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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297화 (297/307)

297화. 불길한 만남

“이번 프로젝트의 종속 기간이 50년으로 되어 있는데, 폐전지의 처리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건…….”

이번에도 판광은 답변을 바로 하지 못했다.

태양광 전지의 수명은 평균 30년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짧았다.

중간에 새로운 장비로 교체하면 폐전지가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태양광 전지가 황산, 포스핀 가스 등과 같은 유해 물질로 만들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이외에도 납, 크롬, 카드뮴과 같은 인체에 해로운 독성 물질도 포함하고 있었다.

이에 유럽 국가들은 태양광을 판매할 때 생산자가 재활용 의무까지 지도록 법제화했지만 중국은 모른 척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체렝바트 총리의 눈이 다시 차가워지는 모습에 판광이 얼른 머리를 쥐어짜내 답했다.

“아프리카 국가에 수출하면 됩니다.”

“아프리카 국가에요?”

“그쪽은 무조건 싼 것만 찾기 때문에, 폐전지를 넘겨준다면 고마워할 겁니다. 효율성이 떨어져서 발전용으로 불가능하지만 가정용으로는 10년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전기 공급을 받지 못하는 사막 지역의 주민들에게 빛을 만들어 주는 좋은 일에 사용되니 일석이조입니다.”

“10년 후에는요?”

나름 잘 대처했다며 뿌듯한 표정을 짓던 판광이 이어진 진혁의 말에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이야기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건 그쪽 나라에서 책임질 일이라며 무책임하게 답변할 수 없는 자리라는 것 정도는 판광도 모르지 않았다.

장내에 침묵만 흐르자 체렝바트 총리가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판광 회장님은 이제 돌아가셔도 되겠습니다.”

“아니…….”

“돌아가시라고 했습니다!”

체렝바트 총리의 호통에 판광은 얼굴이 불게 달아올랐지만 물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 나라의 지도자는 그였다.

판광이 나가자 진혁이 우려감을 나타냈다.

“저렇게 돌려보내도 되시겠습니까?”

“상관없습니다.”

“발표까지 한 마당에 번복하면 나중에 문제를 삼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빈 땅은 많습니다.”

거듭 우려감을 내비치던 진혁은 이어진 체렝바트의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몽골은 한반도의 일곱 배가 넘는 넓은 나라지만 인구는 320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린란드를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낮은 나라였다.

여러 가지를 이유를 대며 이번 프로젝트를 질질 끌어 판광이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체렝바트 총리가 판광을 가차 없이 내칠 수 있는 것은 진혁 때문이었다.

그도 진혁이 여러 나라에서 사업하면서 그 나라의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식의 투자 계획을 가져오셨습니까?”

“고비 사막에 태양광 발전소 단지를 건설했으면 싶습니다.”

“고비 사막에 태양광 발전소 단지를요?”

체렝바트 총리가 진혁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며 물을 정도로 크게 놀랐다.

이곳을 찾는 외국인 투자자의 대부분은 광산에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진혁은 태양광에 주목하고 있어 의외였다.

거기에 발전소도 가장 척박한 땅에 건설하겠다고 하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진혁이 말을 이었다.

“우선 200헥타르 규모로 100메가와트급 태양광 발전소를 세우고 싶습니다. 울란바트로까지의 송전 설비 건설까지 합쳐 전체 사업비는 2억 달러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체렝바트 총리가 입을 딱 벌리며 놀라워했다.

투자금도 투자금이지만 100메가와트면 몽골 전체 전력 생산량의 10%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하지만 그건 약과에 불과했다. 이어지는 진혁의 말에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랐다.

“올해 투자분이 그렇다는 것이고, 향후 10년간 매년 100메가와트 발전소를 지어 나갈 겁니다.”

“역시 소문대로 대단하십니다. 우리나라에 그런 대규모 투자를 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만,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그럼 10년 후에는 서 회장님의 발전소만으로 우리나라에 필요한 전력생산량이 꽉 차게 됩니다. 결국 다른 발전소들이 모두 문을 닫아야 하는데,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건 걱정 마십시오. 올해 분을 제외하고 향후 생산되는 전기는 전량 수출할 겁니다.”

“수출요?”

“그렇습니다. 남북한과 일본에 수출할 계획입니다.”

진혁은 체렝바트 총리에게 남북 경협과 한일 해저 터널에 대해 들려줬다.

“러시아 쿠렌코 총리와 이미 합의된 계획입니다. 울란바토르에서 몽골 횡단 철도를 따라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만나는 러시아의 울란우데 역까지만 연결하면 함께 송전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엄청난 계획에 체렝바트 총리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몽골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제 투자가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기회의 땅’으로 불리던 나라였다.

구리 등의 자원이 풍부한 몽골은 글로벌 경제 팽창과 중국의 성장세에 힘입어 하루아침에 중진국으로 진입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세계 경기 하강으로 원자재 가격이 반토막 나면서 그 꿈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거기에 미중 무역 전쟁으로 중국 경제가 후퇴하면서, 중국에 크게 의존해 온 몽골 경제가 무너지고 있었다.

이에 IMF는 몽골은 바다가 없어 자원을 중국 이외의 다른 나라에 수출하기도 어렵다며, 수출 다변화를 꾀하지 못하면 몽골은 잃어버린 기회의 땅이 될 거라 경고까지 한 실정이었다.

이런 비관적인 전망에 기투자한 외국 기업마저 철수하고 있어 국가 부도를 걱정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말을 마치고 기다리던 진혁에게 체렝바트 총리가 질문했다.

“서 회장님의 계획에 우리 정부가 별도로 동참해도 되겠습니까?”

“당연히 가능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전력 수요는 충분합니다. 이에 반해 몽골은 고비 사막 일대만 해도 태양광과 풍력으로 생산할 수 있는 잠재적 전력 생산 규모가 1,300기가와트입니다. 러시아는 수력과 천연가스가 풍부하고요. 한일의 자본과 기술, 몽골과 러시아의 자원이 결합하면 이상적인 전력망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북한까지 5개국이 참여하는 전력망을 완성하면 각국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고맙습니다. 서 회장님 덕분에 암담하기만 했던 우리나라에도 서광이 비치게 됐습니다.”

체렝바트 총리가 크게 반기며 기뻐했다.

그 뒤 용건만 처리하고 바로 돌아오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기분이 좋아진 체렝바트 총리가 만찬을 열어 줬다.

체렝바트 총리의 뜨거운 환대를 받고 돌아온 진혁은 우선 한국의 이현국 대통령에게 전화로 몽골의 일을 알렸다.

나라간 전력망 협력은 국가가 나서서 먼저 결정해 줘야 가능한 일이었다.

크게 기뻐한 이현국 대통령은 조만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에서 관련국 정상들을 만나 협의하겠다고 했다.

한편, 뿌듯한 기분으로 두만강 합작구 사업에 진혁이 몰두하고 있을 때 중국에서는 난리가 났다.

왕칭린의 방으로 리광잉이 급하게 뛰어 들어오며 말했다.

“서진혁 회장이 또 일을 벌였네.”

“두만강 합작구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거기가 아니라 몽골이네.”

“몽골?”

의아해하는 왕칭린에게 리광잉이 알고 있는 사실을 알렸다.

“차이나솔라의 판광 회장이 몽골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다며 외교부에 항의를 해 와 조사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네.”

“몽골에서 태양광 발전을 해서 생산한 전기를 남북한과 일본으로 가져가겠단 말인가?”

“맞아. 거기에 러시아도 함께한다고 하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전력 수급 계획에 큰 문제가 생기네.”

중국 역시 빠른 경제 성장만큼 전기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었다.

베이징이 ‘스모그의 지옥’이란 오명을 쓰는 것을 알면서도 화력 발전과 석탄 공장을 늘릴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한계에 봉착했다.

이렇게 몇 년만 더 가면 베이징은 물론 중국 대도시는 인간이 숨 쉴 수 없을 지경이 될 판이었다.

이에 신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는 한편 외국에서 전기를 수입해 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몽골은 인접국이라 최우선 대상 국가였다.

“그자는 대체 왜 또…….”

“지금은 서 회장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대책을 세우는 게 시급하네. 이번 다보스 포럼에서 남북한, 러시아, 일본, 몽골의 5개국 정상들이 만나 동북아 전력망 계획에 합의한다고 하네. 우리도 반드시 들어가야 해.”

“알겠네. 내가 다보스로 가지.”

왕칭린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미중 무역 전쟁 중이라는 이유로 카이저가 참석하지 않겠다고 하자 왕칭린도 가지 않겠다고 통보했었다.

결정을 번복하는 게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전기는 경제의 혈액과 같은 존재였다. 무조건 확보해야만 했다.

* * *

진혁은 며칠째 태양광 발전에 매달렸다.

다보스 포럼에서 각국 정상이 만나 합의하면 바로 시작할 일이라 준비를 해 둬야 했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희준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들어왔다.

“손님이 찾아왔어.”

“누군데?”

“엠마 슈왑.”

“카지노 월드의?”

“맞아. 라스베이거스에서 만난 셀든 슈왑의 딸.”

“……데리고 들어와.”

썩 반가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굳이 피할 이유도 없었다.

잠시 후 희준이 손님을 데리고 들어왔는데, 혼자가 아니었다. 함께 온 이는 더 반갑지 않은 이었다.

주드 모건.

컴퓨터 천재로 인공 지능의 대표 격인 스톰고를 만든 이였다.

하지만 진혁과의 내기에 연이어 지면서 성격이 삐뚤어져, 지금은 카지노 월드의 게임 개발자로 전락한 열등아가 되어 있었다.

자리에 앉자 엠마 슈왑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멋진 세상을 만드시는 분인 줄 알았으면 그때 좀 더 친해질걸 그랬어요.”

“후회는 언제 해도 늦은 법이지요.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EMC 그룹에서 진행하는 두만강 시티의 카지노에 대한 운영권을 카지노 월드에서 맡고 싶어서 왔어요.”

“그건 공정한 심사를 거친 후에 정해질 겁니다.”

EMC 그룹의 기본 설계도가 완성되어 이를 근거로 운영사 신청을 받고 있었다.

두만강 시티는 진혁이 공언한 대로 자체 자금으로 건설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운영사를 미리 선정해 건설에 참여시키면 나중에 운영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EMC 그룹의 제안을 받아, 관련 작업을 진행 중에 있었다.

“물론 그렇지만 카지노 월드는 세계 최고의 카지노 그룹입니다. 거기에 여기 모건 씨가 합류하고 고객 친화적인 다양한 게임 기계를 개발하면서 매년 매출이 늘고 있고요.”

“그럼 당연히 카지노 월드가 선정되겠지요. 그런 문제로 굳이 이렇게 따로 찾아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 이후로도 엠마가 얼마간 더 이야기를 꺼냈지만 진혁은 철저히 사무적으로 대하고 답변도 짧게 했다.

더 이상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반증이었다.

결국 엠마가 포기하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이렇게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고 물러날게요. 운영사로 선정되면 그때 정식으로 다시 찾아올게요.”

“그러십시오. 다만 실무적인 일은 여기 오희준 개발국장이 맡고 있으니, 필요한 건 오 국장에게 이야기하면 해결해 줄 겁니다.”

굳이 다시 얼굴 볼 필요 없다는 진혁의 답변에 엠마의 얼굴이 처음으로 싸늘하게 굳었다.

이런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진혁은 그런 그녀의 변화를 알지 못했다. 주드 모건의 차가운 시선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엠마를 따라 일어난 주드 모건이 진혁을 노려보며 말했다.

“너희들에게는 단순히 기계겠지만 스톰고는 내겐 자식 같은 존재였다. 네놈이 그 애를 빼앗아 갔어.”

“아니, 이자가…….”

“그만해라.”

나서려는 희준을 진혁이 막았다. 상대할 가치도 없는 자였다.

대신 엠마를 보고 말했다.

“다시 보지 맙시다.”

엠마가 주드 모건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환심을 사도 모자랄 판에 아예 재를 뿌리고 있었다.

희준이 엠마 일행을 데리고 나갔지만 진혁은 한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스톰고를 자식으로 여겼다는 주드 모건의 마지막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 * *

다보스 포럼이 한창 열리고 있을 때 진혁은 사무실에서 태양광 관련 자료를 훑어보고 있었다.

핸드폰 소리에 진혁이 전화를 받았다.

-……이현국입니다. 지금 당장 이곳으로 와 주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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