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화. 혜주에게 닥친 위기
-관광은 재미있나?
“누구냐?”
-네가 내 자식을 빼앗아 갔듯이 나 역시 그럴 거라고 했지.
“주드 모건……!”
-함부로 행동하지 마라. 그때는 네 딸을 영영 보지 못할 테니.
“이놈!”
-다시 연락하지.
전화가 끊겼다.
“실장님! 혜주야……!”
소리치며 김상균에게 달려가는 진혁은 이미 넋이 나간 상태였다.
혜주의 실종은 빠른 시간 내에 확인 됐다.
“미안해. 다른 애들을 보느라…….”
“제 책임입니다. 제가 옆에 붙어 있었어야 했습니다.”
“여보…….”
희준과 경호원, 지민마저 뭐라 했지만 진혁의 귀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정신이 혜주에게 팔려 있었다.
그때 진혁의 핸드폰이 진동으로 울렸다.
문자가 도착했다.
이전과 다른 번호였지만 모건이 보낸 것이다.
[한 시간 내에 훈춘의 밍밍호텔로 오면 내 선물을 받을 수 있을 거야.]
김상균에게 보여 주고 빠르게 시선을 마주쳤다.
급히 나가려는 진혁의 팔을 누군가가 잡았다. 눈물을 한가득 머금고 있는 지민이었다.
“여보…….”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진혁을 부르는 게 전부였다. 그만큼 정신적 충격이 컸다.
진혁이 안아 주며 말했다.
“혜주는 무사할 거야. 내가 꼭 찾아서 같이 돌아올게. 조금만 기다려.”
“믿을게요…….”
모기만 한 목소리지만 지민의 허락을 받은 진혁이 서둘렀다.
한 시간 만에 그곳까지 가려면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진혁과 희준을 태운 김상균의 차가 출발하자 알라딘 시큐리티 직원들이 탄 차가 뒤를 따랐다.
희뿌연 먼지를 날리며 사라지는 차량 행렬 뒤에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진혁네 가족들만 남았다.
달리는 차 안에서 희준이 말했다.
“경찰이나 공안에게…….”
“안 돼.”
진혁이 희준의 뒷말을 막았다.
어설프게 접근했다는 모건이 어떤 선택을 할지 몰랐다.
“너무 위험해.”
“하지만…….”
“놈이 앙심을 품은 것은 나야. 내가 인질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혜주만은 반드시 무사히 구해야 해. 실장님도 혜주의 안전이 최우선임을 명심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김상균이 어쩔 수 없이 답했다.
지금으로서는 이쪽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도 의미가 없었다.
선택권은 전적으로 모건이 쥐고 있었다. 상황에 맞춰 대응할 수밖에 없는 답답한 현실이었다.
하지만 자신들만의 전력으로 모건을 만나겠다는 진혁의 전략은 초장부터 어긋나 버렸다.
삐뽀, 삐뽀!
“경찰이 따라 붙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냥 달려요!”
“알겠습니다.”
지금은 한가하게 경찰에게 상황 설명을 할 시간이 없었다. 무조건 시간 내에 도착해야 했다.
달리는 사이 뒤따르는 경찰차들이 열 대 가까이 늘었는데, 다행히 앞을 가로 막지는 않았다.
그 시각.
엠마는 밍밍호텔의 정면이 보이는 인근 호텔의 한 객실에 있었다.
모건은 약속대로 폭탄 가방을 지닌 채 서진혁의 딸과 함께 여전히 밍밍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이제 서진혁이 도착하면 화염과 함께 모두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그런 엠마의 희망은 같이 지켜보던 조셉의 비명 소리에 연기처럼 흩어져 버렸다.
“억! 저게 뭐야?”
커다란 트럭 두 대가 밍밍호텔 앞에 멈추더니 짐칸에서 무장한 요원들이 쏟아지듯 뛰어내렸다.
“어떻게 된 거죠?”
“빌어먹을. 비밀 요원들입니다. 눈치를 챈 모양입니다. 철수해야 합니다.”
“안 돼요. 서진혁이 아직 도착 안 했단 말이에요.”
“이미 임무는 실패했습니다. 우리까지도 위험합니다.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모건은 어떻게 하죠?”
“어쩔 수 없지요. 제거해서 흔적을 지우는 수밖에.”
조셉이 싸늘하게 말하고 옆에 놓여 있던 원격 조종기를 들었다. 폭탄은 이런 경우를 대비해 멀리서도 폭파시킬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조셉이 붉은색 버튼에 올려놓은 손가락에 힘을 줬다.
펑! 하는 폭발음과 함께 호텔이 화염에 휩싸이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밍밍호텔에서는 어떠한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이게 왜 이러지?”
조셉이 몇 번이나 더 버튼을 눌러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된 거죠?”
“잘 모르겠습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무슨 일을 이렇게 해요!”
“죄송합니다. 원인은 나중에 고민하기로 하고, 어서 출발해야 합니다.”
엠마가 한 소리 더 하려다가 참고 일어났다.
임무는 철저히 실패했지만 탈출하기 위해서는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
엠마가 호텔 뒷문으로 빠져 나가고 한참 후 진혁이 탄 차가 밍밍호텔에 도착했다.
차가 멈추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무장한 군인들이 나타나 주변을 에워쌌다.
밖으로 나온 진혁에게 두 명이 다가와 인사를 했다.
“러시아 연방보안총국에서 나왔습니다.”
“중국 국가안전부에서 나왔습니다.”
“어떻게 아시고 나온 겁니까?”
“테러가 있을 것이라는 첩보가 있어 감시 중이었습니다. 그 대상이 청장님이신 줄은 몰랐습니다.”
“아이는 어떻게 됐습니까?”
“아이라니요? 저희들이 철저히 수색했는데, 놈들은 이미 떠나서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놈이 이곳으로 오라고 했단 말입니다.”
“아, 청장님 앞으로 메모가 남겨져 있었습니다.”
요원이 건넨 메모에 적힌 것이라고는 전화번호가 전부였다.
진혁이 핸드폰을 꺼내자 중국 국가안전부 요원이 얼른 막았다.
“위치 추적을 걸어야 합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호텔 안의 로비로 들어가 테이블에 장비들을 빠르게 세팅하자 진혁이 전화를 걸었다.
-내가 네 목숨을 한번 살려 준 거다.
“개소리 마라.”
-놈들은 널 그냥 폭탄으로 날려 버리는 것으로 만족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아니야. 널 그렇게 곱게 죽게 놔둘 수는 없지. 자식을 빼앗기고 죄책감과 복수심 속에 살아가는 고통이 어떤 건지 네놈도 처절하게 느껴 봐야 해.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넌 내가 반드시 잡고 만다.
-네가 상대할 자는 내가 아니야. 메일을 보내 놨어. 그걸 보면 이 일을 벌인 자들이 누군지 알게 될 거야.
“날 데려가고 혜주는 풀어 줘라. 그 애는 아무런 잘못…….”
-그러면 스톰고는 잘못을 해서 네놈이 빼앗아 간 거냐?
“그건…….”
-마지막 게임을 제안하지. 두 시간 안에 날 찾으면 네가 이기는 것이고, 그러지 못하면 너도 나처럼 지옥 속에 살게 될 거다. 기다리마.
“안 돼. 모건, 모건!”
진혁이 소리쳐 불러 봤지만 핸드폰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요원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X’를 그렸다. 위치 추적에 실패했다는 의미였다.
“각자 흩어져서 아이를 찾아라.”
앉은 채로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하는 진혁의 모습에 각 정보 조직 지휘자들이 요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우리는 호텔 내부를 다시 한번 뒤진다.”
김상균도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러시아와 중국 요원들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혜주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진혁은 평생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게 바로 주드 모건이 노리는 바였다.
어떻게든 그런 상황은 막아야 했다.
둘만 남자 희준이 안타까운 시선으로 진혁을 바라보다가 눈빛을 굳혔다. 이렇게 넋 놓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진혁에게 소리쳤다.
“일어나. 네가 포기하면 혜주는 어떻게 하라고!”
“포기한 적 없다. 아니, 절대 포기 못 해.”
어느새 진혁이 머리를 들고 벌게진 눈으로 소리치듯 말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우리도 얼른 찾아보자.”
“잠깐, 희준아. 우리가 두 시간 안에 혜주를 찾을 수 있을까?”
“인마, 방금 무조건 찾는다고 했잖아.”
“아니, 내 말은 주드 모건이 그렇게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곳에 숨었겠냐는 말이야. 놈은 뛰어난 게임 개발자면서 게임 마니아야. 절대 평범한 방법으로는 놈을 찾아낼 수 없어.”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뾰쪽한 수가 없잖아?”
“아니. 주드 모건은 물론 세상 사람들 모두가 모르는 나만의 방법이 있어.”
“너만의 방법? 그게 뭔데.”
“잠시만.”
두리번거리던 진혁이 목표를 찾아 다가갔다.
러시아 연방보안총국 지휘관이었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인공위성 통제국이 어디 있습니까?”
“블라디보스토크 항에 있는 극동사령부 내에 있습니다만.”
“그곳으로 가야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알겠습니다. 헬기를 준비하겠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지휘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니콜라이 국장이 쿠렌코 총리의 지시라며 최대한 협조하라고 했었다.
* * *
헬기장에 착륙하자 진혁과 희준이 내렸다.
군인이 다가와 말했다.
“준비한 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면서 쿠렌코 총리에게 전화해서 허락을 받았다. 인공위성은 국가의 최상위 자산으로 분류되어 지도자의 허락이 필요했다.
입구로 가자 지민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혁이 빠르게 물었다.
“가져왔어?”
“여기요.”
지민이 내민 것은 마법 펜던트 반지였다.
두 번째 바나힐 산을 찾았을 때 선물 가게에서 찾아내 지민과 혜주에게 각각 선물로 주었었다.
반지를 챙긴 진혁이 말했다.
“같이 들어갑시다.”
“아니요. 전 아버님 어머님과 같이 있을게요. 혜주는 당신이 데려올 거라 믿고 기다릴 거예요.”
“……알겠소. 꼭 혜주를 안전하게 데리고 가리다.”
진혁이 지민을 한번 안아 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서둘렀다고 하나, 모건이 약속한 두 시간에서 이제 겨우 삼십 분도 남지 않았다.
지민이 간절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돌아섰다.
양가 부모님들도 걱정이 대단했다.
지민은 진혁이 혜주를 무사히 찾아 돌아올 때까지 그분들을 돌보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나라가 구소련일 정도로 러시아의 인공위성 기술은 발달되어 있었다.
현재는 세계 각국이 다양한 이유로 인공위성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통신 위성, 방송 위성, 기상 위성, 과학 위성, 항해 위성, 지구 관측 위성, 기술 개발 위성, 군사 위성 등으로 사용 범위도 날로 확대되고 있었다.
진혁이 엘리베이터를 타자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밑으로 내려갔다.
중요한 시설이다 보니 전쟁 시 적의 포격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지하 위성 통제실로 가자 별을 네 개나 달고 있는 장성과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 여인이 다가왔다.
“국동함대 사령관입니다. 총리실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올가 이바보프입니다.”
“올가 박사님은 전파 송출 수석 전문 요원으로…….”
“지금 모든 전파 송출을 중단하고 여기서 나온 신호를 내보내 주십시오.”
진혁이 내민 반지를 받아 든 올가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긴 하지만 평범한 반지로 아무런 신호음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서요, 빨리!”
“예…….”
진혁의 재촉에 올가가 얼른 머릿속의 생각을 끊고 돌아섰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있는 쿠렌코 총리가 허락한 일이었다.
거기에 이곳은 개인의 생각은 존재하지 않는 군부대였다. 상명하복만 있을 뿐이었다.
올가가 반지를 녹음실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마이크로파로 변환하는 작업을 했다.
장거리로 송출하기 위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었다.
사령관이 밖에서 초초한 표정으로 서성이는 진혁을 보고 올가에게 속삭이듯이 물었다.
“아무 소리도 안 나잖아?”
“인간의 귀는 가청 주파수밖에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 범위를 벗어나는 소리는 못 들어요. 여길 보세요. 미약하지만 파동이 나타나잖아요?”
올가가 가리키는 모니터에서는 수평선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어, 그러네. 근데 이걸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그건 나도 모르죠.”
“하긴. 우리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그만이지.”
사령관 역시 복종에 익숙한 군인이었다.
곧 올가가 진혁에게 다가가 말했다.
“준비됐어요.”
“송출하시면서 진동 상태를 계속 확인해 주세요. 진폭이 커지는 곳에 아이가 있습니다.”
“그게……. 알겠습니다.”
상식에 벗어난 진혁의 명령에 올가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반대 의견을 억지로 참고 돌아섰다.
그녀 역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어머니였다. 지금 진혁이 어떤 심정인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올가는 진혁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조건 질러 보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전파를 송출한 지 십 분이 지났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녀는 더 이상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고개를 돌려 뒤에 서 있는 진혁에게 말했다.
“이 이상은…….”
“어? 움직였다!”
희준이 놀라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