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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259화 (259/307)

259화. 뉴트의 제안

“어떻게 알았나?”

“천지가 좋은 곳인데 이런 허름한 곳으로 데려왔으니,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지요.”

“상황이 상당히 복잡해.”

잭슨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진혁은 웨이터를 불러 주문을 하고 조용히 기다렸다.

잭슨은 덩치와 달리 예민한 성격으로 일처리가 깔끔했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허둥대고 있었다.

잭슨이 좀처럼 입을 열지 않자 진혁이 물었다.

“재무부에서 반대하는 겁니까?”

“그건 아니야.”

“그럼 국방부?”

“그쪽은 오히려 지금 당장이라도 항공모함을 파견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자네의 의견에 적극적이야.”

“그럼 왜?”

“뉴트가 막았대.”

“뉴트? 그자가 누군데요?”

진혁의 물음에 잭슨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트는 공식적으로 나선 적이 없을 정도로 은밀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백악관 밖에서는 그의 존재를 아는 이가 드물었다.

다시 잭슨이 입을 닫자 진혁이 짜증스런 목소리를 냈다.

“이야기하기 힘들면 하지 마십시오. 오랜만에 편하게 한잔하려고 했는데 이게 뭡니까?”

“그게 아니라, 나도 좀 판단이 애매한 상황이야.”

“뭐가요?”

“……제임스 국장이 백악관에 다녀와서 나를 부르더니 회의 내용을 들려주더군. 평소에는 그곳에서 벌어진 일은 철저하게 함구했는데 말이야.”

“음…….”

“내가 저녁에 자네를 만난다는 것을 알면서 그런 것이, 꼭 이야기를 전하라는 지시 같단 말이야. 안 그래?”

“어떤 내용인지 모른 상태에서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네요. 뉴트가 미국이 동참하는 것을 막았답니까?”

“그건 아니야.”

“아씨, 진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렇게 감출 거면 뭐 하러 이 먼 곳까지 데려온 겁니까?”

“알았어. 이야기할게.”

진혁이 다시 짜증을 내자 잭슨이 제임스에게 들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진혁의 얼굴이 굳어졌다.

“결국 수락은 하되, 대신 미국 내 오프라인 유통 기업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풀 해법을 가져오라는 조건을 걸겠다는 거군요.”

“결론만 이야기하면 그렇지.”

“그게 무슨 큰 비밀이나 된다고 감춥니까? 그 정도의 조언은 언제든지 구할 수 있는 거잖습니까.”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대통령의 일 처리 방식이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양반이다 보니…….”

“뉴트가 누굽니까?”

“……대통령의 장남으로 우리끼리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불러.”

잠시 멈칫했던 잭슨이 이제는 솔직히 털어놨다.

“실세인가 보군요?”

“부통령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대통령은 거의 그의 의견대로 결정하고 있을 정도야.”

“능력이 대단한가 보군요?”

“비주류 카이저를 백악관에 앉힌 일등 공신이라는 점에서 능력은 충분히 검증되었지. 고전적인 선거 방식 대신 소셜 미디어를 이용한 선거 전략이나, 선택과 집중을 통한 지지층의 확보 방식은 향후 선거 전략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야.”

“그렇군요.”

“선거를 지켜보면서 미스터 서 생각이 날 정도였어. 분야는 다르지만 두 사람의 방식이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많았어.”

“그럼 능력 있는 것 맞네.”

자화자찬하는 진혁의 모습에 잭슨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덕분에 잔뜩 굳었던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이후 진혁은 술을 마시며 민감하지 않은 범위에서 뉴트에 대해 물었다.

상대를 아는 게 우선이었다.

잭슨이 말했다.

“대통령이 능력 있는 뉴트를 중용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너무 일방적인 것에 대해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아. 당장 눈앞의 현상만 보면 뉴트의 의견이 맞지만, 지금의 미국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많은 사건들과 희생이 있었어. 그 부분이 무시되는 것에 국장을 포함한 일부 참모들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어.”

“국장님이 잘 보신 겁니다. 지금 미국은 변칙적인 플레이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 제일주의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다소 이익을 가져다줄 겁니다. 미국의 상품 수입을 강요하고, 외국의 수입을 억제하는 강제적인 조치의 효과가 나타날 거니까요. 국제적인 질서를 파괴하는 이런 미국의 정책을 힘에서 뒤지는 세계 여러 나라들로서는 따를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그렇겠지.”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동안 미국이 힘들게 쌓아 온 국제 사회의 신뢰가 무너지면서 세계적인 지도력을 상실할 겁니다. 신뢰를 주지 못하면서 힘만 강력한 국가가 되면, 세계가 경계할 것입니다. 지금의 중국처럼 말입니다.”

“중국?”

“그렇습니다. 제가 지금 여기와 있는 것도, 그간 여러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중국이 힘을 앞세워 주변국에 빚을 지워 장악하려는 야욕에 관련국들이 위기감을 느껴서 가능했던 겁니다. 카이저 대통령이 지금 같은 방식을 고집한다면 조만간 그렇게 될 공산이 큽니다.”

“우리는 그들과 달라.”

잭슨 역시 미국인이었다. 중국과 비교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얼마 전에 누군가에게 말했던 찰스 다윈의 이론이 생각납니다. 살아남는 것은 힘이 세거나 영리한 동물이 아니라 변화에 잘 적응하는 동물이다.”

“적응하는 동물?”

“영국이, 독일이, 일본이, 소련이 힘이 없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게 아닙니다. 강력한 힘으로 식민지를 만들었지만 각 나라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대응했죠. 애초의 단순한 계획과는 달리 상황이 복잡해지면서 장기전으로 돌입하자 철수할 수밖에 없게 된 겁니다. 그런 잘못된 선택의 후유증으로 미국에 밀리게 된 거지요.”

“음…….”

“세계적으로 중요한 순간이 도래했습니다. 이는 미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대로 된 선택을 하지 않으면 과거 제국들의 전철을 밟게 될 겁니다.”

진혁은 그 정도에서 말을 끊었다.

시행착오를 겪지만 잭슨의 말대로 미국은 저력이 있는 나라라 변화에 대한 적응력도 뛰어났다.

일어나지 않을 최악의 상황을 가지고 따질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미국에서 보호하고 있다는 북한 지도자의 형은 어떻게 됐습니까?”

“잘 있다는 것 외에는 나도 아는 게 별로 없어. 그건 백악관과 국장에게만 보고되는 특급 비밀이야.”

“그렇군요…….”

“북한에 조만간 큰 변화가 일어날 거라는 것 정도밖에 몰라.”

“큰 변화요?”

“나도 그 이상은 정보가 없어.”

잭슨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가 거짓말할 이유가 없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얼마간 더 이야기를 나누고 호텔로 돌아왔다.

“뉴트는 속을 알 수 없는 자이네. 잘 대처하게.”

“오늘 좋은 말씀 감사했습니다. 국장님께도 안부 전해 주십시오.”

태연한 얼굴로 정중히 인사한 진혁은 잭슨을 태운 차가 떠나자마자 굳은 얼굴로 김상균에게 지시했다.

“지금 당장 한국에 연락해서 뉴트에 대해 낱낱이 조사하고 보고해 주십시오. 긴급입니다.”

“알겠습니다.”

“이 시간 이후로 모든 연락은 보안으로 처리하십시오.”

“……예.”

김상균 역시 굳은 얼굴로 답했다.

잭슨이 호텔이 아닌 외곽으로 데려간 것은 도청을 의심해서였다. CIA마저 믿지 못할 정도라면 무조건 조심하는 게 상책이었다.

* * *

카이저의 아들이 아니랄까 봐 뉴트의 등장도 예상 밖이었다.

진혁이 스카이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양해도 없이 앞에 와 앉았다.

“뉴트라고 합니다.”

“……!”

“일부러 놀란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CIA를 통해 내 정보는 물론 돌아가는 사정을 들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허를 찔린 진혁이 입을 열지 못하자 뉴트가 말을 이었다.

“서로 바쁜데, 사설은 빼고 본론만 이야기합시다. 대책은 세우셨습니까?”

“……예.”

“들어 봅시다.”

거침없는 뉴트의 행동에 진혁의 어금니가 절로 맞물렸다.

당장 반발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칼자루는 놈이 쥐고 있었다.

“O2O가 답입니다.”

“O2O요?”

“지금까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유통이 별개로 성장했다면, 앞으로는 그 구별이 없어질 겁니다. ‘온라인 투 오프라인’으로의 변신만이 위기에 처한 미국 오프라인 유통 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온라인 사업에 진출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아마존과 알리바마는 이미 무인 매장이라는 이름하에 오프라인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알라딘의 리틀지니 역시 매장을 최종적으로는 무인화를 목표로 운영하고 있고요. 주저하다가는 줄어든 오프라인 시장마저 잠식당하게 될 겁니다. 제가 오늘 준비한 답은 이게 전부입니다.”

마지막 말은 진혁이 일부러 끼워 넣었다. 구체적인 계획을 듣고 싶으면 가져온 카드를 보여 달라는 요구였다.

이제 공은 뉴트에게 넘어갔다.

한참 고심하던 뉴트가 입을 열었다.

“나 역시 서 회장과 마찬가지로 온라인의 위력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를 살아온 노친네들은 고집불통이라 눈앞에 결과를 보여 줘야지만 믿습니다. 그것도 빠른 시간 내에. 아라칸과 협력할 방안을 마련해 주십시오.”

“아라칸과요?”

“아라칸은 오프라인 유통의 절대 강자입니다. 서 회장님은 온라인 유통의 대가시고요. O2O로 전환을 단시간에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둘이 손을 잡는 겁니다. 아닌가요?”

“……맞습니다.”

“아라칸은 미국 유통의 자존심입니다. 파산은 절대 안 됩니다. 서 회장의 계획에 따르도록 단단히 일러두겠습니다.”

“그렇다면 남중국해 문제는……?”

“방안이 마련되면 미국이 직접 나서서 돕겠습니다. 그러니 걱정 말고 아라칸을 살릴 방법만 내놓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봅시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뉴트는 자기 말만 하고 떠났다.

식은 커피를 마시고 진혁도 일어났다.

일이 전체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날 저녁 진혁은 스미스를 만났다.

“정부와 추진하는 일이 길어지나 봅니다.”

“생각지 못한 변수가 발생해서 며칠 더 머물러야 할 것 같습니다. 그간 여러 가지로 도와주셨는데 제대로 인사를 못 드린 것 같아, 같이 술이나 한잔하자고 모신 겁니다.”

“회장님과의 술자리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술을 마시며 과거에 함께 겪었던 일과 앞으로의 세계 경제에 대해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스미스가 말했다.

“세상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너무 빨리 변하고 있습니다.”

“기술 발달이 그만큼 빨라졌다는 방증이지요.”

“맞습니다. 실리콘 벨리만 하더라도 한 달에 한두 명의 억만 장자가 등장할 정도지요. 그에 반해 기존 기업들의 실적은 날로 악화되고 있으니…….”

“아라칸은 어떻습니까?”

“그쪽도 힘들긴 마찬가지지요. 아마존에 시장을 계속 잠식당해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최근 CEO가 피터 힉스로 바뀌었는데, 존 지크 회장이 보유 주식을 처분하겠다고 해서 난리가 났습니다.”

주로 기술주 투자를 하는 존 지크 회장은 안정성을 이유로 몇몇 전통 제조 기업에 분산 투자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아라칸이었다.

지분의 2.1%를 보유했는데, 그 평가 가치만도 50억 달러에 이르렀다.

스미스가 말을 이었다.

“주식 처분을 말리러 찾아온 피터 회장에게, 아마존에 시장을 빼앗겨 유통 기업으로 독점적 지위를 잃었다며 아라칸을 매각해 은행 주식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카이저 대통령의 ‘미국제일주의’는 필연적으로 강한 달러를 지향하게 될 거니 나쁜 선택은 아니지요.”

“우리 역시 같은 판단 하에 은행주를 매입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군요.”

혼자 말하듯 중얼거리는 진혁의 말에 스미스의 눈이 반짝였다.

이거…… 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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