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화. 동방경제포럼
다보스 포럼 당시 합의한 국가는 물론 아시아 42개국 전체 장관들이 모두 참석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에너지 수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니, 빠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세계 에너지 판도를 바꿀 정도로 파급력이 엄청난 일이라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 언론사들도 기자들을 파견해 취재에 열을 올렸다.
그 중심에는 당연히 진혁이 있었는데, 그에 못지않게 인기를 누리는 이가 있었다.
NS통신의 조나단 기자였다.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명예롭게 은퇴해 잊히고 있었는데, 이번 기사로 다시 한번 퓰리처상 수상이 유력시되고 있었다.
회담 중간에 그런 두 사람이 만났다.
햇살이 비치는 따사로운 카페의 테라스에서 마주 앉았다.
“이곳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충만한데 미국은 어두운 과거로 인해 아주 난리도 아닙니다. 회장님 때문입니다.”
“왜 저를 탓하십니까. 기자님이 너무 크게 터트려서 일이 엄청나게 커져 버린 것이지요.”
“그걸 바라고 제게 자료를 넘겨주신 것 아닌가요?”
“그렇긴 하지요. 고름은 둔다고 살이 되지 않거든요. 기자님이라면 미국을 위한 가장 최상의 방법으로 알리실 거라 믿었습니다.”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불현듯 이건 내가 고민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있는 그대로 사실을 알리고 선택은 국민들에게 맡기는 게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렵고 힘들겠지만, 이번 경험이 미국을 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줄 겁니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세계 1위 국가의 위상을 유지해 온 저력이 있었다. 잠시 혼란은 있겠지만 국민들 스스로 위기를 극복해 나갈 게 분명했다.
조나단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회장님이 보내 주신 자료를 검토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게 뭡니까?”
“녹화된 영상 중에 중간 중간 빠진 날짜들이 있었습니다.”
“……!”
“아무리 뉴트와 슈왑 회장이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에너지 패권은 겨우 그 두 사람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주 큰 세력을 가진 조직이 나서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빅브라더 같은.”
핵심 단어에 힘을 주어 진혁의 표정 변화를 읽겠다는 게 조나단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뛰어난 감각을 가진 조나단이라면 분명 자신이 자료 일부를 빼돌린 것을 알아차릴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제가 주드 모건으로부터 받은 자료는 그게 전부였습니다. 모건이 나중을 위해 일부를 감췄을 수도 있지요. 그 또한 FBI가 조사에서 밝혀내지 않겠습니까?”
태연한 얼굴로 오히려 반문하는 진혁의 모습에서는 어떠한 의심점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조나단은 진혁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침울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무리 FBI라도 그것까지 밝혀내지는 못 할 겁니다.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니까요.”
“그렇다면 그 또한 미국 국민들이 선택하겠지요. 마지막까지 파헤칠지, 아니면 어느 수준에서 멈출지.”
진혁은 처음부터 이번 일은 미국의 자정 기능에 맡길 생각이었다.
조나단의 추궁이 멈추자 이번에는 진혁이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카이저가 더 이상 백악관에 머무르지는 못할 겁니다. 증거가 워낙 명백하니까요. 공화당 내에서도 눈치 빠른 이들이 벌써부터 시위대를 지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당 지도부에서도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덕분에 중국이 죽을 지경일 겁니다.”
“중국이 왜요?”
“아시다시피 무역 전쟁으로 중국 제품에 대한 막대한 보복 관세가 다음 달부터 부과될 예정입니다. 이를 늦추기 위해 많은 양보까지 하며 협상을 벌여 왔는데 이번 사태로 모든 게 중단됐거든요. 카이저가 물러나고 신임 대통령이 선출되기 전까지는 법에 의해 고율의 관세가 부과될 수박에 없게 됐습니다.”
사건 초기에는 이번 일로 중국만 이득을 보게 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중국이 최대 피해국임이 밝혀지고 있었다.
속절없이 미국 시장의 수출은 포기해야 할 상황이라 서둘러 대체 시장을 찾아야 했다.
그간의 고압적인 자세를 버리고 각국에 머리를 숙이는 우스운 광경까지 연출하며 국제 외교가에 망신살이 제대로 뻗치고 있었다.
러시아가 이득을 본 것도 아니었다.
엠마로부터 정보를 얻어 미국을 압박하겠다는 전력은, 그녀가 연방보안총국의 안가에서 살해된 채 발견되면서 무산됐다.
그 일로 최근 잘나갔던 니콜라이 국장이 쿠렌코 총리의 눈 밖에 나면서 세르게이 대통령의 2인자 자리는 다시 공고해졌다.
그렇다고 모든 나라가 다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남북한은 강대국들이 자국 문제로 정신없는 사이 서로 합심해서 빠르게 경협을 추진했다.
북한 노동자가 한국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남한의 기술자들이 북한으로 들어가 철도와 도로 현대화 사업을 추진해 나가고 있었다.
* * *
회의 마지막 날.
참석한 장관들이 만장일치로 채택한 합의문에는 놀랄 만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아시아 메가 전력망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아시아전력위원회(APWC)를 구성하고 위원장으로 서진혁을 추대했다.
이는 각 장관이 본국의 지도자들로부터 승인받은 내용이라는 것도 함께 밝혀 화제가 됐다.
전례가 없을 만큼 빠른 결정이었다.
* * *
2024년은 동방경제포럼의 10주기가 되는 의미 있는 해였다.
두만강 합작구에 세계 각국의 주요 인사들이 속속 도착했다.
쿠렌코 총리는 자신의 업적을 대내외에 알리려는 야심에 이번 행사 장소를 두만강 합작구로 정했다.
두만강 시티가 개장하는 것으로 개발이 완료된 두만강 합작구는 한 해 관광객만 1억 명에 이를 정도로 급격하게 발전해 있었다.
그중 10%에 이르는 100만 명이 의료 관광 목적으로 찾아온 이들이었다.
단순히 의료 관광객만 늘어난 게 아니었다.
원격 진료를 시행하면서 북한은 물론 의료 취약 지역인 인근 몽골과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5국까지 혜택을 받게 됐다.
그렇다고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동방경제포럼은 아시아 국가들 간의 모임 아니야? 근데 왜 유럽이나 다른 대륙 인사들까지 다 오냔 말이야!”
밀려드는 손님들로 희준은 비명을 질렀다.
올해 참석한 국가만도 150개국이 넘고, 인원으로는 만 명 이상이었다.
한국 일행단에 포함되어 참석한 알라딘 화장품의 한지철 사장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어쩌겠냐? 네가 너무 잘난 친구를 둔 탓인걸.”
“아는데요. 그것도 정도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이건 뭐 끝도 없이 일을 벌이니…….”
두만강 합작구는 희준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커져 있었다.
남북 철도가 연결되면서 시베리아 횡단 철도(TSR), 중국 횡단 철도(TCR), 만주 횡단 철도(TMR), 몽골 횡단 철도(TMGR) 등 네 개의 대륙 횡단 철도를 통해 유라시아를 넘나들 수 있게 됐다.
거기에 확장 개장한 나진항은 남극 항로의 출발점이자 동북아 허브항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물류만이 아니라 진혁이 아시아전력위원회 위원장을 맡음으로써 아시아 에너지 중심으로 급부상해 있었다.
세계 모든 국가가 관심이 갖고 지켜보고 있었다.
저 멀리 눈도장을 찍기 위해 몰려온 주요 인사들로 겹겹이 둘러싸인 진혁을 보며 한지철이 말했다.
“아무튼 서 회장이 난 사람은 난 사람이다.”
“지가 잘나거나 말거나. 사전 신청도 안 하고 무조건 찾아와서 자리를 내놓으라는 인사들 때문에 아주 죽을 맛입니다. 전 오늘 중으로 이걸 다 정리해야 한단 말입니다.”
“그래. 고생 많다. 수고해.”
“아니, 선배님, 이걸 보고 그냥 가시면 안 되지요.”
“네 일을 왜 나한테 이야기해? 간다.”
위기를 감지한 한지철이 얼른 자리를 피했다.
“으아아아악!”
뒤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지만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꼼짝없이 잡혀 밤을 새울지도 몰랐다.
쌓여 있는 서류가 장난이 아니었다.
동방경제포럼이 두만강 시티 내 한강 홀에서 성대한 개막식 행사를 가졌다.
쿠렌코 총리의 인사말에 이어 진혁이 연단에 오르자, 따분한 표정을 짓고 있던 기자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진혁은 언제나 빅 이슈를 몰고 다니는 뉴스 메이커였다. 이번 역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진혁이 발표한 내용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이번 행사의 주 의제는 아시아 메가 전력망의 성공적인 구축과 미래 발전 방향입니다. 따라서 저는 여러분에게 북유럽의 슈퍼 그리드, 남유럽-마그레브 슈퍼 그리드, 남부 아프리카 슈퍼 그리드 등과의 연계를 통해 범지구적인 ‘테라 스마트 전력망’을 제안합니다.”
진혁은 전 세계가 하나의 전력망으로 연결되는 꿈의 세계를 제안했다.
상상 그 이상의 계획에 다들 놀라 있다가, 누군가가 손바닥을 마주치는 것을 시작으로 장내가 뜨거워졌다.
박수 소리로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저녁에 열린 만찬장의 분위기가 더 없이 화기애애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둘만 모이면 진혁이 제안한 테라 스마트 전력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그만큼 전력은 각국의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중차대한 사안이었다.
그중에서도 두 테이블의 분위기가 가장 밝았다.
한쪽에는 러시아, 중국, 일본 총리가 한자리에 앉아 있었다.
러시아, 중국은 두만강 합작구의 발전이 주변 지역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자국 내에서 가장 낙후됐던 곳들이 함께 발전하여 높은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었다.
일본은 한일 해저 터널 개통으로 그렇게 원하던 대륙과 연결망을 갖춘 것은 물론 경제, 관광에서 톡톡한 혜택을 보고 있었다.
다른 한 곳은 남북한 정상과 진혁의 테이블이었다.
“서 회장님은 언제나 우리보다 몇 발은 앞서 사시는 것 같습니다. 그 뛰어난 기획력에 매번 놀랍니다.”
말하는 이는 한국의 이현국 대통령이었다.
임기가 끝난 그가 여전히 청와대에 머물고 있는 것은 국민의 높은 열망 때문이었다.
현재 한국은 ‘제2의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만큼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연 평균 경제 성장률이 5%를 넘어서고 있었고, 실업률은 2%가 채 되지 않은 완전 고용 상태였다.
기업이 직원을 뽑는 게 아니라 구직자들이 기업을 고르는 상황이었다.
인재 확보에 혈안이 된 기업들이 정년을 연장한 것은 물론 인재 모시기 경쟁까지 벌일 정도라, 청년 실업은 사전에만 존재하는 단어가 됐다.
남북한이 통일되면 향후 20년간 세계 최대 성장 국가가 될 거라는 세계적인 투자자 존 지크 회장의 추측에 투자금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이에 한국 증시가 십여 년 넘게 유지되던 이천 선을 가볍게 뛰어넘어 현재는 오천 선까지 위협하고 있었다.
이런 뛰어난 업적을 이룬 대통령을 국민들이 놔줄 리가 없었다. 결국 국민 투표로 중임을 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꿨다.
국민들은 이현국이 남북한 통일까지 이뤄 주길 원했다.
“이 모든 게 서 회장님 덕분입니다.”
“저야 길을 제시했을 뿐입니다. 대통령께서 그런 저를 믿어 주시고 대한민국을 올바른 방향으로 잘 이끌어 주신 덕분이지요.”
북한 윤호열 주석까지 거들고 나섰다.
“그건 서 회장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대통령께서 그 자리에서 중심을 안 잡아 주셨다면 북남 협력을 이뤄내지 못했을 겁니다. 국민들도 그걸 알고 다시 자리를 맡아 달라고 간청드린 것이지요. 북남 통일은 비단 한국 국민들의 염원만은 아닙니다. 북조선 인민들은 물론 이곳의 고련인, 조선인,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한민족 모두가 같은 마음입니다.”
그 말에 이현국이 속마음을 털어놨다.
“저 역시 우리 민족의 염원을 꼭 이루고 싶습니다만, 돌아가는 상황이 그렇게 만만치만은 않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진혁이 즉시 물었다. 그가 알기로는 남북한이 통일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남북한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 얼마 전에 미국에 전시 작전권 전환을 논의하자는 제의를 했습니다. 토마스 신임 대통령이 이에 대해 불가하다는 입장을 전달해 왔습니다.”
“……!”
이현국의 말에 진혁은 물론 윤호열의 얼굴까지 굳어졌다.
6・25 전쟁 당시 미군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군 사령관에게 국군의 작전 지휘권을 이양했었다.
전쟁 후에도 남북 분단 상황이 지속되자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의거, 전쟁 시에는 미국 측 유엔군 사령관이 군사 작전권을 가지게 되어 있었다.
윤호열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군사 작전권은 주권 국가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내가 핵무기까지 폐기하며 북남 협력을 이끌어냈습니다. 또한 중국과 협상을 통해 상대국에 전쟁 발발 시 자동 전쟁 개입 조항도 삭제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이를 유지하겠다는 것은 한반도의 통제권을 자신들이 가지겠다는 명백한 도발입니다. 절대 묵과할 수 없습니다.”
6・25 전쟁 후 북한과 중국도 ‘우호 협력 상호원조조약’을 맺어 한미 동맹에 대항했다.
다만 북한은 한국과 달리 군사 작전권까지는 내주지 않았었다.
남한 측은 군사 주권을 포기한 대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테이블의 분위기가 급격히 무거워졌다.
이어진 이현국의 말은 거기에 큰 바윗덩어리를 하나 더 올려놓은 것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