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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227화 (227/307)

227화. 해킹 챌린지 대회

“자금 집행 전에 검증은 당연한 겁니다.”

-물론 검증을 해야 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현재 한국의 기술력으로는 우리 보안 솔루션을 테스트할 능력이 안 될 텐데요?

“인정합니다.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테스트를 해 볼 생각입니다.”

-……?

진혁의 느닷없는 말에 빈센트는 물론 구필준과 한상국도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해킹 챌린지 대회를 개최해 주십시오.”

-해킹 대회를요?

“그렇습니다. 새로 구축된 알라딘의 보안망을 대상으로 세계 각국의 해커들이 참여하는 대회입니다. 상금은 100만 달러로 하지요.

-헉…….

빈센트의 입에서 당장 헛바람이 튀어나왔다.

이번 용역비용이 200만 달러인데 그 절반을 다시 투자해서 테스트를 하겠다는 진혁의 통 큰 결정에 놀란 것이다.

하지만 이내 빈센트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이런 거금이 걸린다면 세계 곳곳에서 오타쿠 생활을 하는 해커들이 전부 달려들 게 뻔했다.

이번에는 빈센트가 쉽게 답을 못 하자 진혁이 먼저 물었다.

“설마 자신이 없으신 겁니까?”

-……아닙니다. 문제없습니다.

“상금 100만 달러의 절반은 알라딘에서 부담하겠습니다. 나머지 반은 BLC의 용역비에서 제하는 것으로 하지요. 그래야 공평할 것 같은데, 어떠십니까?”

-……알겠습니다.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럼 향후 일정은 구필준 소장님과 상의해 주시고, 수고해 주십시오.”

말을 마친 진혁의 눈짓에 한상국의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통화 내용을 들으셨을 테니 소장님이 나머지 일은 맡아서 추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빈센트 녀석, 날로 먹으려다가 식겁했을 겁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지요. 그리고 이번 일이 빈센트 사장님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전 세계 해커들을 상대하다 보면 그만큼 실력도 늘 겁니다. 그게 BLC의 발전에 큰 자양분이 될 겁니다.”

“회장님께 그런 큰 뜻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다시 한번 주의를 주겠습니다.”

“BLC도 알라딘 홀딩스의 자금이 투자되어 있으니 남이 아니지요.”

지난번에 논의된 대로 5억 달러에 BLC 지분의 45%를 사 들였으니 당연한 말이었다.

* * *

퇴근 후, 김선혁이 회사 인근의 한정식 집으로 들어가자 진혁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식사를 하며 알라딘 사업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빈 그릇이 나가고 차가 나오자 진혁이 본론을 꺼냈다.

“사람들이 많아서 사무실에서는 말씀 안 드렸는데, 대통령께서 한중 관계가 악화됐을 때에 대한 경제 대책을 저보고 마련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음……. 청와대는 외교 문제를 감당하기도 벅찰 테니 경제는 네게 부탁한 모양이구나. 어떻게 할 생각이냐?”

“그건 사무실에서 이야기한 게 전부입니다. 한중 관계가 급격히 냉각될 거라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동남아시아나 다른 시장으로 전환을 서두르는 게 충격을 최소화시키는 유일한 길입니다.”

“알라딘이야 중국과의 거래가 많지 않은 데다 태후 화장품 매장도 매각해서 걸릴 게 없지만, 다른 기업들은 그렇게 쉽게 결정하지 못할 거야.”

“그렇기는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주저하면 할수록 손실만 불어날 겁니다.”

김선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진혁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예상에 근거한 논리였다.

“우리야 네 말을 믿지만, 아무것도 확정된 게 없는데 청와대가 네 대책을 받아들이겠냐?”

“받아들이기 힘들겠지요. 아니, 제 말을 믿더라도 그걸 공표할 수는 없을 겁니다. 설혹 청와대가 공표를 해도 그때는 이미 늦은 후일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

의아해하는 김선혁을 직시하고 진혁이 말했다.

“고문님이 움직여 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그렇습니다. 재계에 한중 관계가 악화됐을 때의 위험성을 알리고 대책을 마련하게 해 주십시오.”

“태후라면 모르지만 다른 곳은…….”

김선혁이 말끝을 흐렸다.

태후야 원래 몸담았던 곳이라 정진호 회장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다른 곳은 아니었다.

회장을 만나려면 몇 단계는 거쳐야만 하는데, 그런 곳이 한둘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진혁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고문님이 정식으로 알라딘 회장 자리에 앉아 주셨으면 합니다.”

“회장을?”

“저랑 공동 회장을 맡아 한국 내의 일을 처리해 주십시오. 전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해외 사업을 추진하겠습니다.”

“음…….”

김선혁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너무도 급작스러운 제안이었다.

“이전 태후물산 시절의 역할로 돌아가는 겁니다. 고문님이 안에서 관리하고 지원해 주시면 제가 해외에 나가 열심히 뛰겠습니다.”

진혁의 말이 끝나고도 김선혁은 한참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쉽게 내릴 결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는 이미 나와 있었다.

현재 상황으로는 진혁이 말한 방법밖에 없었다.

마침내 김선혁이 입을 열었다.

“좋다. 네 말대로 하마.”

“감사합니다.”

“하지만 임시다.”

“그럼요. 당연히 임시지요. 제가 이 자리에 앉기 위해서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데 그냥 순순히 내놓겠습니까. 임시입니다, 임시.”

“실없는 놈.”

진혁의 엄살에 김선혁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일부러 그런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밝아졌던 분위기가 금방 다시 무거워졌다.

그만큼 엄중한 사안이었다.

다음 날 오후, 알라딘 그룹 대회의실에 직원들이 모여들었다.

김선혁의 공동 회장 취임식이 열렸다.

사안이 시급해 행정 절차는 나중에 밟기로 했다.

* * *

TV에서는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 폐쇄를 발표했다.

경협 보험과 교역 보험 등을 통해 특별 대출 패키지 등 금융 지원을 추진하는 한편, 대체 공장 부지를 마련해 입주 기업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 시각, 한국의 일을 김선혁에게 맡긴 진혁은 김상균의 경호를 받으며 뉴델리행 비행기를 탔다.

인도 서부 마하라스트라의 도이에 중공업 오토바이 생산 공장 준공식이 열렸다.

인도는 전 세계 수요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거대한 모터사이클 시장이었다.

도이에 중공업은 이곳 생산 공장의 설립을 계기로 연간 모터사이클 생산량을 1만 대로 늘려 아프리카와 중남미 시장 수출을 위한 수출 거점으로 삼을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도착한 진혁은 당당히 내빈석 두 번째 자리에 앉았다. 만길라 총리 다음이었는데 참석자 누구도 의아해하지 않았다.

중국의 동서경제벨트에 포위되어 질식사 직전에 함반토타 항 인수로 숨통을 틔웠으니 구국의 영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분위기는 만찬장에서도 이어졌다.

만길라 총리가 아예 옆에 붙어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나즈마 총리가 서 회장을 왜 그렇게 아끼는지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총리께서 저를 좋게 봐 주셔서 그런 겁니다.”

“일국의 지도자가 개인적인 감정만으로 정부 요직을 주지는 않지요.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함반토타 항 인수도 그렇고, 밸류에이션 버블로 떠났던 해외 투자사들이 서 회장님이 스타트업에 집중 투자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돌아오고 있습니다.”

“인도 시장의 잠재력을 높게 봐서 그런 것이지, 저 때문이 아닙니다.”

“굿딜만 해도 그렇습니다.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서 회장님이 인수하고 바로 안정이 되어 지금은 그 분야에서 1, 2위를 다툰다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원래 뛰어난 업체였습니다. 다만 방향을 잘못 잡아 잠시 어려웠을 뿐입니다. 좋은 업체를 인수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결같이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며 고개까지 숙여 감사를 표하는 모습에 만길라 총리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끄덕여졌다.

개발도상국이라 무시하고 돈 몇 푼 투자하면서 고자세로 일관하는 다른 기업가나 정부 관료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최근 건설부 장관으로부터 흥미로운 보고를 받았습니다.”

“……?”

“서 회장님이 방글라데시 남부 민간 경제 특구에 로힝야를 위한 임대 주택을 건설하는데,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고 하더군요.”

“아, 그것은 모듈러 공법을 이용해서 그렇게 된 겁니다.”

“그 모듈러 공법을 이용한 주택 건설을 우리나라에서도 해 주시오.”

의외의 제안에 진혁의 눈이 동그래졌다.

“우리나라의 주택 부족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건설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보니 경제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도 솔직히 이번에 모듈러 주택을 처음 접하고 그 속도에 놀랐습니다. 안정성도 검증된 신공법입니다.”

진혁은 한인갑에게 들은 모듈러 공법의 장점에 대해 들려주었다.

만길라 총리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현실에 그 공법이 딱 맞습니다. 정부에서는 부족한 주택 건설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주택 건설 프로젝트에는 100% 외국인 투자를 허용하고 있고, 중앙은행뿐만 아니라 도시 은행들도 주택 대출을 쉽고 빠르게 해 주고 있습니다.”

“동남아에 들렀다가 방글라데시에 갈 예정인데 실무자들과 상의해 보겠습니다. 그 전에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들어서 아시겠지만 북한의 핵 실험으로 인해 한반도 정국이 급격하게 냉각되고 있습니다. 이는 비단 남북 관계만이 아니라 한중 관계, 나아가 미중 관계의 악화를 불러올 겁니다.”

“……!”

만길라 총리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일국의 지도자라 진혁의 말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금방 이해했다.

특히나 인도는 중국과 적대 관계였다. 거기에 그들이 지원하는 파키스탄과 전쟁 중이기도 했다.

상황이 심각했다.

“최근 세계 제조 공장으로서의 위상이 퇴색된 중국이라 이번 일을 계기로 세계 제조 기업들의 탈 중국화가 가속될 겁니다. 그들이 옮길 곳은 아시아 내밖에 없습니다. 동남아시아가 첫 번째 대상이 되겠지만 인도 역시 좋은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공개적으로 중국과 대적하는 곳이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화교에 장악되어 중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중국의 입김에서 자유롭습니다.”

“그 점을 적극 홍보하시면 해외 투자 유치에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조언 고맙습니다. 서 회장님의 투자도 기대하겠습니다.”

만길라 총리가 다시 한번 부탁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진혁은 그제야 겨우 한숨을 쉬나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눈치만 보던 정관계 인사들이 너도나도 달려와 인사를 하는 바람에 사람들에 둘러싸여 한동안 의미 없는 대화만 나눠야 했다.

그때 도이에 중공업의 노무라 사장이 핸드폰을 들고 다가왔다.

“회사에서 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진혁이 노무라 사장을 따라 그곳을 벗어났다.

구석 자리로 간 진혁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겨우 벗어났습니다.”

“찰거머리 같은 자들입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적당히 빠지는 게 상책입니다.”

“좋은 것을 배웠습니다.”

노무라 사장이 핸드폰을 건네며 한쪽 눈을 깜빡이는 모습에 그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총리님과는 무슨 말씀을 나누셨습니까?”

“이런저런 좋은 말을 하시더니 결국은 주택 건설 사업을 해 달라고 하시더군요.”

“정치인들이야 다들 그렇지요. 회장님은 극빈 대접을 받아서 좋겠지만 저는 고민입니다.”

“……?”

“원래는 좀 더 시장 상황을 지켜보고 결정하려고 했는데, 회장님의 지시로 급하게 생산량을 늘리는 바람에 판매 전략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습니다.”

“제가 생각해 놓은 게 있으니 그 점은 걱정 마시고 사장님은 생산량을 늘릴 고민이나 하십시오.”

진혁의 큰소리에 노무라가 우려의 말을 했다.

“인도의 이륜차 시장이 크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만이 아니라 세계 이륜차 제조 기업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이곳에 들어와 있어 경쟁이 치열합니다.”

“압니다. 하지만 그건 역으로 이곳에서 성공한다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성공해 보일 테니 걱정 마십시오.”

다시 한번 자신감을 드러내는 진혁에게 노무라가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찰거머리들이 다시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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