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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265화 (265/307)

265화. 하이테크 농장

속마음을 숨긴 채 진혁도 일부러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저도 이런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게 많이 아쉬웠습니다.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고 총리님께서도 도와주신다고 해서 투자금으로 10억 달러까지 마련해 두었는데…….”

“10억 달러요?”

“아세안 모터스의 자본금이 20억 달러였습니다. 그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생각보다 큰 금액에 쯔엉 총리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응우옌이 너무 자기 욕심만 부리고 있습니다. 사업가라 이윤 추구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때로는 나라와 국민들을 위한 일도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자동차 사업 말고 다른 투자처가 없는지 조사하다가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

“양국의 무관심 속에 라이따이한들이 힘들게 생활하고 있더군요.”

전혀 예상치 못한 주제에 쯔엉 총리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역시 라이따이한 문제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국가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인 데다 중요 교역 상대국인 한국인의 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라 일부러 모른 척하고 있었다.

한국인인 진혁이 먼저 그 일을 꺼낼지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불행한 과거에 벌어진 안타까운 일입니다.”

“맞습니다만 그 불행이 대를 이어 현재까지 이어진다는 게 문제지요. 아니, 그 상흔은 이 나라가 존재하는 한 평생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건 압니다만, 이 자리에서 굳이 그걸 언급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총리께서도 아시다시피 제가 방글라데시에서 사업을 시작한 계기가 로힝야 난민 때문이었습니다. 절반은 저와 같은 피가 흐르는 내 민족도 마찬가지로 어려움에 처해 있었는데도 모른 채 말입니다. 그런 사실에 크게 자책했습니다.”

“그게 어디 서 회장님 때문이겠습니까. 덮기에 급급했던 양국 지도자들이 책임져야 할 문제지요.”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따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 주는 게 우선 시급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일을 위해 나서 볼까 합니다.”

“자동차 사업에 투자하는 대신 라이따이한을 위한 일을 하시겠다는 겁니까?”

“라이따이한이 경제적으로 성장해 당당히 베트남 국민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면 해결될 문제입니다.”

맞는 말이라 쯔엉 총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건 그렇지요. 그럼 어떤 식으로 그들을 도울 생각이십니까?”

“하이테크 농업 분야에 투자할까 합니다.”

“하이테크 농업에요?”

“라이따이한 대부분이 고급 교육을 받지 못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이테크 농장을 만들어 지원하면 도움이 될 듯싶었거든요. 마침 제가 한국에서 스마트팜 사업을 펼치고 있어 관련 기술과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으니 적당할 것 같아서요.”

“좋은 생각입니다. 제가 총리에 취임하자마자 추진했던 일이라 애착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만, 외국인 투자가 다른 분야에만 집중돼 추진이 미진한 상황입니다. 서 회장님이 투자해 주신다면 대환영입니다.”

그러나 크게 반겼던 기분은 이어진 진혁의 말에 빠르게 식었다.

“그런데 베트남의 토지법이 투자를 막고 있더군요.”

“……!”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라 토지를 국가가 소유했고, 개인이나 기업이 사용하려면 임대를 신청해서 허가를 받아야 사용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개인이나 기업이 경작할 수 있는 면적에 많은 제약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하이테크 농장 운영을 위해서는 최소 200헥타르 이상의 넓은 경작지와 장기간 임대가 필수인데 현 토지법으로는 불가능했다.

“내년 국회에 토지법 수정을 요청하기 위해서 준비 중이긴 한데, 아쉽게도 현재는 불가능합니다.”

“라이따이한이 많이 거주하는 호치민 시가 작년부터 하이테크 농업 단지 확장 프로젝트를 네 개 지역에서 진행 중인데, 실적이 미미해서 중단되다시피 했다더군요. 꾸찌 현 팜반꼬이 읍의 200헥타르를 500헥타르로 확대하고 그걸 제가 맡아서 진행하면 딱 좋겠는데 말입니다.”

쯔엉 총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500헥타르요?”

“방글라데시의 남부 민간 경제 특구만 해도 그 면적이 5,000헥타르입니다. 남부 매립지는 별개고요. 전 단순히 스마트팜으로 생산만 할 생각이 아닙니다. 생산물을 포장, 유통하고 판매하는 6차 산업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스마트팜 설비 생산 공장까지 고려한다면 최소한 그 정도의 땅이 필요합니다.”

진혁의 큰 계획에 쯔엉 총리는 몸을 들썩일 정도로 안타까워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토지법 개정을 서두르는 건데.

그렇다 해서 법을 무시하고 특별 혜택을 줄 수도 없었다. 야당이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낙담해 하던 쯔엉 총리가 진혁의 이어지는 말에 눈이 번쩍 떠졌다.

“규제 때문에 포기하는 것은 라이따이한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이니, 죄를 두 번 짓는 것과 같다는 생각에 고심하다가 겨우 한 가지 방도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방도가 있습니까?”

“사이공 그룹도 민영화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사이공 그룹을요?”

“그렇습니다. 베트남의 식품 유통 시장은 농업만큼이나 낙후되어 있습니다. 소매 유통 분야만 해도 외국 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15% 정도밖에 안 돼 로컬 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그중에서도 동흥 그룹이 독보적이다 보니 자칫 독과점의 우려마저 있어 보입니다. 이를 분산할 필요가 있습니다.”

쯔엉 총리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공산주의 국가인 베트남은 중국의 급격한 발전상을 보고 자신들 역시 ‘개혁 개방’을 표방하며 경제 성장을 해 오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국영 기업을 민간 기업으로 전환했는데, 농업 부문은 제외시켰다.

거기에 도소매업의 경우도 자국의 소상인 보호를 위해 조건부 외국인 투자 허용 분야로 분류해, 허가증 발급을 미루는 것으로 외국인의 참여를 제한하고 있었다.

진혁이 말을 이었다.

“100% 민영화하자는 건 아닙니다. 부분 민영화로 추진했으면 싶습니다.”

“부분 민영화요?”

“그렇습니다. 사이공 그룹이 지분의 51%를 소유하면 국영 기업 때처럼 국가에서 통제가 가능하니 완전한 민영화는 아닙니다. 전 라이따이한을 돕기 위해 나선 것이지, 사이공 그룹의 경영권에는 일절 관심이 없습니다.”

진혁이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이자 쯔엉 총리의 운신 폭이 넓어졌다.

“투자금은 얼마나 생각하고 있습니까?”

“작년 말 기준 사이공 그룹의 가치는 28억 달러 정도 평가된 것으로 압니다. 14억 달러로 지분의 49%를 매입했으면 싶습니다만.”

진혁의 통 큰 제안에 빠르게 머리를 굴린 쯔엉 총리가 말했다.

“부분 민영화라고 해도 계획에 없던 일을 추진하다가는 역풍을 맞아 좌초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좀 더 확실하게 했으면 싶습니다.”

“……?”

“원래 약속했던 국민차 생산도 함께 추진해 주셨으면 싶습니다.”

“그건 응우예 회장이…….”

“합작 형태가 아니라, 동흥 그룹과 별개로 각자 내연 기관차와 전기차 생산을 해 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보다는 둘을 추진하는 게 성공 확률이 높지 않겠습니까?”

쯔엉 총리의 능청스런 질문에 진혁은 속으로 고소를 지었다.

국민차 생산의 안정성을 담보하면서 투자금을 늘리겠다는 꼼수였다.

모른 척 진혁이 물었다.

“전기차 생산은 자신 있습니다만, 판매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부도 인프라 구축과 보조금 정책을 펴 줘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 점은 걱정 마십시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에 대한 검토까지 마친 상태입니다. 두 나라보다 결코 낮지 않은 지원책을 펼칠 겁니다.”

“알겠습니다. 총리님의 의지를 믿고 추진하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나도 사이공 그룹 부분 민영화를 조속히 추진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마주 웃었다. 상호 윈윈인 최상의 결과를 이뤘다.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논의를 하느라 한참이나 지나 총리실을 나온 진혁은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갔다.

쯔엉 총리가 정부 차원의 일을 추진하는 동안 자신은 한국에서 사업 계획을 세워야 했다.

* * *

알라딘 전체가 다시 택배와의 전쟁을 치루고 있었다.

물량은 훨씬 많았지만 작년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그렇게 혼잡스럽지는 않았다.

그룹 임원들로부터 동행 한마당 행사에 대한 보고를 받은 후에, 베트남 사업 진출에 대해 쯔엉 총리와 합의한 내용을 들려줬다.

뿌듯한 표정의 진혁과는 달리 임원들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김선혁이 가장 먼저 불만을 털어놨다.

“그룹의 주력 사업인 유통업에 진출하면서 스마트팜 설비를 수출할 수 있게 됐으니, 사이공 그룹의 부분 민영화를 이끌어낸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단독으로 전기차를 생산하겠다는 것은 무리가 아니냐?”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아세안 모터스는 양국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독점적으로 생산 판매하는 데 반해, 베트남은 최대 민간 기업인 동흥 그룹과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거기에 자본금도 절반밖에 안 되고요.”

한상국마저 우려를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진혁은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짓고 말했다.

“두 분이 걱정하시는 바를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게 복안이 있습니다.”

“……?”

“바로 녹다운(Knock Down) 방식으로 생산할 겁니다.”

“……!”

진혁의 말에 다들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분해하다’라는 뜻의 녹다운 방식은 자동차를 부품 단위로 수입해 현지에서 조립해 생산하는 현지 조립 방식이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부품을 수입해 베트남에서는 조립만 하겠다는 말이냐?”

“응우옌 회장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제가 베트남의 국민차 생산 사업을 미련 없이 포기한 것은 중복 투자의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인접 국가에 큰돈을 들여 생산 설비를 갖췄는데, 또다시 대규모 생산 설비를 갖춰서는 오히려 제살 깎아 먹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쯔엉 총리야 자국 산업의 육성을 위한다지만 우린 아니지 않습니까.”

“잘 생각했다.”

“베트남은 생산 시설만 갖추면 되니 큰돈이 들어가지는 않을 겁니다. 국민차란 타이틀을 얻었으니 그 정도 투자해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런 회장님의 숨은 뜻을 모르고 함부로 나서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런 반대 의견들이 모여 그룹을 올바르게 가게 해 주는 겁니다. 제 생각과 다른 뜻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기탄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항상 열려 있는 진혁의 사고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밑바닥부터 힘들게 성공한 대부분의 사업가들이 정점에 올라 한순간에 꼬꾸라진 것은 독선적인 회사 경영 스타일을 고집해서였다.

사업 규모가 작을 때는 그게 장점이 되지만, 규모가 커지면 혼자서 모든 것을 다할 수는 없었다.

진혁의 최대 강점 중 하나가 사업 규모가 커질 때마다 적절한 인재를 영입하고 그들의 의견을 청취한다는 점이었다.

그로 인해 알라딘 그룹이 계속해서 성장해 올 수 있었다.

그룹의 일이 끝나자 진혁은 바로 동행 사무실로 넘어갔다.

우상우가 기다리고 있었고, 고진무는 물론 구필준 소장도 도착해 있었다.

자리에 앉은 진혁이 베트남의 ‘하이테크 농장’ 건설에 대해 들려줬다.

“베트남에 스마트팜을 세우시겠다고요?”

“그렇습니다. 더불어 스마트팜 설비사업도 함께 진출할까 합니다.”

“설비 사업도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우 대표님이 말씀해 주십시오.”

“회장님의 도움으로 산청의 오필구 씨가 불가리아에 스마트팜으로 버섯 농장을 세웠습니다.”

놀라서 묻는 고진무의 질문에 우상우가 그간의 사정을 들려줬다.

“회장님이 투자 규모를 늘리면서 견학 시설도 함께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견학 시설을요?”

“버섯을 파는 것 못지않게 스마트팜 설비 수출도 중요하시다면서 그렇게 지시하신 겁니다. 그런데 그게 아주 인기를 끌고 있답니다. 구경 온 유럽의 여러 농가로부터 설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답니다.”

“……!”

고진무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진혁을 다시 봤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고진무는 진혁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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