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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231화 (231/307)

231화. 인공지능 바둑 대결

진혁은 잘 꾸며진 연구소를 둘러보고 소장실에서 구필준과 차를 마셨다.

“빈센트 녀석, 코가 아주 납작해졌습니다.”

“방화벽이 뚫렸다는 보고는 받았습니다. 캐나다의 대학생이었다면서요?”

“말이 대학생이지 이제 겨우 열다섯 살짜리였습니다. 그쪽에서는 오래전부터 천재로 소문이 자자했답니다. 아무튼 덕분에 빈센트가 아주 마음을 단단히 먹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진혁은 보고를 받자마자 다시 BLC에게 일주일 후에 2차 해킹 챌린지 대회를 제안했다.

이번에도 상금은 100만 달러고 반반씩 부담이었다. 다시 뚫린다면 BLC가 받기로 한 자금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구필준이 웃으며 말했다.

“돈도 돈이지만 자존심이 크게 상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제게 부탁까지 하더군요.”

“……?”

“냉정히 말해 이번에 방화벽이 뚫린 것은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 때문이었습니다.”

해킹 방어 기술은 기본적으로 디도스 등 다수의 공격을 혼자서 막아내는 불공정한 게임이었다.

그래서 처리 속도가 중요했다.

“우리가 이오콘의 MAIO 기술을 보유한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전송 속도 개선에 필요하다며 SSD 서버 기술의 공유를 부탁해 왔습니다.”

“그걸 적용하면 빨라집니까?”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HDD)에 비해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는 물리적 제한이 없어 최대 250배 빠릅니다. 이번에 들어온 슈퍼컴에도 그 기술이 적용됐는데, 확실히 빠릅니다.”

“참, 슈퍼컴은 잘 설치되었습니까?”

“연구원들이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테스트해 보고 문제가 없다면 다른 지역에도 설치할 수 있게 준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만…… 문제는 인공 지능 기술입니다. 다른 것은 다 준비가 되었는데 AI 때문에 통합 솔루션 개발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우려의 말을 했음에도 진혁이 오히려 미소를 머금자 구필준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지으십니까?”

“아닙니다. 인공 지능 기술은 곧 확보하게 될 테니 걱정 마십시오.”

“회장님이 잘 모르셔서 그러는데, 인공 지능 기술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개발 방식에 따라 기술력에서 현격한 차이가 납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스톰고 정도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거라면 최상이지요. 스톰 브레인이 보유한 인공 지능 기술은 세계 최고입니다. 하지만 그런 고급 기술은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팔지 않을 겁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십시오.”

다시 한번 진혁이 자신감을 드러내자 구필준도 더 이상 재촉하지 못했다.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말이 나온 김에 회장님은 이번 대결의 결과를 어떻게 예측하십니까?”

“인공 지능이 이길 겁니다. 하지만 완승까지는 아닐 겁니다.”

“그건 지극히 인간적인 판단일 뿐입니다. 컴퓨터 세계는 1과 0만 존재합니다. 완승 아니면 완패, 둘 중에 하나라 결국 스톰고의 완승으로 끝날 겁니다.”

“바둑의 역사는 아무도 모를 정도로 오래되었습니다. 스톰고가 아무리 뛰어나도 그 긴 세월을 극복하긴 힘들 겁니다.”

“스톰고는 현존하는 모든 기보를 숙지하고 있답니다. 온라인을 통한 수많은 대국을 통한 기계 학습, 딥러닝을 통해 바둑판에 존재하는 모든 수순의 추론 가능하고 이에 대응해 최적의 수순을 찾아내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합니다. 인간의 뇌는 그 정도로 정밀하지 못합니다.”

“정밀하지 못한 게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지요. 지켜보면 결과를 알 수 있겠지요.”

진혁은 그 정도에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었다.

자신의 기억대로라면 3국까지는 구필준의 예상이 맞았다. 하지만 4국은 최정상이 이긴다.

스톰고의 완승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연구소를 나온 진혁은 남산에 있는 고려 호텔로 갔다. 대국이 열리기로 되어 있는 장소였다.

주드 모건도 이곳 숙소를 정했다.

진혁은 안내 데스크로 가서 용건을 밝혔다.

“주드 모건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아무도 만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기자들이 너무 많이 찾아오셔서요.”

“템스 강의 게임 상대가 왔다고 전해 주십시오. 그럼 알아들을 겁니다.”

“모건 씨는…….”

“말씀만 전해 주시면 됩니다. 거부하면 두말없이 돌아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진혁의 정중한 태도에 직원이 인터폰을 들었다. 그러다 곧 수화기를 내려놓더니 놀란 눈을 하고 말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만나시겠답니다.”

“고맙습니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김상균이 말했다.

“시골에서 올라온 아이인 모양입니다. 회장님을 몰라보다니요.”

“모두가 절 알아야 하는 건 아닙니다. 저런 사람도 있어야 저도 얼굴 내놓고 다니지요.”

“그렇긴 합니다. 그런데 모건 씨를 알고 계셨던 겁니까? 그리고 게임 이야기는 뭡니까?”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멈췄다.

진혁만 혼자 들어갔다.

모건은 편한 차림으로 맞았다.

“언제 오시나 했습니다.”

“일을 하다 보니 좀 늦었습니다. 한국을 둘러보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역동적인 나라라고 느꼈습니다. 나를 미워하는 기운이 가감 없이 느껴지더군요.”

“그거야 한국인만 느끼는 감정은 아니지요. 세계인 모두가 인간의 승리를 기원하고 있을 겁니다.”

“압니다만 안타깝게도 그건 인류의 허망한 희망으로 끝날 겁니다. 나를 미워할 그 시간에 차라리 다른 대비를 하는 게 나을 겁니다.”

모건의 자신감은 여전히 대단했다.

“아, 그렇군요. 그 자신감은 변함없으시군요.”

“당연합니다. 당신은 헛돈을 날린 겁니다.”

“그렇다면 판돈을 올려 보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진혁의 도발에 모건이 차가운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이전 금액으로 딜 할 거라면 어림도 없습니다. 이미 회사 가치가 다섯 배나 뛰었거든요.”

“아쉽네요. 그럴 줄 알았으면 그때 더 크게 베팅할 것을. 어차피 내가 이기는 게임이었는데.”

“여전히 그 잘못된 자만심을 버리지 못하셨군요. 좋습니다. 배팅을 받지요. 어차피 내 돈이 될 거니.”

“이번에는 지분 대신 기술에 걸고 싶습니다.”

“……?”

“딥러닝 기술을 이전받는 조건으로 2억 달러를 걸겠습니다.”

진혁에 제안에 모건의 얼굴이 심하게 붉어졌다.

“감히 우리 기술을 겨우 2억 달러에 사겠다는 겁니까?”

“지분의 40%도 이번 딜이 걸려 있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그 기술은 제가 낸 돈으로 개발된 겁니다. 아직 그 권리는 유효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진혁의 냉정한 지적에 모건의 말문이 막혔다.

“좋습니다.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요.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겁니다.”

“누가 후회할지는 나중에 알겠지요. 내일 변호사를 보내겠습니다. 그건 그거고, 이렇게 한국까지 오셨으니 제가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습니다.”

“전 그런 허식을 싫어합니다. 그리고 대접은 이미 충분히 받았으니 됐습니다. 피곤해서 이만 쉬어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결과가 나오면 그때 뵙지요.”

진혁은 인사는 이 정도로 됐다고 생각하고 일어났다. 그런 태연한 모습이 모건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로비로 내려와 현관으로 바로 가는 진혁의 행동에 김상균이 물었다.

“최정상 프로도 이곳에 묵고 있는데 안 찾아갑니까?”

“잘하겠지요.”

진혁은 간단히 답하고 현관을 나섰다.

이미 4국에서 승리한다는 알고 있으니 굳이 만날 이유가 없었다.

* * *

2016년 3월 9일 오후.

고려 호텔에 마련된 특별 대국실에서 첫 대국이 열렸다.

결과는 백을 잡은 스톰고가 186수 끝에 불계승이었다.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애써 담담한 척했다.

최정상은 대국 이후에 열린 기자 회견에서 ‘거대한 벽을 상대로 싸우는 느낌을 받았다’며 무거운 첫 소감을 털어놨다.

다음 날 열린 2국 역시 스톰고의 승리로 끝나자 분위기가 묘하게 변했다.

그리고 하루 쉰 후 토, 일요일 이틀간에 걸쳐 열린 3국과 4국에서도 최정상이 끝까지 둬보지도 못하고 돌을 던지며 패하자 세계가 경악했다.

그중에 제일 놀란 사람은 느긋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TV 중계를 보던 진혁이었다.

자신의 기억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인간의 마지막 보루인 최정상 프로마저 인공 지능 앞에 허무하게 무릎을 꿇는 모습이 세계 언론 1면을 장식했다.

그걸 읽는 독자들의 머리에는 기계가 정복한 세계에서 노예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졌다.

일부 종말론자들은 자신들이 예언한 시대가 가까워졌다며 불안감을 더욱 부추겼다.

TV에서는 바둑 해설가들이 복기하면서, 그간 헛손질이라며 비하했던 스톰고가 놓은 의문의 수들이 결국은 먼 미래를 내다본 포석이라며 찬사하기까지 했다.

모두가 마음속으로 인간의 패배를 받아들이고 있을 때 진혁은 다시 고려 호텔을 찾아갔다.

다행히 이번 직원은 진혁의 얼굴을 알아보고 군말 없이 인터폰을 연결해줬다.

겨우 허락을 받고 올라가자 방 입구에서 최정상의 친형이자 매니저를 맡고 있는 최필상 8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심적으로 굉장히 예민해진 상태입니다. 정상이가 평소 회장님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받아들이지 않았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이야기는 최대한 짧게 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서 본 최정상은 바둑판을 앞에 두고 기보를 보면서 복기에 매진하고 있었다.

일반인이라면 벌써 자포자기한 상태로 빠져 있을 텐데 역시 프로는 프로였다.

얼마나 집중하는지 진혁이 앞에 앉은 지 한참이나 되었는데도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흠, 흠.”

“……아, 회장님.”

헛기침 소리에 고개를 든 최정상이 진혁의 모습에 놀라다가 급히 인사를 하고 말을 이었다.

“회장님에 대한 기사는 빠짐없이 읽었습니다. 제가 프로 기사가 되지 않았다면 회장님처럼 큰 사업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최 프로는 이미 큰 사람이 되어 있으십니다.”

“아닙니다. 이번 대결로 제 한계를 절감했습니다.”

“맞습니다. 인간은 실패 속에서 배운다고 했습니다. 최 프로나 저나 계속 승승장구하며 여기까지 올라온 게 아닙니다. 전 목숨을 걸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믿지 않으시겠지만 정말로 죽기 전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눈을 감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꼭 지켜야 할 사람이 있어서였습니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여기서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포기하긴요. 아닙니다. 어떻게든 수를 만들어 낼 겁니다. 반드시.”

결연한 표정의 최정상의 모습에 진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의지라면 안심입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도움이 될지 몰라 찾아왔는데 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경청하겠습니다.”

“진화론의 찰스 다윈이 한 말이 있습니다. 살아남는 것은 힘이 세거나 영리한 동물이 아니라 변화에 잘 적응하는 동물이다.”

“변화라…….”

“상대는 전 인구의 뇌를 합친 것보다 더 빠른 연산을 한다는 슈퍼컴퓨터입니다. 현존하는 모든 기보를 입력해 놓고 최적의 수를 찾아내는 귀신같은 놈입니다. 머리로 그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고정된 0, 1이 아닌 상황에 따라 변하는 유동의 함수를 찾아야 할 겁니다.”

“유동의 함수…….”

자신의 말을 연이어 중얼거리며 깊은 생각에 빠져드는 최정상의 모습에 진혁은 조용히 일어나 나왔다.

그는 천재고 프로였다. 그리고 아직도 승리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반드시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최필상이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잠시 동안은 혼자 생각하게 두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고생하십시오.”

엘리베이터 앞에선 진혁이 버튼을 눌렀다.

자신이 해 줄 말은 다 했다.

다음은 최정상이 감당해낼 몫이었다.

* * *

진혁은 다음 날 하루 휴가를 내고 집에서 TV를 봤다.

대국장의 분위기는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 속으로 들어서는 최정상의 모습에 진혁은 그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세상은 이미 스톰고의 승리를 예견하고 있었다.

그를 대표로 내세워 인공 지능의 우수성을 입증하려는 자들에게 분노마저 느껴졌다.

시간이 되자 대국이 시작됐다.

최정상은 어렵게 바둑돌을 놓았지만 스톰고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행마에 거침이 없었다.

70수가 진행되자 대국장의 분위기는 더욱 어두워져있었다.

집으로 이미 10집 정도 뒤져 있는 데다 상변 전체와 중앙까지 이어지는 스톰고의 세력이 너무 좋았다.

급기야 장고를 거듭하던 최정상이 놓은 다음 수에 TV에서 해설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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