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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304화 (304/307)

304화. 순탄한 마무리

어떻게 답변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주드 모건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카지노 월드가 관여됐을 공산이 큽니다. 현장에서는 뭐 좀 나왔습니까?”

진혁의 시선을 받은 니콜라이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폭발의 강력한 화력이 모든 것을 태워 버렸어요. 솔직히 주드 모건이 있었는지조차 파악이 안 됩니다.”

“밍밍호텔 쪽은요?”

“거긴 중국 땅이다 보니 우리가 조사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혀를 차던 진혁이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다.

“엠마 슈왑은요? 놈이 이곳에 왔을 때 함께 왔었습니다. 그녀라면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는 것을 겨우 잡았습니다. 같이 있는 놈들이 얼마나 지독한지 우리 요원 여럿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자백은 했나요?”

“무조건 변호사만 불러 달라며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미국 대사가 직접 찾아와 항의하고 갔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앞뒤가 꽉 막힌 상황입니다.”

진혁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결국 러시아는 엠마를 잡았지만 빈손이란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속마음을 그대로 내보일 수는 없었다.

오히려 쿠렌코에게 큰소리로 따지듯이 물었다.

“그래서 지금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는 겁니까? 제 딸이 러시아 땅에서 납치되어 죽을 뻔했습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말씀이 심하십니다.”

“심하긴 뭐가 심합니까? 당신 딸이 그런 상황을 겪어도 그렇게 태평스럽게 말씀하실 겁니까?”

“아니, 이 사람이…….”

“그만해라.”

세르게이 대통령이 괜히 나섰다가 꾸지람만 들었다. 반발하려던 것도 쿠렌코에게 막혀 버렸다.

그로서는 일진이 사나운 날이었다.

쿠렌코가 여전히 의심을 풀지 않고 물었다.

“미국에 가서 딸을 구하면서 얻은 정보는 없는가?”

“CIA 친구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바로 돌아오는 바람에 길게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습니다. 그들 역시 이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만 감지하고 있었을 뿐, 자세한 것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연방보안총국 이야기로는 자네 딸이 그 시간에 미국에 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더군.”

“위성 통제실에서 그와 비슷한 이야기가 오가서 저도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납치하자마자 바로 미국으로 보내졌다면 시간상 전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 역시 엠마의 입을 열게 하면 밝혀지겠지요.”

진혁의 답변에는 막힘이 없었다. 오는 내내 쿠렌코가 어떤 질문을 할지 미리 답변을 구해 놓았다.

이번에는 니콜라이가 물었다.

“전파를 이용한 공진 현상으로 위치를 추적하는 기술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알라딘 그룹은 스마트 기술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만든 데모 버전입니다. 제대로 동작해서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어 쿠렌코와 니콜라이가 돌아가면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지만 진혁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답변이 막힐 때는, 엠마가 알고 있을 테니 입을 열게 하라며 은근히 압박해서 피해 갔다.

결국 더 이상 할 질문이 없게 되자 쿠렌코가 진혁을 놓아주었다.

하루 푹 쉬었다 가고 싶었지만, 기다리는 가족들을 위해 진혁은 다시 모스크바 공항으로 향했다.

희준의 말대로 이틀 동안 원 없이 비행기만 타고 있었다.

진혁이 떠난 후 총리실에서는 여전히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쿠렌코가 니콜라이에게 물었다.

“어떤 것 같냐?”

“흠 잡을 데 없는 답변이었지만 그게 오히려 의심스럽습니다. 딸이 죽을 수도 있는 엄청난 일을 겪은 자치고는 너무 침착합니다. 마치 대본을 짜 놓고 연습해서 온 느낌입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뭐라 딱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신경에 거슬리는 게 있어. 좀 더 철저히 조사해 봐라.”

“알겠습니다만 서진혁에 대한 추가 조사도 불가피합니다.”

“그건 아시아 메가 전력망 실무 회의가 끝난 다음에. 그때까지 어떻게든 엠마로부터 정보를 빼내야 한다.”

“알겠습니다.”

니콜라이의 답변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가 들어와 세르게이 대통령의 귀에 대고 뭔가 속삭였다.

“……그게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세르게이가 쿠렌코에게 얼른 말했다.

“TV를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데?”

“NS통신에서 속보를 내보내고 있는데, 이곳 이야기라고 합니다.”

“뭐? 어서 켜라.”

비서관이 황급히 리모컨을 찾아 TV 켰다.

제목부터가 거창했다.

미국 권력층의 추악한 뒷거래.

백악관 특별 보좌관 뉴트와 슈왑 회장이 자신의 입맛대로 미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장면이 여과 없이 방송됐다.

더 나아가 에너지 패권을 쥐기 위해 저유가를 조장하면서 이득을 취하려는 모의 장면도 있었다.

최악은, 이에 위협이 된다며 아시아 메가 전력망을 기획한 서진혁을 제거하고, 그 죄를 주드 모건에게 뒤집어씌우는 모의 장면이었다.

그 이후에 훈춘의 한 호텔에서 엠마와 오메가 기사단장 조셉이 폭탄을 설치하는 등의 실질적인 작전 계획을 논의하는 장면도 나왔다.

말미에 조나단 기자가 카메라를 응시하고 말했다.

-이 자료들이 제게 보내졌을 때 많은 고민과 갈등을 했습니다. 이 나라를 위하는 선택이 무엇일까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기자는 사실을 알려야 할 의무가 있고, 판단은 국민들의 몫이라 생각해 그대로 내보내기로 했습니다. 시청자들께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현명한 판단을 내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질문을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정보의 출처를 밝혀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진행자의 질문에 조나단이 잠시 생각하고 말했다.

-주드 모건 씨입니다. 그는 자신이 희생양이 될 걸 느끼고 이것을 녹음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더 이상의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진짜 희생됐을지도 모르지요.

조나단은 마지막을 강한 의문이 담긴 말로 끝맺음했다.

속보 방송이 끝났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미국에서 과거 대통령을 불명예 퇴진시켰던 워터게이트 사건보다 더 큰 스캔들이 터진 것이다.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처음으로 입을 연 이는 쿠렌코 총리였다.

“카이저도 얼마 가지 못하겠군.”

“서진혁을 다시 불러들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세르게이의 질문에 쿠렌코가 마땅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불러서 뭐라 할 건데?”

“…….”

“놈이 저 사실을 사전에 알았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야. 이번 사건의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해서 대책을 세우는 게 중요해.”

“맞습니다. 저렇게 공개돼 버렸으니 정보로써의 효용 가치는 사라졌다고 봐야 합니다. 오히려 저걸 이용해 엠마를 압박하고 빅브라더의 실체를 알아내는 데 주력하는 게 낫습니다. 슈왑 회장은 제 몸 하나 간수하기도 바빠 이곳 일에는 신경 쓸 여력도 없을 겁니다.”

“그렇지. 저 정도 증거면 추운 시베리아 감옥에서 할머니가 될 때까지 나오지 못할 거야. 그 점을 알려 주고 놈들을 압박할 수 있는 정보를 얻어내.”

“역시 총리님입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죽이 맞아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세르게이는 심한 위기감을 느꼈다.

쿠렌코의 신뢰감이 니콜라이에게 옮겨 가면 자신의 2인자 자리가 위험해질 게 뻔했다.

* * *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내리고 나서야 진혁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사라지고 편안함이 깃들었다.

지난 2박 3일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을 만큼 피를 말리는 시간들이었다.

그중 이틀은 하늘 위를 날아다니면서 보냈을 정도로 힘든 여정이었다.

그래도 모든 게 잘 끝나서 다행이었다.

무엇보다 혜주가 무사히 돌아온 것이 제일 고맙고 감사했다.

가족들이 머무는 호텔에 도착해 혜주부터 찾았다.

“혜주는 어떻게 하고 있어?”

“계속 잠만 자요.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것 아닌가 걱정했는데, 아빠가 놀라서 그런 것이라고 그냥 두라고 하셔서…….”

“미안해요.”

말을 하다가 눈물을 흘리는 지민을 진혁이 안아 줬다.

다들 걱정을 많이 했겠지만 엄마인 지민에게 비할 바는 아니었다.

한참이나 울먹이던 지민이 안정되자 잠들어 있는 혜주에게 갔다.

제 딴에는 씩씩한 척했지만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일을 겪었다.

그 점이 제일 미안했다.

곤히 잠든 혜주의 얼굴을 쓰다듬어주고 밖으로 나온 진혁은 부모님 방으로 갔다.

양가 부모님이 함께 계셨다.

“심려를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걱정이 많았는데 이렇게 아무 일 없이 끝나서 다행이네. 자네가 고생이 많았어.”

“그렇게 말씀하시고 끝내시면 안 되지요, 사돈.”

장인 김세동의 의견에 아버지 서명수가 반대하고 진혁에게 말했다.

“아범에게 할 말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했다. 네가 아무리 사업을 크게 하고 우리 민족에게 의미 있는 일은 한다 해도, 네 가족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다면 다 부질 없는 짓이다.”

“죄송합니다.”

“무릇 가족이라면 함께 부대끼면서 어렵고 힘든 일도 겪어 가야 정이 쌓이고 관계도 돈독해진다.”

“알고 있습니다. 이번 일만 끝…….”

“그 이번 일이라는 게 벌써 몇 번째인 줄이나 알고 말대꾸하는 것이냐!”

서명수의 꾸지람에 진혁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항상 사업이 조금만 안정되면 가족과 함께 지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사업이 계속 커지고 여러 가지 일들에 엮이면서 그 다짐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서명수가 말을 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한국으로 끌고 들어가 함께 살라고 하고 싶지만, 너만 바라보는 이곳 동포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 네 어머니와 상의해서 우리가 혜주 데리고 이곳으로 오기로 했다.”

“……!”

“강릉 총판은 김 부장이 맡아서 관리해도 된다. 연희도 있으니 둘이서 잘 꾸려 나갈 거야.”

“……그렇게 해라. 네가 좋은 학교까지 지어 놓았으니 혜주는 거기서 공부하면 되고. 가족은 함께 살아야지.”

“사돈 말씀대로 하게. 나도 이번 대통령만 모시고 청와대를 떠나 이곳에 정착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네. 혜주네가 미리 오는 것뿐이니 괜히 우리한테 미안한 마음 갖지 않아도 돼.”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진혁은 서명수와 김세동의 결정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양가 부모님의 결정 덕분에 이번에는 다짐을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됐다.

다음 날.

깨어난 혜주를 데리고 가족들이 한국으로 돌아갔다.

항상 이렇게 헤어지고 나면 한동안 허전함을 느꼈는데, 이번은 아니었다.

같이 살기 위한 짧은 이별이라 기대감이 더 컸다.

* * *

가족들이 한국에서 이사 준비를 하는 동안 진혁과 희준은 코앞으로 닥쳐온 아시아 메가 전력망 장관급 실무 회의 준비로 바쁘게 보냈다.

그리고 그 시각, 미국은 큰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조나단 기자의 뉴스가 나간 뒤 여론이 벌 떼처럼 들고 일어나자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즉시 백악관 뉴트 특별보좌관과 카지노 월드 셀든 슈왑 회장을 긴급 체포해 조사를 벌였다.

결정적인 증거까지 나온 터라 주저했다가는 엄청난 역풍을 맞게 되니 서두른 것이다.

이런 호기를 야당이 놓칠 리가 없었다.

그들은 특별 검사로 하여금 백악관을 조사해야 한다고 소리쳤다. 그런데 카이저가 뉴트 개인의 일탈 행위일 뿐 자신은 전혀 몰랐다고 발표해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에 국민들이 일제히 거리로 뛰쳐나와 카이저의 탄핵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두만강 합작구 내 훈춘에서 아시아 메가 전력망 장관급 실무 회의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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