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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236화 (236/307)

236화. 성공 나누기

“방금 전에 언급했듯이 그런 기사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게 이번 행사의 냉정한 현실입니다. 그걸 단순히 비난으로 무시해 버리고 넘기면 안 됩니다. 내년에는 그런 소리가 나오지 않게 비무슬림 국가에 대한 매출 확대 방안을 강구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느슨해진 분위기를 다잡은 진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른 특이 사항에 대해 보고해 주세요.”

“라면, 화장품, 핸드폰, 분유의 24기간 내 매출이 사상 최고치를 갱신했습니다. 이에 대해 기네스북에 등재하자는 의견이 있습니다.”

“분유요? 의외인데요.”

“2008년 여섯 명의 영아 목숨을 앗아간 중국의 ‘멜라닌 분유’ 파동으로 중국 국민들마저 자국 제품을 불신해 해외 제품을 구입해 먹이는 실정이었다고 합니다. 마스크 팩과 함께 중국 내 매출을 끌어올린 일등 공신입니다.”

“그렇군요. 마스크 팩에 대한 인기도 높은가 보군요.”

“원래 한국 화장품에 선호도가 좋았기도 하지만 LED 마스크 팩을 보고 투자한 회사에서 내놓은 고보습 마스크 팩 제품이 대박을 터트렸습니다. 건조한 중국 기후에 맞춰 보습 크림 함량을 높인 게 주효했다고 합니다. 오전 중에 완판될 정도였습니다. 중국 측 바이어들로부터 제품 구입 문의가 쇄도하고 있답니다.”

“좋은 일입니다. 독신절이 열리면 기록은 깨지겠지만 그래도 우리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이니 추진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놀랄 만한 소식이 있습니다.”

“뭡니까?”

“스마트 케어팜에서 내놓은 신선 과일류가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동남아시아에서 모두 완판됐습니다. 동행에서 내놓은 일반 과일도 마찬가지고요. 수출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좀 더 고민해 볼 문제입니다. 이번에는 전세기가 떠서 함께 보내면 됐지만, 배로 보내면 기간이 오래 걸려 신선도가 떨어집니다.”

진혁이 TG전자에 제안한 벽걸이 세탁기를 포함한 소형 가전, 다른 프리미엄 가전의 매출도 예상 판매액을 훌쩍 넘길 정도로 좋았다.

이런저런 보고를 듣고 난 후 진혁이 말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배송입니다. 하지만 미래를 대비하는 것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한 달 후 이번 행사의 성과 분석에 대한 보고를 받겠습니다. 내년에는 보다 성장하고 알찬 행사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김선혁을 제외하고 다들 일어나 나가는 모습에 진혁이 한상국과 구필준은 남게 했다.

자리가 정리되자 그가 말했다.

“이번 행사의 성공은 누가 뭐라 해도 두 분의 역할이 제일 컸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회장님이 제일 고생하셨습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소장님과 알라딘 연구소의 공이 제일 컸습니다.”

한상국이 공을 양보할 정도로 구필준이 이끈 알라딘 연구소의 4차 산업 기술이 빛을 발한 행사였다.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빅데이터와 인공 지능 기술이 없었다면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거기에 지금도 최적의 배송 경로를 찾아내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구필준이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회장님의 말씀대로 절반의 성공이었습니다. 표준 데이터가 적어 몇 가지 돌발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행사를 통해 충분히 데이터를 축적했으니 내년에는 이번 같은 오류는 없을 겁니다.”

“알쇼핑 연구원들도 같은 생각입니다. 알라딘 연구소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자책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내년에는 알리바마보다 훨씬 나은 시스템을 구현하고 말겠다며 의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모두 맞는 말씀입니다. 두 분이 앞서서 길을 개척해 주셔야 합니다. 지원은 충분히 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여 보이고 두 사람이 나가자 김선혁이 진혁에게 한 소리 했다.

“큰 행사를 끝낸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좀 적당히 해라.”

“말은 달려야 제 값을 한다고 다그쳤던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되지요.”

“끙…….”

진혁의 역공에 김선혁이 앓은 소리를 내며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평소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라 변명을 할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화제를 돌려야 했다.

“올해는 어떻게 넘겼는데 내년이 걱정이다.”

“……?”

“한국해운이 법정 관리로 갈 것 같다.”

진혁의 얼굴이 당장 구겨졌다.

해운업은 조선업과 함께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경기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인 업종이었다.

하지만 한국해운은 국내 1위, 세계 7위의 글로벌 해운사로 한 해 매출만도 8조 원을 넘는 대기업이었다.

그 정도로 비중 있는 기업이 파산한다면 40년 한국해운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는 건 물론, 한국 기업들에게는 당장 수출 물동량 처리라는 발등의 불이 떨어진다.

진혁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자구안을 제출하겠다고 했잖아요?”

“그게 채권단의 요구에 한참 못 미치는 생색용이라 반려했다고 하더라. 한국해운은 더 이상 출자는 어렵다고 하고.”

“그동안 많이 벌었잖습니까?”

“그건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이미 사라졌다더라.”

“웃기지도 않네요.”

진혁이 어이없어 했다.

이리저리 경영권이 옮겨간 것은 맞지만 어차피 한 집안 사람들이었다. 호황기에는 펑펑 가져다 축재하고 불황기가 되니 돈이 없다며 발뺌만 하고 있었다.

화가 나는 것은 나는 것이고, 알라딘도 김선혁의 말대로 대비해야 했다.

“사태를 예의 주시하면서 지켜봐 주십시오. 어떻게 정리되느냐에 따라 계획을 다시 짜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하마.”

좋았던 기분이 가라앉았지만 그걸 느낄 시간이 없었다.

큰 행사를 치룬 후라 세계 각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배송 관련 보고로 정신이 없었다.

* * *

눈 깜짝할 사이에 보름이 훌쩍 지나갔다.

내몽골의 유목민에게 마지막 상품을 전달하는 것으로 마침내 택배 전쟁이 막을 내렸다.

진혁은 공언한 대로 호텔을 통째로 빌려 그간의 노고를 치하해 줬다.

그 자리에서 전 직원에게 100%의 상여금을 약속하고, 알라딘 연구소와 알쇼핑에는 추가로 50%를 더 지급할 뿐만 아니라 각 지역별로 우수 공로 사원들을 선정해 해외 가족 여행 상품권을 지급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그 후에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사무실에서 김선혁과 차를 마셨다. 모든 일이 잘 끝나 한결 여유로웠다.

그 모습에 김선혁이 어이없어 했다.

“도대체 그룹을 운영하겠다는 거냐, 말아먹겠다는 거냐?”

“……?”

“고생한 직원들을 위하는 것은 좋은데, 남는 것도 없으면서 그렇게 펑펑 써 재끼기만 하면 어쩌란 말이냐고.”

김선혁이 앓는 소리를 하는 이유가 있었다.

행사는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수익은 형편없었다. 막대한 홍보비에 업체에 지급한 선지급금과 할인 보조금 등 이런저런 경비를 제외하면 남는 게 거의 없었다.

직원들에게 성과금을 지급하는 바람에 오히려 적자였다.

진혁이 웃으며 말했다.

“첫 행사잖습니까. 처음부터 남겨 먹으려면 그건 도적놈이지요. 단순히 금액으로 따지면 손실일지 모르지만, 알라딘의 존재를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시킨 것은 억만금을 주고도 사기 힘든 무형의 가치입니다. 덕분에 매출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면서요?”

“그건 그렇지.”

동행 한마당은 끝났지만 그때 내려 받은 앱을 통한 매출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거기에 해외 언론들까지 떠들어 주는 바람에 톡톡히 홍보 효과를 보고 있었다.

특히 터키는 매출이 1,000% 가까이 신장되는 기염을 토했다. 유럽에 살고 있는 무슬림들이 뒤늦게 소문을 듣고 구매해 주고 있었다. EU 가입국은 아니지만 무관세라는 이점을 톡톡히 누리고 있었다.

김선혁이 여전히 펴지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경기가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어려울 때를 대비해서 미리미리 비축해둬야 해. 한국해운 꼴이 나지 않으려면.”

“참, 그쪽은 어떻게 되고 있답니까?”

“정부에서는 오양상선이 일부 자산을 인수하게 하는 것으로 정리하려는 모양이더라.”

“그쪽은 규모도 적고, 어려운 건 마찬가지잖아요?”

“다른 기업에 매각해 보려고 했지만 덩치가 큰 데다 업황마저 좋지 않아 난색을 표했더라고 하더라.”

“그간의 예를 보더라도 인위적인 구조 조정은 득보다 실이 많았습니다. 거기에 독점은 문제의 소지가 많고요.”

“그렇기는 하지만 정부도 어쩔 수 없을 거야. 우리 입장에서도 창구가 일원화되면 편하고.”

김선혁은 가볍게 생각했지만 진혁은 아니었다.

“그래도 만일을 모르니 긴장을 늦추지 말고 지켜봐 주십시오.”

“그렇게 하마. 그리고 이번 행사 때문에 미뤘던 인사를 단행했으면 싶다.”

김선혁은 오래전부터 그룹 지원 조직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해 왔었다. 진혁은 동행 한마당을 내세워 그동안 미뤄 왔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경호실장은 김상균이가 있으니 됐고, 비서실장과 기획실장은 누구에게 맡기는 게 좋을 것 같냐?”

“기획실장은 한상국 사장님이 적합할 것 같습니다.”

“그룹의 주축이 알쇼핑이 되어 가는데, 옮겨도 되겠냐?”

“그래서 더 한 사장님에게 기획실을 맡기려는 겁니다. 알쇼핑에 대해 가장 잘 알면서도, 알라딘 연구소와 함께 인공 지능 등 4차 산업 기술을 다른 사업에도 적용해 발전시키는 데 그분만큼 적합한 인물도 없습니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라. 그럼 비서실장은?”

김선혁의 물음에 진혁이 이번에는 바로 답하지 못하고 오히려 물었다.

“비서실장은 없어도 되지 않겠습니까? 별로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네놈은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그룹의 회장이다. 거기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알라딘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끙……. 알겠습니다. 그럼 누가 좋겠습니까?”

“난 오희준 사장이 좋을 것 같다.”

“희준이를요?”

“널 누구보다도 잘 알고, 항상 붙어 지내니 제격이지. 왜? 싫으냐?”

“싫은 건 아닌데…….”

“그럼 그렇게 결정된 것으로 알겠다.”

“아니, 그렇게 막 결정하는 게 어디 있습니까?”

“나 보고 결정하라며. 싫다는 오 사장을 억지로 설득시켰는데, 네가 싫다면 그렇게 전하마.”

“아이고, 희준이가 보기와 달리 뒤끝이 상당합니다. 그냥 회장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진혁이 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이를 갈았다.

‘자식이……. 감히 싫다고 했다는 말이지.’

중요한 문제가 마무리되자 진혁이 일어나려는 것을 김선혁이 막았다.

“아직 더 남았다.”

“또요?”

“늦췄던 인터뷰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

김선혁의 물음에 진혁은 아차 싶었다.

동행 한마당의 큰 성공에 놀란 국내외 언론사들로부터 인터뷰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간은 아직 배송이 완료되지 않았다고 미뤘는데 이젠 그마저도 어렵게 됐다.

남감해하고 있을 때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방금 전에 당한 앙갚음을 할 수도 있었다.

진혁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걸리는 모습에 김선혁이 물었다.

“왜 그런 음흉한 표정을 짓냐?”

“회장님 일을 제게 물어보시니 그렇지요.”

“내 일이라고?”

“그럼요. 국내 일은 회장님이 맡아서 해 주시기로 했잖습니까.”

“그거야 이번 행사가 끝날 때까지였지.”

“라이나 왕비님을 포함해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아직 못 드렸습니다. 내년 행사를 위해서라도 직접 찾아뵙고 말씀드리는 게 예의지요. 회장님이 하실 수는 없잖습니까?”

“끙. 알겠다. 인터뷰는 내가 맡으마.”

그렇게 무거운 짐을 떠넘긴 진혁은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서둘러 집으로 갔다.

이번 출장은 가족과 함께 갈 생각이었다.

양가 부모님들이 혜성이 어리다며 우려를 나타냈지만 항공사에서 문제가 없다고 해서 결행하기로 했다.

다음 날, 새로 선임된 실장들에게 임명장만 수여하고 얼른 인천 공항으로 출발했다.

지민과 혜주, 혜성이와 함께 암만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감사하게도 요르단 왕실의 의전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다.

왕궁으로 가자 가장 반긴 것은 배가 불러 온 마르와였다.

“어서 와. 네가 혜주구나?”

“서혜주예요.”

“잘 왔다. 어머. 얘가 혜성인가 보네요? 아이, 귀여워라.”

지민이 마르와에게 붙잡힌 사이 진혁은 라이나 왕비를 만났다.

“이번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인사는 알-아즈하르 대사원에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쪽에서 많이 알렸다고 하더군요.”

“거기도 들러서 감사 인사를 드릴 생각입니다.”

라이나 왕비의 온라인 홍보와는 별개로 알-아즈하르 대사원은 직접 각 지의 이슬람 사원에 ‘투게더 페스티벌’ 안내 공문까지 발송하는 열의를 보여 줬다.

종교 단체로서는 이례적인 기업 행사 홍보였지만 AM이 대사원 소유라 가능했던 일이었다.

* * *

한편, 진혁이 요르단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지구 반대편에서는 음모의 싹이 자라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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