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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226화 (226/307)

226화. 브렉시트

“제주도 땅의 현재 가치가 어느 정도 됩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박이동이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음……. 최근 시세는 다시 확인해 봐야겠지만 한 달 전 가격 기준으로 350억 정도 됐습니다.”

25억을 투자했으니 14배가 되어 있었다.

“전부 매각해 주십시오.”

“전부를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제주 동행이 사용하는 부지를 제외하고 전부 매각하되 중국 자본에 넘겨주십시오.”

“중국 자본에 말입니까?”

박이동이 놀라 되묻는 모습에 진혁이 물었다.

“매각에 문제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쪽에서 매각해 달라는 전화를 여러 번 받아서, 파는 데는 전혀 문제는 없습니다. 헌데 회장님께서는 원래 우리나라 국토가 중국에 넘어가는 것을 막겠다며 땅을 사신 것으로 알고 있어서…….”

“완전히 넘기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나중에 다시 되찾아올 겁니다. 물론 그때는 훨씬 더 낮은 가격이 되겠지만 말입니다.”

“아, 무슨 말씀인 줄 알겠습니다.”

역시 부동산 전문가라 이해가 빨랐다.

대중 관계의 악화는 필연적으로 중국 관광객의 감소로 이어진다.

결국 그들을 보고 제주도에 투자한 중국 부동산 투자 회사는 닭 쫓던 개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당연히 땅값은 떨어진다.

오랜만의 투자 수익을 기대하며 뿌듯한 표정으로 여유롭게 신문을 펼친 진혁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EU 정상회의,

‘브렉시트’ 저지 협상 극적 타결!

브렉시티는 영국(Britain)과 탈퇴(Exit)의 합성어로 영국의 유럽 연합(EU) 탈퇴를 뜻하는 말이었다.

영국이 요청한 EU 소속 국가 이주민에 대한 복지 혜택 제한을 EU 집행부가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기사였다.

“이런 바보.”

퍽!

‘윽.’

자책하며 머리를 너무 세게 때렸는지 아팠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고문님!”

다급한 마음에 진혁은 직접 김선혁의 사무실로 뛰어갔다.

* * *

이틀 후.

진혁은 미국 뉴욕의 존에프케네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JK모건에서 보내 준 리무진을 타고 사무실로 가자마자 스미스가 급하게 물었다.

“또 무슨 일이 터진 겁니까?”

“투자를 접고 점집을 하셔도 되겠습니다.”

“제가 회장님을 한두 해 겪어 본 게 아니잖습니까.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신 것은 또 뭔가 큰 건이 터진다는 방증이잖습니까.”

정확한 지적에 진혁은 입맛을 다셨다.

스미스도 잭슨이나 조나단처럼 자신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놀란 모습을 즐기려고 했던 기대감이 급격히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덕분에 좀 더 냉정해질 수 있었다.

정색하며 진혁이 물었다.

“브렉시트 가능성을 얼마나 보십니까?”

“EU가 영국의 요구 조건을 수용해 브렉시트의 위험성은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발표 이후로 금융 시장도 빠르게 안정을 찾았고요.”

“하지만 최종 결정은 6월의 국민 투표로 정해지잖습니까?”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영국 총리도 공개적으로 EU 잔류를 희망한다고 밝혀 찬성률은 20%를 넘지 않을 거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입니다.”

역시 예상대로 스미스는 다른 경제전문가들의 예상과 마찬가지로 브렉시트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었다.

“전 영국이 EU를 탈퇴한다는 데 베팅할 생각입니다.”

“……진심이십니까?”

진혁의 능력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스미스가 되물을 정도로 세계 금융 시장이 대혼란에 빠질 엄청난 일이었다.

“정치인과 국민들의 생각이 항상 같지는 않습니다. EU 지도자들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부족하다며 다른 선택을 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근거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지점장님도 아시다시피 영국 정부가 요구한 것은 이민자들에 대한 복지 혜택 축소였습니다.”

“그래서 EU에서 어렵게 그 안을 수용했습니다. 그럼 문제가 해결된 거 아닙니까?”

“그런 단편적인 생각이 영국 총리와 EU 지도자들이 영국 국민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그들이 왜 그런 요구를 했는지 그 근원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

“자신들에게 돌아와야 할 혜택이 EU의 다른 못사는 국가들을 위해 쓰인다는 불만 때문이었습니다. 이민자에 대한 복지 혜택 축소는 EU 지원금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

스미스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영국의 EU 분담금은 매년 약 30조로 독일 다음으로 높았다.

진혁이 말을 이었다.

“국민들은 그 돈을 자국의 경제 성장 자금으로 투입하면 EU 탈퇴에 따른 손실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중국, 미국 같은 EU 이외 경제권들과 더 나은 조건의 무역 협정을 맺기 위해서라도 EU를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음…….”

진혁의 말이 끝났지만 스미스는 좀처럼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맞는 이야기이긴 했지만, 브렉시트가 실현되면 EU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

이는 역설적으로 세계가 나서서 영국의 EU 가입을 결사적으로 막을 거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브렉시트?

다른 이들이 이런 주장을 한다면 당장 호통을 쳐서 내쫓겠지만, 상대는 검은 머리 짐이었다.

노련한 스미스라 이런 경우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장거리 비행으로 힘드셨을 텐데 피로부터 푸시지요. 저희가 최고로 모시겠습니다.”

“……그럽시다.”

검토할 시간을 벌려는 스미스의 꼼수를 진혁은 모른 척 받아들였다.

JK모건이 준비한 숙소는 더마크 호텔의 펜트하우스였다.

하룻밤 숙박비가 8만 달러가 넘는 최고급 중에서도 최고급이었고, 맨해튼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요지에 위치해 있었다.

열 명이 식사하고도 남을 정도로 넓은 식탁에 세계 최고급 요리가 가득 차려져 있는 모습에 진혁이 입맛을 다셨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생각났다.

이런 대접을 받을 줄 알았으면 데리고 오는 건데.

너른 거실 한쪽에 설치된 인공 폭포를 보며 혼밥을 해야만 했다.

개인 스파의 뜨거운 물로 피로를 푼 진혁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화려한 맨해튼의 야경을 보니 가족 생각이 더 간절했다.

다음 날 오전.

다시 만난 스미스의 얼굴은 하루 사이에 많이 망가져 있었다.

본사는 물론 세계 각국 지점장들과 의견을 교환하느라 한숨도 자지 못했다.

스미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 측 분석으로는 회장님이 말씀하신 변수를 감안하더라도 브렉시트 가능성이 최대 40%는 넘지 않을 거라는 예상입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JK모건은 회장님과 함께 투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런 회사 방침과는 상관없이 제 개인적인 자금은 회장님께 베팅할 겁니다.”

“무리하지는 마십시오. 그리고 제 투자 전략을 공개적으로 공표해 주십시오.”

“공개적으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이 수익을 보면 좋지요.”

“……알겠습니다.”

스미스는 솔직히 진혁의 이번 결정을 말리고 싶었다.

가능성이 너무 낮았다.

이번 일로 그간 쌓아 놓은 검은 머리 짐의 명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투자자 본인이 내린 결정이라 반대할 수는 없었다.

점심까지 얻어먹고 숙소인 더마크 호텔로 돌아오자 알라딘 홀딩스의 야맘 사장이 도착해 있었다.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좋은 곳에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갑자기 불려와 불편할 텐데 그는 오히려 표정이 좋았다. 평생 처음 와 보는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의 모습에 감탄하고 있었다.

“JK모건의 스미스 지점장님을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그쪽은 브렉시트 가능성을 낮게 보던데, 사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같은 생각입니다만, 전 회장님의 판단을 전적으로 믿습니다.”

진혁의 투자를 직접 시행해 온 야맘이라 그 믿음은 단단히 굳은 시멘트보다 더 강했다.

“전 브렉시트가 일어날 거라는 데 베팅하려고 합니다. 문제는 투자처인데, 어디가 좋을 것 같습니까?”

“음……. 브렉시트가 일어나면 세계 금융 시장이 요동을 칠 겁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황에서는 안전 자산으로 자금이 몰리게 되어 있습니다.”

“안전 자산요?”

“그렇습니다. 채무 불이행 위험과 시장 가격 변동 위험 등이 없는 금 같은 원자재와 일본 엔화에 많이들 투자합니다.”

“금과 엔화란 말이지요…….”

진혁이 생각에 잠겼다.

과거 삶의 기억으로 브렉시트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어떤 상품에 투자해야 할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그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스미스와 상의하려 했는데 자신과 다른 길을 택하는 바람에 야맘을 부른 것이다.

진혁이 물었다.

“현재 제 개인 계좌의 잔고가 얼마나 됩니까?”

“그간 각국의 스타트업에 500억 달러가량이 투자돼서 800억 달러 조금 넘게 남아 있습니다.”

“지금부터 각자 어떤 상품에 투자하는 게 좋을지 조사한 다음에 결정을 하기로 하지요.”

“알겠습니다.”

그 시간 이후로 두 사람은 각자 투자 상품을 찾았다. 진혁은 비치된 컴퓨터로, 야맘은 가져온 노트북으로.

그리고 밖에 어둠이 깔릴 때쯤 다시 모였다.

진혁이 먼저 물었다.

야맘이 성격상 자신이 말하면 무조건 따르겠다고 할 것 같아서였다.

“결정하셨습니까?”

“말씀드린 대로 이미 검증된 금과 엔화에 투자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안정적인 채권 투자 전문가다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안정보다는 모험을 즐기는 스타일이었다.

“전 은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은요?”

“그렇습니다. 은은 안전 자산이기도 하면서 산업용에 꼭 필요한 원자재라는 강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은은 저가인 데다 거래량도 적어 변동성이 매우 큰 위험한 상품입니다.”

“우리는 지금 시장 전문가들과 다른 위험한 투자를 결행하려는 겁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알겠습니다. 은 선물에 투자하는 것으로 결정하시지요.”

야망의 답이 한 템포 늦게 나왔다. 그만큼 이번 결정에 불만이 있다는 방증이었다.

그러자 진혁이 다시 고민에 빠졌다.

앞으로 사업 확장을 생각해 어렵게 모은 자금이었다. 이전 투자와 달리 투자 상품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잘못 선정해서 깡통이라도 되면 큰일이었다.

진혁이 야맘에게 제안을 했다.

“반반으로 나눠 각자 선택에 따라 투자를 하는 것으로 하지요.”

“각자요?”

“그렇습니다. 금과 엔화, 그리고 은에 각각 400억 달러씩 투자해서 나중에 진 사람이 술 사기입니다.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회장님 술을 한번 제대로 얻어 마셔 보겠습니다.”

“나중에 지갑 털렸다고 불평하시지 않기입니다.”

서로 농담을 하며 의지를 다졌다.

저녁이 준비되자 두 사람은 고급 와인까지 시켜 최고급 만찬을 즐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돈은 JK모건이 내는 거라 아낄 이유가 없었다.

역시 함께 먹으니 좋았다.

특히나 말로만 듣던 최고급 요리에 야맘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잘 불렀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가족이 아니라는 것.

가족 생각에 진혁은 다음 날 먼저 호텔을 나와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 시각, JK모건이 외부 전문가의 투자 의견을 게재했다.

검은 머리 짐, 브렉시트 확신.

영국 국민 투표에서 영국의 EU 탈퇴가 결정될 것이라며 안전 자산에 대규모 투자를 촉구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시장의 전망과 완전히 배치되는 의견이라 관심 있게 보는 이는 드물었다.

* * *

집에서 그리웠던 가족과 함께 하루를 쉬고 나온 진혁이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을 때였다.

구필준 소장과 한상국 사장이 함께 들어왔다.

“BLC의 알라딘 보안망 개선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성능은 어떻던가요?”

“그게…… 연구원 모두를 투입해 시험해 봤는데 아무도 보안을 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구필준의 답변이 뜨뜻미지근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보안 전문 회사가 설치한 것이라 웬만한 전문가도 그 안전성을 검증하기가 쉽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진혁이 말했다.

“빈센트 사장을 연결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한상국이 재빨리 빈센트와 영상 통화를 연결했다. 스피커폰으로 전환하자 빈센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찾으셨습니까? 회장님.

“보안망이 완료되었다는 보고를 받는 중입니다.”

-BLC의 개발한 모든 블록체인 기술을 투입해서 하이퍼 디포스, 이중화 블록체인, 초고속 노드로 완벽한 보안 솔루션을 구축했습니다.

“어떤 해커 공격에도 버텨낼 수 있다고 확신하십니까?”

-확신합니다.

빈센트가 바로 답했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방증이었다.

“좋습니다. 용역비를 지불하지요.”

-역시. 감사…….

다시 한번 통 큰 결정에 감탄하며 희색이 만면한 얼굴로 답하는 빈센트의 기분에 진혁이 찬물을 끼얹었다.

“다만 그 시기는 마지막 시험을 통과한 후가 될 겁니다.”

-시험이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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