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267화 (267/307)

267화. 북한 정권 교체

“……중국과의 무역 전쟁이지요.”

“……!”

리광잉의 눈이 커졌다.

진혁의 말이 맞았다. 카이저 대통령이 301조를 꺼낸 건 북한 제재안 때문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중국을 겨냥하고 있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회장님의 예상이 맞는 것 같습니다. 미국은 우리를 직접 겨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급히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했습니다. 이 은혜는 나중에 꼭 갚겠습니다.”

“별말씀을요. 안녕히 가십시오.”

서둘러 떠나는 리광잉을 배웅하고 돌아온 탕분헝 총리가 앞에 앉으며 말했다.

“서 회장의 말대로 미국이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인다면 큰일입니다. 세계 각국의 경제가 크게 타격을 입을 겁니다.”

“어차피 한 번은 치러야 할 통과 의례입니다. 왕칭린의 과욕이 부른 화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왕칭린도 집권 1기 때는 덩샤핑의 ‘도광양회(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 유지를 받아들여 주변국과 선린우호 관계를 유지하며 발전시키겠다고 천명했었는데…….”

“급격한 경제 성장이 오히려 독이 된 거지요. 유소작위 전략을 과도하게 추진한 결과, 중국이 패권에 도전한다는 인식을 심어 줘 미국의 반발을 불러온 겁니다.”

정확한 지적이라 탕분헝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서 회장은 앞으로 국제 정세가 어떻게 될 거라고 보시오?”

“미국이나 중국 모두 쉽지 않은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렇겠지요. 미국의 카이저 대통령도 그렇고 중국의 왕칭린 주석도 기가 센 사람이라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겁니다.”

“그로 인해 당분간 국제 사회는 큰 혼란을 겪게 될 겁니다. 중심을 잡아 줬던 두 나라의 무역 전쟁으로 불확실성이 커졌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주변국끼리 뭉쳐서 공동 대응해야 합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오. 괜히 혼자 줄을 잘못 섰다가는 큰 화를 당하기 쉬운 형국이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와닿는 시기였다.

그렇게 탕분헝 총리와 얼마간 더 이야기를 나눈 진혁은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갔다.

* * *

삼청동의 한정식집에서 김상균과 함께 기다리자 김세동이 들어왔다.

“사무실로 오지, 번잡하게 왜 밖으로 나오라고 한 건가?”

“편하게 식사 한번 대접하려고 모셨습니다.”

진혁이 둘러댔지만 그 정도에 넘어갈 김세동이 아니었다. 그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물었다.

“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요즘 북한 쪽 사정은 어떻습니까?”

“브레이크가 파열된 기관차를 보는 느낌이야. 이제 중국도 제어를 못 하는 것 같아.”

“미국으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들으신 것은 없습니까?”

“미국?”

다시 날카로워진 김세동의 시선을 받으며 진혁이 말했다.

“미국에 갔을 때 예전부터 알던 CIA 친구로부터, 조만간 북한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일전에 그 이야기를 듣고 나름 조사하던 중이었는데 이번 일이 또 터진 거야.”

“이번에는 중국 중요 인사로부터, 미국이 북한에 군사 작전을 감행하려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군사 작전!”

김세동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커졌다.

미국은 그간 북한을 상대로 군사 작전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진혁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미국의 카이저 행정부는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단순히 흘려버릴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주한 미군에 외출 금지와 영내 대기 명령이 내려졌네. 일상적인 훈련이라고 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훈련이 아니라 실제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들어가 봐야 할 것 같네. 식사는 자네들끼리 하게.”

서둘러 떠나는 김세동의 모습에 김상균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북한에 문제가 생긴다면 큰일입니다.”

“맞습니다. 심각한 상황입니다.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혼란은 불가피할 겁니다.”

“그렇겠지요.”

“혼란은 피할 수 없더라도 충격을 최소화할 수는 있습니다. 지금부터 모든 정보 자원을 북한에 집중해 주십시오. 작은 변화라도 놓치시면 안 됩니다.”

“제가 반드시 알아내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김상균의 대답을 들으면서도 진혁은 안심이 되지 않았다.

뉴트의 거칠 것 없다는 듯 자신감 넘치던 모습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다.

* * *

그런 진혁의 불안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틀 후, 북한 중앙 TV가 놀라운 뉴스를 내보냈다.

-위대한 지도자 동지께서 지난 새벽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사망하는 비통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에 당 중앙위원회는 윤호열 차수를 임시 지도자로 선출하고 장례 절차와 국정 운영에 만전을 기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이에 백악관이 기다렸다는 듯이 성명을 발표하며 화답했다.

-북한 지도자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카이저 대통령은 애통해하셨습니다. 북한 정권의 빠른 안정화를 위해 그간 보호 중이던 지도자의 형을 즉시 북한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TV 속보를 보는 진혁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이것이었다.

미국은 대규모 군사 작전이 득보다 실이 많다는 판단하에 지도자만 암살하는 비밀 작전을 벌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자기 사람이 된 자를 보내 북한 정권을 장악하려는 음모였다.

하지만 그런 미국의 의도는 중국을 경유해서 북한 순항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지도자의 형이 독살되면서 이뤄지지 못했다.

이에 카이저 대통령은 중국 정부의 소행이라며 맹렬히 비난했지만, 중국 정부는 사실 무근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와는 별개로 진혁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자신이 알던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흘러가고 있었다.

* * *

북한 사태와 미중의 극한 대치로 혼란스럽기만 하던 정국도 시간이 지나자 관심이 시들어졌다.

밝혀진 게 없는 영향도 컸지만 코앞에 다가온 대선 때문이었다.

치열한 경합 끝에 여당 후보로 나선 이현국이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선출됐다.

그렇게 한반도에 큰 변화가 일어난 2017년이 저물어 갈 때 진혁의 휴대폰이 울렸다.

알라딘 홀딩스의 야맘 사장이었다.

-비트 코인의 상승세가 비이상적입니다, 회장님.

“아, 비트코인! 현재 시세가 얼마입니까?”

-2만 달러를 넘어섰는데 조만간 3만 달러를 돌파할 것 같습니다.

“거기까지는 못 갑니다. 당장 매도해 주세요.”

-예? 매도요?

“눈치 보지 말고 무조건 매도하셔야 합니다. 급하게 올라간 만큼 내려오는 것도 가파를 겁니다.”

-알겠습니다. 즉시 매도하겠습니다.

휴대폰을 내려놓은 진혁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주변 상황이 급박 돌아가는 바람에 투자한 것을 잊고 있었다.

고맙게도 야맘 사장이 적시에 연락해 줘 최대의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됐다.

300달러 선에 120만 개를 보유하고 있었으니 240억 달러가 돼 있었다.

* * *

푸잉은 학교 선생님이 꿈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꿈과 달리 경영학을 선택했다. 취직이 잘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랬음에도 그녀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해야만 했고, 어쩔 수없이 돈을 벌기 위해 낯선 한국까지 찾아오게 됐다.

알라딘 자동차의 협력 업체인 ‘운일 기계’에 재직 중인 베트남 아가씨 푸엉 씨의 사연이었다.

무대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자 푸엉이 입을 뗐다.

“부모님은 항상 내 마음속에서 함께 계세요.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면 기운이 나죠. 두 분이 편히 쉬시도록 이제는 제가 더 열심히 일해야지요.”

옆에 앉아 있던 어머니 트엉 씨는 그런 딸의 모습을 쳐다보다가 손등으로 오래오래 눈가를 쓰다듬었다.

아버지는 옆에서 말없이 푸엉의 어깨를 다독거려 줬다.

낯선 타지에서 생활하는 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쉽게 감출 수 없었던 모양인 듯했다.

1월 15일 저녁, 부평 알라딘 자동차 공장 특별 무대에서 열린 ‘알라딘 외국인 근로자 가족 초청 행사’ 환영 만찬장의 모습이었다.

알라딘 복지 재단이 주관한 이날 행사에서는 한국 내 알라딘 그룹 및 협력 업체에서 일하는 백 명의 모범 외국인 근로자가 가족들을 만났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 초청된 가족은 250명이었다.

사회자가 푸엉 가족을 호명하며 무대에 오르게 하자 무대 아래의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푸엉과 부모님이 서로 힘껏 안으며 기쁨을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지민도 눈물을 쏟아냈다. 그녀의 사연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내년이면 한국에 온 지 햇수로 3년째인 푸엉이 매달 베트남의 가족들에게 보내는 돈은 우리나라 돈으로 약 백만 원 정도이다.

그녀의 고향은 수도 하노이에서 남쪽으로 350킬로 떨어져 있는데, 고향에는 부모님 외에도 아직 공부를 하고 있는 동생이 둘이 있었다.

큰 동생은 보육 교사로 일하면서 4년제 대학을 다니고 있고, 작은 동생은 공업계 전문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푸엉이 동생들의 학비와 가족들의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그래서 한국에 온 이후로 한 번도 부모님을 보러 가지 못했다.

“힘들지만 저로 인해 가족이 편하게 지낼 수 있고, 동생들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돼서 행복해요. 가끔 그리울 때는 콜링 카드로 고향집으로 전화를 해서 부모님께 어리광을 부리기도 해요.”

자신의 삶을 비관하지 않고 한국에서 조금만 더 고생하다가 동생들이 졸업하면 자신도 고향에 돌아가 중단했던 학업을 마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진 여린 소녀였다.

사회자가 푸엉에게 물었다.

“부모님과 지금 가장 하고픈 것이 무엇인가요?”

“서울랜드에 모시고 가서 기차를 태워 드리고 싶어요. 두 분 모두 재미있어하실 것 같아요.”

무대 아래에서 울먹이는 지민의 어깨를 감싸 달래는 진혁을 보고 푸엉이 말했다.

“부모님을 뵙게 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회장님. 싸랑해요.”

푸엉이 양손으로 크게 하트를 만들며 애교 인사를 하자 장내에 훈훈한 미소가 감돌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지민이 진혁에게 어깨를 기대며 말했다.

“이런 뜻깊은 행사를 열게 해 줘서 고마워요.”

“행사 준비는 자기가 다 해 놓고는. 보람을 느끼게 해 줘서 내가 더 고마워. 그런데 모국 방문단은 언제 출발한다고?”

“2월 12일이에요. 아세안 국가들도 우리나라처럼 음력설을 전후해서 휴식일이라 그렇게 정했어요. 10개국에 총 573명이 가족과 함께 첫 고향 방문길에 올라요.”

“첫 귀성길이니 준비해 소홀하지 않게 해 줘요.”

“알겠어요. 그런데 이렇게 막 보내 줘도 괜찮아요? 그것도 매년.”

“……?”

의아해하는 진혁에게 지민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회사 부도나는 것 아닌가 해서요.”

“이 사람이. 나 서진혁이야. 당신 신랑! 자기는 돈 걱정 말고, 이왕 하는 일 서운하지 않게 최고로 준비해 줘요.”

“알았어요. 우린 신랑 든든하고 예뻐요.”

쪽.

지민의 기습 키스에 진혁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 일은 그룹이 아니라 진혁이 개인 자금으로 여는 행사였다.

비트코인으로 갑자기 공돈(?)이 생겨 좋은 일에 쓰자고 기획한 것인데 의외로 성과가 좋았다.

행복해하는 뒷자리와 달리 운전하는 김상균은 팔을 북북 긁었다.

닭살들이었다.

* * *

한국에 이현국 대통령의 시대가 열리는 날, 북한도 윤호열이 정식으로 주석 자리에 올랐다.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것을 알 텐데도 북한은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아 오히려 불안감을 키웠다.

그러던 2월의 어느 날, 진혁이 청와대의 호출을 받고 들어가 이현국 대통령을 만났다.

“정치를 멀리하시는 서 회장님의 평소 지론은 알지만 심하셨습니다.”

“몇 번이고 와서 축하하고 싶었지만, 새로 취임하셔서 공사가 다망하실 것 같아 억지로 참은 겁니다. 그렇게 이해해 주십시오.”

“참 여전하십니다.”

진혁을 본 지 벌써 햇수로 8년째가 되고 있었다.

한결 같은 모습이 오히려 든든하게 느껴졌다.

비서가 차를 내놓고 돌아가자 이현국이 말했다.

“막상 이 자리에 앉아 보니 생각보다 압박감이 심합니다. 그래서 조언을 구하고자 모신 겁니다.”

“사업가인 제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아는 한도 내에서 성의껏 답변하겠습니다.”

“미중 무역 전쟁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양국 지도자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외길로 들어섰다고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을 겁니다.”

“설마 극한으로 치닫겠습니까?”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만, 타협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을 거라는 말씀입니다. 미국 순방 시 백악관을 방문해 분위기를 직접 느껴 보시면 제 말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여느 정권과 마찬가지로 이현국이 대통령 취임 후 첫 순방국은 당연히 미국이었다. 약소국의 어쩔 수 없는 설움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현국은 더 큰 문제를 꺼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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