡족한 표정으로 돌아서던 진혁이 급히 동작을 멈췄다.

얼굴이 주글주글한 노인이 간절한 표정으로 야채 광주리를 내밀고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

급작스러운 상황에 다들 놀라다가 얼른 노인에게 뭐라 하며 내쫓으려 했다.

“멈추세요. 그 노인이 뭐라고 하시는 겁니까?”

“…….”

“샤물!”

다들 답은 안 하고 눈치만 보는 모습에 진혁이 호통을 치자 샤물이 어렵게 입을 뗐다.

“야채를 사 달라고 하십니다. 손녀가 아픈데 약을 살 돈이 없답니다.”

“얼마인지 여쭤봐라.”

묻던 샤물이 뭔가 큰 소리로 나무라자 노인은 연신 고개를 조아리다 못해 양손까지 비비며 사정을 했다.

돌아선 사물이 말했다.

“100다카라고 해서 제가 너무 비싸다고 했더니, 약값이 그 가격이라서 어쩔 수 없답니다. 손녀가 아프다며 나중에 밭의 것을 다 뽑아다 드리겠답니다.”

100다카면 1,500원 정도였다.

그것도 공식 환율이 그러니 암시장에서는 1,000원도 안 될 정도로 적은 돈이었다.

하지만 그건 진혁의 기준이었다.

현재 방글라데시 정부가 발표한 최저 임금이 5,000다카였는데, 일반 근로자들은 개정 전 최저 임금인 3,000다카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하루 일당에 버금가는 큰돈이었다.

진혁이 지갑에서 1달러 지폐 두 장을 꺼내 노인의 손에 쥐여 주고 말했다.

“아이가 꼭 낫기를 빌겠습니다. 야채는 감사히 먹겠습니다만 혼자라 더 이상은 필요 없습니다. 이웃분들과 나눠 드십시오.”

샤물이 옆에서 통역하는 말을 들은 노인이 눈물이 글썽이는 얼굴로 머리가 바닥에 땅이 닿을 정도로 고개를 조아렸다.

돌아서 걸어가던 진혁이 딱딱한 목소리로 샤물에게 말했다.

“당장 시에라 씨를 찾아서 사무실로 오시라 해라.”

“알겠습니다.”

부리나케 달려가는 샤물을 놔두고 진혁은 먼저 AS 사무실로 돌아왔다.

잔뜩 굳은 진혁의 표정에 사무실 공기가 급속히 가라앉았다. 손민한마저도 감히 이유를 묻지 못할 정도로 진혁의 표정이 안 좋았다.

질식할 것만 같은 시간이 얼마쯤 지나자 문이 열리며 샤물과 시에라가 들어왔다.

시에라도 굳은 얼굴로 진혁에게 다가가 말했다.

“찾으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앉으십시오.”

진혁이 노려보기만 하자 시에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면서 샤물에게 마수다 씨의 야채를 사 주셨다는 말씀은 들었습니다.”

“일자리는 충분히 만들어 줬잖습니까? 그런데 왜 아직도 그런 분들이 계시는 겁니까?”

“마수다 씨는 어린 손녀 하나만 데리고 탈출하셨습니다. 아들 내외는 미얀마 군에 희생당했습니다. 회장님 덕분에 일자리를 얻은 가정도 있지만, 마수다 씨처럼 집안에 일할 사람이 없는 이들도 꽤 됩니다. 거기에 의약품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가격이 무척 비쌉니다.”

“그걸 왜 이제 말씀하시는 겁니까?”

“김 소장님께 말씀은 드렸습니다만, 갑자기 떠나시는 바람에…….”

“빌어먹을.”

진혁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나마 한국말이라 시에라가 못 알아들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정호영보다 김연희의 부재가 더 문제였다.

잠시 생각하던 진혁이 소리쳤다.

“이 부장님!”

“예.”

이영석도 눈치를 보고 있던 터라 얼른 다가왔다.

“당장 로힝야 난민 중 생활이 어려운 이들에게 얼마씩이라도 지원해 줄 수 있게 하세요.”

“회장님.”

“자금은 제 사재를 털어서라도 만들 테니 걱정 마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난민들이 그간 꾸준히 유입되어 80만 명이 넘습니다.”

“맞습니다, 회장님. 그렇게 막 나눠 준다면 여유 있는 이들마저 받아 가려고 할 겁니다. 지원해 줄 때 지원해 주더라도 최소한의 원칙은 있어야 합니다.”

이영석에 이어 시에라마저 반대하고 나섰다.

사재까지 내놓는다는 진혁의 말이 고맙기는 했지만, 감정적으로 처리할 일이 아니었다. 백 달러씩 지원한다고 가정하면 10만 명만 잡아도 천만 달러였다.

더 큰 문제는 한 번의 지원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거였다.

그제야 진혁도 자신이 너무 감정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다는 것을 깨닫고 빠르게 냉정을 되찾았다.

“좋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실태 조사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의약품이나 기타 부족한 생필품의 공급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실태 조사는 시에라 씨가 맡아 주시고, 부족한 의약품과 생필품은 AS가 맡아서 처리하세요. 또 있습니까?”

“지원금의 성격과 규모를 정하는 기준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무조건 돈만 받고 보자는 심리를 막을 수 있습니다.”

바로 답하는 시에라의 모습에 진혁이 뭔가를 느끼고 말했다.

“그냥 김 소장과 상의한 내용을 다 말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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