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자원 확보전
“각종 정보를 조합해 몇 가지 계획을 세웠습니다. 우선 코발트는 MCM이 보유한 콩고의 무소쉬 구리 광산 지분 70%를 인수했으면 합니다.”
“MCM은 어떤 회사입니까?”
“코스닥에 상장된 자원 개발 회사인데, 지속된 경영난으로 해당 지분을 중국 업체에 매각하는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요. 우리가 매입하도록 합시다.”
진혁의 즉각적인 결정에 다들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며 한상국이 보고를 이어갔다.
“다음으로, 광물공사가 보유하고 있는 마다가스카르의 암바토비 광산 지분을 인수하면 니켈과 망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쪽은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아시다시피 광물공사는 지난 정권에서 해외 자본 개발을 담당했던 곳으로, 혈세 낭비의 대명사로 불릴 정도로 여러 건의 부실 투자가 밝혀져 국정 감사까지 받으며 곤욕을 치루는 중입니다. 그때 투자된 곳 중에 하나가 암바토비 광산입니다. 지금까지 16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3천만 달러를 회수하는 데 그쳤습니다.”
“처참하군요. 그럼 문제가 많은 곳 아닌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프로젝트 초기 니켈 가격이 급락하는 바람에 난항을 겪은 데다, 지난 정권에 대한 과도한 적폐 청산 분위기에 지분을 서둘러 정리하려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암바토비 광산이 정상 가동만 된다면 생산량으로 세계 6위가 되는, 성공 가능성이 높은 광산입니다.”
진혁은 입맛을 다셨다.
정치적인 문제로 소중하게 획득한 자원을 헐값에 정리하려는 우매한 짓을 벌이려는 것이다.
“지분 구조는 어떻게 됩니까?”
“광물공사가 28%, 일본의 미나미 개발이 32%, 프랑스 업체인 코라코가 40%를 소유하고 있는데, 그간 코라코가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투자금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최대 지분을 가진 쪽에서 투자금을 내놓지 않았으면 어떻게 개발을 한 겁니까?”
“그래서 광물공사와 미나미 개발이 대신 납부해 왔는데, 빌린 투자금과 이자 탕감을 조건으로 지분을 내놓겠다고 해서 광물공사도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고 합니다.”
“난감한 상황이라니요?”
“광물공사는 부채가 5조 원에 이를 정도로 부실이 극에 달해 있는 상황입니다. 올해 돌아올 만기채 상환에 7천억 원이 필요해 정부에 예산을 요청했는데 국회에서 부결되면서 벼랑 끝에 몰린 상태입니다. 일각에선 파산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등 최악의 상황인데, 빌려준 돈마저 떼이게 될 판이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국제적인 호구 짓으로 망신살이 제대로 뻗친 상황이었다.
“알겠습니다. 암바토비 광산 인수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하지요. 또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리튬 확보 방안인데, 이는 한국제철과 협업하는 게 최상일 것 같습니다.”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설명하마.”
김선혁이 대신 나섰다.
한국제철 강성천 회장과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이라 회사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한국제철은 본 사업인 제철 산업이 중국의 저가 공세에 수익성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그간 신사업인 2차 전지 소재 사업에 꾸준히 투자해 왔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리튬 생산에 주력해 일정한 성과를 얻고 있단다.”
한국제철은 2010년 리튬 직접 추출 독자 기술을 개발했고, 호주 ‘필간구라 리튬 광산’의 지분을 인수를 통해 연간 최대 24만 톤의 리튬 정광을 확보하고 있었다.
“한국제철이 자체 보유한 기술은 바닷물에 녹아 있는 리튬을 추출하는 데 탁월한 성능이 있다고 한다. 문제는 염호를 확보하는 것이다. 지난 8년간 아르헨티나 정부와 꾸준히 협의해 와 최근에 겨우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는데, 투자금 마련이 쉽지 않다며 고민을 하더라.”
강성천 회장과 사담을 나눌 정도인 김선혁만이 알 수 있는 고급 정보였다.
더 이상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 한국제철과의 협업을 통한 리튬 확보는 회장님이 맡아서 진행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마.”
이후는 한상국이 세운 세 개의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세부 실행 계획을 세우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그에 따라 진혁의 행보가 바빠졌다.
다음 날.
진혁은 MCM부터 찾아갔다.
그 자리에서 바로 1억 달러에 콩고의 무소쉬 구리 광산 지분 70%를 인수하는 약정서를 체결했다.
계약이 신속하게 이루어진 것은 그간 협상해 왔던 중국 업체의 끊임없는 말 바꾸기 때문이었다.
초기에는 적극적이더니, 중국 업체들이 연달아 비슷한 류의 광산을 인수하자 태도가 변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지속적인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바람에 협상이 중단된 상태였다.
진혁은 두말없이 두 업체 간에 마지막으로 협의된 금액을 받아들여 성사시킬 수 있었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MCM을 나온 진혁에게 수행한 한상국이 말했다.
“이제 광물공사와 약속을 잡을까요?”
“아직은 아닙니다. 그쪽을 만나기 전에 먼저 해결할 일이 있습니다. 코라코와 직접 만나 담판을 지을까 합니다.”
“……!”
한상국의 눈이 커졌다.
진혁 특유의 큰 그림을 그려 놓고 핵심을 공략하는 전략이 이번에도 나타났다.
광물공사가 보유한 지분보다 코라코의 지분이 훨씬 더 많았다. 거기에 코라코는 경영난을 겪고 있는 중이라니 절호의 기회였다.
* * *
일주일 후.
진혁은 김상균과 함께 프랑스로 건너갔다.
파리의 드골 공항에 도착해 출국장을 나서자 낯익은 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춘섭이었다.
“번번이 어려운 부탁만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회장님이 하시는 일인데 당연히 제가 와야지요.”
이춘섭의 태도는 정중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저 그런 흥신소 탐정으로 생활하다가 김상균의 소개로 진혁을 만난 이후 그의 인생은 활짝 폈다.
일본과 마카오 등의 일을 거들 때마다 진혁은 아낌없이 용역비를 지불해 줬다.
이번에도 크게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춘섭이 미리 예약한 호텔 VIP 룸에 짐을 풀고 마주 앉았다.
“미나미 개발에서는 가토 부사장이 얼마 전에 다녀갔다고 합니다.”
“부사장이요?”
“원래는 사장이 직접 오려고 했는데, 한국의 광물공사가 예산 확보에 실패한 것을 알고 안일하게 대처했던 것 같습니다.”
“협상 결과는요?”
“미나미에서 지불한 투자금과 이자 8억 달러에 코라코의 지분 25%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심했네요.”
진혁이 조사한 바로는 암바토비 광산의 가치는 최소 45억 달러였다.
8억 달러면 5.6% 지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도둑놈이 따로 없었다.
“코라코의 드리앙 회장이 2015년에 미국과 쿠바가 반세기 만에 수교를 재개한 것에 기대가 컸던 모양입니다. 쿠바 광산을 공격적으로 매입했는데 무역 제재가 풀리지 않아 심각한 경영 위기를 겪으면서 빚 탕감 조건으로 지분을 내놓은 거랍니다. 거기에 유일한 경쟁 상대로 여겼던 한국의 광물공사마저 여력이 안 된다고 판단해서 가격을 후려친 것 같습니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미나미 개발은 진혁의 개입을 고려하지 않은 실수를 벌였다.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내일의 협상 전략을 짰다.
* * *
이틀 후.
진혁은 김상균만 데리고 코라코 본사를 찾았다.
드리앙 회장은 멋지게 나이 든 중년신사였는데, 최근의 어려운 경영 상황 때문인지 얼굴은 까칠해 보였다.
“서진혁입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뛰어난 투자자와의 만남은 언제든지 즐겁습니다.”
진혁은 ‘검은 머리 짐’의 명성으로 오늘의 면담을 성사시켰다.
비서가 차를 내놓고 돌아가자 드리앙 회장이 말했다.
“세계적인 투자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코라코를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라코가 비록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 시기만 잘 넘기면 크게 성장할 기업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쿠바산에 대한 미국의 금수 조치만 풀리면 바로 해결될 작은 문제입니다.”
“문제는 미국에서 카이저 대통령이 당선됐다는 겁니다.”
“……!”
“아시겠지만 카이저 대통령은 선거 내내 ‘미국제일주의’를 외친 극단적인 보호무역주의자입니다. 따라서 회장님이 기다리는 기회는 이번 정권에서는 오지 않을 겁니다.”
진혁의 냉정한 판단에 드리앙의 눈빛에서 호의가 사라졌다.
대신 차가운 냉기가 풀풀 날렸다.
“코라코에 투자하시겠다는 건 빈말이셨군요.”
“아닙니다. 제가 투자할 때 즐겨 쓰는 말이 ‘위기는 기회다’입니다. 냉정한 말씀이지만 회장님이 겪고 있는 위기가 제게 투자할 기회를 제공했으니 틀린 말이 아니지요.”
“……인정합니다. 그럼 어떤 식으로 투자하시겠다는 겁니까?”
“코라코가 최근 마다가스카르의 암바토비 광산 지분을 참여사에 매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그걸 인수하고 싶습니다.”
드리앙의 눈에서 품어져 나오는 냉기가 훨씬 더해졌다.
승냥이 떼들이 따로 없었다. 이쪽에서 피를 보이자 서로 뜯어 먹으려고 가차 없이 달려들고 있었다.
진혁은 그런 시선을 담담히 받아내며 말을 이었다.
“좀 전에 말씀드린 카이저 대통령의 미국제일주의 정책은 예상보다 훨씬 강력하게 시행될 겁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런 시기에는 부실 자산을 매각하고 부채를 줄여서 살아남아 있어야 나중에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어떤 조건으로 인수하실 생각이십니까?”
“지분 참여사인 일본의 미나미 개발 측으로부터 제안을 받으신 것으로 압니다. 저 역시 그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보시오!”
“단, 저는 다른 조건 없이 지분 전체를 인수할 생각입니다. 자금도 즉시 입금해 드리지요.”
“……!”
드리앙 회장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미나미 개발에서는 자신의 채무에 해당하는 금액만 지분을 헐값으로 계산해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것도 분할 납부 조건이었다.
드리앙 회장의 눈이 빠르게 돌아가는 모습에 진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첫 만남이니 제 제안을 말씀드리는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가겠습니다. 심사숙고해서 결정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연락드리지요.”
드리앙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도착해 내리자 옆에서 김상균이 물었다.
“호텔로 바로 가실 겁니까?”
“글쎄요…….”
애매한 답변에 고개를 갸웃거린 김상균이 진혁과 함께 현관문을 나서려는 순간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회장님! 서진혁 회장님!”
몸을 돌리자 방금 전 봤던 드리앙 회장의 비서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와 말했다.
“저희 회장님이 다시 올라와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래요? 갑시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장실로 가자 드리앙 회장이 벌게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서 회장님이 말씀하신 조건에 계약하겠습니다.”
“너무 서두르시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미나미 개발에는 절대 넘겨주지 않을 겁니다. 계약하시지요.”
“좋습니다.”
진혁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변호사가 불려오고 일사천리로 계약서가 작성됐다.
알라딘이 부채 13억 달러를 떠안는 대신에 코라코의 지분 40%를 전량인수하기로 했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김상균이 흡족한 얼굴을 하고 있는 진혁에게 물었다.
“드리앙 회장님이 다시 부르실 줄 알고 계셨던 겁니까?”
“일본에서 이춘섭 씨가 잘해 주신 것 같습니다.”
“……!”
그때야 진혁이 이춘섭과 양동 작전을 벌였다는 것을 김상균도 눈치챘다.
먼저 일본으로 건너간 이춘섭은 진혁이 면담을 끝내자마자 코라코 본사로 전화해서 담당 이사라며 고압적인 자세로 계약을 재촉했다.
시간이 지나면 가격을 더 낮추겠다는 협박까지 곁들였다.
그 보고를 들은 드리앙 회장이 격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호텔에 도착한 진혁은 이춘섭에게 전화해 수고했다고 하고, 절약된 5억 달러의 10%에 해당하는 5천만 달러를 송금해 줬다.
* * *
프랑스의 일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진혁은 광물공사가 보유한 암바토비 광산 지분 28%를 15억 달러에 인수하는 것으로 자신이 맡기로 했던 자원 확보를 마쳤다.
원래 인수가는 10억 달러에 코라코의 부채 5억 달러를 갚는 것이었는데, 두루뭉술하게 발표했다.
손실 금액을 최소화하려는 광물공사의 정치적인 배려가 반영된 결과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 진혁은 시내 모처의 한정식집으로 갔다.
종업원의 안내로 방에 들어서자 김선혁이 비슷한 또래의 사내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