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남중국해 분쟁
진혁이 오랜만에 방글라데시를 방문했다.
그사이 남부 매립지 공사가 끝나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남부 경제 특구는 이미 완성되어 자족 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그중에 샤물의 하이퍼마켓도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손민한을 찾아온 진혁에게 샤물이 다카, 치타공 등 6대 주요 도시에도 조만간 매장이 설치될 거라고 했다.
“매장을 늘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같은 매장이라도 매출은 천차만별이다. 고객이 뭘 원하는지 항상 생각하고 고민해서 객단가를 높여야 한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깔끔한 새 양복을 차려입은 샤물은 진혁이 말을 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해 들었다.
한참 동안 설교를 마친 진혁이 어깨를 두드려주고 돌아서려던 순간 손민한이 핸드폰을 받았다.
“뭐? 그게 사실이야? 알았어. 당장 들어갈게.”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태국에서 큰일이 벌어졌답니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이영석 부장이 빠르게 보고했다.
“태국 방콕 공항에서 북한 지도자의 형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었답니다.”
“뭐요!”
“다행히 CIA가 사전에 정보를 입수해 막긴 했지만, 그 과정에 요원 한 명이 VX 신경 독가스에 노출돼 병원으로 이송 중에 사망했답니다.”
“범인들은?”
“현장에서 동남아시아계 남성 두 명이 붙잡혀서 조사를 받고 있는데, 북한인으로 보이는 자들이 현장을 지켜보다 황급히 떠나는 모습이 CCTV에 찍혔다고 합니다.”
“허허. 말세네, 말세. 아무리 정권이 좋다지만 혈육까지……. 세계가 한민족을 어찌 생각할지.”
혀를 차는 손민한의 말 사이로 김상균이 물었다.
“그분은 어떻게 됐답니까?”
“CIA에서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다는 미 정부 대변인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다른 이들이 열띤 대화를 나누는 것과는 달리 진혁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과거에 일어났던 천인공노할 암살이 무산된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그런데 또 다시 자신의 기억과 다르게 사건이 결론지어졌다.
“당장 태국으로 가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어느 때보다 무거운 진혁의 목소리에 김상균이 빠르게 답했다.
진혁만 태국으로 향한 게 아니었다.
세계 각국의 언론사는 물론 정보기관들이 속속 태국으로 몰려들어 방콕 공항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복잡했다.
사건 현장은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고, 경찰들이 삼엄하게 경계해 접근이 불가능했다.
출국장에 나선 김상균이 미리 도착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알라딘 시큐리티 직원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진혁에게 말했다.
“현장에서 급히 빠져나갔던 이들이 인근에서 북한 대사를 만나고 바로 북한으로 귀국하는 바람에 더 이상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답니다. 북한 대사는 면책 특권을 내세워 경찰 조사에 불응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루 머물며 상황을 지켜보던 진혁은 사건의 실체가 밝혀질 거라는 미련을 버렸다.
비록 암살에 실패했지만 북한의 꼬리 자르기는 확실했다.
하수인들만 남긴 채 관련자들을 모두 본국으로 돌려보낸 터라, 정황만 있지 증거가 없었다.
북한 정부는 오히려 음해라면서 미국에 납치해 간 형을 내놓으라 억지를 부려 다시 한번 세계인의 공분을 샀다.
그대로 한국으로 돌아가려던 진혁은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베트남으로 향했다.
하노이 공항에 도착하자 총리실에서 보낸 관용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집무실에서 머리가 반쯤 벗겨진 60대 초반의 쯔엉 총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알라딘의 서진혁입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서가 차를 내오는 동안 진혁이 빠르게 머리를 굴려 봤지만 도대체 쯔엉 총리가 자신을 급하게 부른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한국과의 관계는 1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만큼 역사가 깊습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인해 적대 관계였지만 이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고, 한국의 전대 대통령께서 직접 사과까지 한 이후로 양국의 우호 관계는 매우 돈독하게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쯔엉은 한국과 베트남의 친밀한 관계를 거론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재작년 베트남은 한국의 주요 수출국 4위로 올라선 이후로 그 성장세가 가팔라지고 있었다.
베트남에게도 한국은 주요 수출국 4위이고 수입국 2위이기도 했다. 특히 수입은 3위인 싱가포르와 4위인 일본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을 정도였다.
일부에서는 베트남이 한국의 3대 교역국이 될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쯔엉 총리가 말을 이었다.
“한 외국 리서치 업체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82%가 한국에 대해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그 영향으로 최근 한국 기업들이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이곳을 많이 찾고들 있습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서 회장님이 하노이 타워를 매입하고 큰 행사까지 열어 기대가 컸는데, 이후 투자가 주춤해서 어떤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뵙자고 한 겁니다. 투자에 있어 꺼려지는 점이 있으시다면 무엇이든 돕겠습니다.”
쯔엉 총리의 마지막 말에 진혁은 그제야 긴장했던 마음을 풀었다.
결국은 베트남에 투자를 확대해 달라며 부른 것이다.
“저 역시 베트남이 성장 가능성이 굉장히 큰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돌아가는 대로 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꼭 부탁드립니다만…… 실은 오늘 모신 것은 그 일 때문만이 아닙니다.”
“……?”
“남중국해의 문제에 대해 상의드리려고 연락을 드린 겁니다.”
쯔엉 총리의 느닷없는 말에 진혁의 눈이 커졌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은 남중국해 남부 해상에 있는 스프래틀리 군도에 대해 베트남 등 아세안 5개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국제 분쟁이었다.
“남중국해는 군사적 요충지이자 태평양과 인도양을 잇는 중요한 해상 물류 경로인 데다, 풍부한 어족 자원과 막대한 천연 자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중국 측 자료에 따르면 1,250억 배럴의 석유, 500조 큐빅피트의 가스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는 중국 대륙의 전체 석유 매장량과 맞먹는 규모입니다. 또 전 세계 해양 물류의 절반 가까이와 원유 수송량의 60% 이상이 남중국해를 지나고 있습니다.”
쯔엉 총리의 이어진 말에 진혁의 표정이 곤혹스럽게 변했다.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건 국가 간의 영토 분쟁이었다. 사업가인 자신을 불러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중국은 그간 남중국해에 산호초를 연결 인공 섬을 조성했는데, 그곳에 미사일과 레이더 기지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이는 명백한 군사 도발입니다. 더불어 우리 정부가 추진하던 ‘블록 136-03’의 유전을 개발하기 위한 탐사 작업을 군함을 파견해 막는 바람에 2억 달러가 넘는 손실을 입혔습니다. 이는 국제 협약에 위배되는 묵과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
“인근 필리핀 정부도 우리와 같은 입장으로 지난 2014년 남중국해 문제를 국제 상설 중재 재판소에 제소해 승소하고 원유와 가스 개발을 재개한다고 발표까지 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오히려 중국의 편을 들고 있습니다.”
“그건…….”
진혁은 더 듣고 있다가는 배가 산으로 갈 것 같아 말을 자르려 했지만, 흥분한 쯔엉 총리의 말이 더 빨랐다.
“우리 국민들의 반중 감정이 매우 높습니다. 1979년 중월 전쟁을 치르는 등 수십 년간 분쟁과 화해를 거듭해왔습니다. 지난해 해상 충돌로 촉발된 반중 시위로 다수의 중국인이 피해를 입을 정도로 관계가 악화된 상황입니다. 동남아시아에서 화교 자본이 유일하게 장악하지 못한 나라가 이 나라입니다.”
“사정은 알겠습니다만…… 이 문제는 사업가인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회장님이 최근 해운사를 인수하신 것으로 압니다. 한국과 일본의 원유 수입량의 90%가 이 해역을 통과해야 합니다. 만약 중국이 이곳을 자기 영해로 선포하는 경우 세계 각국의 무역선은 중국의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으며, 한국을 오가는 각종 유조선 및 무역선은 현실적으로 15일이 더 소요되게 됩니다.”
“……!”
“남중국해는 중국의 동서경제벨트의 축소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 위험성을 세계 각국에 알리고 그들을 끌어모아 중국의 야욕을 막아낸 분이 서 회장님이십니다. 이번 일에도 나서 주십시오.”
그제야 진혁은 쯔엉 총리가 자신을 부른 목적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함반토타 항 인수와 탕분헝 총리를 도와 동서경제벨트 사업을 저지시킨 것처럼, 남중국해를 장악하려는 중국의 야욕을 막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이미 한번 했던 일이니 못 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진혁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때는 심해항이나 말레이시아 시장을 지켜야만 한다는 등의 사업적인 필요성이 있어서 나섰던 것이었다.
그 와중에 중국과 화교의 공격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하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에 반해 이번 일은 위험성은 더 커진 반면 사업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거의 없어 보였다.
남중국해 영토 분쟁을 해결했다고 그 땅을 나눠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총리님의 생각에 저도 동감하지만, 남중국해 영토 분쟁은 관련국은 물론 세계가 나서서도 해결하지 못한 일입니다. 제 능력을 높이 사 주신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지만 일개 사업가인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일인 듯싶습니다.”
진혁이 완곡한 거절의 뜻을 내비쳤지만, 쯔엉은 준비한 복안이 있기에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국민차 생산 계획은 말레이시아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우리 국민들의 국민차에 대한 열망이 더 높으면 높지 결코 낮지 않습니다. 그간 세 번의 실패가 있었지만 결코 굴하지 않고 이번에 또 도전을 하려고 합니다.”
베트남표 자동차에 대한 열망은 1985년에 이미 시작되었다.
그간 세 번이나 도전을 했지만 기술력의 한계와 낮은 경제 성장으로 번번이 실패로 끝났었다.
“최근 동흥 그룹이 자동차 산업 진출을 선언했습니다만, 우려가 없는 건 아닙니다. 그간의 실패에서 보듯이 자동차 생산이란 게 의욕만 갖고 되는 일이 아니잖습니까?”
“맞습니다. 기술, 자본, 경험이 모두 갖춰도 성공을 보장하지 못할 만큼 치열한 산업입니다.”
“동흥 그룹이 얼마 전 청산된 메콩 자동차 인수 의향서를 제출했습니다. 부족한 기술과 경험을 그걸로 메우려는 것 같은데, 제 생각은 부정적입니다. 이미 실패하고 철 지난 기술과 경험으로 세계적 기업들과 경쟁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
“서 회장님이 남중국해에서 안전한 유전 개발이 가능하게 해 주신다면 메콩 자동차를 넘겨드리겠습니다. 동흥 그룹과 합심해 이번에는 반드시 국민차를 성공시켜 주십시오.”
“받아들이겠습니다. 총리님의 큰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진혁의 고개가 바로 꺾였다.
영토 분쟁 해결이 아닌 안전한 유전탐사 정도에 이런 혜택이라면 나설 이유는 충분하고도 넘쳤다.
쯔엉 총리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서 회장님을 선택한 것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보여 준 은인자중하는 진중한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아직 개도국이긴 하지만 유일하게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겼다는 국민들의 자부심은 무척 강합니다. 현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분이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원하시는 결과를 이뤄내겠습니다.”
“국민차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투자를 기대하겠습니다. 이 나라를 위하는 일이기도 하니, 우리 정부가 도울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돕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계획을 세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진혁은 다시 한번 정중히 머리를 숙이고 총리실을 나왔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회의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보고해 주세요.”
자리에 앉은 진혁의 말에 김상균이 먼저 말했다.
“스프래틀리 군도. 중국명 난사(南沙)군도, 베트남명 쯔엉사 군도는 중국,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대만, 브루나이가 각각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브루나이를 제외하고 5개국이 실질적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입장은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