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아프리카 진출
“한국제철의 강성천입니다.”
“서진혁입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회장님이 투자해 주신 덕분에 그토록 원하던 염호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진혁이 투자한 3억 달러로 한국제철은 아르헨티나 살데비다 염호를 확보할 수 있었다.
서울의 3분의 1 정도인 1만 7,500헥타르 규모의 살데비다 염호는 향후 20년간 매년 2만 5천 톤의 리튬을 생산할 수 있는 염수를 보유하고 있는 보물이었다.
여기에 한국제철이 향후 2억 달러를 투자해 채굴과 생산 시설을 설치하고 자체 개발한 기술로 추출하게 된다.
지분은 한국제철이 51%, 알라딘이 49%를 갖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
자리에 앉은 진혁이 말했다.
“회장님을 뵙자고 한 것은 이번에 확보한 콩고의 무소쉬 구리 광산과 마다가스카르의 암바토비 광산의 채굴도 한국제철에서 맡아 주셨으면 해서입니다.”
“저희가 말입니까?”
“아시다시피 알라딘 그룹은 관련 경험이 전부합니다. 일부에서는 직접 개발하자는 의견도 없지 않지만, 한국제철같이 뛰어난 기술을 보유한 회사가 바로 옆에 있는데 굳이 중복 투자로 자원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반가운 말씀입니다. 경쟁은 세계적 기업들과 해야지, 국내 기업끼리 하는 것은 제 살 깎아 먹기입니다. 맡겨 주시면 최선을 다해 개발하겠습니다.”
강성천이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자원 개발이라는 게 기술력 확보도 어렵지만, 어렵게 기술력을 확보해도 광산을 확보하는 데 또 많은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 사업이었다.
이미 개발한 기술이 있으니 별도의 투자금 없이 부가 가치를 올릴 수 있는 최선의 결과였다.
초반에 큰 선물을 받은 강성천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회장님을 만난다기에 나름 준비를 해 왔는데, 이렇게 커다란 선물을 주시니 제가 말을 꺼내기가 난감해졌습니다.”
“괘념치 마시고 좋은 의견이 있으시면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 여기 김선혁 회장님이 ‘말은 달려야 제 값을 한다’고 혹독하게 가르쳐 주셔서 항상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하하하하. 제대로 배우셨네요.”
강성천의 큰 웃음소리에 김선혁이 노려봤지만 진혁은 모른 척 다음 말을 기다렸다.
“회장님이 배터리 관련 자원 확보를 하신 것은 앞으로 전기차가 대세가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시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화석 연료로 달리는 내연 기관 자동차 시대가 종말을 고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전기차의 폭발적인 성장은 필연적으로 배터리의 수요를 불러오게 될 겁니다. 배터리를 생산을 위한 자원 전쟁이 벌어지는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
“폐배터리 문제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배터리라는 게 시간이 지날수록 충전능력이 떨어집니다. 거기에 빠르고 많이 충전할 수 있는 기술이 계속해서 나오면서 구형 배터리 처리 문제가 조만간 대두되게 될 겁니다.”
진혁은 물론 옆에서 듣고 있던 김선혁의 얼굴이 바로 심각하게 변했다. 자신들이 놓친 게 또 있었다.
강성천의 말이 이어졌다.
“수년 안에 폐전기차 발생으로 수백만 톤에 달하는 리튬이온 배터리가 버려지게 되고, 리튬이나 코발트와 같은 핵심 자원이 고갈될 경우 보다 많은 자원들이 인류의 물과 토양을 오염시키게 될 수 있습니다. 만일 이런 폐배터리를 지속적으로 채집하고 재사용할 수 있다면, 경제적인 이득을 기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각한 환경에 대한 위협과 낭비를 잠재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런 말씀을 꺼내신 것을 보면 이미 대책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만.”
“전기차 배터리를 재활용할 경우 초기 용량의 70∼80% 수준의 에너지저장장치(ESS)로 변경하면 전기 자전거, 전동 휠체어, LED 가로등으로 10년 이상 연장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사용하고 최종 폐기되는 배터리도, 우리가 개발한 기술을 이용하면 대부분의 광물을 추출해 새로운 배터리를 만들어 내는 데 활용할 수 있습니다.”
사실이라면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이에 유럽, 미국은 물론 인근 중국과 일본까지도 자동차용 리튬 이차 전지의 재사용, 재판매, 재제조를 통한 ESS 상용화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사후 관리 체계 부실로 배터리 재사용이 어려운 실정입니다.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보조금이 지급된 전기차는 폐차, 혹은 등록 말소 시 폐배터리를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반납하게 돼 있지만, 회수, 관리 및 처리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없습니다. 또 보조금을 받지 않는 중고차나 사고 차량 등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고요.”
“상황이 심각하군요.”
“가전제품처럼 전기차 생산자에게 폐기물 회수 및 재활용 의무를 부여하는 생산자책임재활용(EPR) 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일견 보기에는 자동차 생산 업체에 부담이 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배터리를 재활용한다면 환경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배터리의 잔존 가치를 선(先) 보상하는 방식 등으로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시장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 줄 알겠습니다. 알라딘 자동차부터 EPR 제도를 먼저 도입하겠습니다.”
“회장님이 그렇게 결정하신다면 한국제철에서는 적극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전기차를 생산해 판매하고, 재활용 배터리를 회수해 ESS로 개발해 판매하고, 이를 다시 회수해 광물을 추출해 다시 새로운 배터리로 생산하는 자원 순환형 사업 체계를 가동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내일 출근하는 대로 알라딘 자동차 담당자들에게 검토해 연락드리게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진혁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무조건 서둘러 해야 하는 사업이었다.
이야기가 잘 끝나자 이어진 식사 자리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것은 당연했다.
진혁은 가능한 자신의 의견을 내놓는 것은 줄이고 강성천의 이야기를 듣는 데 집중했다.
연달아 생각하지 않은 광물 자원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은 터라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는 마음에서였다.
그런 마음이 전해졌는지, 강성천은 식사가 끝난 후 이어진 술자리에서 세계 각국이 벌이고 있는 자원 전쟁에 대해 들려주었다.
“지금까지는 화석 연료인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졌다면, 앞으로는 신재생 에너지 확보 전쟁이 벌어질 겁니다. 배터리 관련 광물 자원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게 그 방증입니다.”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우리에겐 희토류가 있다’고 평소 입버릇처럼 거론했다는 덩샤오핑의 말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첨단 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리는 데서 알 수 있듯, 희토류는 첨단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소재입니다. 당연히 전기차 배터리에도 들어갑니다.”
“중국이 전 세계 매장량의 48%를 가지고 있고, 생산량 기준으로는 97%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지난 2010년 9월 동중국해 섬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영유권 분쟁이 벌어졌을 때, 일본이 중국 선원을 구금시키자 중국은 희토류 수출 금지라는 조치를 들고 나왔습니다. 이에 놀란 일본이 곧바로 중국 선원을 석방시키며 항복을 선언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진혁도 알고 있는 사실이라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때 중국은 자원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원 확보에 열을 올리며 ‘자원의 무기화’에 주력하고 있었다.
강성천이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그 일만 없었다면 우리나라도 자원 부국으로 입지를 다질 수 있었을 겁니다.”
“우리나라에는 변변한 천연 자원이 없지 않습니까?”
“남한은 그렇지만 북한은 아닙니다.”
“……!”
갑자기 튀어나온 ‘북한’이란 단어에 진혁의 눈이 커지는 것을 보고 강성천이 말을 이었다.
“북한은 국토의 80%에 광물 자원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금, 철광석, 아연, 구리, 흑연, 석탄이 다량으로 매장돼 있는데, 금은 세계 6위, 마그네사이트는 세계 3위에 해당됩니다. 방금 전 대화를 나눈 희토류도 2천만 톤이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에 보유한 천연 자원의 가치가 작게는 3천조 원에서 많게는 수경에 이를 거라는 보고도 있습니다.”
“대단하군요.”
“2010년에 비공식적으로 북한의 자원에 대해 공동 개발을 추진했었습니다.”
“그렇습니까?”
“2011년에 당시 지도자가 급작스럽게 사망하는 바람에 중단됐는데,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한 이후로 계속된 도발로 남북 관계가 오히려 더 경색되는 바람에 잊혀져 버린 게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강성천은 진심인 듯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그런 마음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는 진혁과 김선혁은 물론 한민족 모두의 마음이 마찬가지였다.
다음 날 진혁은 알라딘 자동차 사장에게 전화를 해서 강성천에게 들은 폐배터리 재활용에 대해 알렸다.
그리고 한국제철과 협력해 관련 사업에 대해 검토 후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 이후 청와대로 가서 권성일 대통령에게 같은 이야기를 했다.
관련 법규를 서둘러 만들어 달라는 건의를 하는 것으로, 힘들었던 자원 확보 문제를 마무리 지었다.
* * *
얼마간 한국에서 일을 보며 가족과 시간을 보낸 진혁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오가며 국민차 생산에 막차를 가하다가 두바이로 건너갔다.
하이다르, 갈리, 하마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은 진혁이 물었다.
“아프리카 시장에 대한 조사가 끝났다고요?”
“아프리카 대륙은 빠른 인구 증가, 급격한 도시화 진전, 고도성장 등으로 구매력을 갖춘 중산층이 급부상했습니다. 그로 인해 소비 시장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습니다. 12억 인구에 평균 연령은 19.5세로 젊어 앞으로 더욱 매력적인 시장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지난해 아프리카에는 2,100만 온라인 쇼퍼가 있었던 것으로 추산됩니다. 전체적으로는 미비하지만 나이지리아, 남아공, 케냐 등 세 개 국가의 쇼핑 인구가 전체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성장세가 가파릅니다.”
차례대로 보고를 했다.
진혁의 제안을 받아들여 신시장 개척에 나선 하이다르가 마침내 그 결과물을 내놓는 순간이었다.
아프리카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회자되어 왔었다.
하지만 오랜 정전과 내전으로 경제 성장이 더딘 데다 비민주화까지 겹치는 바람에, 진출했던 기업들이 철수할 정도로 잊혀진 시장이 되고 있었다.
진혁이 다시 물었다.
“진출 계획은 세우셨습니까?”
“아프리카에서 이커머스 활성화 준비도가 높은 것으로 꼽힌 10대 시장은 모리셔스, 나이지리아, 남아공, 튀니지, 모로코, 가나, 케냐, 우간다, 보츠와나, 카메룬입니다. 그중 무슬림 비중이 높은 북부 아프리카 국가부터 순차적으로…….”
“아니. 동시에 진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 그럼 자금이 너무 많이 투입됩니다.”
갈리가 바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AM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한꺼번에 많은 투자금이 들어가는 것을 우려해서였다.
진혁도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브렉시트로 얻은 막대한 수익금이 있으니 자금 걱정은 없었다.
진혁이 모두를 둘러보고 말했다.
“우리가 처음 알라딘 사업을 시작할 때는 자본도 없고 경험도 부족해서 차근차근 시장을 개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알라딘은 세계적인 기업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이제는 공격적으로 시장 개척을 해도 됩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아프리카 시장은 AM과 별개로 AF 그룹을 따로 만들어 시작할까 합니다. 회장님이 맡아 주십시오.”
진혁의 갑작스런 제안에 하이다르의 눈이 커졌다.
평생을 바쳐 키운 쑤피넷을 아마존에게 빼앗기고 실의에 빠져, 다시 사업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하지만 아프리카 시장을 돌아보면서 가능성을 발견하자 애써 잊었던 열망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진혁이 정확히 그 부분을 파고들고 있었다.
“제가 무리한 부탁을 드린 겁니까?”
“아닙니다. 고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하이다르가 벌게진 눈으로 고개를 숙이자 갈리와 하마드가 축하를 해 줬다.
잠시 흥분된 마음을 누르고 하이다르가 진혁을 보며 말했다.
“다시 열정을 바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회장님의 평소 스타일이라면 전격적인 시장 진출을 지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제 나름대로 세운 계획이 있습니다.”
“그래요? 어디 말씀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