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인도 공략
진혁은 서둘러 다음 행선지로 이동했고, 다음 날 수도 뉴델리로 건너갔다.
아먼 의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통합 회사인 알쇼핑 굿딜의 사장도 겸임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회장님이 모두 이뤄 주신 겁니다.”
아먼 의장의 태도가 그 어느 때보다 정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지부진했던 알쇼핑 인디아 사업이 굿딜 인수로 급격히 커졌다.
한상국이 한국의 전문가들을 대거 투입해 최신 이커머스 기술과 마케팅 전략을 도입하자 매출이 하루가 다르게 뛰어오르고 있었다.
만수르 총리가 함반토타 항 인수를 중국의 야욕을 막아낸 자신의 치적으로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바람에 덩달아 진혁도 알려졌다.
덕분에 이곳저곳에서 그와의 면담을 부탁하는 전화를 받았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진혁이라 우선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투게더 프로모션의 성과는 어떻습니까?”
“그게 아주 대박입니다. 농촌과 소도시의 매출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곽양의 이치(一起)를 응용한 SNS 선공동 구매 할인 홍보는 예상대로 가격을 우선시하는 저소득층에게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전체 매출의 20%에 불과했던 농촌과 소도시의 매출이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물론 그 이면에서 아먼이 인도의 4대 소비재 유통 그룹 ‘다부다 인디아 그룹’을 운영하고 있어 능력 있는 제조업체가 대거 참여해 준 덕분이기도 했다.
흥분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에게 진혁이 주의를 주었다.
“긴장을 늦추시면 안 됩니다. 조만간 경쟁 업체에서도 유사한 프로모션을 내놓을 겁니다. 한국에서도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겠지만 사장님도 이곳 시장에 맞는 특화된 서비스에 대해 항상 고민해 주셔야합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뵙자고 한 것은 다부다 인디아 그룹의 유통 사업 확대를 제안하고자 해서입니다.”
“그룹의 유통 사업을 말입니까?”
“제가 이번에 메이왕 그룹의 한국 내 H&B 사업을 인수했습니다.”
진혁은 그간의 사정을 들려주고 말했다.
“그래서 이곳에서도 다부다 인디아 그룹과 함께 뉴아이 매장을 늘렸으면 합니다.”
“음…….”
“제가 한국에서 4차 산업 기술 개발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매장은 그 기술을 도입해 스마트 매장으로 오픈할 예정입니다. 그 기술이 필요하다면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회장님은 정말 철저하신 분이시군요.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먼이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수락했다.
디럭스토어 시장을 내놓는 게 아깝기는 했지만, 한국의 뛰어난 기술을 직접 체험한 터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만일 자신이 거절한다면 진혁은 분명 다른 파트너를 찾아 반드시 일을 성사시킬 게 분명했다.
리틀 지니의 인도 사업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얼마간 그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진혁이 물었다.
“헬로 쪽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그쪽은 당연히 환영이지요. 회장님이 스타트업에 대규모 투자를 한다는 소식은 이미 널리 퍼져 있습니다. 저녁에 약속을 잡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헬로는 인도의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였다.
한국에서 최성준의 일을 겪으면서 차량 공유 서비스의 급격한 성장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서둘러 선점해야 할 부분이었다.
* * *
비니반살 헬로 사장은 삼십 대 초반으로 약간 살이 찐 체격이었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인도의 스마트폰 보급률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위치 정보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들이 출시되고 있는데, 헬로는 그중에 가장 앞선 기업입니다.”
“이번에 한국에 가서 공유 경제의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리 알았다면 지난번 투자를 결정할 때 반드시 만나 뵈었을 겁니다.”
“회장님이 이 나라에 많은 일을 하신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인도를 선택하신 것은 정말 탁월한 결정이십니다.”
두 사람은 얼마간 이런저런 좋은 이야기만 나누며 서로를 탐색했다.
비니반살의 헬로 홍보가 이어졌다.
“2011년에 설립된 헬로는 인도 시장에 특화된 다양한 서비스로 교통 O2O 분야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자금 여력만 갖추어지면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
“투자금은 얼마 정도나 필요하신 겁니까?”
“2억 달러입니다. 경쟁 업체였던 택시 셰어의 인수에 필요한 자금입니다. 유럽계 투자 회사가 투자해 주기로 했었는데 버블 붕괴가 일어나는 바람에 발을 빼 버렸습니다. 당시 합의된 기준대로 지분의 30%를 드리겠습니다.”
“40%를 주십시오.”
“그건 무리입니다.”
비니반살의 얼굴이 당장 굳어졌다.
진혁은 못 본 척 말을 이었다.
“지분 10%에 대한 대가는 다른 식으로 도움을 드리지요.”
“어떻게 말입니까?”
“헬로는 택시 기사에게 보조금을 별도로 지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게 재정적으로 상당한 부담이라는 것도 말입니다.”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이번에 들어온 것이 도이에 오토바이 생산 공장 준공식 때문입니다. 오토바이 택시를 운행하시는 분이 신제품으로 교환하실 때 할인 가격에 제공해 드리지요.”
“……!”
“또한 알라딘 그룹은 알쇼핑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4차 산업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알라딘 페이라는 결제 시스템은 물론, AI와 IoT를 적용하면 탑승 시간 동안 승객에게 다양한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는 광고 수익과 직결됩니다. 이외에도 양사가 협력할 방법은 무궁무진합니다.”
깊숙이 들어가 있던 비니반살의 눈이 반짝였다. 자신이 생각하는 헬로의 미래를 진혁이 먼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진혁의 웃으며 말했다.
“알라딘의 그룹 모토는 상생과 공존입니다. 사장님의 공유 개념과 그 뜻이 같습니다. 전 단순히 이익만 쫓는 투자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함께 성장해 가는 파트너십을 원합니다.”
“회장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비니반살은 바로 응답했다.
오토바이 할인만도 적은 혜택이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4차 산업 신기술은 돈을 주고도 사기 힘들었다. 소중한 기술을 공유해 주겠다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인도네시아로 건너간 진혁이 처음으로 만나 사람은 하르자토 사장이었다.
오토바이 택시 ‘고젝(Go-Jek)’으로 차량 공유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는 ‘오젝(O-Jek)’의 CEO였다.
인도네시아의 라자다 사업을 위탁받아 운영하면서 배송 서비스로 오젝을 활용한 인연이 있었다.
그 역시 두말없이 진혁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르자토도 해외 진출을 위한 투자금이 필요했던 참이었다.
2억 달러에 지분의 30%를 받기로 하고, 도이에 오토바이를 할인가에 기사들에게 판매해 주기로 했다.
AK사무실로 들어가자 선병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도에서 지금 오시는 길이십니까?”
“하르자토 사장님을 만나고 오느라 좀 지체했습니다.”
진혁은 고젝에 대한 투자와 업무 협약에 대해 들려주었다.
선병식이 입맛을 다셨다.
“어렵게 개발한 기술인데 너무 쉽게 내주신 것 아닙니까?”
“비즈니스의 기본은 서로 주고받는 겁니다. 아무것도 주지 않고 상대가 내놓기만 바라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길고 멀게 보셔야 합니다.”
“아는데 그게 참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들으셨겠지만 남북 관계에 이어 한중 관계가 급격히 얼어붙을 겁니다. 그에 따라 동남아시아 시장이 굉장히 중요하게 됐습니다.”
“고용준 회장으로부터 전화는 받았습니다. 이쪽이야 희소식이지만 한국 상황을 모르는 게 아니라 걱정이 많습니다.”
“그건 AK에 맡기고 회장님은 AA 시장 확대에 주력해 주십시오. 고젝과의 업무 협약도 그 일환으로 진행한 겁니다.”
진혁은 이어 자신의 계획을 들려주고 앞으로의 일을 당부했다.
저녁은 라이꾸두 회장과 먹기로 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서 회장님이 바쁘다는 것은 마야를 통해 간간히 들었습니다. 사업가가 바쁘면 좋은 것이지요.”
세월이 흘러서인지 라이꾸두 회장의 태도가 한결 여유로웠다.
그도 그럴 것이 알쇼핑과의 제휴로 알라마트의 성장세가 탄탄하고, 막내 딸 마야도 당당한 사회인으로 성장해서 걱정이 없었다.
이게 모두 진혁 덕분이었다.
“제가 리카렁 회장님과 거래를 통해 한국 내 메이왕 매장을 인수해 H&B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전에 4차 산업 기술도 개발하던 중이어서 시범적으로 적용해 볼 생각입니다. 결과가 좋으면 알라마트에도 도입하면 좋으실 것 같습니다.”
“회장님이 하시는 일인데 문제가 있을 리가 없지요. 지금 당장이라도 원하신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
“절 믿어 주시는 만큼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어 오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고, 오늘은 다른 용건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메가시티를 인수하고 싶은데 다리를 좀 놔주십시오.”
“메가시티!”
내내 차분했던 라이꾸두 회장의 시선이 크게 흔들렸다.
메가시티는 수도 자카르타 남부 중심지에 위치한 하이엔드급 복합 쇼핑몰로 호텔과 오피스 빌딩, 아파트 등이 함께 조성됐으며, 식음료를 포함해 해외 유명 패션 브랜드와 영화관 등 엔터테인먼트 시설이 입점해 있었다.
시내에만 100개 정도의 메이저급 쇼핑몰이 난립하는 쇼핑의 천국 자카르타에서도 고급 쇼핑몰로 통할 정도로 유명한 건물이었다.
라이꾸두 회장의 과한 반응에 진혁이 의아한 시선으로 물었다.
“작년에 일본계 기업과 매각 협상을 벌이다가 중단된 것으로 아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일부 주주들의 반대 때문에 무산됐습니다.”
“모그룹의 보유 지분과 우호 지분을 합치면 70%가 넘는 것으로 아는데, 겨우 30%에서 반대가 나왔다고 무산됐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죽망에서 매각을 막았습니다.”
“……!”
진혁의 눈도 라이꾸두 회장과 마찬가지로 커졌다.
‘죽망(竹网)’은 동남아시아 화교 네트워크를 일컫는 용어였다. 결국 화교들이 매각을 막았다는 말이었다.
라이꾸두 회장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햇빛이 있는 곳에 중국인이 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중국인이 다른 나라에 정착하면서 중국 특색의 사회를 확장시켰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중국을 의미하는 ‘화(華)’와 타국에서 거주를 의미하는 ‘교(僑)’를 합쳐 ‘화교(華僑)’라 부르며 결속력을 다져왔습니다. 죽망의 지침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정말 방법이 없겠습니까?”
진혁의 간곡한 표정에 라이꾸두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통칭 화교라 부르지만 세 가지 부류로 나눠집니다. 중국 국적을 유지하는 이는 화교, 세대를 흘러 현지 국적을 가진 사람을 ‘화인(華人)’이라 부릅니다. 중국계이지만 중국계 사회에 참여하지 않는 현지 국적자를 ‘화예(華裔)’로 분류합니다.”
“그렇군요.”
“쿤초로 임텍 회장님은 화교십니다. 저는 화인이고, 마야는 화예입니다.”
“복잡하군요.”
“문제는 죽망의 지도부를 화교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겁니다. 중국 색채를 너무 띠는 바람에 그로 인해 여러 나라에서 현지 주민들과 갈등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메가시티가 욕심나신다면 쿤초로 임텍 회장님을 설득하시는 길밖에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진혁은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라이꾸두 회장의 말대로 그의 능력 밖의 일이었다.
* * *
진혁이 쿤초로 회장 저택을 찾은 것은 다음 날 오후였다.
안톤 사장이 입구에서 기다렸다가 안으로 안내했다.
쿤초로 회장은 팔십이 넘은 나이라 요즘은 그룹 운영을 안톤 사장에게 일임하고 중요한 자리에만 참석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오셨을 때는 다른 손님들을 접대하느라 뵙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직접 어쩐 일입니까?”
“메가시티를 인수하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진혁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
기습을 당한 쿤초로 회장의 얼굴에 여유로움이 사라졌다.
이렇게 조급한 모습을 보이는 건 만만디 전법을 구사하는 중국인과의 거래에서 가장 피해야 할 방식이었다.
누구보다도 자신들에 대해 잘 알아 여러 번 곤혹스럽게 했던 진혁이라 의외의 모습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