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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289화 (289/307)

289화. 두만강 국제 합작구

요즘 일본 총리가 사할린에서 일본까지 해저 터널을 건설해 가스관은 물론 철도까지 연결하자고 계속해서 제안해 오고 있었다.

재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러시아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쉽게 승낙하지 못하고 있었다.

영토 분쟁 중인 쿠릴 열도가 바로 지척에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심심하면 자기 내 영토라고 주장하며 분란을 일으키는데, 주변을 개발해 인프라까지 갖추게 되면 더 난리를 부릴 게 뻔했다.

쿠렌코가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말했다.

“일본 놈들은 믿을 수가 없어.”

“그렇지요. 항복 선언문을 낭독하며 국왕이 국제 사회에 머리 숙여 제국주의를 포기하겠다고 천명해 놓고는, 이제 와서 헌법까지 고쳐 가며 다시 군비 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일본의 해저 터널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네.”

얼굴을 잔뜩 찌푸리는 쿠렌코에게 진혁이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일본 정부가 다시 그런 제안을 해 오면 그 돈으로 한일 해저 터널을 뚫으라고 하세요. 그럼 가스관과 철도 연결은 자동으로 될 거라고.”

“한일 해저 터널을?”

“원래 일본 측 제안으로 논의가 진행 중이었는데, 갑자기 독도 영유권 주장을 하는 바람에 중단됐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이쪽과 연결하는 게 유리하겠다고 판단해 재빨리 방향을 튼 것 같습니다.”

“얍삽하기는. 그런 기회주의자들이 어떤 꼴을 당하는지 똑똑히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한국과의 가스관 연결을 이루도록 하지.”

쿠렌코 총리의 강한 의지에 진혁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음 날.

세르게이 대통령은 급하게 북한으로 출발했다.

* * *

주말을 편히 보내고 출근한 국민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알라딘 그룹 서진혁 회장, 전격 은퇴 발표!

어려운 한국 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으로 수많은 화제를 일으키며 젊은이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된 그의 느닷없는 은퇴였다.

알라딘 그룹에는 사실 확인을 묻는 전화가 빗발쳤고 주식 시장마저 하락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어 들려오는 소식에 국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북-중-러, 31만 제곱킬로미터 규모의 ‘두만강 국제 합작구’ 설치 합의!

윤호열 주석, 북한 개발 펀드를 한반도 개발 펀드로 확대 시사!

초대 행정청장에 서진혁 씨 내정!

정규 방송마저 중단한 채 이어지는 속보였다.

진혁이 3개국이 조성한 대규모 개발 사업에 전념하기 위해 스스로 그룹 경영에서 물러난 것을 알고 그의 용단에 큰 박수를 보냈다.

* * *

“그만둘 거면 저나 그만두지, 왜 괜히 나까지…….”

“저도 잘렸습니다.”

김상균이 괜히 나섰다가 희준의 날카로운 눈초리만 받았다.

진혁의 은퇴 발표로 백수(?)가 된 일행은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 차편으로 우수리스크로 이동했다.

“공항부터 만들어야겠다.”

“중국 쪽에 몇 개 있지 않아? 블라디보스토크 공항도 지척이고.”

“거긴 중국 쪽에 너무 치우쳐 있어. 러시아 영토인 블라디보스토크 항을 계속해서 이용할 수는 없지. 남부의 접경 지역에 공항이 있어야 해.”

“만들든지. 난 오랜만에 타냐 할머니가 해 주신 밥을 먹으면서 좀 쉬고.”

“아예 푹 쉬지 그래?”

“그럼 더 좋…….”

무심코 답을 하던 희준이 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진혁이 이렇게 순수하게 허락할 놈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노려보는 눈초리가 예사롭지 못했다.

얼른 말을 바꿨다.

“하루만 쉬고 공항 부지 알아보러 다녀야지. 쉬긴 뭘 쉬어. 으이그, 내 팔자야.”

“해야 할 일이 태산이다. 맘 단단히 먹어라.”

희준은 괜한 너스레를 떨고 나서야 간신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고려인 정착촌의 솔빈 센터는 이전의 한산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건너온 알라딘 건설의 한인갑, 두리이엔티 송진용, 동행의 우상우, 극동연구소의 김영복, 고려인연합회장 바실라 최와 조선족연합회장 서창목까지.

그들과 함께 온 이들도 있어 센터 안에는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진혁이 등장하자 바실라 최와 서창목이 벌떡 일어와 얼른 달려왔다.

“고맙습니다, 회장님.”

“정말 이렇게 해내실지는 몰랐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들은 벌게진 눈으로 양손을 각각 나눠 잡고 머리를 조아리기 바빴다.

“이제 겨우 첫걸음을 떼었을 뿐입니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여러 번 시도했다 실패한 것에서 보듯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두 분이서 동포들을 이끌고 많이 도와주십시오.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날 센터에서는 잔치가 열렸다.

만두도 빚고 부침개도 부치고, 고려인들이 즐겨 먹는 한국의 토속 음식들은 죄다 나온 듯 했다.

진혁은 내내 안 보이다가 이제야 나타난 권기남에게 물었다.

“어딜 갔다가 이제야 오신 겁니까?”

“말도 마라. 할망구가 너 온다고 얼마나 호들갑을 떠는지, 새벽부터 음식 장만하는 일을 거들었다.”

“할망구요?”

“아……. 김타냐 말이다. 아이고, 저기 음식 떨어졌네.”

대충 얼버무리다 얼른 자리를 피하는 권기남의 행동에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좀 이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우상우가 다가오고 있었다.

“센터장들이 돌아본 바로, 농사짓는 데는 최적의 조건이라고 합니다.”

“그래요?”

“개발이 안 된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합니다. 토지가 아주 비옥해서 어떤 작물을 심어도 잘 자라겠다며 다들 흡족해하고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여긴 땅이 아주 넓어 농지는 얼마든지 조성이 가능합니다. 이번에는 스마트 팜이 아니라 대규모 농장을 조성해야 하는데, 가능하겠답니까?”

“그건 전혀 문제 될 게 없습니다. 요즘 농사도 기계가 짓지, 사람이 할 일은 별로 없습니다. 기계들이 날로 발전해서 농약도 드론을 이용해 칠 정도입니다.”

“잘됐습니다. 이곳 환경에 맞는 작물을 선정해 계획을 세워 보라고 하세요. 대두는 무조건 재배하셔야 합니다.”

“중국에서 전량 구매해 준다면 당연히 재배해야지요. 그것 말고도 여러 품목이 있습니다.”

먼저 와서 조사해서 그런지 우상우는 연해주 특산품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러시아산 차가버섯은 물론 자연산 송이버섯, 더덕 등 한국인이 좋아하는 여러 특산품이 많이 나온다고 했다.

거기에 한국이 점점 더워지면서 인삼 재배에 적합한 기후를 찾기 힘든데 이곳은 지력이 강하고 게르마늄 성분이 많아 인삼 재배에 최적지라고 했다.

“불가리아에 있는 오필구가 조만간 건너와서 같이 논의해 보기로 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서로 논의해서 최적의 방안을 강구하십시오.”

적당히 격려하고 물러나려는 진혁을 우상우가 얼른 막았다.

“그것 말고도 또 있습니다. 동해안 쪽 센터장들이 이구동성으로 수산물 가공 공장을 세워야 한다고 합니다.”

“수산물 가공 공장을요?”

“지구 온난화와 바다 오염으로 동해안 지역 어획량이 줄어든 반면 이곳은 청정 해역으로 이를 가공, 판매한다면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합니다.”

“역시 여럿이서 머리를 맞대니 좋은 의견들이 많이 나오네요. 잘 정리해서 따로 보고를 해 주십시오.”

우상우가 떠나자 다음으로 찾아온 이는 한인갑이었다.

“중국에서 이곳에 많은 공을 들인 것 같습니다. 러시아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하산-나진 간 철도를 연결해 놔서 교통 인프라는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럼 당장 시급한 건 뭐로 조사됐습니까?”

“교통 여건이 좋아져서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는 반면에 이곳 우수리스크에는 4성급 호텔조차 없을 정도로 숙박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 부분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한국의 독립 운동 근거지 중 하나로 이상설 유허지, 최재형 생가 등 여러 유적이 있습니다. 이를 한국 독립 운동 유적 관광지로 개발하고 관련 인프라를 개발한다면 훌륭한 관광 자원이 될 겁니다.”

“역시 생각하고 계셨군요. 다음으로는 두만강 합작구에서 가장 개발된 곳은 중국 쪽 훈춘입니다. 중국 정부가 동북 3성 개발 계획에 따라 국제 버스 터미널을 설치하고 그 부분을 고급 주택 단지와 쇼핑몰로 건설해 놨습니다. 대규모 면세점도 있고요.”

“그쪽은 너무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습니까?”

“저도 그게 걱정되어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건 그대로 두고 바닷가 인근에 대규모로 복합 쇼핑센터를 세울 계획을 잡아 보세요.”

“복합 쇼핑센터요?”

“쇼핑, 관광, 문화, 레저, 숙박을 어우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복합 센터를 지어 두만강 합작구의 랜드마크로 삼을 겁니다. 그러니 예산 걱정은 마시고 최대한 크게 계획을 잡으십시오.”

“……알겠습니다.”

한인갑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물러갔다.

진혁이 통이 크다는 것은 방글라데시에서 사업하면서 여러 번 경험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보다 훨씬 더 큰 지역을 개발하며 랜드마크로까지 크게 계획을 세우라고 하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건축물을 만들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진혁이 겨우 여유가 생겨 식사를 마치고 나자 바실라 최와 서창목이 다가왔다.

편하게 식사하라고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찾아온 듯했다.

“음식은 입에 맞으셨습니까?”

“집에서 먹던 그 맛입니다. 아주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행입니다. 이건 지난번에 말씀하신 동포들 명단입니다. 각기 특기와 일할 의지가 있는지 조사해서 작성했습니다.”

두 사람이 내민 서류를 훑어봤는데 꼼꼼히 잘 작성되어 있었다.

바실라 최 회장이 눈치를 보다 말했다.

“러시아 쪽 합작구 부청장으로 임명된 로마노프는 저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친한파로 우리 동포들과 관계가 좋습니다.”

“다행이군요.”

하나의 합작구로 묶였지만 엄연히 각 국가의 영토라, 중앙 정부에서 부청장을 내려 보내 보좌하기로 합의했었다.

바실라 최가 말을 이었다.

“고려인들은 문제가 없는데 조선족 쪽은 아닌 모양입니다.”

“왜요?”

“장차민은 연변 조선족 자치주 주장이었던 자로 한족입니다. 공산당의 명을 받고 자치주 내 조선족 비율을 낮추는 데 앞장섰던 자입니다.”

중국 정부의 소수 민족 차별화 정책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소수 민족이 단결해 독립을 요구하며 사회 불안 세력이 되는 것에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조선족 자치주도 끊임없이 해체 시도를 했다.

조선족 비율이 낮은 둔화시를 편입시킨 것도 그렇고, 주장으로 한족을 내려 보낸 것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더 나아가 이주하는 조선족들의 땅은 그들이 사들이고, 차별을 피하려면 자녀를 한족과 결혼시켜야 한다며 ‘한족 동화’ 현상을 부추기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농촌 지역은 학생 수 감소에 따라 통폐합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조선족 학교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조선족 청소년 가운데는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상황이었다.

“장차민은 조선족 기업을 불시에 세무 조사 해 힘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자를…….”

“제가 두 분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진혁이 서창목의 말을 자르고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곳이나 조선족 자치주나 우리 땅이 아닙니다. 그 땅의 주인은 엄연히 러시아와 중국입니다. 그걸 우리가 먼저 부정하고 러시안과 중국인을 배척한다면 저들은 다시 이 땅을 빼앗아 갈 겁니다.”

“……!”

“저는 이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겁니다. 역사는 중요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새로 시작하는 만큼 여러분들도 새 마음으로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은 지워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그같이 행동해도 묵과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일단 지켜봐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서창목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진혁의 말이 하등 틀리지 않았다.

다만 장차민은 쉽게 변할 인물이 아니기에, 어떤 분란이 일어날지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진혁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때는 조선족이 그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한국, 북한, 고려인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예전처럼 함부로 행동하지는 못할 것이다.

두 사람이 떠나자 진혁도 일어나려고 했는데 희준이 호들갑을 떨며 앞에 와 앉았다.

“야, 대박이다, 대박. 이건 무조건 대박이야.”

“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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