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북한의 도발
“케이진이라고, 젊은 사장님이 작년에 창업한 스타트업 회사인데 진취적이면서도 뛰어나요. 현재 마스크 팩의 문제점과 개선한 제품을 보면서 함께 대화를 나눴는데, 성공을 확신해요. 제품을 생산할 공장이 없어 투자를 받고 싶다고 했어요.”
“좋습니다. 그쪽은 아자데 사장님의 말씀대로 인수하는 것으로 합시다.”
이어 아자데가 몇 가지 더 요구 조건을 말했고, 진혁은 그 즉시 받아들였다.
그녀의 뛰어난 감각을 믿었다.
아자데는 이곳에서 한지철에게 조언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자신의 인맥을 최대한 활용해 세계 유명 화장품 회사와 납품 계약을 연달아 체결했다.
그러나 알라딘의 리틀 지니 사업이 착착 진행되는 것과 달리 한국의 외교 문제는 더욱 더 꼬여만 갔다.
* * *
김선혁과 오랜만에 차를 마셨다.
“그때나 지금이나 넌 정신없이 바쁘구나.”
“멈추지 말라고 하신 분이 고문님이십니다. 저도 쉬고 싶습니다. 그러니 책임져 주십시오.”
“네가 자초한 일인 걸 누굴 원망해. 네 업보려니 해라.”
괜히 말했다가 본전도 뽑지 못했다.
찻잔을 내려놓고 김선혁이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그룹 규모에 비해서 지원 조직이 너무 부실한 것 같다.”
“……?”
“지금은 네가 기획하고 시행까지 관여하면서 키워 온 것 같다만, 그러기에는 너무 커졌어.”
“저도 요즘 절감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도 머릿속은 세계 여기저기서 벌려 놓은 사업들도 꽉 차있습니다.”
“비서실의 역량을 강화시키고 기획실도 별도로 만드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들이 널 보조하게끔 해야 해.”
“좋은 생각이십니다. 당장 시행해 주십시오.”
“넌 무조건 당장이냐?”
김선혁의 핀잔에 진혁은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 얼른 대답했다가 혼만 났다.
“두 조직 모두 네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겨야 할 중요한 자리다. 그러니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다들 제가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누구에게 맡겨도 상관없습니다.”
“……이 일은 내가 계획을 세워 보마.”
“감사합니다.”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얼른 답하는 진혁의 모습에 김선혁이 혀를 찼다. 제대로 된 경영자 수업을 받지 못한 티가 역력히 났다.
하지만 진혁을 나무랄 수만도 없었다.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메워 줘야 했다.
막 입을 열려던 진혁은 핸드폰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가 얼른 받았다.
김세동이었다.
“아버님이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시니까?”
-당장 들어와야겠다.
“청와대로요?”
-북한이 결국 핵 실험을 했다.
“음…….”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열렸는데 대통령께서 너도 참석하라 하신다.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굳은 얼굴로 핸드폰을 내려놓은 진혁이 김선혁에게 말했다.
“북한이 핵 실험을 감행했답니다.”
“미친!”
“전 청와대에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고문님은 직원들과 대책을 강구해 주십시오.”
“알았다. 고생해라.”
인사를 하고 나온 진혁은 김상균이 모는 차를 타고 청와대로 향했다.
입구에 기다리고 있던 김세동이 빠르게 다가와 말했다.
“회의가 진행 중이다. 개성공단 폐쇄 결정도 함께 논의도 될 거라며, 너를 필히 참석시키라고 하셨다.”
국가안전보장회의는 대통령을 의장으로 하고, 국무총리와 국가정보원장, 통일, 외교, 국방부장관과 대통령 비서실장,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장 등 여덟 명만 참석하게 되어 있었다.
김세동도 참석할 수 없을 만큼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중요한 회의였다.
그러나 진혁의 공식 직위는 ‘농어촌 지원단장’이었다.
회의실로 들어가자 제일 먼저 무거운 공기가 엄습해 왔다.
정중앙에 권성일 대통령이 앉아 있고, 양옆으로 이현국 비서관과 나머지 멤버들이 앉아 있었다.
이현국이 소개를 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농어촌 지원단 서진혁 단장님이십니다. 이 자리에 서 단장님을 참석시킨 것은, 북한 핵 실험이 있기 이전부터 개성공단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지적해 줬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입주 기업이 사전에 대비할 수 있어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진혁이 인사를 하고 빈자리에 앉자 권성일 대통령이 회의를 진행시켰다.
“개성공단 폐쇄에 대한 의견을 개진해 주십시오.”
“합참의장께서는 무조건 개성공단은 폐쇄되어야 한다며, 사드 배치도 서둘러 결정하라고 하십니다.”
“중국 정부도 북한이 더 이상 자신들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며 개성공단 폐쇄는 찬성했습니다. 그러나 사드 배치는 반대한다며, 만약 강행 시 강력한 보복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습니다.”
국방장관에 이어 외교부 장관이 인접국의 입장에 대해 보고했다.
권성일이 국정원장에게 물었다.
“북한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전시 체제에 돌입한 것은 물론, 추가 미사일 발사 실험을 준비하는 징후도 포착되었습니다. 어떤 외압에도 굴복하지 않고 강경 대응하겠다는 의도 같습니다.”
“각종 여론 결과도 개성공단 폐쇄를 찬성하는 쪽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국민들도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진절머리를 치고 있습니다. 미사일 발사실험을 공식 확인하는 발표가 나가고 나면 그 수치는 더 높아질 것입니다.”
이현국에 이어 통일부 장관이 거들었다.
“그 저변에는 개성공단이 외화벌이 수단으로 전락해 북한 정권을 유지하고 핵을 개발하는 자금으로 쓰일 거라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이어 이런저런 대화가 이어졌지만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다들 개성공단 폐쇄가 맞다는 의견들뿐이었다.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다고 판단한 권성일이 결정을 말하려다가 멈췄다. 잔뜩 얼굴만 찌푸리고 앉아 있는 진혁의 모습이 눈에 잡혔다.
그가 한마디 의견도 내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 단장은 왜 아무런 말씀이 없으신 겁니까?”
“제가 딱히 의견을 개진할 상황이 아닌 것 같아 듣고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참 이상한 회의라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회의라니요?”
“가장 중요한 논의가 빠졌잖습니까?”
“……?”
“입주 기업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제가 아니라 산업부 장관이나 중소기업청장을 부르셨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
진혁의 날카로운 지적에 다들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가 그 부분을 크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국정원장이 입을 열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지원책을 마련할 겁니다.”
“다른 나라의 의견은 중요하고 자국 기업의 의견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겁니까?”
“서 단장님!”
“국민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소중히 여기는 게 국가의 책무라도 알고 있습니다. 입주 기업이 123개사에 이르고 직접 종사자만도 천여 명입니다. 거기에 협력 업체까지 따지면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는 이들은 급격하게 늘어납니다.”
“……!”
“아무런 대책 없이 무조건 폐쇄 결정을 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서 단장님의 의견은 알겠지만, 지금은 저들의 도발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먼저입니다. 그래야 국제 사회가 우리 정부의 대응을 믿고…….”
“그렇게 국제 사회를 생각하시는 분이 직접 피해를 입게 되는 자국민들은 왜 먼저 생각하지 못하시는 겁니까!”
외교부 장관이 나섰다가 진혁의 따끔한 호통만 듣고 물러나야 했다.
결국 이현국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입주 기업에 대한 보상은 이미 관련 부서에 검토를 지시했습니다. 그건 별도로 대책을 마련해서 발표…….”
“잠시만요.”
이번에 이현국의 말을 막은 것은 의외로 권성일 대통령이었다.
그는 진혁의 굳은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서 단장님의 의견이 맞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에 대한 대책이 먼저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일단 북한의 핵 실험 사실만 발표하는 것으로 하고, 개성공단 폐쇄는 입주 기업에 대한 대책이 만들어진 다음에 함께 발표하도록 합시다.”
“……알겠습니다.”
대통령이 내린 결정이었다.
회의실을 빠져나가는 다른 이들이 진혁을 바라보는 눈빛이 곱지 않았다.
특히나 대통령 앞에서 여러 번 면박을 당한 국정원장의 눈빛에는 한기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진혁은 그런 반응을 철저히 무시했다.
자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밖으로 나온 진혁은 이현국의 눈짓에 권성일 대통령과 집무실로 가서 차를 마셨다.
권성일이 말했다.
“돌아가는 상황이 점점 서 회장님이 우려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여러 가지로 마음이 무겁습니다.”
“…….”
“개성공단 입주 기업에 대한 문제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라 그렇게 했지만, 나머지는 대통령이라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자리가 너무도 버겁게 느껴집니다.”
“대통령님!”
이현국이 벌게진 눈으로 소리쳤지만 권성일은 시선을 여전히 진혁에게 고정한 채 말했다.
“최대한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들을 위한 결정을 내릴 겁니다. 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하든 피해를 전부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서 회장님께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서 회장님은 감각이 뛰어나신 분입니다. 그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주십시오.”
“……말씀은 감사하지만 전 사업가일 뿐입니다. 죄송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전부를 다 해 달라는 건 아닙니다. 사업가이시니 사업적으로 우리나라 경제가 흔들리지 않게 조언을 해 달라는 부탁입니다. 최근 국내 조선사의 LNG 선박 수주량이 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게 다 서 회장님이 해양 환경 규제를 앞당겨 준 덕분입니다.”
“그건 저 혼자 한 일이 아닙니다. 대통령님을 포함해서 많은 분들이 합심해서 이뤄낸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아이디어를 내고 모두를 어우른 것이 서 회장님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정치, 외교적인 부분은 청와대에서 고민할 겁니다. 경제는 서 회장님이 대책을 마련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미력하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통령의 거듭된 부탁에 진혁은 더 이상 거부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청와대를 나왔다.
알라딘 사무실로 가자 다들 모여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진혁은 청와대에서 논의한 내용에 대해 결론만 들려줬다. 굳이 회의 분위기까지 알려 논쟁거리를 만들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다들 충분히 어떤 상황인지 짐작을 할 수 있었다.
다들 한마디씩 했다.
“외교, 정치적인 문제로 입주 기업에 대한 대책은 후순위로 밀리는군요.”
“안전하다는 정부 말만 믿고 들어간 입주 기업만 피해를 보게 됐네요.”
“북한은 정말 믿을 수 없는 국가인 것 같습니다.”
불평만 길어질 것 같아 진혁이 잘랐다.
“일은 이미 벌어졌습니다. 알라딘의 사업에 미치는 파장은 어떻습니까?”
“저희는 특별할 게 없습니다. 알쇼핑의 일부 벤더가 그쪽에서 물건을 생산하고는 있으나 그 수가 미미해서 거의 영향이 없을 것 같습니다.”
고용준 회장의 답변에 진혁이 마땅찮은 표정을 짓다 김선혁을 보고 말했다.
“고문님께서 한 가지 해 주실 일이 있습니다.”
“이야기해 봐라.”
“이번 개성공단 폐쇄 조치를 기점으로 한중 관계가 급격히 악화될 겁니다. 시간차를 두고 그 영향이 미중 관계 악화로 까지 이어질 겁니다.”
“설마……?”
“당장은 알라딘 사업과 관련이 없어 보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게 될 겁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중국은 우리나라 제1의 교역국이니까. 보통 일이 아니구나. 피해를 최소화시킬 방안을 마련해 보마.”
평생을 무역에 몸담은 김선혁이라 이해가 빨랐다.
하지만 진혁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밝힐 수 없으니 돌려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그간 알라딘 사업을 하면서 G2의 한 축인 중국 쪽에 진출하지 않은 것은 너도나도 그쪽에 목을 매달고 있어서였습니다. 남의 뒤를 따라가서는 절대 그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
“고문님께서는 위기는 기회라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습니다.”
“그랬지.”
“아주 큰 위기가 닥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큰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간 중국에 편중됐던 시장이 빠르게 동서남아시아로 이동할 겁니다. 우리가 그것을 선점해야 합니다.”
“동서남아시아라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쪽 사업을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해 주십시오. 알라딘은 이미 그쪽에 진출해서 여러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산발적이라 상호 연관성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AA 사업을 다시 한번 검토해서 사업 확대 방안을 마련해 보겠다.”
“여러분들도 각자 맡은 사업에 최선을 다해 주시면서 한편으로는 고문님을 도와 AA 사업의 확대 방안을 함께 고민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어느 때보다 강력한 지시에 다들 고개를 숙이고 물러가자 진혁은 급히 박이동을 불렀다.
사업은 사업이고, 투자는 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