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주드 모건의 절망
“저렇게 좁은 곳에 깊숙이 들어가도 되는 겁니까?”
“무리수죠. 그 안에서 살 수는 없습니다. 위의 돌과의 연결해야 하는데 쉽지 않아 보입니다.”
“평소 냉정하기로 소문난 최정상 프로의 모습이 아니군요.”
“오늘도 힘들 것 같습니다.”
호들갑을 떠는 해설자들과는 달리 스톰고는 냉정했다. 정확히 맥점에 두어 연결을 차단했다.
최정상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지더니 허리를 깊숙이 숙여 바둑판을 응시했다.
그 모습에 해설자의 말이 이어졌다.
“여기서 바둑이 끝난 것 같네요.”
해설자들끼리 이런저런 가상의 수를 설명하는 동안에도 최정상의 고개는 좀처럼 들리지 않았다.
두 시간 제한 시간에서 스톰고가 한 시간이 넘게 남아 있는 것에 반해, 최정상은 그 시간을 다 쓰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그 모습에 일부 해설자들은 그렇게 돌을 던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냈다.
그때 마지막 초읽기 1분에 몰린 최정상이 ‘의문의 한 수’를 놓았다.
“어? 저게 뭐죠?”
“헛수 아닙니까?”
“저건 아니지요. 이쪽을 먼저 뒀어야 하는데.”
해설자들이 의아해하는 것과 달리 화면을 응시하는 진혁의 눈이 반짝였다.
바로 바로 응수하던 스톰고의 다음 수가 놓이지 않고 있었다. 반상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후 한 수 한 수가 놓일 때마다 시청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연결하면 이기고, 끊기면 진다.’
가장 간단한 명제에 인간의 미래가 걸려 있었다.
“어? 저건 뭐죠?”
“지금 그쪽이 급한 게 아닌데.”
해설자들이 의문을 나타낸 것은 이전과 달리 스톰고의 행마였다.
최정상이 놓았던 바로 그 수.
‘의문의 한 수’에 집착한 나머지 스톰고가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반대로 스톰고의 장고가 길어지고 있었다. 시간제한에 걸릴 위기까지 몰렸다.
그때 화면에 팝업창이 떴다.
스톰고가 패배했습니다.
‘W+기권’ 결과가 게임 정보에 추가됐습니다.
스톰고가 메시지로 패배를 선언했다.
“우와!”
귀가 쩌렁쩌렁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대국실에서도, TV에서도, 세계의 각 가정에서도.
진혁도 물론 양손을 번쩍 든 채 만세를 불렀다.
* * *
대국 종료 후 세계인이 모두 한마음이 되어 인간 승리를 기뻐할 때 유독 머리를 처박고 고뇌하는 이가 있었다.
스톰고의 아버지 주드 모건이었다.
호텔로 찾아와 앞에 앉아 있던 진혁이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물었다.
“그렇게 인정하시기가 힘듭니까?”
“이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니,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스톰고는 100% 완벽한 무결점 그 자체여야 합니다.”
“맞습니다. 스톰고는 완벽했습니다.”
“……지금 나를 놀리는 겁니까?”
모건이 당장 으르렁거리자 진혁이 차갑게 말했다.
“완벽해서 진 겁니다. 아니, 완벽하다고 생각해서 진 겁니다.”
“……!”
“스톰고는 완벽했지만 그를 만든 당신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였습니다. 자만심에 빠져, 학습되지 않는 경우가 나타났을 때 대응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아서 진 겁니다.”
“학습되지 않는 경우란 말씀이지요?”
“세상에는 인간이 예상하지 못한 현상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런 불확실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절대 완벽해질 수가 없을 겁니다.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당신도 스톰고도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할 겁니다.”
“불확실성의 완벽이라…….”
최정상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주드 모건이 생각에 빠져드는 모습에 진혁이 일어나 나왔다.
로비로 내려오자 김상균이 다가와 물었다.
“일은 잘 끝나셨습니까?”
“아주 잘 끝났습니다. 최고입니다.”
진혁이 활짝 핀 얼굴로 답했다.
인공 지능의 뛰어남을 인식시키면서도 인간 승리의 여지를 남겼다. 최정상과 주드 모건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게 됐다.
거기에 자신은 원하던 인공 지능 기술을 마침내 얻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회사로 가지요. 오늘 제가 크게 한턱 쏘겠습니다. 모두 부르십시오. 하하하하하.”
로비 가득 진혁의 웃음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렇게 주드 모건이 쓸쓸히 한국을 떠난 뒤 며칠 후, 구필준이 이끄는 연구진 일행이 영국 출장길에 올랐다.
스톰 브레인으로부터 인공 지능 기술을 이전받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알라딘 연구소의 4차 산업 기술 골격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 * *
진혁은 오랜만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강릉의 부모님도 찾아뵙고 이모집에도 다녀왔다. 희준은 2세를 키우느라 땡돌이가 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진혁은 오랜만에 이태원 우수단길에 있는 ‘알라딘과 할랄 여행’도 찾았다.
천진홍이 자우하리뿐만 아니라 AA 지원금으로 합류한 동남아시아 연예인들을 모두 데리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혁이 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겠다고 해서 만들어진 자리였다.
5층으로 올라가자 테이블이 꽉 찰 정도로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진혁이 일부러 영어로 말했다.
“여러분 모두가 자국의 홍보 대사이면서 또한 한국의 홍보 대사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을 통해 한국인들은 당신들 나라를 떠올릴 겁니다. 또한 고국에 있는 분들도 여러분이 보내 준 소식에 한국의 모습을 상상할 겁니다. 긍지와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저와 천 사장님이 아낌없이 지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모두가 젊은이들이라 목소리가 우렁찼다.
식사를 하면서 천진홍에게 물었다.
“자우하리 양이 데뷔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반응이 어떻습니까?”
“방송국들의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노래 실력이 상당한가 보군요?”
“노래도 노래지만 예능 프로에서 더 많은 문의가 옵니다.”
“예능 프로에서요?”
“회장님의 예상이 맞았습니다. 기성 연예인이 식상한 시청자들에게 이국에서 왔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비치는 모양입니다. 거기에 자우하리 양는 한국어가 되고 끼까지 있으니 안성맞춤이지요.”
“좋은 현상이네요.”
옆에서 듣던 자우하리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감사는 내가 해야지요. 아무리 천재라도 노력하는 자는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면 분명 원하는 결과를 얻으실 겁니다.”
“마르와 왕자비님처럼 말이신가요?”
갑자기 튀어나온 이름에 진혁이 멈칫했다.
천진홍이 웃으며 말했다.
“요즘 젊은 무슬림 여성들 사이에 마르와 양이 제2의 라이나 왕비님으로 불린답니다. 그 인연을 만들어 주신 분이 회장님이라는 것도 다 알고 있어서 기대가 크답니다.”
“무슬림만이 아니에요. 여기 모인 우리 모두 그분처럼 되길 꿈꿔요. 그렇지, 얘들아?”
자우하리의 말에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혁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마르와를 처음 만났을 때는 여러분보다 훨씬 더 못생기고 볼품없었습니다. 감히 마르와와 여러분을 비교할 수가 없었지요. 이곳에서 성공만 하면 제가 억지로라도 끌고 다니면서 인연을 만들어 드리지요. 약속합니다.”
“와아!”
다들 기쁨에 환호성을 질렀다.
“많이들 드시고 연습하다 배고프면 언제든지 오십시오. 여러분에게는 돈을 받지 말라고 점장님께 말씀드려 놓겠습니다.”
“아이고, 회장님, 그건 안 됩니다. 다들 다이어트 중이라 오늘도 겨우 데리고 나온 겁니다.”
“아, 그런가요.”
“하하하하.”
진혁의 어색한 표정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 * *
다음 날.
출근한 진혁을 반가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노이 타워의 인수가 결정됐다.
지분 전체를 5억 달러에 획득해 품에 안았다.
진혁은 즉시 회의를 열었다.
회의실에 알라딘 그룹의 핵심 멤버들이 모두 모였다. AM, AA, AS는 화상 전화로 참여했다.
상석에 앉은 진혁이 말했다.
“스톰고의 인공 지능 기술을 획득함으로써 알라딘은 최고의 기술력을 갖게 됐습니다. 또한 인도네시아의 메가시티, 베트남의 하노이 타워를 인수해 외형적인 모습도 갖췄습니다. 이에 저는 이런 알라딘의 모습을 세상에 알릴 생각입니다. 그 시작을 ‘동행 한마당’으로 하고자 합니다.”
회의실의 불이 꺼지며 스크린에 화면의 띄워졌다.
“동행 한마당은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 중국의 ‘독신절’ 같은 쇼핑 축제입니다. 시기는 이드 축제 기간이 될 겁니다.”
무슬림들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6월 중순경부터 한 달간 금식을 하는 라마단 의식을 갖는다.
라마단이 끝나고 3일간 이드 축제를 열어 서로 베푸는 축제를 갖는 풍습이 있었다. 그 첫날을 행사일로 잡았다.
진혁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알리바마가 주도하는 중국의 독신절은 2009년에 시작해 매년 급격한 매출 성장세를 이뤄 오고 있습니다. 작년 기준 912억 위안, 16조 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각종 차트가 순차적으로 올라오는 것을 끝으로 스크린이 꺼지고 장내에 불이 다시 들어왔다.
진혁이 모두를 둘러보고 말했다.
“이번 동행 한마당의 매출 목표는 150억 달러입니다.”
다들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환산하면 18조 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중국의 인구는 14억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많은 17억 무슬림이란 잠재 소비자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지금부터 전사적으로 그들을 유인할 방법을 강구해 보고해 주십시오. 뭐든 지원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번 행사의 책임자는 알쇼핑의 한상국 사장님이십니다. 철저히 준비해 주십시오.”
“예, 회장님.”
다들 굳은 얼굴로 회의실을 나가고 진혁과 둘만 남자 김선혁이 말했다.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어이없다고 해야 하나. 너라는 놈은 보면 볼수록 모르겠단 말이야.”
“이번에 제대로 제 모습을 보여 드릴 겁니다. 회장님뿐만 아니라 한국에, 세계에 저와 알라딘의 존재를 알릴 겁니다.”
“정말 해낼 거라고 생각하는구나?”
“해낼 겁니다. 아니, 반드시 해내고 말겠습니다.”
진혁이 굳은 얼굴을 하자 김선혁도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 * *
알라딘 그룹 전체가 즉시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행사일이 10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알라딘 직영 공장이 풀가동에 들어갔다.
협력 업체에게 제품을 준비하게 해야 하고 물류도 점검해야 했다. 무엇보다 급속한 트래픽 증가에 대비해 회선과 서버 용량도 증설해야 했다.
대기업은 진혁과 김선혁이 담당했고 중소기업은 고용준이 AK 직원들과 만나러 다녔다.
그러는 동안 진혁은 오랜만에 TG전자 소명준 사장을 만났다.
“알쇼핑에서 7월 중순경 대규모 온라인 축제를 열려고 합니다. 미국의 블프나 중국의 독신절 같은 행사입니다.”
“그럼 엄청난 행사가 되겠군요.”
“내부적으로 150억 달러를 목표로 잡았습니다.”
소명준의 눈이 단번에 커졌다.
알라딘 직원들마저도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으니 당연했다.
“제품을 최대한 준비해 주십시오. 제가 고안한 히잡 세탁기, 스텔라이즈 TV, 조류 독감 에어컨 같이 히트 상품들 위주로 판매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준비해 주십시오.”
“어떤 겁니까?”
“초소형 가전들입니다.”
“……?”
“출산율 저하와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결혼을 미루고 혼자 사는 가구가 많은 것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거기에 부동산 가격은 계속 상승해 대도시 임대 건물은 매우 좁습니다. 벽걸이 세탁기같이 바닥 공간을 최소화한 제품이 인기를 끌 겁니다.”
“알겠습니다. 얼마나 준비해야 할까요?”
“가격이나 물량 모두 독신절 수준으로는 준비하셔야 할 겁니다.”
“음…….”
잔뜩 굳어진 소명진의 표정에 진혁이 물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저야 회장님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위에서는 다르게 생각할 겁니다. 제품을 잔뜩 만들어 놓았는데 안 팔리면 재고 부담이 만만치 않습니다.”
“품질, 가격이 우리 기준을 충족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70% 금액으로 선발주를 넣어드리지요.”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소명진이 활짝 핀 얼굴로 답했다.
진혁이 ‘동행 한마당’을 생각한 것은 오래전부터였다. 그래서 그에 대해 철저히 조사를 해 왔다.
블랙프라이데이와 독신절의 성공 요인은 파격적인 할인과 다양한 품목이었다.
제조 업체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알리바마는 75%의 선구매를 통해 벤더들의 재고에 부담을 줄여 주었다.
한국 백화점의 직매입 비율이 10% 수준인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또한 알리바마는 잘 팔리는 제품을 분석해 팔릴 수 있는 제품을 만들도록 돕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중요한 일이 마무리되자 소명진이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