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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273화 (273/307)

273화. 6자 회담으로

“리광잉입니다, 총리님.”

-서진혁입니다.

갑자기 들린 서진혁의 목소리에 리광잉이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빠르게 냉정을 되찾았다.

그사이 진혁이 말을 이었다.

-보안 때문에 결례를 범했습니다.

“이해합니다. 저 역시 연락드리고 싶었지만 같은 문제로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먼저 연락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상황은 충분히 아실 테니 결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꿀꺽.

리광잉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중요한 순간이었다.

-윤호열 주석께서는 북한의 개혁 개방이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되는 상황에 대해 걱정하고 계십니다.

“당연한 우려십니다. 카이저 대통령은 자국의 이익을 가장 우선시하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따라서 중국도 참여해서 힘의 균형을 맞춰 주셨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기회를 주신다면 무조건 참여하겠습니다.”

리광잉이 바로 승낙했지만 성급한 행동이었다.

진혁이 반전이 있는 말을 했다.

-하지만 최근 중국 정부가 여러 번 신의를 저버린 행동을 하는 바람에 인민들의 반중 정서가 높아진 것에 대한 우려도 함께 토로하셨습니다.

“지도자 형의 암살은 결단코 우리 소행이 아닙니다. 미국이 저질러 놓고 우리에게 뒤집어씌운 겁니다.

-증거가 있습니까?

진혁의 날카로운 추궁에 리광잉이 답을 못했다. 그런 증거를 확보했다면 지금처럼 당하고만 있지 않았을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암살인 데다 북한 비행기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 조사마저도 불가능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진 후에 진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주석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지금이라도 신뢰 회복을 위한 전향적인 행동을 보여 준다면 참여를 허락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주석께서는 공화국의 어려운 경제사정을 이용해 중국 기업들이 광산에 대한 권리를 저가에 매입하고 막대한 이득을 챙겨 온 것에 서운함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건 기업 간 정상적인 거래였습니다.”

-부총리께서도 아시다시피 북한의 광산은 국가 소유라,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계약된 권리를 회수할 수 있습니다.

“……!”

다시 한번 허를 찔린 리광잉이 다시 반박하지 못했다.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라 모든 지하자원의 소유권이 국가에 있었다.

자유주의 국가에서의 개발권은 배타적이고 양도가 가능한 재산권이지만, 북한의 개발권은 사유 재산이 아니기 때문에 북한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계약된 개발권을 환수할 수 있었다.

북중 간에 이루어진 개발권 계약은 단지 계약 기간 동안 주어지는 채굴권 혹은 생산권의 의미일 뿐이었다.

물론 계약을 중도 파기하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함은 물론 국제 사회의 신뢰를 잃게 돼 향후 투자 유치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진혁의 말이 이어졌다.

-주석께서는 중국이 대국답게 양보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 준다면 인민들의 마음이 돌아설 거라 확신하셨습니다.

“……!”

-전 모레 아침 판문점을 통해 평양으로 들어가기로 결정됐습니다. 마지막 기회마저 사라지는 게 안타까워 연락드린 겁니다. 신중히 잘 결정하십시오. 그럼.

“잠시만요.”

전화를 끊으려는 진혁을 리광잉이 급히 막았다.

-말씀하십시오.

“윤호열 주석이 요구한 대로 광산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면 우리의 참여는 확실히 보장되는 겁니까?”

-가능할 것이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허락하겠습니까?”

-키는 북한이 쥐고 있습니다. 서로 합심해 대처한다면 미국도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남중국해의 문제 때처럼 말입니다.

“이번에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중국의 태도 결정이 우선되어야 들으실 수 있는 말입니다. 결심이 서시면 평양으로 오십시오. 그곳에서 듣고 싶은 답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너무 성급했습니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웃으며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진혁이 통화를 끝내자 리광잉도 종료 버튼을 눌렀다.

한참 동안 그 자세 그대로 생각에 잠겨있던 리광잉이 벌떡 일어났다.

생각은 천천히 해도 된다. 지금은 우선 행동할 때였다.

“허 부장.”

“예.”

부르자마자 바로 허융이 들어왔다.

밖에서 이쪽에 귀를 곤두세우고 있었다는 반증이었다.

“탕분헝 총리께서 무슨 일로……?”

“그건 나중에. 우리가 북한 광산에 투자한 규모가 어느 정도 되지?”

“대략 31억 위안(오천억 원)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만 정확한 것은 조사해 봐야…….”

“당장 낱낱이 조사해. 무조건 내일 아침 주석께 보고드릴 수 있어야 해.”

“……알겠습니다.”

허융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억지로 대답했다.

오늘도 퇴근하기는 글렀다.

왕칭린은 다행히 퇴근 전이었다.

“북으로부터 연락이 왔네.”

“그래?”

“우리 정부의 참여시켜 주는 대신, 확보한 북한 광산의 권리를 내놓으라고 하네.”

리광잉은 진혁과의 통화 내용을 상세히 들려줬다.

“참으로 골치 아픈 작자군.”

“……?”

“서 회장 말이야. 내가 기억하는 윤호열은 선이 굵은 군인이었어. 이런 치밀한 계획은 아마 그자의 머리에서 나왔을 거야.”

“나도 같은 생각이네. 우리를 위하는 척하지만 결국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연락을 해 준 거야. 그러면서도 챙길 건 또 챙기고. 전형적인 사업가 스타일이야. 문제는 그걸 뻔히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다는 거지.”

“우리가 확보한 양이 얼마나 되는데?”

“31억 위안 정도라고 하는데, 정확한 내역을 파악하라고 지시했으니 내일 아침까지는 받아 볼 수 있을 거네.”

잠시 생각하던 욍칭린이 말했다.

“아깝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아프리카 국가를 동서경제벨트에 포함시켜 주면서 확보한 개발권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물량이지 않나?”

“그렇긴 하지.”

“그럼 내주자고. 한반도가 통째로 미국에 넘어가는 것에 비하면 절대 손해나는 장사가 아니야.”

“……!”

왕칭린은 자신의 말에 리광잉의 눈이 한껏 커지는 모습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렇게 놀라나?”

“자네 말이 맞아. 이건 누가 봐도 우리가 많이 남는 장사야.”

“그게 왜?”

“그걸 서 회장이 몰라서 그 정도만 요구했을까?”

“……!”

이번에는 욍칭린의 눈이 커졌다.

진혁에게 여러 번 당한 터라 이제 그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적이라는 게 안타까울 정도로 기획력과 계산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 자였다. 숨겨진 다른 의도가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왕칭린이 물었다.

“놈의 의도가 대체 뭘까?”

“현재로서는 짐작하기 힘드네. 미국의 반대를 어떻게 무마시킬지 물었더니, 광산 권리를 양보할 결심이 서면 직접 평양으로 와서 들으라고 하더군.”

“평양으로?”

“미국을 조심해서 그런 것 같아. 연락도 은밀히 한 것을 보니.”

“아무래도 그렇겠지. 미국이 알면 절대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왕칭린을 보며 리광잉이 말했다.

“일단 그자의 의도대로 내가 직접 평양으로 가서 말을 들어 봤으면 하네.”

“그렇긴 한데…….”

“정확한 계획을 알아야 우리도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할 수 있어. 어설픈 계획이라면 애초부터 관여하지 않는 게 나아. 모레 오전에 온다고 하니, 나는 내일 먼저 들어가야겠네.”

“먼저?”

“윤호열 주석을 먼저 만나 둘 사이에 어떤 밀약이 있는지 최대한 알아내볼 생각이네.”

“쉽지 않을 텐데…….”

“물론 그렇겠지만 뭐라도 건지는 게 있을 거야. 아무것도 없이 그자를 만나는 것보다는 낫겠지.”

“자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게. 조심하고.”

“겨우 나 하나 잡고 판을 뒤엎을 만큼 무모한 자들이 아니니 걱정 말게. 나머지 이야기는 다녀와서 나누도록 하세.”

리광잉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서둘러 나갔다. 허융의 조사 결과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궁금했다.

* * *

진혁이 판문점을 넘자 리진수 조사관이 가방을 받아 들고 차에 타서 수행했다.

“회장님의 예상대로 중국의 리광잉 경제부총리가 어제 도착해 지도자 동지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궁금하고 다급했겠지요.”

“지도자 동지께서 회장님이 오시면 말씀을 나누자며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셨습니다.”

“잘하셨습니다. 급한 건 저들이지 우리가 아니니까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 무덤덤한 표정의 답하는 진혁의 모습을 리진수는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진혁을 만나기 전까지 리진수는 갑자기 맡겨진 업무에 불만이 많았다.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당비서실 소속 조사관으로 목에 힘만 주고 살았는데, 급작스러운 변고로 지도자가 바뀌더니 베트남 시장 조사라는 황당한 업무가 맡겨졌다.

그것도 모자라 남조선 사업가인 서진혁의 수행 비서 노릇을 하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헌데 신기하게도 돌아가는 상황이 그가 이야기한 그대로 되고 있었다.

콧대 높이가 하늘을 찌르기만 하던 미국과 중국이 그의 세 치 혀에 꼼짝 못하는 모습을 보자니 통쾌하기까지 했다.

하늘같은 지도자 동지가 애지중지하는 이유를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진혁이 주석궁에 가자 윤호열이 리광잉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잘 다녀왔습니다.”

“고생 많았습니다. 언론에서 동무의 일거수일투족을 생중계로 알려 줘서 따로 보고받을 필요가 없으니 편해서 좋더군요.”

“제가 찾아뵀어야 하는데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기회를 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하지요.”

윤호열과 인사를 끝낸 진혁이 자신에게 하는 말에 리광잉이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조아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북한 지도자가 직접 입구까지 나와 마중할 정도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헌데 윤호열은 환대는커녕 진혁이 도착한 다음에 이야기를 나누자며 아예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서둘러 하루 일찍 왔지만 얻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자리에 앉자 진혁이 물었다.

“중국 정부의 결심은 섰습니까?”

“광산 권리를 양보하는 수준에서 우리 정부의 참여가 확정된다면 서 회장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지만, 그 이상을 요구한다면 사안에 따라 참여 여부를 결정할 생각입니다.”

“동북아에서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를 겨우 31억 위안 정도로 평가했다니 실망입니다.”

“내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한도를 이야기한 것뿐이니 오해를 마시오. 그 이상이면 주석의 재가를 받아야 하오.”

리광잉이 말을 하면서 윤호열의 눈치를 봤다. 혹시 그가 진혁의 지적대로 생각해 자존심 상해 한다면 큰일이었다.

다행히 윤호열은 그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진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주석께서는 북한 문제의 해결은 경수로 사업 재개가 아닌 6자 회담 재개로 정리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6자 회담……!”

중단된 경수로 사업 재개를 위한 대화의 필요성으로 남북한과 주변 4대 강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6개국이 참가하는 다자 회담이 성사됐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총 6차 회담을 가지면서 나름의 성과를 냈지만 북한이 IAEA의 시료 채취를 거부하면서 중단되었고, 각국의 지도자들이 바뀌면서 흐지부지 잊혀져 버렸다.

갑자기 튀어나온 단어에 리광잉이 잠시 놀라기는 했지만 생각할수록 절묘한 계책이었다.

성사만 된다면 한반도에서 미국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반색하면서도 리광잉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미국에서 동의하겠습니까?”

“동의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야지요.”

“어떻게 말입니까?”

“그 전에 먼저 한국 국민의 남북 대화 재개에 대한 거부감부터 말씀드리는 게 순서인 것 같습니다.”

진혁은 이현국에게 들은 경수로 사업과 6자 회담 사업을 진행하면서 3조 원이 소요된 사실을 알렸다.

“한국은 직접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강대국의 요구에 억지로 참여해 사업비만 떠안아 국민들이 불만이 상당하다고 합니다. 이에 이현국 대통령께서는 사업비의 공평하고 합리적인 배분이 담보되지 않으면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그건 당시 한국 대통령이 경수로를 한국형으로 고집하는 바람에 분담금이 커진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지적을 예상하셔서 그런지 더 이상 한국형 경수로를 고집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철저하게 배수진을 친 모습이라 이전처럼 한국에 사업비를 떠넘기는 게 쉽지 않다는 게 느껴졌다.

진혁이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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