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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249화 (249/307)

249화. 빅 코뿔소

“방금 한국이 어쩌구 했던 말, 다시 해 봐.”

“왕홍이 한국에서 방송하는 게 아니라면 의미 없다는 말이었어. 어차피 한국 인터넷으로 하는 거라 중국 정부가 그것까지 막을 수는 없잖아.”

“바로 그거야.”

“……?”

“한국에서 왕홍 마케팅을 하는 거야.”

“헐……. 너 설마 왕홍들을 몰래 밀입국 시키겠다는 건 아니지?”

“이게 확! 내가 너냐?”

희준에게 인상을 쓴 진혁이 한지철에게 말했다.

“선배, 내가 기막힌 생각이 있어요.”

“뭔데?”

“한국에서 왕홍 마케팅을 합시다.”

“네가 희준이 말대로 밀입국시키자고 할 놈은 아니고……. 그걸 어떻게 하려고?”

“왕홍이 꼭 중국인이어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

“……!”

“너 설마 한국인 왕홍을 만들어 홍보에 활용하겠다는 거냐?”

“안 될 게 없잖아. 한류 영향으로 중국인이 동경하는 한국 연예인들 중에 중국어가 가능한 이도 있을 거야. 꼭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중국인 팔로워가 많은 사람도 있을 거고. 그냥 손가락 빨면서 기다리는 것보다 낫잖아요?”

“그거 괜찮은 생각이다. 난 회사에 들어가 봐야겠다. 나머지는 너희들끼리 해라.”

핸드폰을 꺼내며 일어난 한지철이 서둘러 식당을 나서는 모습에 희준이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된 게 선배는 네가 뭔 이야기만 하면 회사로 달려가시냐? 참 인생 힘들게 사신다.”

“저게 일에 대한 열정이라는 거야. 너도 좀 배워라.”

“일. 일. 아이고, 지겨워. 난 그냥 놀고먹는 게 꿈이야.”

한마디도 지지 않는 희준의 모습에 이번에는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얼마 못 가 식당을 나와 대리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희준이 투덜거렸다.

진혁이 결국 참지 못하고 희준에게 오필구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 주고 말았던 것이다.

“자식이 잘 먹고 있는데 괜한 이야기를 꺼내서…….”

“그럼 계속 먹든지.”

“야, 불순물 덩어리라는 말을 듣고 어떻게 계속 먹냐?”

“내가 오늘 네 생명 며칠은 연장시켜 줬으니 고맙게 생각이나 해.”

대리 기사가 데려다 준 곳은 남태령에 있는 서래 마을이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식구가 늘자 진혁은 김세동과 상의해서 과천 아파트를 팔고 이곳에 새 터전을 마련했다.

정원이 넓은 3층짜리 주택을 사서 1층은 김세동이 쓰고, 2층은 진혁, 3층은 희준이 입주하게 된 것이었다.

* * *

진혁은 한동안 국내에만 머물렀다.

알라딘 사무실에 출근해 업무를 보는 한편 오필구의 불가리아 스마트팜 사업 진출과 한국인 왕홍 마케팅 작업을 도왔다.

퇴근 후에는 그동안 소홀했던 가족들과 함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 마침내 기다렸던 일이 준비됐다.

알리딘 자동차의 SUV와 전기차의 신 모델이 테스트를 완벽하게 통과하고 생산 체제로 갖췄다.

SUV를 직접 시승하고 돌아온 진혁이 흡족한 표정으로 고용준에게 물었다.

“전기차를 타 본 소감이 어떠십니까?”

“깔끔하게 잘 만들어진 것 같았습니다. 최신 기능들이 적용돼 요즘 젊은 세대들이 많이 좋아하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SUV도 제가 원하는 대로 제대로 나온 것 같습니다. 다들 고생을 많이 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신차 발표회는 언제쯤 하실 생각이십니까?”

“길게 끌 필요 없지요. 다음 달에 바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계획을 세워 보고드리겠습니다.”

고용준의 말에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보고는 여기 김 회장님에게 하시면 됩니다.”

“내게?”

옆에서 듣고 있던 김선혁은 자신이 지목되자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전기차는 한국에서 발표하지만 SUV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주력 판매 시장이 중동이니까요.”

“그건 그렇다만.”

“회장님이 이곳을 맡아 주십시오. 전 갈리 회장님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겠습니다.”

“그렇게 하자.”

결국 신차 발표회는 한국과 중동에서 동시에 개최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 * *

10월 중순.

리야드 시내 중심가에 있는 아부다 컨벤션 센터에서 알라딘 자동차의 신차 발표회가 열렸다.

장내를 꽉 채운 내외신 기자들 앞에 알라딘 자동차의 대형 SUV ‘빅 코뿔소’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빅 코뿔소는 지능형 주행 안전 기술(ADAS)들이 대거 적용됐습니다. 아울러 최신 스마트 기술을 적용해 지문 인식 키, 스마트폰과의 연동을 통한 원격 제어, 안전 보안, 차량 관리, 실시간 길 안내 등의 기능이 탑재됐습니다. 코란을 읽어 주는 기능을 무상선택 옵션으로 적용해 무슬림에 대한 배려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습니다.”

전장 5,500밀리미터, 전폭 1.8밀리미터, 전고 1.5밀리미터, 휠베이스 3,000밀리미터의 묵직한 차체 크기에 다들 압도당한 듯 눈이 동그래졌다.

“실내 공간 최적화를 통해 성인이 탑승해도 불편함이 없는 3열 헤드 룸을 확보해 실내 거주성은 물론 공간 활용도를 높였습니다. 배기가스를 대폭 저감하는 선택적 촉매 환원 장치(SCR)를 적용, 2020년에 적용 예정인 배기가스 규제(유로6D)를 앞서 만족시켰습니다.”

한마디로 압도적인 공간성과 승객을 배려한 첨단 사양을 적용하고도 친환경까지 고려한 미래 지향형 대형 SUV라는 말이었다.

갈리의 소개가 이어지는 동안, 연단 아래 중앙에 앉아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진혁에게 옆에 앉은 아메만 회장이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엄청난 놈을 몰고 오셨습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저 정도면 굳이 제가 돕지 않아도 서로 앞다퉈 구매하려고 줄을 설 것 같습니다. 놀랍습니다.”

아메만 회장의 평은 엄살만이 아니었다.

SNS을 통한 사전 홍보 영상이 나가자 사전 예약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기본형이 6만 달러가 넘고 큰 덩치만큼 연비가 낮아 연료 소비량이 많다는 단점이 있지만, 산유국인 중동이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열기는 이후 열린 연회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갈리 회장은 기자들에 둘러싸여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진혁의 옆에서 잔을 들고 서 있던 아메만 회장이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전 회장님이 직접 발표하실 줄 알았습니다.”

“저럴 것 같아서 갈리 회장님께 억지로 떠넘겼습니다. 기자들만큼 지독한 사람들도 없거든요.”

“그건 그렇지요. 회장님이 이런 개별 행사까지 앞에 나서시는 것은 격에 맞지 않지요. 잘하신 결정이십니다.”

아메만 회장은 이번에 아부다 그룹 총괄 회장에 취임했다.

삼남이지만 맡고 있던 투자와 유통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일궈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진혁의 도움이 결정적이었기에, 이번 행사에 도움을 요청하자 오히려 고마워하며 더 적극적으로 도왔다.

아메만이 주변을 둘러보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미국 대선 결과를 어떻게 보십니까?”

“……!”

진혁의 얼굴이 바로 굳어졌다.

지금 세계인의 눈과 귀는 한 달도 채 넘지 않은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쏠려있었다.

현 국방부 장관인 민주당 후보와 존재감 없던 아웃사이더 공화당 후보.

처음에는 다들 역대 최고의 표차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거라 예상했는데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여론 조사 결과가 양 후보가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는 것으로 니타나 세계 언론이 긴장하고 있었다.

진혁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민심은 천심이란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무조건 미국만을 위하겠다는 공약 하나만 보고 지지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말만 앞세우는 기존 정치인들의 환멸에 더해, 누가 되든 자신들을 위하기만 하면 된다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의 산물이지요.”

“그럼 회장님은 공화당 후보의 당선을 확신하시는군요?”

“그렇습니다.”

진혁의 답변에 이번에는 아메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믿고 싶지 않은 최악의 예상이었다.

하지만 ‘검은 머리 짐’의 말이었다. 자신의 희망과는 상관없이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했다.

중국이 급성장하고 있지만 미국은 여전히 세계 1위 국가였다. 그곳 지도자가 어떤 정책을 펴느냐에 세계 경기가 요동을 치게 될 것이다.

* * *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신차 발표회를 성공리에 마친 진혁이 다음으로 찾은 곳은 이집트였다.

대통령 궁으로 가자 압델 대통령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진혁이 모른 척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 정도 말로 넘어가기에는 그간 너무 무심했던 것 아니오?”

“마음으로는 항상 찾아뵙고 싶었지만 사업이 워낙 바빠 큰 결례를 범했습니다.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시오.”

“…….”

“죄송한 마음에 최고의 선물을 준비해 왔습니다. 직접 보시면 크게 흡족하실 겁니다.”

“……?”

진혁은 의아한 표정을 짓는 압델을 설득해 밖으로 나왔다. 갓 뽑아 반짝거리는 ‘빅 코뿔소’가 당당하게 서 있었다.

압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알라딘 자동차에서 이번에 새롭게 개발한 신차입니다. 선물로 가져왔습니다.”

“겨우 이런 차 한 대에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실망입니다.”

“그건 직접 타 보신 후에 판단하시지요.”

진혁은 압델을 조수석에 앉게 하고 직접 운전대를 잡아 대통령 궁 경내를 돌았다.

이런저런 최신 스마트 기술을 보여 줬지만 압델의 표정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평범해 보이지만 유리는 방탄유리에 외관은 특수 합금으로 제작된 방탄차입니다.”

“그 정도는 다른 차도 다 갖춰져 있소.”

“하지만 이건 아닐 겁니다.”

진혁이 조수석 옆에 부착된 붉은색 버튼을 눌렀다.

-대 테러 모드로 전환됐습니다.

스피커에서 젊은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가장 가까운 인근 부대에 테러 공격을 알렸습니다.

-자율 주행 모드로 전환되었습니다.

-저장된 대피소로 이동을 시작합니다.

연달아 들리는 음성과 별도로 차가 스스로 움직였다.

운전대에 손을 뗀 진혁이 말했다.

“차량 테러 시 첫 목표는 운전수입니다. 기사가 저격당하는 순간 차는 움직이지 못하는 감옥으로 변합니다. 하지만 이 차는 자율 주행 기능이 탑재되어, 스스로 탈출 경로를 찾아 공격 지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

“비상 연락은 덤이고요.”

“대단한 기능이오.”

진혁이 설명이 끝나자 압델은 애써 지은 딱딱한 표정도 잊고 감탄을 터트렸다.

쿠데타로 권좌에 오른 압델이라 태생적으로 테러에 대한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거기에 중동은 여전히 IS의 각종 테러가 빈번히 발발해 큰 위협이 되고 있었다.

얼마 전에도 현장 시찰에 나섰던 장관이 길거리에서 차량 폭탄 테러로 목숨을 잃는 일이 일어났었다.

다들 몸을 사리고 움츠린 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빅 코뿔소’라면 그런 불안감의 상당부분을 해소시킬 수 있었다.

스스로 주행해 와 처음 출발 자리에 멈춘 차에서 내린 압델이 그제야 차의 이모저모를 훑어보고 말했다.

“차량 가격은 얼마나 합니까?”

“대테러 기능을 포함한 풀 옵션이 들어가면 30만 달러 정도 될 겁니다.”

“당장 50대를 만들어 주시오. 장관들은 물론 사단장 급들에게 한 대씩 나눠 줘야겠소.”

“자신들의 안전을 걱정하시는 각하의 마음에 모두가 다시 한번 충성심을 다질 겁니다.”

진혁은 미리 준비한 압델이 흡족할 만한 답변으로 마무리 지었다.

처음과 달리 얼굴이 활짝 핀 압델과 식사까지 하고 대통령 궁을 나선 진혁은 시계를 보고 급히 어디론가 달려갔다.

시내의 카페로 가자 카심이 알트라드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흰 머리가 늘고 얼굴에 잔주름도 많이 생겼지만 살이 찐 데다 노련미까지 더해진 알트라드의 표정에는 여유가 느껴졌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난 미스터 서가 날 완전히 잊어버린 줄 알았습니다.”

“그럴 리가요? 원하시는 바를 이루셨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알트라드가 카이로 암시장을 일통해 지하 경제의 거물이 되었다는 보고를 받았었다.

“편해지긴 했는데 그래도 미스터 서와 전장을 누빌 때가 좋았지.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느꼈던 스릴감이 그리울 때가 많아.”

과거를 회상하는 알트라드의 말에 진혁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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