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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302화 (302/307)

302화. 사랑의 기적

얼른 다시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본 올가의 눈이 커졌다.

사실이었다.

내내 미동도 않던 모니터의 그래프가 크게 출렁이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어? 줄어든다.”

“방금 그 위로 다시 돌려요.”

“잠시만요.”

갑자기 통제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인공위성은 비행하는 궤도의 고도에 따라 크게 정지 위성과 이동 위성으로 나뉜다.

진동을 확인한 것은 이동 위성이라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송출 지역이 옮겨가게 되어 있었다.

지나온 지역에 재송출하기 위해서는 송출 안테나를 방향을 재조정해야 했다.

진폭이 최대치로 커지는 모습에 진혁이 소리쳤다.

“거깁니다!”

“잠시만요……. 찾았습니다. 크라스키노 고속도로 인근의 빈 현장 사무소입니다.”

쿠렌코 총리의 극동 개발 계획 중에는 프리모리예 프로젝트도 있었다.

이에 따라 중국의 창춘에서 훈춘을 거쳐 러시아의 크라스키노, 자루비노 항에 이르는 고속도로가 건설 중이었다.

그 도로를 이용해 훈춘에서 빠져나와 크라스키노에 숨은 거다.

사령관이 급히 부하에게 지시했다.

“당장 특수 부대를 출동시켜.”

“저도 갑니다.”

사령관이 갑자기 끼어든 진혁을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봤지만, 진혁의 눈빛은 그보다 더 훨씬 더 강렬했다.

만일 허락하지 않는다면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모습이었다.

진혁은 쿠렌코 총리가 애지중지하는 인물이었다. 일의 성패하고는 상관없이 그에게 안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은 향후 진급에 좋지 않았다.

“좋습니다. 모시고 가라.”

특수 부대장의 얼굴이 당장 험하게 일그러졌다.

민간인을 위험한 군사 작전에 합류시키는 사령관의 결정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역시 명령에 따라야 하는 군인이라 반발하지는 못했다.

다시 위로 올라가 헬기장으로 가자 중무장한 특수 부대원들을 태운 수송기가 대기하고 있었다.

진혁과 희준이 올라타자 헬기가 위로 떠올랐다.

십 분도 채 남지 않았다.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특수 부대 지휘관이 벽을 의지하며 진혁에게 다가왔다.

“위에서 내린 지시라 모시고는 갑니다만, 작전에 투입은 안 됩니다.”

“아니. 난 반드시 현장에 가야겠소.”

“그럼 우리는 당신을 보호하느라 당신 딸을 구하는 임무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그걸 원하십니까?”

“……알겠소. 그 아이를 반드시 구해 주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휘관이 돌아가자 암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진혁의 손을 잡아 오는 이가 있었다.

희준이었다.

“혜주는 무사할 거야. 걱정 마.”

“그래. 반드시 그래야 해.”

진혁도 희준의 손을 힘껏 맞잡았다.

* * *

주드 모건은 마지막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이 일을 시작할 때 이미 살 생각은 버렸다. 아니, 스톰고를 빼앗기는 순간 이미 자신은 죽은 영혼이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여기서 한 많은 생을 마감할 작정이었다.

그런 그의 눈에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혜주의 모습이 보였다.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얼마나 당찬지, 납치되고도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보통 성인들도 이런 경우에는 공포감과 불안감에 이성을 잃는데 이 아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적개심마저 드러내고 있었다.

주드 모건이 컴퓨터로 자동 동시 통역기를 실행시킨 다음 무선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그렇게 빌어도 소용없어. 세상에 신은 없거든.”

“신께 비는 게 아니에요. 아빠에게 기도하는 거예요.”

“네 아빠 서진혁이라도 별수 없어. 시간 내에 여길 찾을 확률은 0%도 안 돼. 그만 포기해.”

“아니에요. 우리 아빠가 내가 간절히 기도하면 꼭 데리러 온다고 약속했단 말이에요.”

“바보같이 그걸 믿니?”

“난 바보 아니에요. 혜주예요.”

그 아비에 그 딸이라더니.

꼬박꼬박 말대꾸하며 오히려 따지는 혜주의 모습에 모건의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

이 아이는 이렇게 항의라도 하고 있지만 말 못 하는 스톰고는 진혁에게 잡혀가 노예처럼 부려지고 있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

“개자식. 평생 지옥 속에 살게 해 주마.”

이를 갈던 모건이 갑자기 들리는 비행기 프로펠러 소리에 급히 밖으로 나갔다.

회갈색 수송기가 하늘에 떠 있었고 그 위에서 밧줄들이 줄줄이 내려오고 있었다.

모건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아직 삼 분이나 남았는데.

이번에도 놈은 자신의 예상을 깨고 시간 내에 나타났다. 결국 마지막 승부마저 자신이 패배했다.

급히 안으로 들어간 모건이 폭탄의 타이머 스위치를 최소로 세팅하고 눌렀다.

‘30초…….’

빠르게 줄어드는 숫자를 확인하고 모건이 이를 갈았다.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패배의 쓰라림을 안겨 준 진혁에 대한 분노가 다시금 치밀어 올랐다.

만약 눈앞에 있다면 갈기갈기 찢어 죽여 버리고 싶었다.

그런 분노는 겁에 잔뜩 질린 얼굴로 줄어드는 숫자를 바라보는 혜주에게 향했다.

“네 잘난 아빠 때문에 괜히 네가 좀 더 일찍 죽게 됐다.”

“아니야. 아빠는 반드시 날 구하러 온다고 했어.”

“이제는 신이라도 너를 구할 수 없어.”

“아니야. 아니란 말이야! 우리 아빠가 이걸 쥐고 기도하면 반드시 온다고 약속했단 말이야.”

혜주는 말뿐만 아니라 실제 마법 팔찌를 쥔 채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그사이 타이머 숫자는 한자리 수까지 떨어졌다.

아무리 어린 혜주라도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모르지 않았다.

밀려드는 공포감에 처음으로 혜주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아빠…….”

혜주의 간절한 기도와 상관없이 타이머가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5, 4, 3, 2, 1……!’

혜주의 눈에 맺힌 눈물이 버티지 못하고 밑으로 떨어져 마법 팔찌를 적셨다.

팍!

그 시각.

진혁도 무릎을 꿇고 빌고 있었다.

“혜주, 우리 혜주를 살려 주십시오.”

장비를 갖추고 하강 준비를 하는 특수 부대원 앞이었다.

뜨거운 부정에 대원들은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도 진혁에 대해 알고 있었다.

거칠 것 없는 걸음으로 세계를 휘젓고 다니는 세계 최고 기업자 중 한 명이 자신들에게 무릎을 꿇고 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추하거나 비굴해 보이지 않았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 간절히 바라는 모습에 숭고함마저 느껴졌다.

항상 같은 마음이지만 이번 임무는 꼭 성공하고 싶었다.

대원들의 그런 마음을 대변해서 지휘관이 입을 열었다.

“살아 있다면 반드시…….”

꽈과광!

그 순간 밑으로부터 굉음이 들리면서 뜨거운 열기가 확 밀려왔다. 그 충격에 수송기가 크게 흔들렸다.

기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올라왔다.

-작전 중지. 급상승한다. 업, 업, 업.

수송기가 빠르게 솟구치며 문이 닫히는 모습에 충격으로 쓰러졌던 진혁이 벌떡 일어나 문을 향해 달려갔다.

“안 돼. 구해야 해!”

맨몸으로 뛰어내릴 태세였다.

“막아.”

자리로 돌아가려던 대원들이 놀란 표정으로 일제히 진혁을 덮쳤다.

“혜주야, 혜주야! 허어억…….”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며 소리치던 진혁이 갑자기 축 늘어졌다.

“진혁아, 진혁아!”

희준이 급히 달려와 흔드는 것을 대원이 막고 손가락으로 목의 동맥을 확인했다.

“충격이 커서 잠시 기절한 겁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흐윽……. 진혁아, 혜주야……. 으아아앙!”

희준은 한편으로 안도하면서도 밀려드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 * *

번쩍.

죽은 듯 꿈쩍 않던 눈꺼풀이 떠졌다.

“진혁아!”

“여긴…….”

“극동함대 의무실이야.”

진혁이 다시 눈을 감았다. 악몽이기를 바랬는데…….

혜주의 실종과 주드 모건의 전화.

그리고 폭발.

똑똑히 기억났다.

진혁이 다시 눈을 뜨자 희준이 빠르게 말했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지 반나절이나 지났어.”

“혜주는?”

“……다 타 버려서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대. 잔해를 채취해 DNA 검사를 하고 있어. 아직 아무것도 확인된 건 없어.”

말하는 희준이나 듣는 진혁이나 혜주가 그 자리에 없을 수도 있다는 가정이 얼마나 부질없는 기대인지 잘 알고 있었다.

다시 힘없이 눈을 감는 진혁에게 희준이 말을 이었다.

“주드 모건의 말이 맞았어. 이 일을 주도한 자는 뉴트하고 셀든 슈왑이었어. 이곳에서 작전을 실행한 것은 엠마와 오메가 기사단이란 자들이었고.”

희준은 진혁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사이 그의 메일에 접속해 주드 모건이 보낸 파일을 확인했다.

비서실장이라 회사 메일의 비밀번호는 알고 있었다.

주드 모건이 그간 녹화했던 자료들을 전부 보내 와서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진혁의 주먹에는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범인은 따로 있다고, 복수심에 사로잡혀 모든 걸 잃게 해 주겠다는 주드 모건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다.

비록 놈이 깔아 놓은 가시밭길일지라도 피할 생각은 없었다.

마음을 굳힌 진혁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 모습에 희준이 놀라 만류했다.

“아직 일어나면 안 돼. 의사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어.”

“괜찮아. 부모님들 기다리신다.”

희준은 더 이상 만류하지 못했다. 남아 있는 가족들이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 통제실로 가자 모두의 시선이 쏠렸는데, 한결같이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혁이 사령관에게 말했다.

“도움은 감사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폐만 끼치고 갑니다.”

“……총리께서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수습되는 대로 찾아오시라는 말씀도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그럼.”

몸을 돌리려는 진혁에게 곁에 있던 올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잠깐만요. 이상한 곳에서 똑같은 진동이 감지되고 있어요.”

“……?”

“시간과 거리를 감안하면 도저히 불가능한 곳인데…….”

“어딥니까?”

“미국 서부인데…….”

그 말에 사령관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시간에 아이 혼자 거기까지 어떻게 가나? 어쩌면 단순히 비슷한 진동일지도…….”

진혁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번쩍였다.

“혹시…… 그랜드 캐니언?”

올가의 눈이 왕방울처럼 커졌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당장 그쪽 영상을 띄우세요.”

갑자기 커진 진혁의 목소리에 통제실이 바빠졌다.

기대가 잔뜩 서린 표정으로 서 있는 진혁에게 희준이 말했다.

“올가 박사나 사령관 말대로 혜주가 거기에 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아니야. 가능한 방법이 있어. 어쩌면 혜주가 마지막 미션을 제대로 수행했는지도 몰라.”

마법 펜던트의 숨겨진 힘이라면.

“찾았습니다!”

“마, 맙소사……! 어, 어린애가 어떻게 저길…….”

한쪽에서 나는 소리에 진혁이 빠르게 달려가 모니터를 봤다.

“혜주야!”

진혁의 입에서 저절로 큰소리가 튀어나왔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이루어진 그랜드 캐니언의 한 봉우리에 체구가 조그마한 아이가 있었다.

먼 거리에서 찍은 영상이라 형체가 희미했지만, 진혁은 그게 혜주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애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라고 했었다.

진혁이 사령관을 보고 소리쳤다.

“당장 특수 부대를 준비시켜 주십시오!”

“…….”

“왜 명령을 안 내리시는 겁니까?”

“저긴 미국 영토입니다.”

“……!”

진혁은 아차 싶었다.

러시아 특수 부대가 미국 영토에서 작전을 벌일 수는 없었다.

“총리께 보고 드리고 미국에 협조 요청을…….”

“안 됩니다.”

사령관의 의견을 진혁이 바로 막았다.

이 일을 벌인 자들은 미국을 손에 쥐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알리는 것은 어렵게 목숨을 구한 혜주를 다시 죽음으로 내모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모르는 사령관과 통제실 직원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랜드 캐니언은 낮에는 덥지만 밤에는 영하로 떨어질 정도 기온 변화가 심했다.

거기에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야생 동물까지 서식하고 있었다.

어린 여자아이가 살 확률은 0이었다.

사령관이 말했다.

“미국의 승인이 없으면 비밀 작전을 벌여야 하는데 당장은 어렵습니다. 문제는 시간인데…… 어린아이가 아무것도 없이 저곳에서 밤을 보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령관의 말이 맞았다. 무조건 어두워지기 전에 구해야 했다.

“잠시 전화 좀 하겠습니다.”

구석으로 간 진혁이 핸드폰을 꺼내 갈등하다가 마음을 굳히고 걸었다.

-미스터 서, 우리나라에 온 건가?

“잭슨 씨.”

-왜 갑자기 목소리는 깔고 그래, 사람이 불안하게.

상대는 CIA 잭슨이었다.

“잭슨 씨, 혜주가 위험합니다.”

-뭐? 미스터 서 딸? 큰 병이야?

“병에 걸린 게 아니라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 애를 구해 줄 사람은 잭슨 씨밖에 없습니다.”

-어디야. 내가 당장 달려갈게.

“이 일의 주모자는 백악관의 뉴트입니다.”

-……!

잭슨이 말을 잇지 못했다.

잭슨은 평생 미국을 위해 일해 온 골수 애국자였다. 만일 그가 거부한다면 혜주는 어렵게 구한 목숨을 잃게 된다.

진혁이 재촉했다.

“그래도 나서실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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