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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237화 (237/307)

237화. 테홍녠의 오만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죽망 회의장의 분위기는 무겁기 그지없었다.

이례적으로 본토에서 객가인의 황쉐인 객가주까지 참석했다.

이번 행사 진행을 맡은 자인 그룹 테홍녠 회장이 열변을 토했다.

“이번 행사로 알라딘 그룹이 무슬림을 대변한다는 것이 만천하에 밝혀졌습니다.”

“그렇게 단정 짓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서 회장의 고국인 한국은 무슬림 국가가 아닙니다.”

“그가 무슬림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번 행사에 무슬림 사원들이 신도들을 상대로 알라의 힘을 보여 주자며 독려했습니다.”

“그거야 알라딘 중동이 이집트 대사원 소유라 그런 것이지요.”

쿤초로 임텍 회장이 적극적으로 알라딘과 서진혁을 변호했다.

개인적으로 테홍녠 회장과 경쟁 관계인 데다 최근 진혁에게 메가시티와 시멘트 공장을 넘겨준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교활한 자라 기회만 잡으면 그 문제로 자신을 옭아맬 게 분명했다.

하지만 테홍녠 회장도 작심하고 나온 터라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알라딘과 무슬림을 억지로 옭아매는 발언을 이어 갔다.

라이꾸두 회장의 얼굴이 새까맣게 죽어가고 있었다.

진혁에게 큰 위기가 닥쳐오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회장들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다른 국가들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와 달리 무슬림 비중이 현저히 낮아서 별 감응들이 없었다.

그러자 테홍녠 회장의 난감한 시선을 받은 황쉐인 객가주가 나섰다.

“여기 계신 모든 분이 현재 본토가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으로 위협에 처했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거기에 알라딘의 이번 행사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 위주로 열렸습니다.”

“꼭 그렇게만 볼 수 없는 게, 그쪽 행사는 본토의 ‘이치’라는 업체에서 진행했고, 다른 지역에서도 매출이…….”

“무엄하오. 객가주께서 말씀 중이십니다.”

리카렁 회장이 나섰다가 테홍녠의 호통에 물러나야 했다.

그 영향력이 많이 약화됐다지만 화교의 뿌리인 객가인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황쉐인이 말을 이었다.

“우리 화교는 원주민들로부터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도 서로 힘을 합쳐 이 지역을 경제적으로 성장시켜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개한 자들은 우리가 부를 독점한다며 비난하며 폭동까지 일으켰습니다.”

1969년 말레이시아, 1998년 인도네시아에서는 반화교 폭동이 일어나 수많은 화교 가족들이 희생당하는 일이 있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이슬람 무장 단체 IS의 폭탄 테러 위협도 있습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무슬림을 기반으로 한 알라딘의 성장은 우리의 이익을 침해할 소지가 큽니다.”

황쉐인의 결론에 라이꾸두 회장의 얼굴이 절망감으로 물들었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동남아시아에서 화교가 급격하게 성장한 것은 뛰어난 장사 수완도 있었지만, 누군가가 경쟁 상대로 성장할 조짐만 보이면 이렇게 조직 전체가 뭉쳐서 미리 싹을 제거해서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알라딘의 서진혁이 그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었다.

황쉐인이 좌중을 둘러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따라서 객가인은 죽망이 나서서 알라딘 그룹을 정리해 주길 원합니다.”

“…….”

“이는 본토의 뜻이기도 합니다, 리카렁 망주.”

“……알겠습니다. 객가인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리카렁이 어금니를 악물고 답했다.

그가 현 죽망의 망주였다.

객가인은 과거의 뿌리일 뿐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하지만 문제는 본토, 중국 공산당의 의지였다.

중국 공산당은 무소불위의 권력 집단이었다.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메이왕 그룹 정도는 하루아침에 연기처럼 사라지게 할 수도 있었다.

황쉐인이 치졸하게 그걸 언급하며 압박하고 있었다.

서진혁에게는 미안하지만 자신이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모든 게 자신의 의도대로 결정되자 테홍녠이 거만한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고 말했다.

“선봉에는 내가 설 겁니다. 놈이 말레이시아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만들 테니 여러분의 국가에서도 함께 동조해 줄 거라고 믿습니다.”

“알겠습니다.”

“이 중 일부가 그자와 사업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사사로운 이득을 위해 죽망 내부 기밀을 발설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겁니다. 특히 라이꾸두.”

“예?”

“우리를 실망시키지 마라.”

“……침묵 서약을 지키겠습니다.”

라이꾸두 회장도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일이 되어버렸다.

* * *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를 거쳐 두바이까지 업무 겸 가족 여행을 마친 진혁은 동남아시아로 넘어가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혜성 때문이었다.

건강에는 문제가 없는데 기압 때문인지 비행기를 타면 칭얼거리는 바람에 옆에 손님들에게 민폐였다.

혜주도 힘들어하는 것 같아 지민과 상의 끝에 일단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동서남아시아는 진혁 혼자 다녀오기로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하루를 쉬고 사무실로 출근하자 기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행사에 참여했던 업체들이 속속 세계 메이저 유통 회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있습니다. 한국 제품의 가능성을 확인해서일 겁니다.”

“알쇼핑에 신규 벤더들이 입점 의뢰를 해 오고 있습니다. 이번 행사로 우리의 능력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플로테크가 UAE 통신 회사와 인도네시아 해군의 발주에 참여해 연달아 납품 계약을 따냈습니다. 투게더 페스티벌 같은 큰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끈 능력을 인정받아서랍니다.”

“잘됐군요. 그룹 차원에서 최대한 지원해 주십시오. 그런 성과 하나하나가 모여 나중에 큰 힘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고용준이 나가자 진혁이 그사이 얼굴이 반쪽이 된 김선혁을 보고 물었다.

“어디 아프십니까?”

“이게 모두가 네놈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기자들에게 시달렸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이제 돌아왔으니 인터뷰는 네가 해라.”

“혜성이 때문에 겨우 중동만 돌아보고 급히 돌아온 겁니다. 다시 동서남아시아로 나가 봐야 해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쪽은 선병식이나 손민한이 있어서 내가 가도 되니 걱정 마라.”

이미 진혁이 빠져나가려고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철저히 대비한 김선혁의 답변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꼼짝없이 기자들에게 시달려야 할 판이었다.

그때 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선병식이었다.

얼른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회장님 말씀 중이었습니다. 어쩐 일입니까?”

-말레이시아의 GTH리테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다음 달부터는 우리 제품에 대한 판매와 배송을 맡아 줄 수 없다고 통보해 왔습니다.

“아니, 왜 갑자기! 그것도 보름도 남겨 두지 않고 이렇게 갑자기 통보하는 경우가 어디 있답니까?”

-그렇지 않아도 제가 텡 로제 사장님께 항의했는데, 그룹이 결정한 것이라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라이꾸두 회장님과는 상의해 보셨습니까?”

-그게…… 연락이 안 돼 마야 팀장에게 물어봤더니 해외여행을 떠나셨답니다.

“음……. 제가 지금 즉시 건너가겠습니다. 어떻게 된 사정인지 최대한 알아내십시오.”

-알겠습니다.

통화를 끝내자마자 김선혁이 급히 물었다.

“인도네시아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냐?”

“말레이시아에서 갑자기 거래 중단을 통보해 왔답니다. 인도네시아의 우리 거래선은 연락을 받지 않고요.”

“음…….”

“바로 건너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나도 함께 가자.”

“아닙니다. 회장님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여기를 지켜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김상균 실장님만 데리고 가겠습니다.”

“조심해라.”

김선혁은 서둘러 나가는 진혁을 불안감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하자 선병식이 직접 차를 대기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만큼 다급하다는 반증이었다.

바로 물었다.

“좀 알아보셨습니까?”

“한결같이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쿤초로 회장님께도 전화를 드렸는데 역시 안 받으십니다.”

“음…….”

“혹시 몰라 안톤 사장님께 전화드렸는데 이상한 말씀을 하시더군요.”

“……?”

“며칠 전에 말레이시아에 다녀오신 이후로는 외부 연락을 받지 않겠다고 하셨답니다.”

“말레이시아요?”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만 마야 팀장도 이상하다고 했습니다. 라이꾸두 회장님도 얼마 전에 말레이시아에 다녀오셨는데,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갑자기 해외여행을 떠나셨답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모르는 큰일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일단 사무실로 가시지요.”

차에 타고 이동하는 중에 다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는 진혁 때문이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진혁이 김상균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동남아시아 각국의 대표 화교 그룹 회장들이 최근 말레이시아에 다녀왔는지 확인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김상균이 빠르게 답하고 핸드폰을 꺼내며 나갔다.

질식할 것 같은 침묵 속에서 기다리는 게 답답한지 선병식이 물었다.

“제가 다른 분들께 연락을 다시 해 볼까요?”

“제 예상이 맞다면 안 받을 겁니다. 기다려 보시지요.”

“……예.”

뭔가 알고 있는 듯한 답변에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진혁의 얼굴이 너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연락이 온 것은 채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통화를 마친 김상균이 보고했다.

“회장님의 예상이 맞았습니다. 다들 같은 시기에 말레이시아에 다녀갔답니다.”

“음…….”

“대체 무슨 일입니까?”

“한 가지만 더 확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진혁이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리카렁 회장이었다.

다행히 전화를 받았다.

“회장님이십니까?”

-나에게까지 전화한 것을 보면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으니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만, 내 의견은 아니었습니다.

“그럼 죽망입니까?”

-난 이 일에 대해 어떤 말도 해 줄 수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왜 이런 결정이 내려진 겁니까?”

-말씀드린 대로 그 답은 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이번 일이 어떻게 결론 나느냐에 따라 알라딘 그룹의 동남아시아 사업 전체의 운명이 결정될 겁니다. 제가 드릴 말씀은 이게 전부입니다. 죄송합니다.

전화가 끊겼다.

이를 악물던 진혁의 머리에 얼마 전에 라이꾸두 회장이 메카시티 인수를 우려하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특히 말레이시아의 테홍녠 회장님이 굉장히 분노하고 계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우려가 현실이 됐다.

진혁이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선병식과 김상균에게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었다.

“헉. 그럼 메가시티 인수에 불만을 품은 동남아 화교 그룹이 이 일을 벌였다는 말씀입니까?”

“죽망 전체의 의견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말레이시아 자인 그룹의 테홍녠 회장이 주도한 것 같습니다.”

“휴……. 그나마 다행입니다. 다른 나라들까지 같은 통보를 해 오는 게 아닌지 걱정했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밀리면 그렇게 될 겁니다.”

“헉!”

다시 한번 선병식의 입에서 헛바람이 나왔다.

진혁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지금 당장 말레이시아로 건너가 테홍녠 회장과 담판을 지어야겠습니다.”

“그건 안 됩니다.”

김상균이 즉시 앞을 가로 막았다.

진혁의 눈이 날카롭게 변하는 모습에도 김상균은 꿈쩍도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떤 위협이 도사리는지 알 수 없습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말레이시아 하나 포기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동남아시아 전체는 물론, 우리가 그동안 이룬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그래도 안 됩니다.”

“김 실장님!”

“테홍녠 회장이 함정을 파 놓고 달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이렇게 아무 대책 없이 달려가는 것은 적의 꾀에 넘어가는 겁니다.”

“음…….”

“제가 철저히 알아보고 준비하겠습니다. 그때까지만이라도 기다려 주십시오.”

“김 실장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회장님께 무슨 변고라도 생기면 더 큰일입니다.”

“……오래는 못 기다립니다.”

“넉넉잡고 하루만 기다려 주십시오. 최대한 빨리 알아보겠습니다.”

다시 김상균이 핸드폰을 나가는 모습에 진혁은 머리를 감싸 쥐며 주저앉았다.

또다시 같은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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