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288화 (288/307)

288화. 한반도 통 개발

“골치 아픈 놈.”

고개를 팍 숙이는 진혁의 모습에 김선혁이 투덜거렸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 역시 사정을 모르지 않았다.

벌써부터 진혁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고, 알라딘을 경계하는 시각도 존재했다.

특히나 북한 개발 펀드가 발표되자 진혁이 남북 경협의 열매를 혼자서 독식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더 커진 상황이었다.

결국 그날 김선혁은 진혁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다음 날 외부에 들렀다가 사무실로 출근한 진혁에게 반가운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감독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회장님.”

안근석 감독이었다.

“언제 들어오신 겁니까?”

“어제 왔습니다. 그때 인사를 제대로 못 드린 것 같아서요.”

“인사는 오히려 제가 해야지요. 정말 큰일을 하셨습니다.”

안근석 감독은 베트남의 국민 영웅이란 말이 부족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스즈키컵 우승으로 훈장을 받았는데, 한국과의 교류 확대에 고무된 쯔엉 총리가 추가로 우호 훈장까지 수여했다.

지금 베트남 거리 곳곳에는 국민 영웅 호찌민과 함께 안근석 감독의 사진이 게시될 정도였다.

한국 기업들의 진출이 끊일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었다.

“아시안컵이 며칠 안 남아 바쁘실 텐데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월드컵 4강을 이뤘던 멤버들이 그 이후로도 꾸준히 자선 경기를 열고 있습니다. 후배들이 좋은 일 한다는데 당연히 와야지요.”

“참 대단하십니다. 그나저나 인터뷰 때 정신없으셨을 텐데 어떻게 한국과 경제적 파트너십을 맺어 달라고 하실 수 있으셨습니까?”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닙니다. 그냥 저도 모르게 나왔습니다.”

“감독님을 내쳤던 곳인데 밉지 않으셨습니까?”

“미웠는데 이상하게 그런 말이 나와 버렸습니다. 씨도둑은 못 한다는 옛 어르신들의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게 없나 봅니다. 미워도 고국이잖습니까.”

“그렇지요. 아무튼 감독님 덕분에 한국의 위상이 크게 올라갔습니다. 정말 큰일을 하셨습니다.”

“회장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종종 라이따이한들이 찾아옵니다. 회장님 덕분에 당당하게 한민족임을 밝힐 수 있게 됐다며 좋아하더군요.”

“그게 어디 저 때문입니까. 다 감독님이 잘해 주신 덕분이지요.”

이제 베트남들은 라이따이한을 배척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며 매달리는 상황이었다.

베트남에서 한국어가 가능한 직원의 임금은 현지인보다 두 배 가까이 되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덕담을 나누며 서로의 공을 치하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안근석이 다음 일정이 있어서 일어나야 했다.

“다음에는 좀 더 시간을 내서 오겠습니다.”

“일부러 그러실 것까지는 없지요.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는 또 만나지 않겠습니까. 아시안컵에서도 선전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현관까지 안근석을 배웅하면서 진혁은 다시 한번 한민족들이 하나 되는 세상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사무실로 돌아오자 희준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문제 있냐?”

“그건 아닌데 두리이엔티가 연락이 안 된다.”

두리이엔티는 인천에 있는 물류 창고 전문 시공업체로, 동행 사업을 시작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제주 동행부터 시작해서 전국 동행 사업을 함께 진행해 와 손발이 맞았다.

합작구 사업을 준비하며 희준에게 연락을 해 보라고 했었다.

“전화번호가 바뀌었나 보지.”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업체명이 검색이 안 돼. 그래서 확인해 보니 폐업했다더라.”

“폐업?”

“곽영섭 사장은 연락이 안 되고……. 어떻게 하지?”

“그건 내가 알아볼게.”

“그래.”

희준이 나가자 진혁은 얼른 전화기를 들었다.

* * *

그날 오후 진혁은 인천 동구의 낡은 주택가의 비탈길을 오르고 있었다.

인천시 동구는 수도권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 가운데 하나였다.

한때 인천을 대표하는 지역이었는데 곳곳에 신도시가 들어오면서 개발에서 소외된 채 방치되어 있었다.

소방차도 지나다니기 힘든 골목길에는 무너져 가는 빈집들이 곳곳에 널려 있어 이런 데에도 사람이 사나 싶었다.

끼이익.

김상균이 허름한 철문을 밀자 쇠 긁히는 소리가 났다.

허름한 외관 달리 안쪽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계십니까? 계십니까!”

진혁이 소리쳐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우리가 때를 잘못 맞춘 것 같습니다. 나중에 다시 와야겠습니다.”

“잠시만요.”

몸을 돌려 나가려는 진혁을 막고 김상균이 안에다 대고 소리쳤다.

“곽 사장님, 서진혁 회장님이 오셨습니다. 알라딘의 서진혁 회장님이십니다.”

우당탕탕!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는데 집 안이 아니라 옆에 있는 창고였다.

“회장님!”

문을 열고 나온 이는 곽영섭이었는데 몰라볼 정도로 많이 상해 있었다.

항상 깔끔한 양복 차림이었는데 허름한 잠바를 걸친 데다 머리도 하얗게 세어 있었다.

“아니, 사장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채권자들이 하도 찾아와서……. 못난 모습을 보여 드려서 죄송합니다.”

“어려우시면 연락을 주시지요.”

“그동안 도와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어떻게…….”

시선을 마주치지도 못한 채 말끝을 흐리는 곽영섭의 모습에 진혁은 한숨이 나왔다.

참 답답한 양반이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 손수 커피를 타 오며 털어놓은 곽영섭의 그간 사정은 참으로 딱했다.

진혁을 만나 전국에 동행 센터와 물류 창고를 지을 때는 세상의 창고를 자신이 다 지을 것만 같았다.

그런 자만심이 무리한 설비 투자로 이어졌는데, 동행 센터 건립이 끝나자 일거리가 없어 부담으로 이어졌다.

그때 마침 정부에서 신재생 에너지 사업을 육성하겠다는 발표가 나오자 태양광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그게 패착이 되었다.

처음의 장밋빛 전망은 값싼 중국산 패널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지옥으로 변했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부도를 맞았다고 했다.

진혁이 말했다.

“제가 이번에 연해주 쪽을 맡아 사업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지리적 특성상 물류가 중심이 될 겁니다. 사장님이 해 주셔야 할 일이 아주 많습니다.”

“회장님!”

“미회수 채권은 제가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예전처럼 저와 함께 멋진 건물들을 세워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곽영섭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진혁이 김상균에게 물었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진짜 나쁜 놈들은 이미 돈은 다 빼돌려 놓은 후라 고의 부도를 내고 외국으로 건너가서 떵떵거리며 잘삽니다. 하지만 한국에 남아 있는 이들은 끝까지 회사를 살리겠다고 가산을 다 탕진해 그럴 수도 없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가진 돈이 없으니 멀리 가지도 못하고 근처에 숨어 사는 게 일반적인 형태입니다.”

이런 경험이 많은 김상균 덕분에 두 번 걸음하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었다.

* * *

한국은 날씨가 포근한 게 봄기운이 느껴졌지만 다시 찾은 모스크바는 여전히 한겨울이었다.

특히나 진혁 일행이 방문했을 때는 연이은 폭설로 교통마저 혼잡했다.

“중국 정부의 요청으로 하산스키 군, 우수리스키 군과 나데즈딘스키 군까지 총 10만 5천 제곱킬로미터를 임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중국 핑계를 대는 세르게이 대통령의 말에 진혁은 속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리광잉으로부터 그간의 사정을 전해 들었다.

중국 정부는 원래 조선족 자치구 전체를 내주려고 했다.

그런데 러시아가 난색을 표하며 면적이 줄었다.

그렇게 되면 연해주 지역을 전부 내줘야 하는데, 블라디보스토크가 문제가 됐다.

동해 유일의 부동항으로 극동함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항구라 러시아 입장에서는 절대 남에게 내줄 수 없는 요충지였다.

결국 중국도 거기에 맞춰 둔화시와 왕정현, 안도현 등 북한과 국경을 접하지 않은 내륙 지역을 제외해 균형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며 양해를 구해 왔다.

하지만 진혁은 모른 척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제가 열심히 개발하겠습니다.”

북한 함경북도까지 포함하면 31만 제곱킬로미터가 넘었다.

그 자체로 서울과 수도권을 합친 면적의 30배, 싱가포르의 4배에 해당하는 엄청나게 큰 땅덩어리였다.

듣고 있던 쿠렌코가 입을 열었는데, 역시나 처음부터 심상치 않은 이야기였다.

“나는 서 회장을 믿고 우리 땅까지 내놓을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북한의 윤호열 주석은 오히려 그런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어.”

“북한 개발 펀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 우리가 그간 북한이 미국에 점령당하는 것을 막아 줬고 채무까지 탕감해 줬는데, 그런 기여도를 배제한 채 무조건 돈을 내는 국가에 개발권을 주는 것은 옳지 않아.”

유럽 경기 하강에 저유가 현상까지 겹쳐 러시아의 재정 상황은 최악이었다. 북한 개발 펀드에 내놓을 돈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 러시아의 사정과는 별개로, 북한 개발 펀드에 밀려드는 자금으로 윤호열은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벌써 진혁이 약속한 천억 달러를 제외하고도 목표액인 2천억 달러를 넘어서고 있었다.

미국이 세계은행과 IMF, 중국은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과 브릭스 개발은행을 앞세워 막대한 자금 지원에 나선 덕분이었다.

거기에 일본도 아시아 개발은행을 움직여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진혁이 웃으며 답했다.

“북한 개발 펀드에 자금이 몰려드는 것은 아주 좋은 현상입니다. 덕분에 합작구 사업도 탄력을 받게 됐습니다.”

“탄력을 받아?”

“합작구 개발도 막대한 자금이 필요합니다. 제가 아무리 부자여도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건 그렇지.”

“윤호열 주석께서 근시일 내에 북한 개발 펀드를 한반도 개발 펀드로 확대하시겠다고 발표하실 겁니다.”

“한반도 개발 펀드?”

“북한과 이번에 확대된 합작구를 묶어서 통개발로 가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합작구 개발 자금은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절묘한 계책이었다.

북한의 함경북도가 포함되어 있고 나머지도 국경에 접해 있으니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계획 변경에 대해 일부 불만이 나올 수 있지만, 지금의 투자 열기를 감안하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러시아가 안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세르게이 대통령이 당장 으르렁거렸다.

“그럼 우리는 땅도 내놓고 개발권도 포기하라는 말이오?”

“그건 아니지요. 왜 펀드 자금을 꼭 돈으로만 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북한에 전철과 고속 철도를 깔면 뭐 합니까, 전기가 없는데.”

“아.”

세르게이는 물론 쿠렌코도 눈이 커졌다.

북한의 전력 사정이 최악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에 반해 러시아는 전력이 남아돌고 있었다.

핀란드 등 유럽 국가에 수출까지 하고 있는데, 각국이 신재생 에너지를 도입하면서 전력 수출량이 줄어드는 추세였다.

쿠렌코가 날카롭게 변한 시선으로 물었다.

“북한에 전기를 주는 조건으로 펀드 지분을 획득하라는 건가?”

“그렇습니다만 겨우 지분이나 얻으려고 이 일을 제안드리는 건 아닙니다.”

“그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일본은 물론 한국까지 탈원전 정책을 펴고 있어 전력 확보가 시급한 상황입니다. 북한까지 연결했으니 한국은 금방입니다. 거기에 일본도 지척이고요.”

“역시 대단해. 국토 개발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고 나즈마 총리가 칭찬한 게 빈말이 아니었어.”

쿠렌코 총리가 진혁의 뛰어난 기획력에 감탄하며 크게 칭찬을 했다.

그의 계획대로 된다면 전력을 넘겨주는 게 아니라 더 큰 시장을 확보하게 된다.

하지만 진혁의 이어지는 말에, 자신의 판단이 너무 안일했다는 것을 느껴야 했다.

“전기만이 아닙니다. 더 큰 게 있습니다.”

“더 큰 것?”

“천연가스입니다.”

“……!”

이제 쿠렌코 총리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남한이 햇볕 정책을 펴던 시절, 북한을 경유한 가스관 개설을 잠시 검토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북한의 계속된 도발과 남한 정권이 바뀌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채 잊혀졌다.

진혁이 말을 이었다.

“당시 가스관 개설에 35억 달러가 소요될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었습니다. 그간 물가가 올랐다고 하나, 현재 진행되는 북한의 철도 건설 및 도로 현대화 사업과 병행해 가스관을 매설하면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 겁니다. 어차피 땅을 파헤쳐야 하니, 그때 함께 묻으면 되니까요. 거기에 일본까지도 팔 수 있고요.”

“하지만 한국은 서 회장의 조흐르 가스전으로부터 가스를 공급받아 충분하지 않나?”

“그건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것뿐입니다. 더 저렴하게 받을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가스관으로 받는 것은 천연가스를 액화시켜 LNG로 가져오는 것의 1/3 수준에 불과해 훨씬 경제적이었다.

한국이 러시아 가스로 대체하면 진혁은 남은 물량을 인도에 팔 수 있어 수송비가 절감되니 그 자체로 이득이었다.

진혁의 제안에 쿠렌코 총리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이걸 잘 이용하면 최근 머리를 아프게 하는 문제가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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