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동행 한마당 성공
“바쁘시겠지만 입주 기업에 대한 대책도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최대한 노력하고는 있는데 서로 생각의 차이가 너무 큽니다.”
“현장을 모른 채 사무실에만 앉아서 내놓은 대책이라 받아들여지지 않는 겁니다.”
“어떤 점에서 말입니까?”
“남겨둔 설비와 원자재의 규모는 무시한 채 22억까지만 70%를 보상한다는 게 그 첫 번째입니다.”
“예산이 한정적입니다. 그리고 누차 주의를 주었음에도 제품 생산에만 욕심을 내서 원자재 재고 규모가 커진 것을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 줄 수는 없습니다.”
“영세 기업들입니다. 아무런 지원도 해 주지 않고 생산량을 줄이라는 말만 해 놓고, 이제와 그 잘못을 업체에만 떠넘기는 것은 아니지요.”
“그래서 추가 금액에 대해서는 따로 지원책을 내놓았지 않습니까.”
이현국의 항변에 진혁이 다시 고개를 저었다.
“정부는 맞춤형 지원이라고 하지만 대출 확대나 채무 감면뿐입니다. 지원금도 개성공단 재가동 시 상환하는 조건입니다. 언제 재가동될지 모르고, 그때가 되면 그곳 설비는 노후화되어 아무 쓸모가 없게 됩니다. 정상 영업을 위한 지원과는 거리가 멉니다. 업체들은 구걸하자는 게 아닙니다. 다시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겁니다.”
“그래서 대체 공단 부지를 마련해 주며 파격적인 혜택까지 제시했습니다.”
“그게 바로 탁상행정의 표본입니다. 그들이 왜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까지 가겠습니까. 인건비 때문입니다. 공장만 세운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두 사람의 논쟁을 지켜보던 권성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서 회장님이 방글라데시에 공단을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쪽에 대체 부지를 마련해 주셨으면 합니다.”
“……업체가 원한다면 저는 환영입니다. 하지만 그게 옳은 일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어떤 점에서 말입니까?”
“과거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은 싼 인건비를 쫓아 개발도상국에 공장을 짓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결국 내수 경제를 망가트린다는 것을 알고 지금은 각종 혜택까지 주며 자국으로 돌아오게 하고 있습니다.”
“……!”
“현재 한국의 내수 경기 침체와 이로 인한 높은 실업률을 해결하려면 기업들이 국내에 공장을 세우게 하는 게 최선입니다.”
진혁의 제안에 이현국이 끼어들었다.
“말씀이 방금 전과 전혀 다르잖습니까. 개성공단 피해 기업들이 인건비 때문에 국내 공단 입주를 꺼린다면서 국내로 돌아오게 하라는 것은 좀…….”
“결국은 인건비가 문제입니다. 그걸 해결할 수 있다면 굳이 타국에까지 나가 고생할 필요는 없지요.”
“무슨 대책이 있으신 거군요?”
권성일이 급히 물었다.
그동안 지켜본 진혁은 나이에 맞지 않게 생각이 깊고 철저한 사람이었다. 아무런 대안 없이 이런 말을 할 리가 없었다.
“스마트 팩토리입니다. 자동화 설비를 갖추면 인건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그건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권성일의 얼굴이 바로 굳어졌다.
스마트 팩토리.
일명 자동화 공장은 오래전부터 회자됐던 단어였다. 뛰어난 경제성만큼 일자리가 줄어드는 문제로 노조의 반대도 극심해 실적은 지지부진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 진혁의 목소리가 울렸다.
“공장만 보면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속설은 맞습니다. 하지만 영향은 그곳에 한정되어 추가 피해는 없습니다.”
“……?”
“자동차 공장 하나가 옮겨 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곳에 납품하는 부품업체들이 무너집니다. 거기에 종사하던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그들을 상대로 장사하던 이들은 손님이 끊겨 문을 닫아야 합니다. 폐업으로 건물이 공실이 되면 임대업자와 빌딩 관리하시는 분들이 곤란해집니다. 심한 경우 거제처럼 지역 경제가 무너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제야 두 사람이 진혁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전략이었다.
한참 동안 생각한 권성일이 말했다.
“워낙 민감한 문제라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사드 배치로 국민들의 정서가 굉장히 민감해진 상태입니다. 시간을 두고 결정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현국의 말에 진혁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사정은 이해하지만 그때까지 입주 기업들은 피를 말리며 지내야 했다.
하지만 무조건 몰아붙일 수도 없다는 걸 알기에 참았다. 대신 다른 말을 했다.
“어떤 결정을 하시든, 이번만은 직접 그들을 찾아가 만나서 현장의 애로점을 듣고 대책을 세우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더불어 이번에 가로수길에 ‘리틀 지니’ 매장을 오픈했습니다. 한번 들러 보시면 참고가 되실 겁니다.”
“어떤 곳입니까?”
“제가 말씀드리는 것보다 직접 눈으로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꼭 방문해 보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현국의 확답을 받고 진혁은 청와대를 나왔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었다.
* * *
‘동행 한마당’ 행사 준비로 정신없이 지내고 있을 때 야맘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제 열린 영국 국민 투표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EU 탈퇴가 결정됐습니다. 회장님의 예상이 맞았습니다.
“그게 민심이란 겁니다. 투자한 것은 어떻게 됐습니까?”
-은 선물에 공격적으로 투자한 것은 400%의 수익이 발생했습니다. 금과 엔화는 25% 수익에 그쳤고요.
“여기저기 곡소리가 나고 있을 텐데 25%의 수익도 적은 건 아니지요. 고생하셨습니다.”
진혁의 말에도 야맘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자신이 의기소침할까 봐 일부러 하는 말임을 모르지 않아서였다.
진혁의 예상대로 은값은 금값 상승분보다 두 배가 넘게 올랐다.
가격이 싼 탓에 부담이 없어 개인 투자자까지 몰려든 탓에 변동성이 커져서였다.
거기에 진혁은 레버리지를 최대로 해서 투자해서 수익률이 크게 차이가 났다.
야맘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합 1,700억 달러의 수익금이 발생해 잔고가 2,500억 달러가 넘었습니다. 세계 금융 시장이 지금 패닉 상태입니다.
“한동안 혼란은 있겠지만 얼마 가지 않아 현실을 인정해 가면서 안정을 찾을 겁니다. 매도해 주세요. 당분간 투자는 쉽니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진혁은 잠시 성공적인 투자를 마친 기쁨을 음미하다가 벌떡 일어났다.
투자는 투자고, 사업은 사업이었다.
동행 한마당이 열리는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 * *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마침내 그날이 다가왔다.
30개국 5만여 개 업체가 참여해 700만 종의 제품을 등록했다.
라마단 기간이 끝나는 7월 6일 자정.
동행 한마당이 한강 고수부지에 마련된 특설 무대에서 화려한 사전 행사를 끝내고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10, 9, 8…… 3, 2, 1.”
무대 상단에 마련된 전광판의 숫자가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숫자를 외치던 시민들이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주문 대열에 참여했다.
진혁은 혜성을 안은 지민과 함께 혜주의 손을 잡고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양옆으로는 고용준 회장을 비롯한 알라딘 식구들이 두 손을 간절히 모은 채 변하는 전광판 숫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동남아시아는 하노이 알라딘 타워에서는 김선혁이, 자카르타의 알라딘 시티에서는 선병식이 행사를 진행했다.
중동은 리야드의 아부다 호텔에는 갈리가, 뉴델리의 다부다 백화점에는 손민한이 나가 있었다.
마침내 첫 번째 결과가 떨리는 목소리로 튀어나왔다.
“1조 달성! 8분 32초. 독신절보다 2분 빠릅니다.”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좀 더 지켜봅시다.”
주변의 인사에 진혁이 애써 무덤덤하게 답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도 잔뜩 흥분되어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서 전광판에 찍힌 숫자는 7조 원이 넘었다. 독신절보다 5천억 원 이상이 더 팔렸다.
그제야 진혁은 활짝 웃었다.
그날 그는 직원들을 축하를 받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밤새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이들 때문에 들어가야 했다.
* * *
한국 언론들이 ‘동행 한마당’의 성과를 속속 인터넷 기사로 내보냈다.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는 12조를 넘어섰다.
경이적인 판매량에 세계 언론까지 가세해서 속보를 내보내는 바람에 매출이 빠르게 올라갔다.
“와아!”
알라딘 빌딩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19조 5천억 원을 넘기며 행사가 끝났다. 목표보다 1조 5천억 원을 초과 달성했다.
직원들 모두 서로를 끌어안고 기쁨을 함께 느꼈다.
일부 직원들은 그간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리며 이뤄냈다는 벅찬 감격에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알라딘 만세!”
“서진혁 만세!”
직원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진혁이 연단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의 성공은 저와 여기 계신 여러분뿐만 아니라 세계에 있는 알라딘 가족, 그리고 구매해 주신 소비자 모두가 함께 이뤄낸 큰 성과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자랑스럽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짝짝짝짝짝.
고개를 깊숙이 숙여 보이는 진혁의 행동에 일제히 박수로 화답했다.
“당장이라도 여러분과 함께 오늘의 기쁨을 나누고 싶지만 우리에게는 또 닥친 일이 있습니다.”
“우우우…….”
이번에는 직원들의 입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행사는 끝났지만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배송 전쟁!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바람에 8억 5천만 건 정도로 추정되는 택배 작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전에 각 지역별 물류 창고에 물건들을 쌓아 놓았지만 그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진혁은 이런 상황을 미리 대비해 알라딘 그룹 전체적으로 화물 전세기 250대, 차량 50만 대, 택배 인원 200만 명을 확보해 두었다.
“마지막 단 한 명의 소비자에게 물품이 안전하게 도착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그때 크게 한턱 쏘겠습니다.”
“와아!”
“서진혁 만세!”
직원들이 다시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지를 때는 확실히 질러 버리는 진혁의 화끈한 성격을 모르는 직원은 없었다.
다들 초롱초롱한 눈으로 다시 한번 의지를 다졌다.
* * *
다음 날.
국내외 신문들이 일제히 1면을 ‘동행 한마당’의 성공에 대한 기사로 도배를 했다.
단순히 사실만 알리는 게 아니라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달아 성공 요인에 대한 평도 실었다.
그와는 별도로 ‘검은 머리 짐’의 성공적인 투자에 대해서도 다시 재조명되며 한동안 알라딘과 서진혁이란 이름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렸다.
알라딘 사무실에서도 이번 행사에 대한 평가 회의가 열렸다.
“언론에서 이야기한 이번 행사의 성공 요인은 첫째가 모바일 판매 전략입니다. 미미한 인터넷 인프라에 비해 핸드폰 보급률이 높은 점을 잘 파고들었다는 평입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중동과 동서남아시아 국민들의 낮은 경제력이 오히려 이런 대규모 할인 행사에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한국, 특히 알라딘 그룹에서 이번 대규모 행사를 성공시킨 것에 대해 놀랍다는 반응들입니다. 회장님에 대한 기사도 실렸습니다. 하윤 회장님에 필적할 만한 인물이라는 극찬 일색입니다.”
“벌써 올해 알리바마의 독신절이 볼만하게 됐다고 부추기는 기자들도 있습니다. 하윤 회장이 밀리지 않으려면 단단히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도 하더군요. 하하하.”
이어지는 호평에도 불구하고 진혁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김선혁이 그 모습에 물었다.
“무슨 문제가 있냐?”
진혁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겨우 절반의 성공이었을 뿐입니다. 외부에서 떠드는 소리에 도취되어 여기서 만족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습니다. 알라딘이 겨우 알리바마의 뒤꿈치를 바라보며 쫓아가는 데 만족할 수 없습니다. 더 치고 나가 그들이 우리에게 비교되는 기사가 나올 때까지 저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겁니다.”
“……!”
여유롭던 표정들이 빠르게 굳어지는 모습에 진혁이 말했다.
“지역별로 매출 현황을 보고하세요.”
“중동 8조, 동남아시아 5조, 서남아시아 2조, 기타 지역에서 4조 5천억 원의 매출이 발생했습니다.”
“좀 더 세분화해서 알려 주십시오.”
“예상대로 매출이 무슬림 국가에 편중되는 현상이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인도와 베트남 매출은 우리가 직접 투자로 시장을 확보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이치가 도와준 영향이 크지만 그 역시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매출이 절반입니다.”
“일부 언론에서도 무슬림만의 축제가 아니냐는 식으로 평가 절하 하는 논조의 기사가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한상국이 처음으로 부정적인 내용을 언급했다.
그때 진혁이 입에서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모두가 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