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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260화 (260/307)

260화. 아라칸 살리기

스미스가 입술에 침을 바르고 물었다.

“회장님은 다른 생각이십니까?”

“투자 격언에 있지 않습니까? 모두가 두려워할 때 용기를 내는 자만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아라칸에 베팅하실 생각이십니까?”

“비록 아마존에 시장을 잠식당했다고 하지만, 아라칸은 전 세계에 걸쳐 1만 2천 개 이상의 매장 수를 가진 세계 최대 규모의 유통 기업입니다. 지난해 아마존의 매출액이 약 1,400억 달러 수준인 반면 아라칸은 4,500억 달러 이상으로 세 배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그건 과거의 영광에 기인한 것뿐입니다. 시가 총액만 보더라도 아마존이 4,500억 달러가 넘고, 아라칸은 절반 수준인 2,200억 달러에 그치고 있습니다.”

스미스도 지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현재가 그렇다는 것이지,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아마존이 오프라인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되고 아라칸이 온라인 시장에 진출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설마?”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아마존이 왜 굳이 오프라인 시장에 뛰어드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라칸은 이미 그 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건 대단히 큰 장점입니다.”

“좀 더…….”

“편하게 한잔하자고 모셔서 남의 기업 이야기만 했습니다.”

진혁은 아라칸 이야기를 그 정도에서 멈췄다. 아직 정해진 것이 없었다.

그 뒤 진혁이 호텔로 돌아오자 급히 건너온 한상국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국에서 가져온 정보를 바탕으로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 날, 늦게 일어난 진혁이 샤워를 하고 나와 룸서비스를 시키는 모습에 애가 탄 김상균이 물었다.

“아라칸은 언제 방문하실 생각이십니까?”

“제가 왜요?”

“예?”

“급한 사람이 움직이는 겁니다. 식사를 하고 실리콘밸리에 갈 예정이니 그렇게 준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김상균은 머뭇거리다 마지못해 답했다.

백악관에서 직접 요청한 일인데도 미루며 한가하게 여행을 떠나겠다는 진혁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정은 진혁의 몫이었다.

* * *

실리콘밸리에 들려 BLC의 빈센트 사장과 직원들을 만나 하루를 보낸 진혁이 워싱턴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기다리는 이가 있었다.

“피터 힉스입니다.”

“알라딘의 서진혁입니다. 올라가서 말씀 나누시지요.”

얼굴 한가득 불쾌함이 묻어 있는 피터 회장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룸에서 마주앉았다.

“뉴트 보좌관으로부터 방문하실 거라는 말씀을 들어 기다렸는데 안 오셔서 찾아왔습니다.”

“그런 말을 하기는 했는데 대답도 듣지 않고 일어나서, 사전에 계획된 일정이 있다는 이야기를 못 했습니다. 제가 꼭 그의 말을 따라야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

불쾌한 기분에 말을 꺼냈던 피터는 바로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과 달리 서진혁은 미국인도 아니고 이곳에 어떤 사업체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백악관의 명에 따를 수밖에 없는 자신과는 입장이 달랐다.

“……뉴트 보좌관께서 알라딘과 사업 협력에 대해 논의해 보라고 하시더군요.”

“이야기가 좀 다르군요. 전 아라칸의 어려움에 대해 조언을 요청해 O2O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했을 뿐입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현재 오프라인 시장의 위기를 타파할 수 있는 길은 온라인 시장의 진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관련 기업을 인수하려고 대출 요청을 했더니, 갑자기 서 회장을 만나 보라고 해서 곤란한 상황입니다.”

“그 기업이 제로넷입니까?”

“……!”

“프랑스 유통 자회사와 브라질 법인 지분을 매각해서 자금을 마련하실 계획이신 것으로 압니다만.”

피터 호크가 자세를 바로 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서진혁과 알라딘에 대해서는 보고를 받았었다.

뛰어난 자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래 봤자 제3세계의 인물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는데, 아니었다.

그룹의 핵심 임원만 아는 극비 정보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조사를 많이 하셨군요.”

“뉴트 보좌관의 일방적인 도움 요청이었지만, 이왕 도와주기로 한 것 제대로 하는 게 맞을 것 같아 좀 알아봤을 뿐입니다. 불쾌하셨다면 사죄드립니다.”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 쪽에 빈틈이 많은 탓입니다. 말씀하신 내용도 사실이고요.”

피터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원래는 자산 재배치를 통해 자금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급히 쓸 곳이 생겨서 정부에 자금 요청을 했던 겁니다.”

“저도 사업하고 있어 상황을 이해합니다. 관심을 집중하던 투자자가 빠져나가면 일반 투자자들마저 덩달아 흔들릴 테니 그건 무조건 막아야지요.”

피터의 눈이 다시 날카롭게 변했다.

존 지크 회장의 보유 주식 매각 건도 알고 있었다.

피터는 자신의 안일함을 후회했다. 좀 더 알아보고 철저히 준비해서 왔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피터가 진중한 태도로 물었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으시니 솔직히 묻겠습니다. O2O로 가면 아라칸이 회생하겠습니까?”

“가능성은 반반입니다.”

피터의 눈이 찌푸려졌다. 무책임한 답변이었다.

그가 반박하려는 순간, 진혁이 한발 먼저 말했다.

“O2O로 가지 않으면 그 반도 사라질 겁니다.”

“……!”

“오프라인과 달리 온라인 사업의 성공과 실패는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그 작은 차이에 수많은 기업들이 흥하고 망합니다.”

“우리는 이미 4년 전부터 온라인 시장에 대한 진출을 준비했습니다. 자체 몰을 운영하고 있어서, 기술력을 갖춘 기업만 인수하면 바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시작은 돈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지요. 그것이 성공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회장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

“회장님이 상대하겠다는 기업은 연간 매출액만도 1,500억 달러에 이르는 온라인 공룡입니다. 겨우 몇십억 달러짜리 회사를 인수해서 그들을 이길 수 있다고 보십니까?”

진혁의 거듭된 지적에 피터는 말문이 막혔다.

침묵이 이어지자 한상국이 나섰다.

“알라딘 기획실장 한상국입니다. 회장님의 지시로 아라칸이 온라인 시장에 진출했을 때 주의해야 할 전략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첫 번째로 멤버십 서비스의 강화와 배송 서비스입니다. 두 번째는 온오프라인 커머스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옴니 채널 서비스의 강화입니다. 마지막으로 지속적인 기술 개발입니다. 세부적인 내용은 이 안에 담겨 있습니다.”

한상국이 내민 영어로 된 계획서를 훑어본 피터의 눈이 반짝였다.

자신이 받은 보고서와 내용이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더 구체적이고 명확했다.

진혁이 말했다.

“제가 아라칸을 돕기로 결정한 것은 오프라인 최강자라는 큰 강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건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것을 잘 이용하시면 이번 위기는 어렵지 않게 넘기실 겁니다.”

“귀한 말씀과 자료 감사합니다. 일단 오늘은 돌아갔다가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피터 회장은 처음과 달리 정중하게 인사까지 하고 나갔다.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하고 돌아온 진혁에게 김상균이 물었다.

“한 실장님과 밤새 만든 귀한 자료인데 그냥 저렇게 줘서 보내도 되는 겁니까?”

“그래서 준 겁니다.”

“예?”

“어쩌면 이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대어를 낚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하하하.”

크게 웃는 진혁의 모습에 한상국이 따라 웃었다. 하지만 김상균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어리둥절해했다.

사업가가 아닌 그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수 싸움이었다.

* * *

진혁의 예상대로 피터 회장은 다음 날 일찍 찾아왔다.

얼마나 급한지 앉자마자 바로 물었다.

“회장님의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아라칸과 알라딘의 전략적 제휴를 제안합니다.”

“역시 그것이었군요.”

전문가들이 밤새 한상국이 건네준 계획서를 검토해서 내린 결론 역시 같았다.

그만큼 계획서는 정확히 아라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 정도의 역량을 갖춘 기업을 찾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마존이나 알리바마가 있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둘을 제외하고 가장 뛰어난 기술과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게 알라딘이었다.

생각이 같으니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피터가 물었다.

“어떤 식의 제휴를 원하십니까?”

“오프라인은 기존대로 아라칸이 맡고 온라인은 알라딘이 맡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아라칸 쇼핑몰을 알쇼핑으로 통합하고 별도 법인으로 분리해서 공동 경영했으면 합니다.”

“지분율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거야 당연히 반반으로 해야지요.”

“그건 너무 과한 요구십니다.”

피터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낯빛을 굳히며 반발했다.

“아라칸은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 200년이 넘게 노력해 왔습니다. 무임승차하다시피 하는 알쇼핑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우리가 필요해서 만난 게 아닙니다. 아라칸이 도움을 요청해서 제휴를 맺는 겁니다. 알쇼핑의 기술은 아마존이나 알리바마에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인정합니다만, 그렇다고 그런 조건은 무리입니다. 설혹 제가 승낙한다고 해도 이사회에서 승인해 주지 않을 겁니다.”

피터가 현실적인 어려움을 털어놨다. 그는 이사회에 고용된 처지라 운신 폭이 좁았다.

진혁이 말했다.

“존 지크 회장님이 처분하겠다는 주식 50억 달러어치를 제가 매입하겠습니다.”

“……!”

“또한 신설 법인 자본금의 반인 50억 달러를 추가로 내놓겠습니다.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음……. 이전 같으면 자신할 수 없지만, 백악관에서 직접 나선 일이니 이사회에서 무조건 반대만 하지는 못할 겁니다. 회장님이 제시한 안에 우리 측 지분 50억 달러를 마련하기 위한 자산 매각 안을 이사회에 상정하겠습니다.”

“사업을 키우겠다면서 자산 매각을 하면 안 되지요.”

“하지만 50억 달러는……?”

“정부에 자금 요청을 하셨다면서요?”

“……!”

“이 일을 주선한 게 백악관입니다. 당연히 그쪽에서도 함께 책임을 져야지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그건 백악관에서 해결해 달라고 떼를 써 보겠습니다.”

피터가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만큼 오늘의 협상 결과가 만족스럽다는 방증이었다.

피터는 올 때와 달리 활짝 핀 얼굴로 돌아갔다.

* * *

다음 날은 뉴트가 찾아왔는데 표정이 좋지 못했다.

“피터 회장님과 아주 재미난 거래를 하셨더군요.”

“아라칸의 사정을 감안해서 최대한 양보해 준 겁니다.”

“대신 당신은 거대 미국 시장을 거저 얻었지 않습니까?”

“그에 대한 대가로 기술은 물론 100억 달러라는 거금까지 내놓았습니다. 남중국해 문제만 아니면 이런 손해나는 거래는 하지 않았을 겁니다. 백악관에서 더 나은 대책이 있으시다면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진혁은 최대한 버텼다. 지난번처럼 대책 없이 당할 수만은 없었다.

“아닙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만 몇 가지 수정 사항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이 일을 주도한 곳은 미국입니다. 따라서 지분율은 51% 대 49%로 하고 신설 법인의 이름도 아라칸-알쇼핑으로 합시다.”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법인 설립과 쇼핑몰 통합 작업이라는 게 생각보다 신경 쓸 게 많습니다.”

“남중국해 문제는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니 서 회장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겁니다.”

“어떻게 하실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뉴트의 얼굴이 굳어지는 모습에 진혁이 얼른 말을 이었다.

“오기 전에 도움을 청한 분들이 있습니다. 사정은 말씀드려야지요.”

“IORA가 움직일 겁니다.”

“……!”

진혁의 눈이 절로 커졌다.

IORA는 아시아, 아프리카의 인도양 연안 국가들로 구성된 환인도양 연합이었다.

회원국으로 아세안 국가들은 물론 아프리카 국가 다수가 포함되어 있고, 대화 대상국으로 한국, 중국, 미국, 일본 등 남중국해 영토 분쟁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국가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놀라는 진혁의 표정을 보고 뉴트가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게 미국이 가진 힘입니다. 괜히 돕겠다고 나서서 혼란을 일으키지 말고 서 회장은 아라칸과 제휴에만 신경 쓰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명령하듯 말하고 일어나려는 뉴트의 행동에 진혁이 얼른 따라 일어나며 말했다.

“혹시 시간 되시면 존 지크 회장님께 전화 한 통 넣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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