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287화 (287/307)

287화. 화력 집중

“공장장님!”

카나풀리 EPZ 관리 사무소에 있던 권기남이 반가운 표정과 달리 입으로는 투덜거리는 소리를 냈다.

“종간나 새끼, 내래 고문이야, 고문.”

“제게는 언제나 영원한 공장장님이십니다.”

“신소리 말구. 갑자기 어쩐 일이니?”

“가시죠.”

“어딜?”

“고향에요. 이제 이곳은 안정됐으니 밤방에게 맡기고 고향으로 가셔야죠.”

고향이란 말에 권기남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올해가 70이 되는 해였다.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며 삶을 마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고향 생각이 간절했다.

그래서 퇴근 후에는 벵골 만 바다를 보며 시름에 잠길 때가 많았다.

진혁은 최원섭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다.

구룡포 통조림 공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60대 초반으로 정정했는데, 세월을 이길 수 없는 듯 그는 벌써 노인이 되어 있었다.

이집트로, 인도네시아로, 이곳으로 자신이 사업을 확장할 때마다 어디건 두말없이 달려와 고생해 준 고마운 이였다.

권기남이 약해진 마음을 감추려고 일부러 차갑게 말했다.

“여기가 이제는 내 고향인데 무슨 소리 하고 있니. 내래 다 정리하고 와서 포항에 가도 아무것도 없어야.”

“포항이 아니라 회령에 가시자고요.”

“회령……?”

가슴속에 꼭꼭 숨겨 놓은 고향 이름에, 단번에 권기남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태어나서 전쟁으로 피난 내려오기 전까지 살았던 고향이었다.

술에 취한 권기남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해서 알고 있었다.

“제가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해, 함경북도까지 해서 두만강 하구에 합작 구를 맡아서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진혁이 흥분된 목소리로 그간의 일들을 들려줬다.

“이제 진짜 고향인 회령으로 가세요. 같이 가서 그곳 인민들과 고려인, 조선족들과 함께 한민족 공동체를 건설합시다.”

“허어……. 진짜 고향…….”

권기남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추려고 시선을 하늘로 두었지만 두 뺨에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는 없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 권기남이 안정을 찾은 것 같자 최원섭이 거들었다.

“잘됐습니다, 고문님. 여긴 걱정 마시고 고향에서 회장님하고 멋진 세상을 만들어 주십시오.”

“이제 나이 먹어 쓸모없어지니 쫓아내려는 기가?”

“제가 어찌 감히…….”

“왜 괜히 나무라고 그러세요. 다 공장장님을 위해서 하는 말씀이구만.”

“네놈도 마찬가지야. 결국은 네놈 건설 사업하는 데 부려먹으려고 하는 것 아니가?”

“싫으시면 마시고요. 대신 밤방…….”

“이놈이 누굴 핏덩어리에 비교해. 네 일은 내가 있어야지. 어서 준비하자.”

진혁의 강력한 한 방에 권기남이 서둘러 일어났다. 그 모습에 나머지 사람들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권기남은 바로 떠날 수가 없었다.

소식을 들은 이들이 아쉬워하며, 이대로 보낼 수 없으니 칠순 잔치를 열어 주겠다고 해 며칠 더 머물러야 했다.

진혁이 다카에 가서 나즈마 총리를 만나 북한 개발 펀드에 대해 설명하고 투자 유치를 부탁하고 돌아오자 잔치 준비가 끝나 있었다.

공장 마당에 천막까지 치고 양까지 잡아 연 행사는 공장 직원들뿐만 아니라 남부 개발지의 로힝야들까지 건너와 인산인해를 이뤘다.

자신들의 터전을 만들어 준 진혁에 대한 고마움과는 별도로 함께 생활하며 공장을 건설하고 지켜온 권기남과 쌓은 정도 적지 않았다.

“많이 아쉽네요.”

지역 의원에 당선된 시에라가 권기남이 로힝야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보고 말했다.

“저 때문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여생이라도 고향에서 편히 보내게 해 드리고 싶어서 모시고 가는 겁니다.”

“압니다. 고향이 뭔지…….”

고향으로 간다는 말에 로힝야들이 권기남을 붙잡지 못했다.

그들 역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시에라가 의원 자격으로 미얀마 정부와 협상한 덕분에, 원하는 이들은 좋은 조건으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이곳에 삶을 터전을 마련한 터라 옮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에라가 물러나자 다음으로 찾아온 이는 김연희였다.

“극동에서 큰일을 계획하고 계시다는 말씀은 들었어요. 이제 이곳에서 뵙기는 어렵겠네요.”

“여기에 내 사업장이 있는데 아예 발길을 끊을 수는 없지요. 다만 예전처럼 자주 오지는 못할 겁니다.”

“많이 아쉬워요. 그동안은 회장님이 있어서 든든했는데…….”

“그럼 함께 가시든지요. 이곳 일은 이제 아노아르에게 맡겨도 되잖아요?”

“솔직히 그럴까도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동안 이곳에서 인연을 맺은 많은 이들이 제 발목을 잡네요. 전 여기에 있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진혁이 다시 한번 권하려다가 말았다.

그녀의 인생이었다.

다음 날.

진혁은 수많은 이들의 환송을 받으며 권기남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그날 짐을 싸서 떠나는 이는 권기남만이 아니었다.

한인갑이 이끄는 알라딘 건설 기술진 일부가 함께 한국으로 돌아갔다.

여기 일이 완벽히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 준비할 일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진혁이 과감히 결단을 내렸다.

권기남은 물론 떠나는 이들 모두 아쉬운지 비행기 창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 *

한국에 돌아온 진혁은 가족과 함께 집에서 하루 쉰 다음 출근해서 청와대에 들어가야 했다.

이현국 대통령이 보자마자 앓는 소리를 했다.

“북한 개발 펀드에 대해 아셨으면 미리 좀 말씀해 주시지요.”

“저도 이번에 가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한국의 정치인과 기업가들이 너무 앞서간 게 오히려 독이 된 겁니다.”

진혁이 시치미를 떼고 그간 한국에서 벌어진 논란을 핑계로 댔다.

윤호열 주석이 북한 중앙 방송을 통해 북한 개발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하자 한국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당연히 북한 개발은 한국이 주도할 거라는 생각에 득실을 따졌는데 상황이 역전돼 버렸다.

북한이 주도해서 세계적으로 투자 유치를 받으면, 한국 기업들은 이제 북한 당국의 처분을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진혁이 말을 이었다.

“주변의 소리에 일희일비하시면 안 됩니다. 남북 협력은 단순히 철도 연결만 하고 끝낼 일이 아닙니다. 향후 통일에 들어갈 막대한 비용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럼…….”

“맞습니다. 북한 개발 펀드에 들어오는 자금은 결국 한반도 통일에 쓰이게 됩니다. 실망할 게 아니라 오히려 환영해야 할 일입니다.”

“서 회장님께 그런 복안이 있으셨군요.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괜한 오해를 했습니다.”

“북한 개발은 윤호열 주석을 믿고 맡기시고, 대통령께서는 극동 개발에 주력해 주십시오.”

“극동 개발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라 이현국이 모르는 것은 당연했다.

진혁은 두만강 하구의 합작구 확대 계획에 대해 들려주었다.

“허어, 그동안 엄청난 일을 추진하셨군요.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극동 개발은 북한 개발 못지않게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 중요한 사업입니다. 청와대에서 중심을 잡고 양쪽의 일을 조율하며 문제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당장 관련 TF팀을 구성해 준비하겠습니다.”

“그전에 윤호열 주석께서 따로 부탁하신 일이 있습니다.”

“뭡니까?”

진혁은 한국통일연구원의 보고서에 대해 들려주었다.

이현국 대통령이 어이없어 하며 말했다.

“그런 사정이라면 나라도 북한이 주도하는 사업을 추진하겠습니다.”

“맞습니다만 거기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한 가지 있습니다.”

“…….”

“북한의 값싼 노동력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건설 기능도와 기초 체력 등은 남한과 비교했을 때 상당한 차이가 납니다. 이는 공사 기간을 늘어나게 하고 그에 따른 간접비의 추가 지출을 초래해, 나중에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그건 그렇지요.”

“건설 현장에 북한 근로자들의 진출을 허용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이곳에서 기술을 배우고 익힌다면 본격적인 건설이 시작될 때 큰 도움이 될 거라 하셨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탁임에도 이현국은 쉽게 답을 주지 못했다.

현재 관광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한국 건설 현장에 불법 취업 해 일하는 게 현실이지만, 정부는 그 사실을 애써 모른 체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취업이 힘들어 국민들의 불만이 큰데 정부가 나서서 북한 인력을 받아들인다면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반발할 게 분명해서였다.

하지만 기우였다.

진혁이 말을 이었다.

“현재 국내 건설 업체는 세계 경기 하락에 따른 수주 물량 감소로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해 구조 조정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작년 한 해에 상위 다섯 개 건설사의 인력 조정으로 1만 5천 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하청 업체의 상황은 더 심각하고요. 그들을 북한에서 받아들이시겠다고 합니다.”

“북한에서요?”

“건설 기능공도 필요하지만 레미콘 트럭, 지게차, 타워 크레인 등 각종 건설 기계 장비와 전문 인력 역시 절대 부족합니다. 설계 쪽도 마찬가지고요. 놀고 있는 한국의 우수한 건설 관련 인력들에게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북쪽과 상의해서 서둘러 진행하겠습니다.”

서로 아픈 것을 채워 주며 윈윈 할 수 있는 절호의 방안이었다.

* * *

사무실로 돌아와 일을 하던 진혁이 퇴근 시간에 맞춰 로비로 내려가자 김선혁이 기다리고 있었다.

“해외에 나갔다 왔으면 한동안 집에 일찍 들어가 가족과 보내야지, 웬 술을 먹자고 하냐?”

“회장님과 편하게 자리한 게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일단 가시지요.”

두 사람은 인근 한정식 집으로 갔다.

예약이 된 터라 바로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룹의 현안 이야기부터 예전의 추억까지.

빈 그릇이 치워지고 술이 들어오자 김선혁이 말했다.

“이야기해 봐라.”

“……?”

“네놈이 그냥 술 마시자고 할 놈이 아니잖냐. 뭔가 할 말이 있는 게지.”

“돗자리 깔아도 되시겠습니다.”

“내가 너를 본 지가 10년 가까이 되어 간다.”

“그러게요. 그때는 멋모르고 열심히 뛰어만 다녔는데 요즘은 뭐가 그리 복잡한지. 아무튼 10년 가까이 회장님이 곁에 계셨기에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한 번은 드리고 싶었습니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잔소리밖에 없다. 그걸 허투루 듣지 않고 이렇게 멋지게 성장해 줘서 내가 더 고맙다.”

오히려 고마워하는 모습에 진혁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아시겠지만 단군 최대의 사업이라는 북한 개발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거기에 전 극동 개발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걱정이다.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동시에 양쪽 일을 추진하겠다니…….”

“지금 미중 무역 전쟁 중이라 양국은 물론 세계의 이목이 모두 거기에 쏠려 있습니다. 이럴 때 남북한이 합심해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최대한 확보해야 합니다.”

“아는데, 국가가 달려들어도 쉽지 않은 일을 네가 나서서 하겠다는 게 걱정이 되어 하는 말이다.”

“어렵겠지요. 힘들 겁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일은 반드시 해야겠습니다.”

“그래라. 네놈이 내 말을 들을 놈도 아니고.”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김선혁은 이어진 진혁의 말에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회장님이 알라딘을 맡아 주십시오.”

“야, 이놈아!”

“말씀하신 대로 엄청나게 큰 프로젝트입니다. 그것도 두 개나. 거기에 서로 연동되어 있어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왜 감당하지도 못할 일을 벌여서 이 난리를 피우는 거냐. 내가 옆에서 최대한 도울 테니 그 말은 거둬라.”

“단순히 그룹의 일이 힘들어서가 아닙니다. 회장님이 계시고 직원들이 있으니 지금처럼 믿고 맡겨도 됩니다. 그런데 이번 일은 한국 기업 전체를 아울러야 겨우 성공할까 말까 할 정도로 큰일입니다. 그런 제가 알라딘에 적을 두고 있으면 주변에서 어떻게 바라보겠습니까?”

“……!”

“제가 먼저 내려놔야 상대도 절 순수하게 바라봅니다. 회장님이 맡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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