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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250화 (250/307)

250화. 미국 대선 예측

“다시 한번 그걸 느껴 보시겠습니까?”

“무슨 좋은 건수가 있소?”

알트라드가 기대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진혁이 갑자기 보자고 했을 때부터 큰 건이구나 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빅 코뿔소’에 대한 설명을 들은 알트라드가 눈을 반짝였다.

“대테러 기능이 탑재된 ‘빅 코뿔소’를 내가 판매해 주기를 원하시오?”

“그렇습니다. 정전 불안으로 알라딘 유통이 진출하지 못한 국가들이 많습니다. 그런 곳에서 오히려 수요가 더 많을 겁니다.”

“그렇겠지. 독재와 부정 축재로 언제 암살 공격을 받을지 몰라 잠을 편히 자지 못하는 놈들이 널려 있으니.”

“그쪽 판매를 알트라드 씨가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최대한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미스터 서가 하는 일인데 당연히 성공하겠지요. 맡겠습니다.”

진혁이 빅 코뿔소의 중동 판매를 자신한 것은 이런 복안이 있어서였다.

두 사람이 뜨겁게 악수하는 것으로 계약은 성립됐다.

알트라드가 돌아가자 진혁이 카심에게 물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특별한 어려움 없이 가족들과 편하게 보내고 있어요. 다들 미스터 서를 그리워하며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감사는 오히려 제가 해야지요. 그보다 이번 기회에 독립해서 사업을 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사업을요?”

“말씀 들으셨듯이 알라딘이 진출하지 않은 국가의 ‘빅 코뿔소’ 판매를 알트라드 씨에게 맡길 생각입니다. 이를 위해 별도의 판매 법인을 만들려고 하는데, 카심 씨가 그걸 맡아 해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카심의 눈이 당장 커졌다.

엄청난 이권이 걸린 사업이었다. 알트라드의 그간 사업하는 형태를 봐서는 그 규모가 작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진혁이 말을 이었다.

“자금이 부족하면 제가 빌려드리겠습니다. 중동 못지않게 아프리카도 큰 시장이 될 겁니다. 후진국일수록 부정 축재한 자들이 더 많습니다. 그들 대부분이 보안을 중시하니 판매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

“빅 코뿔소는 방탄차가 아니라도 대테러 방지 기능 자체만으로도 매력은 충분합니다. 더불어 일반 코뿔소 시리즈까지 덩달아 인기몰이를 할 테니 전망이 아주 좋습니다.”

진혁은 카심에게 엄청난 혜택을 주려고 했다.

그는 동료이기 전에 가족 같은 사람이었다.

다른 지역에서 사업하느라 이집트에 혼자 남겨 둔 카심이 항상 마음에 걸렸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이번 기회에 확실히 자리를 잡게 해 주고 싶었다.

잠시 생각하던 카심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스터 서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은 잘 알겠어요. 하지만 난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예?”

“나와 내 가족은 지금의 행복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욕심은 오히려 화를 불러올 수 있어요. 특히 알트라드 씨가 얽힌 일이라면 더더욱.”

“……!”

“내 욕심 때문에 가족을 위협에 빠트리고 행복을 깨뜨리고 싶지 않습니다. 말씀만 감사히 받을게요.”

입을 열려던 진혁이 카심의 흔들림 없는 눈빛에 입을 닫았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그들의 안전을 우선시하고 있었다.

가족에게 못해 준 게 한이 되어 어렵게 회귀까지 한 자신보다 오히려 카심이 더 가족을 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 사람은 이후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핫산과 소마야는 물론 갈리 시장의 모하메드 사장, 가리 사장까지 불러 옛 추억을 더듬으며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 * *

요르단 왕궁은 물론 방글라데시까지 들렀다 오느라 한국에 도착했을 때는 11월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김선혁이 활짝 핀 얼굴로 반겼다.

“중동에서 빅 코뿔소의 주문이 계속 쇄도하고 있어 생산 라인을 급히 증설하고 있다.”

“스마트 팩토리로 가는 것에 대해 노조의 반대는 없었습니까?”

“잠시 서로 오해가 있었지만, 일반 코뿔소 시리즈까지 판매가 늘어나는 모습을 보고 잠잠해졌다.”

진혁은 스마트팜 도입에 대한 농민들의 반대를 겪으면서 스마트 팩토리 도입은 점진적으로 신중하게 추진하기로 했다.

자동화는 필연적으로 고용 인력의 감소를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기존 시설에 도입하게 되면 노조의 반대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이에 진혁은 기존 직원에 영향을 주지 않는 신규 라인에 한해서만 스마트 팩토리로 가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결과가 좋다 보니 다행히 큰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다른 임원들도 현안 보고를 했는데 나름 성과를 내고 있었다.

그중에 제일 목소리가 큰 것은 한지철이었다.

“한국인 왕홍 마케팅이 서서히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중국 내 신제품 매출이 미약하게나마 증가세로 돌아섰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연예인도 좋지만 중국 관련 지인이 많은 일반인도 왕홍으로 발굴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진혁의 눈이 구석 자리에 앉아 있는 구필준에게 향했다. 그는 다른 이와는 달리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알라딘고’가 미국 대선 결과 예상을 내놓았는데, 그게 좀 이상합니다.”

“어떻게 나왔습니까?”

“280 대 217로 공화당의 카이저 후보의 당선을 예측했습니다.”

고용준 회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설마요?”

“저도 이상해서 변수를 조정해 봤는데 확률의 차이일 뿐 한결같이 카이저 후보의 당선 결과만 나옵니다.”

“아직 완벽하지 않아 그런 엉터리 같은…….”

“잠시만요.”

진혁이 고용준의 말을 막고 구필준에게 말했다.

“알라딘고를 만드신 소장님이 그를 믿지 않으시면 안 되지요. 그냥 발표하세요.”

“그건 좀 신중했으면 싶다.”

이번에는 김선혁이 진혁의 결정을 막고 말을 이었다.

“최근 카이저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90% 이상의 여론 조사 기관이 그의 패배를 점치고 있다.”

“10%는 아니잖아요?”

“미비한 숫자인 데다가 백인우월주의자에 팍스 아메리카를 외치며 주한 미군 감축, 한미 FTA 재협상 발언 등을 한 게 알려지면서 국내의 여론이 좋지 않다. 괜한 구설수에 오를 수 있다.”

“투표는 미국인들이 하는 겁니다. 알라딘고의 예측이잖아요. 인공 지능의 성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겁니다. 그냥 재미있는 이벤트다 생각하시고 가볍게 처리하세요.”

“……알았다. 알라딘고가 내놓은 결과로 발표하마.”

진혁이 계속 고집을 부리자 김선혁이 어쩔 수 없이 수긍하고 물러났다.

알라딘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 인공 지능이 내놓은 결과 정도로 축소해 발표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알라딘고의 미국 대선 예측에 대한 기사는 일간지가 아닌 과학 전문지에 조그맣게 소개되었다.

하지만 김선혁은 SNS의 위력을 과소평가했다.

가장 핫한 기업인 알라딘에서 일반 여론과 배치되는 인공 지능의 예상평을 내놓자, 삽시간에 기사가 SNS를 통해 퍼져 나가면서 대형 포탈의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 미친 거 아니야? 어떻게 카이저를.

└ 인공 지능이 했다잖아. 단순 무식한 컴퓨터라 그런 거지. 알라딘 그룹도 대책 없다.

└ 서진혁 회장은 스마트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이런 허무맹랑한 사실을 버젓이 발표하고. 실망이네.

비난과 비아냥만이 가득한 댓글들로 가득했다.

졸지에 바보 취급을 받은 알라딘 그룹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당연히 직원들이 표정도 어두웠다.

하지만 유일하게 진혁만이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을 하고 다녔다.

결국 보다 못한 희준이 한 소리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넌 대체 눈치란 것이 없냐?”

“……?”

“알라딘고 발표 때문에 너나 그룹이 온갖 욕은 다 먹고 있잖아.”

“그래서 요즘 헛배가 자꾸 부른 건가.”

“아오……. 내가 말을 말아야지.”

능청스런 답변에 희준이 분통을 터트렸다.

반대로 진혁은 진중한 얼굴로 채 말을 이었다.

“인공 지능의 단점이면서 장점은 주변 말에 흔들리지 않고 냉정하게 사실만을 본다는 거야.”

“너 설마?”

“내일이면 알겠지.”

진혁은 더 이상 말을 아낀 채 돌아서 걸어갔다.

미국 대선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멀어져 가는 진혁의 등을 바라보는 희준의 눈에는 복잡함이 묻어났다. 진혁은 말도 안 되는 알라딘고의 판단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해낸 진혁이었다.

* * *

다음 날 열린 미국 대선 결과에 세계가 경악하며 큰 혼란에 휩싸였다.

카이저 대통령 당선.

279 대 218.

알라딘고가 예상한 것과 거의 흡사한 결과였다.

모두의 예상을 깬 카이저의 당선으로 브렉시트보다 몇 배 큰 충격이 세계를 강타했다.

직접 투표한 미국인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주요 도시 곳곳에서 유색 인종과 이민자들이 중심이 되어 ‘선거 무효’를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그와는 별도로 알라딘고의 정확한 예측이 다시 한번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그간 비난 일색이었던 알라딘 그룹과 서진혁에 대한 평가도 정반대로 변해 있었다.

“청와대에서 들어오시랍니다.”

비서실의 전갈을 받은 진혁이 사무실을 나섰다.

“어서 오십시오.”

인사하는 권성일의 얼굴이 무겁게 굳어 있었다.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이현국 비서실장과는 눈인사만 나눴다.

“카이저 대통령의 당선에 대해 서 회장님의 고견을 듣고 싶어서 모셨습니다.”

“전 사업가지 정치인이 아닙니다. 제가 조언을 드릴 입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발을 빼려는 진혁에게 권성일이 말을 이었다.

“알라딘 그룹만이 정확한 선거 결과를 예측해 냈습니다.”

“그건 인공 지능이…….”

“물론 알라딘고가 계산해 냈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그걸 대외적으로 공표했다는 것은 서 회장의 허락이 있었다는 방증이지요. 알고 계셨던 겁니까?”

“……제가 신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최소한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신 근거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진지하게 묻는 권성일의 태도에 진혁이 입맛을 다셨다. 그냥 대충 얼버무리고 빠져나올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자세를 바로 한 진혁이 말했다.

“카이저 대통령의 공약을 보면 딱 한 가지로 요약됩니다. 미국제일주의. 세계 각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유럽 발 금융 위기로부터 시작된 세계 경기 하강에 경제 사정이 좋지 못합니다. 그사이 중국이 무섭게 성장해 미국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 상황에 대한 불만이 이번 투표로 표출된 거지요.”

“어제만 해도 반대할 말이 많았을 텐데 이미 서 회장의 생각이 맞았음이 결과로 나타났으니 의미 없는 일이고, 앞으로 한미 관계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제가 사업을 하면서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위기는 기회다.”

“……!”

“주한 미군 감축, 한미 FTA 재협상은 분명 부담입니다. 그러나 카이저 대통령 당선자에게 한국은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가 아닐 겁니다. 그가 제일 먼저 목표로 삼을 나라는 중국입니다.”

“중국요?”

“그렇습니다. 미국 내수 시장의 상당 부분이 중국의 저가 제품에 점령당한 상황입니다. 이로 인해 미국 제조업이 고사 직전입니다. 이에 대한 개선을 강력하게 추진할 겁니다. 그로 인해 미중 간 무역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습니다.”

“음…….”

“세계 7대 수출국인 한국 입장에서 최대 교역국인 두 나라의 무역 전쟁은 수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으니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의 사드 배치 요청을 받아들인 대가로 중국으로부터 경제 보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를 잘 이용한다면 오히려 현재의 어려운 국제 정치 문제를 타개할 수도 있습니다.”

권성일은 그제야 진혁이 ‘위기는 기회다’라고 말한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말이 있었다.

이후 권성일은 한동안 한미 관계 변화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했는데 진혁은 성의껏 답을 했다.

미우나 고우나 고국이었다.

“북한 문제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카이저 대통령은 강력한 미국을 원합니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테니 우리도 그에 대한 대책을 세워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와 다들 대책을 세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카이저 대통령은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극단적인 자국 우대 정책을 펼칠 겁니다. 세계 평화를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은 기대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런 두 가지 전제하에 대미 관계를 수립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급한 건 중국이지 한국이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권성일 대통령의 인사를 받고 청와대를 나왔다.

그런데 사무실로 돌아온 진혁을 의외의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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