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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286화 (286/307)

286화. 북한 개발 펀드

“북조선 개발 펀드를 조성하십시오. 기금 규모는 2천억 달러 정도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2천억 달러요?”

윤호열이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북한의 일 년 예산은 7조 원 규모로, 60억 달러가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했다.

그런데 그 30배가 훨씬 넘는 금액을 조성한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진혁이 웃으며 말했다.

“그 절반을 제가 내놓겠습니다.”

“서 회장이 말이요?”

“그동안 모아 둔 돈이 꽤 됩니다. 그럴 걱정은 없지만, 투자 유치가 미진하면 나머지 반도 제가 책임질 테니 주석께서는 걱정하지 말고 이 나라와 인민들을 위해 강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알겠습니다만…… 정말 자신 있으십니까?”

“한반도가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것은 그만큼 세계열강들이 이곳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아마 제 계획이 제대로만 먹힌다면 서로 먼저 투자하려고 돈을 보따리째 싸들고 주석궁 앞에 줄을 설 테니 아무 걱정 마십시오. 투자 유치는 제게 맡기시고, 들어온 돈을 어떻게 쓰는 게 가장 효율적일지 방안이나 강구하면서 지켜봐 주십시오.”

진혁이 워낙 자신 있어 하자 윤호열도 덩달아 힘이 났다.

“서 회장은 어떻게 집행하는 게 좋을 것 같소?”

“주명근 회장님으로부터 북한 철도가 너무 노후화되어 완전히 신설해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고쳐서 쓸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럼 당연히 전부를 걷어내고 신설하는 게 맞습니다. 그것도 최신 고속 철도로 말입니다.”

“그러면 좋지만 그럴 경우 엄청난 자금이 들 거라고 합니다. 남조선 전문 기관에 따르면 철로 건설에만 56조 원이 든다고 합니다. 거기에 건설 단가에 포함되지 않은 차량 구매비, 전력 공급비 등을 포함하면 북조선 철도를 남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필요한 자금이 158조 원까지 올라갑니다. 그러면 북조선 개발 펀드 자금 대부분을 철도 건설로만 탕진하게 됩니다.”

윤호열도 주명근과 같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었다.

하지만 진혁은 그에 대한 복안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왜 북조선에 건설되는 것을 남한 단가로 계산해 엄청 부풀려서 감 놔라 배 놔라 한답니까. 남한 정치인들의 말은 곧이곧대로 믿으시면 안 됩니다.”

“……?”

“통일연구원의 보고에 따르면 단가 기준을 어디로 정하느냐에 따라서 열 배 이상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개성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 건설은 남한 단가로는 7조 8천억 원이 넘지만, 자재 장비를 지원해 북한이 건설하면 그 10분의 1 정도인 9천억 원이면 가능합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여기 그 보고서가 있습니다.”

진혁이 가방을 열어 통일연구원 자료를 건네줬다.

열심히 보고서를 들여다보던 윤호열을 보며 진혁이 말을 이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남한은 최저 임금 상승으로 1인당 인건비 부담 비용이 월 200만 원을 넘어서서 건설 현장의 단순 작업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도맡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에 반해 북한 근로자를 고용한다고 가정하면, 천만 원으로 한 달간 75명을 고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군요.”

“남측에서 그런 쓸데없는 주장을 하면 오히려 남측 철도 구간에 인민들을 내려 보내 반값에 건설해 주겠다고 역제안하십시오. 아마 찍소리도 못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이 보고서를 철저히 검토해서 우리 측 건설 비용을 제대로 산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윤호열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남한 정치인의 말에 일희일비했던 것에 분노가 치밀었다.

상황이 이러니 진혁의 말대로 이 일은 남한에 맡길 게 아니라 북조선이 주도적으로 추진해야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 * *

가족이 있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 지척이지만 진혁 일행은 발길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했다.

이번 일의 안정적인 추진을 위해 반드시 허락을 받아야 할 곳이 남아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십 분이나 늦게 도착한 뉴트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앉자마자 짜증부터 냈다.

“이런 식으로 사전 약속이 안 된 만남 요청은 앞으로는 자제해 주시오.”

“죄송합니다. 워낙 급한 사정이라 결례를 범했습니다.”

진혁은 뉴트가 자신이 낸 천연가스 매도 의견으로 곤욕을 치룬 것을 알기에 쓸데없는 자존심을 접고 고개를 숙였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그렇게 급한 일이라는 게 뭡니까?”

“북한 문제입니다.”

“아니, 거기는 또 왜요?”

뉴트의 목소리가 당장 높아졌다.

미국은 지금 일방적인 시리아 철군 문제로 시끄러운 상황이었다.

카이저 대통령은 세계 평화 수호를 위해 해외에 주둔하는 미군 때문에 막대한 국방비가 소요되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에 시리아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철군 결정을 내렸다.

물론 그 이면에는 셰일 가스로 에너지를 충분히 확보해 더 이상 중동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현실적인 상황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이에 반발한 국방부 장관마저 경질하는 바람에 정가가 시끄러웠다.

그런 상황에 한동안 잠잠하던 북한 문제가 다시 거론되니 짜증이 확 밀려왔다.

“윤호열 주석께서 북한 개발 펀드를 조성해 북한의 개발을 자신이 주도하시겠다고 고집을 부리십니다.”

“허, 참. 누가 북한을 믿고 돈을 내놓는다고 그런 허황된 생각을 한답니까?”

“제가 극동 개발에 참여하려고 쿠렌코 총리와 왕칭린 주석을 찾아뵈었는데, 북한 개발에 굉장히 적극적이십니다. 러시아는 이미 핫산-나진 간 철도를 개통했고, 중국은 훈춘-나진 간 고속도로를 건설 중에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대체 뭘 하기에 그들에게 밥그릇을 빼앗긴답니까?”

“거기에는 문제가 좀 있습니다. 기업들이 서로 참여하려고 과열 경쟁을 하는 바람에 잘못된 정보까지 흘러나와 윤호열 주석이 굉장히 분노하고 계십니다.”

진혁은 이어 건설 단가로 인한 공사비 부풀리기 문제에 대해서도 들려주었다.

“청와대도 그런 상황을 알고는 있는 겁니까?”

“알고 있습니다만 대한민국은 자유 시장 경제라 러시아와 중국과 달리 정부가 기업을 통제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상황이 어떻든 북한 정부가 일방적으로 개발을 주도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것도 러시아와 중국 자금으로 한다면 더더욱 안 됩니다.”

“그래서 제가 급한 대로 기금의 반을 서둘러 확보했습니다.”

“……!”

“이번 천연가스에서 얻은 이익보다 많은 천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해서 겨우 허락을 받았습니다.”

“잘하셨습니다.”

뉴트가 어쩔 수 없이 칭찬을 했다.

진혁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보다 한반도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확장을 막는 게 더 급했다.

“제가 확보한 지분의 일부를 미국과 일본에 내놓겠습니다. 공적 자금과 세계개발은행 등 우회 세력이 조금씩 내놓는다면 미국으로서는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겁니다. 거기에 북한이 핵 폐기 프로그램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으니, 이쯤에서 IMF가 자금을 지원해도 무방할 거고요.”

“결국 천연가스에서 얻은 이익을 내놓겠다는 것은 빈말이었군요.”

뉴트는 뒤끝이 상당한 듯 마음속의 앙금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진혁이 모른 척 태연스럽게 답했다.

“북한은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아시아에서 마지막 남은 미지의 땅입니다. 개발되면 그 파급 효과가 상당합니다. 그런 뛰어난 투자처를 대의를 위해 양보하겠다는 겁니다. 어려우시면 그냥 두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우리 측도 당연히 참여해야지요.”

뉴트가 서둘러 변명했다.

지금까지 한반도는 한국-미국-일본과 북한-중국-러시아의 대결 구도가 유지된 채 이어오고 있었다.

어느 한쪽의 힘이 일방적으로 커지는 것은 미국이 원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제가 줄어든 금액을 다시 주머니에 넣을 일은 없을 겁니다. 햄머가 폐쇄하기로 한 미국 내 자동차 공장을 제가 인수하겠습니다.”

“햄머 공장을요?”

뉴트가 그동안 유지한 포커페이스를 잃어버릴 정도로 크게 놀랐다.

햄머의 최고 경영자 테일러의 구조조정 작업은 단순히 해외 공장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미국 내 공장 다섯 곳도 추가로 폐쇄하고, 1만 5천여 명의 직원을 내보내겠다고 발표해 백악관이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었다.

자동차 산업을 육성해 일자리를 늘리고 내수 경기를 회복시키겠다는 카이저 대통령의 정책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동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폐쇄 예정 지역에는 카이저 대통령의 대선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른바 ‘경합 주(Swing States)’이자 쇠락한 공장 지대를 일컫는 미 북동부의 ‘러스트 벨트’가 포함되어 있었다.

연임을 노리는 카이저에게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그래서 보조금 중단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하지만 테일러는 전기차와 자율 주행차 중심으로 변신을 꾀하지 않으면 수년 내에 햄머가 무너질 수 있다며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동남아시아의 공장이 이제 막 안정을 찾아가고 있어 미국 시장은 천천히 진출하려고 했는데,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은 처지에 백악관의 어려움을 모른 척할 수 없어 결단을 내렸습니다.”

“회장님의 그런 용단에 아버님도 크게 기뻐하실 겁니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니 다행입니다. 최선을 다해 운영하겠지만, 아무래도 초기에는 투자비가 좀 많이 들것 같아 걱정입니다. 햄머에 지급해 왔던 보조금이 그대로 승계되면 좋을 텐데…….”

“당연히 승계해 드려야지요. 우리 정부도 북한 개발 펀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습니다.”

마침내 뉴트의 확답을 받아낸 진혁이 환하게 웃었다. 이번 미국행에서도 100% 원하는 것을 얻었다.

* * *

진혁이 뿌듯한 기분에 하마드까지 불러 축하 술자리를 가지고 있는 그 시각.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백악관 자신의 사무실에 혼자 남은 뉴트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백악관에 돌아와 보고를 하자 카이저 대통령이 크게 반긴 것은 당연했다.

진혁에 대한 칭찬을 한동안 계속하며, 미국 공장 인수는 물론 북한 개발 펀드 참여도 흔쾌히 수락했다.

당연히 기뿐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난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결국 진혁이 의도한 대로 모든 것이 결정됐다.

그러면서 놈은 이득은 이득대로 챙기고 있었다.

수입 자동차에 대한 고율의 관세는 단순히 중국만을 겨냥한 게 아니었다. 미국에 판매되는 모든 수입차에 부과할 예정이었다.

놈은 한발 앞서 미국 내 생산 기지를 확보하면서 그 칼날을 피한 것은 물론, 보조금을 챙기면서도 칭찬까지 듣게 됐다.

자신이 계속해서 놈의 농간에 놀아난다는 느낌이 들어 불쾌하기까지 했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화기를 들어 번호를 누르려던 뉴트가 동작을 멈췄다.

CIA 제임스 국장에게 걸려던 것이었는데, 그는 물론 직원들까지 진혁에게 호의적이라던 게 기억났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대신 핸드폰을 꺼냈다.

“접니다, 장인. 서진혁이란 자에게 감시를 붙여야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상대는 카지노월드의 슈왑 회장이었다.

베어링 가는 비밀 결사 조직인 오메가 기사단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들이라면 진혁의 움직임을 낱낱이 파악할 수 있었다.

* * *

공항에 도착한 후 희준이 자꾸 미적거렸다.

“왜 안 가고 자꾸 눈치를 봐.”

“정말 혼자 가도 되겠어?”

“왜 혼자야. 여기 김 실장님도 같이 가는데. 늦겠다. 어서 가.”

“알았어. 내가 먼저 가서 지민 씨하고 혜주에게 이야기 잘해 놓을게.”

희준이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먼저 탑승구로 들어갔다.

모든 일이 잘 끝나 한국으로 돌아간다며 기뻐하는 희준에게 진혁이 청천벽력 같은 결정을 내렸다.

자신은 방글라데시에 들러야 한다고 했다.

희준이 한국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자고 해도 진혁은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풀이 죽어 있는 희준에 모습에 진혁이 결국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방글라데시에 도착하자마자 진혁이 서둘렀다.

가족에게 미안함을 느끼면서 무리해서 이곳에 온 것은 꼭 데려갈 사람이 있어서였다.

사무실 문을 밀치고 큰 소리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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