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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219화 (219/307)

219화. 해양환경보호위원회

“제가 질문을 잘못한 겁니까?”

“아닙니다. 이곳 아파트들은 모듈러 공법으로 지어질 겁니다. 그래서 철근이나 레미콘은 기초 공사 때를 제외하고는 필요치 않습니다.”

“모듈러 공법요?”

“모듈러 공법은 레고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공장에서 거실과 주방, 화장실 등 70%까지 제작해 현장으로 보내면 여기서는 조립만 하면 됩니다. 대량 제작으로 비용이 10~20% 정도 낮아지고, 먼지나 소음 등 환경오염이 없고, 자재의 재사용이 가능해 친환경 공법으로 각광받고 있는 신기술입니다. 무엇보다 공사 기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돼서 이곳 현장 사정에 가장 적합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도 아파트와 건물을 지으면서 레고처럼 쌓아올리는 공법을 많이 사용했는데 이때쯤부터였던 것 같다.

“장점이 많은데 공사 기간까지 짧다면 당연히 채택해야지요. 업체는 어디로 정했습니까?”

“기술 이전을 조건으로 영국, 미국, 일본의 업체들을 각각 구역별로 지정해 선정했습니다. 이번에 제대로 배워서 다음에는 우리가 직접 시공해야지요.”

한인갑이 자체 시공 능력이 되는데도 지역별로 영국, 미국, 일본 업체에 아파트 건설을 맡기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의아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한국 기업들이 기술 습득에는 일가견이 있으니, 이곳 공사가 끝나면 머지않아 모듈러 공법의 일인자는 한국 건설 업체가 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잘하셨습니다. 결국 기술력을 가진 업체만이 불황이 닥쳐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잘 결정하셨습니다. 고생들 하십시오.”

진혁은 믿고 맡겨도 되겠다고 생각하며 한인갑과 나머지 직원들을 격려하고 AS 사무실로 향했다.

이곳도 정신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노아르는 아예 양쪽 귀에 전화통을 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카나풀리 EPZ 입주 업체가 선정되어 입주 절차에 대한 지원을 해 주고 있었다.

전화를 막 끝내고 다가오는 손민한을 보고 진혁이 말했다.

“많이 바쁜 것 같습니다.”

“이렇게까지 서둘러 입주하려고 할 줄은 몰랐습니다. 중국 쪽 상황이 많이 안 좋은 모양입니다.”

“영세하다 보니 대응이 늦은 것이지요. 중국 정부의 연이은 임금 인상으로 저가 생산 기지로서의 메리트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거기에 노골적인 자국 기업 우선 정책까지 펴고 있으니. 발 빠른 대기업들은 이미 오래전에 빠져나왔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각종 징벌 조항으로 빠져나오는 것도 쉽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힘들게 내린 결정이니 최대한 편의를 제공해 주십시오. 직원도 더 뽑으시고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늘 당장 모집공고부터 내야겠습니다.”

“그전에 시에라 씨부터 만나 보십시오.”

“시에라 씨를요?”

의아해하는 손민한에게 진혁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직원만 충원하면 관리 업무는 그대로 이곳 사무실이 맡아야 합니다. AS는 방글라데시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로힝야 난민 중에도 이런 일을 했던 경험자들이 있을 겁니다. 그쪽에서 팀을 정해 입주 업무 전체를 맡기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그럼 시에라 씨와 상의해 보겠습니다.”

손민한의 얼굴이 당장 폈다.

* * *

그 시각, 영국 런던에는 각국 장관들이 국제해사기구(IMO)의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특히나 이번 총회에서는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에서 해양 환경 규제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정하기로 해 국제적인 관심이 고조되어 있었다.

해양환경보호위원회는 작년에 열린 모임에서 해역을 운항하는 선박은 황산화물 배출량을 현행 3.5%에서 2020년 1월까지 0.5% 이하로 낮추는 결의안을 채택해 발표했었다.

경제계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었고, 국제 환경 단체는 국제해사기구 본부 앞에서 조속한 시행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전야제로 열린 만찬장에서도 대륙별 이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규제에 대한 갑론을박을 하고 있었다.

한국의 대표로 참석한 김양희 해양수산부 장관은 중국 대표로 참석한 저우양 장관이 혼자 있는 것을 보고 얼른 다가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 김 장관님. 반갑습니다.”

국제회의 석상에서 가끔 마주치는 사이라 안면이 있었다.

김양희가 물었다.

“장관님은 어떻게 결정 날 것이라고 전망하십니까?”

“글쎄요. 의견이 팽팽하게 갈려 있어서 예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황산화물 배출량을 줄이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탈황 장치(스크러버)를 장착하거나, 기존에 사용하던 벙커C유 대신 저유황유를 사용하거나 혹은 액화천연가스(LNG)로 전환해야 했다.

그에 따라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적지 않았다. 스크러버 설치에 드는 비용만도 1척당 평균 80만 달러 수준이었다.

이를 설치하지 않고 저유황유를 사용하는 것도 문제가 있었다. 가격이 벙커C유보다 40~50%가량 비싸면서도 연비는 낮았다.

김양희가 말했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들이야 재정에 여유가 있으니 해운사에 LNG전환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지만, 다른 나라들은 아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아프리카 같은 국가들은 환경을 생각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재정이 열악합니다. 그런 나라들은 아예 해운업을 하지 말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쪽 국가들로부터 여러 경로로 규제를 늦춰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조선업은 물론 해운업도 경기가 최악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늦추는 게 당연합니다.”

이후 두 사람은 죽이 맞아 규제 적용 시기를 늦춰야 한다며 말을 나눴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그게 의미 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공산당이 장악하고 있는 중국이라면 모르지만,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들은 환경을 우선시하는 국민들의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다.

저우양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둘이 아무리 떠들어 봤자 의미가 없습니다.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유럽 측 의견대로 강행될 겁니다.”

“그렇겠지요. 하지만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게 좋은 복안이 있습니다.”

“……?”

“경험 축적기를 도입하는 겁니다.”

“유예 기간을 두자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투자비도 투자비지만, 스크러버를 장착하거나 LNG로 전환하는 것 모두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거기에 LNG유 급유 시설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고요.”

김양희의 말에 저우양이 눈을 반짝였다. 뭔가 가능성이 보일 것 같았다.

그런 기색을 눈치채고 김양희가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강경한 곳은 유럽뿐입니다. 아프리카는 반대이고요. 중동은 산유국이라 당연히 LNG선 도입을 반대할 겁니다. 아시아 대륙이 문제인데, 동남아시아는 화교들이 장악하고 있지 않습니까?”

“……!”

“일본 대표와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우리와 뜻이 같았습니다. 해볼 만한 싸움입니다.”

“그렇기는 한데, 공개적으로 반대했다가는 국제 사회의 엄청난 비난과 직면하게 될 겁니다.”

저우양이 일단 한발 뺐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였다. 섣불리 나서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김양희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짐은 제가 지겠습니다.”

“직접 나서겠다는 말씀이오?”

“누군가는 나서야지요. 제가 앞에 설 테니 장관님께서는 동조하는 국가들을 모아 주십시오. 회의도 비공개로 열도록 설득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저우양이 적극 동조했다.

앞장서서 위험을 감수하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 * *

다음 날.

해양환경보호위원회 회의는 처음 계획과 달리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문 밖까지 고성이 들릴 정도로 격론이 오갔다.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하고 다음 날 다시 모여 회의를 속개하기로 하고 정회를 했다.

기자들이 달려들어 어떤 내용이 오고 갔는지 물었지만 다들 아직 논의 중이라면서 언급을 피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하지만 김양희 장관은 아니었다.

그는 저우양과 약속한 대로 기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경험 축적기의 도입을 적극 주장했다.

글로벌 해운 불황의 장기화로 회원사의 재무 구조가 악화된 상황에서 연료 전환 장치 교체에 따른 비용과 시간을 부담스러워한다며, 중국의 저우양 장관과도 깊은 공감대가 형성됐고, 아프리카와 중동은 물론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자신들과 뜻을 같이 하기로 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그러자 다음 날 오전, 회의가 진행되고 있을 때 세계 곳곳에서는 난리가 났다.

NS통신을 비롯한 해외 언론들이 일제히 김양희 장관의 발언을 속보로 내보낸 탓이었다.

해양 환경 규제 좌초 위기.

한국 장관, 경험 축적기 도입 꼼수 발언.

중국 등 이에 동조.

당장 IMO로 항의 전화가 쇄도해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세계 각국의 환경 단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수도에 모여 비난 집회를 열었다.

그들은 정치권만 비난한 게 아니었다. 한국과 중국 대사관에 몰려가서 당장 주장을 철회하라고 외쳤다.

해묵은 산유국에 대한 비난도 이어졌다.

무조건 팔 생각만 할 게 하니라 제대로 정제해서 팔거나 아니면 최소한 제대로 된 정제 시설을 갖춘 곳에만 팔라며 압박했다.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는 회의실에서는 김양희 장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만일 계속 강행을 주장한다면 한국은 IMO에서 탈퇴할 수도 있습니다.”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경험 축적기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동조하는 국가들과 함께 별도의 기구를 만들 겁니다.”

김양희에 이어 저우양도 강경 발언을 마다하지 않았다.

너무도 완고한 태도에 다들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정적을 깨는 핸드폰 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하나만이 아니었다.

모든 참석자들의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다.

보통 이런 경우는 받지 않는 게 예의였지만 그러지 못했다. 각국 지도자들로부터 온 전화였다.

저우양도 얼른 받았다.

-대체 무슨 일을 그따위로 하는 거야!

“예?”

-IMO의 방침에 무조건 동조해. 각국 지도자들로부터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어. 우리 항구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협박까지 받았단 말이야.

-……!

“똘아이 한국 장관이랑 떨어지란 말이야. 각오 단단히 하고 돌아와야 할 거야.”

“알겠습니다.”

저우양은 식은땀을 흘리며 전화를 끊었다.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고민하던 저우양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벌떡 일어나, 웅성거리는 이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중국은 입장을 철회합니다. IMO의 결정을 존중하며 무조건 동참하겠습니다.”

“아니, 저우양 장관님, 약속해 놓고 그러시면 안 되지요.”

“약속은 무슨 약속을 했다는 말입니까? 난 아무런 약속을 한 적이 없습니다. 나머지 국가들도 소신껏 의견을 피력해 주세요.”

중국의 눈치를 보며 반대편에 섰던 국가들은 급격하게 기세를 잃었다.

결국 MEPC은 해양 환경 규제를 원안대로 시행함은 물론 위반한 선박은 입항을 거절하거나 출항하지 못하고 억류하는 등 강력한 처벌 조항까지 채택했다.

IMO 의장이 이례적으로 회의 결과를 직접 발표하며 김양희 장관의 발언은 공식 의견이 아니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불길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때 그런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NS통신 조나단 기자가 김양희 장관의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하는 기사를 내놓았다.

선사들이 연료 전환 장치 교체에 비용이 드는 것은 맞지만 이는 각 국가가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지원해 줄 수 있는 수준이며, 오히려 불황으로 선박 운항에 여유가 생긴 지금이 교체의 적기라 주장했다.

이에 김양희 장관이 한국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공항에서 다시 반박 기자회견을 열었다.

“조나단 기자의 주장은 이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연료 장치를 교체하는 것으로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저유황유는 가격이 비싸면서도 연비는 적게 나옵니다. LNG 추진선의 연료 주입 인프라 확충이 미미합니다. 가장 잘 갖추어진 싱가포르항도 대형 선박의 접안이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김양희 장관은 자신의 말만 하고 출국장으로 들어가 버렸다.

현장이 있던 기자들이 작성한 기사가 나가자 조나단이 다시 반박 기사를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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