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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306화 (306/307)

306화. 최후의 승부

“미국은 거기에 더 나아가 주한 미군의 방위비 분담금도 전임 카이저 대통령이 요구한 것보다 높은 15억 달러를 내라고 통보해 왔습니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서 주한 미군에 대해 미국이 모든 경비를 부담하고, 한국은 필요한 시설과 경비 등을 제공하도록 돼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1980년대 후반부터 심각한 적자에 직면해 세계 각국에 주둔한 미군 비용 부담을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촉발됐다.

1억 달러로 시작된 한국의 연간 부담액이 8억 달러까지 치솟았는데, 카이저 대통령 시절에는 최소 10억 달러를 제시했었다.

일명 ‘뉴트 게이트’로 불리는 사건으로 탄핵당한 카이저를 이어 백악관을 차지한 토마스 대통령은 전임 국방장관으로 강경론자였다.

“이건 우리를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절대 묵과할 수 없습니다. 그런 자들은 더 이상 우방이 아닙니다. 당장 미군을 쫓아내셔야 합니다.”

군인 출신 윤호열은 군사 작전권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연이어 터진 거친 소리에 주변의 시선이 집중됐다. 좋지 않았다.

진혁이 얼른 윤호열을 자제시켰다.

“그렇게 감정적으로 대응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럼 서 회장은 저들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다만 어렵게 얻은 통일의 기회입니다. 판을 뒤엎는 것이 미국 정부의 작전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

윤호열의 눈이 커졌다.

오늘 이 자리에 강대국 중 유일하게 미국의 토마스 대통령만 참석하지 않고 있었다.

건강상의 문제라고 했지만 진혁의 말을 들으니 의도적으로 오지 않은 것 같았다.

이현국도 진혁의 의견에 동조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이건 누가 봐도 무리한 요구입니다. 중국, 러시아, 일본은 한반도가 지척이지만 미국은 아닙니다. 동북아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이 축소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수록 오히려 한국의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자국의 힘을 믿는 것이지요. 잘못 대응했다가는 중국으로 겨눴던 무역 전쟁의 칼날이 우리에게 향할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미국은 저력이 있는 나라였다.

빠르게 혼란을 수습한 채 여전히 세계 1위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천하의 중국도 진혁의 도움이 없었다면 무릎을 꿇게 했을 정도로 미국이 가진 힘은 막강했다.

그들이 틀어 버리면 여기 모인 국가 전부가 동의해도 남북한 통일은 이뤄질 수 없었다.

침묵만 이어지자 진혁이 자리를 정리했다.

“지금 한반도는 굉장히 중요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번 일이 어떻게 해결되느냐에 따라 우리가 계획했던 일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습니다. 신중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같은 생각이라 답변을 미루고 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서로 해결 방안을 강구한 다음에 다시 말씀을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윤호열마저 동의하자 진혁이 양해를 구하고 테이블을 떠났다.

주변의 시선이 너무 이쪽으로 몰려있었다.

* * *

그 시각.

미국 백악관에서 토마스 대통령이 밀러 비서실장과 그 광경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기자로 위장한 CIA 요원이 촬영해서 보내 주고 있었다.

“아주 식겁한 표정입니다.”

“우리를 무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거야.”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미국이 배제된 어떠한 국제 논의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세계에 똑똑히 보여 줘야 합니다. 한국은 자신들이 얼마나 잘못된 선택을 했는지 뼈저리게 절감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될 거야. 그 전에 저 서진혁이란 자부터 손발을 묶어 둬야 해. 저자가 최근에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 기획한 놈이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내 알라딘 자동차 공장과 아라칸-알쇼핑에 대해 내사에 들어갔습니다.”

“최대한 서두르라고 해. 그걸 시점으로 한국에 대한 무역 보복을 시작할 테니.”

“알겠습니다. 주머니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저들도 인간인 이상 분명 허점이 있을 겁니다. 반드시 잡아내서 절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밀러 비서실장이 나가자 토마스는 차가운 시선을 들어 화면 속에서 테이블을 옮겨 가며 각국 정상과 환담을 나누는 진혁을 노려봤다.

그는 권력 남용 혐의와 살인교사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가 있는 뉴트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북한과 서진혁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고 했을 때, 자신은 이란과 시리아에게 집중해야 할 때라며 반대했었다.

지나 보니 뉴트의 판단이 맞았다.

지금 한반도는 미국의 손에서 거의 다 빠져나간 상태였다.

절대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무조건 서진혁을 잡고 한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되찾아야 한다.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게 펜타곤 출신인 토마스의 지론이었다.

* * *

진혁이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자 양가 부모님이 함께 계셨다.

사업을 정리한 서명수가 가족들과 함께 건너와 물류 창고 사업을 시작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 뒤에 김세동도 약속대로 이현국의 첫 번째 임기가 끝나자 청와대를 나와 이곳으로 옮겨 왔다.

가방을 받아 든 지민이 물었다.

“희준 씨는 안 오셨어요?”

“어. 일이 좀 많아서…….”

“치.”

진혁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옆에서 코웃음 소리가 들렸다.

지현이 토라져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저게 버릇없이 형부 앞에서…….”

“놔둬요. 희준이가 이번 행사 때문에 고생이 많아. 행사가 끝나면 이번에 고생한 직원들에게 포상 휴가를 줄 생각이야. 가족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해.”

“그러니까요. 당신이 알아서 챙겨 주는데…….”

“부모님들 시장하시겠어.”

“알았어요. 얼른 씻고 오세요.”

붙어 있는 두 채의 집에 서명수와 진혁네, 김세동과 희준이네가 살고 있었지만 식사는 이런 식으로 함께하며 가족들 간의 친목을 다지고 있었다.

식사 자리에서 진혁이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것 같자 김세동이 물었다.

“무슨 할 말이 있는가?”

“아닙니다.”

“그래……?”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식사를 하는 김세동의 모습에 진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퇴근할 때까지만 해도 이현국 대통령에게 들은 한국의 문제에 대해 상의를 해 볼까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이내 포기했다.

연임한 이현국은 사퇴를 극구 말렸지만 그만 쉬고 싶다는 김세동의 결심을 꺾을 수 없었다.

실제로 김세동은 이곳에 와서도 일체의 일에 관여하지 않은 채, 장모와 함께 등산을 하며 간간히 버섯을 채취하는 등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골치 아픈 고민거리를 안길 수는 없었다.

혜주의 사건으로 사업에 가족들을 끌어들이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절감했다.

특히나 이번 일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였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 * *

한 달 후.

뉴욕의 JF케네디 공항에 내린 진혁이 차에 타자마자 잭슨이 호통부터 쳤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여길 함부로 들어와!”

“제가 알라딘의 모든 직을 내려놓은 지 꽤 오래됐습니다.”

미국 세무국이 알라딘 자동차는 물론 아라칸-알쇼핑에 대해 탈세 혐의 정황을 포착했다며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AU 회장인 하마드도 체포돼 구금되어 있었다.

이런 이유로 김상균이 미국행을 극구 말렸지만 진혁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는 지금도 옆에 앉아 불안한 시선을 하고 있었다.

“백악관은 그런 것은 신경도 안 써. 뭐든 제 맘대로야.”

“독선이 심한가 보죠?”

“심한 정도가 아니야. 고집불통 카이저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어. 차라리 카이저가 나았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으니 말 다 한 거지. 그러니 미스터 서도 얼른 일만 보고 떠나.”

“잡히면 잭슨 씨가 돌봐주실 거 아닙니까?”

“제임스 국장님이 쫓겨난 이후로 나도 한직으로만 돌리고 있어. 신임 국장이 토마스 라인이거든.”

카이저는 뉴트의 결정에 전적으로 따르기는 했지만 최소한 불러서 의견은 들었다.

하지만 토마스는 비서실장 밀러와만 상의하고 결정한 채 지시만 내리고 있었다.

잭슨이 물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은 왜 만나려는 거야?”

“아시면 도와주시게요?”

“노, 노. 난 미스터 서와 달라. 가늘고 길게 살겠다는 주의거든. 난 가족들을 위해 연금을 받아야 해. 그러니 절대 내게 이야기하지 마.”

“세상일이란 게 뜻대로만 되진 않더라고요.”

진혁이 손사래까지 치며 거부하는 잭슨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약속한 호텔로 가자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록펠러가를 대표하는 셰일 에너지 기업가인 앤서니 회장과 로스차일드가를 대표하는 연방준비제도위원회 녹스 의장이였다.

“두만강 합작구 행정청장 서진혁입니다.”

인사를 하며 앞에 앉는 진혁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들은 자의로 나온 게 아니었다.

이곳에 와서야 상대방도 불려나온 걸 알 정도였다.

진혁이 각기 슈왑 회장과 만나는 장면이 담긴 파일을 보내 줬기 때문이었다.

조나단의 폭로 기사가 나가자마자 양 가문은 전 정보력을 동원에 조난단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확보해서 분석했다.

다행히 자신들의 자료는 빠져 있어 안도했다.

주드 모건이 나중을 위해 빼 놓고 유출했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카이저가 쫓겨나서도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판도라의 상자가 배달되어 온 것이다.

성질 급한 앤서니 회장이 당장 으르렁거렸다.

“겨우 그깟 자료로 우릴 협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오.”

“증거가 명백하니 협박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닙니까? 그냥 조나단 기자에게 넘기면 그만입니다.”

“……!”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마땅히 모실 방법이 없어서 불가피하게 자료를 보내 드린 겁니다. 불쾌하셨다면 사죄드립니다.”

“대체 우리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겁니까?”

“빅브라더의 존립에 대한 의견이 있습니다.”

주저 없이 고개를 숙이는 진혁의 모습에, 순간 기대감을 갖고 물었던 녹스의 눈에서 푸른빛이 감돌았다.

그만큼 크게 분노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빅브라더의 존재는 오래전부터 회자돼 온 터라 특별할 게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 누구도 자신들의 면전에서 그 말을 입에 올리지 못했다.

진혁이 그런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고 말했다.

“제가 처음 동남아시아에 진출했을 때 화교들과의 관계가 좋았습니다. 서로 협력해서 사업을 펼쳐 나갔지요. 그런데 말레이시아 자인 그룹 테홍녠 회장이 자신이 독식하겠다며 욕심을 부리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두 사람 모두 진혁에 대해 조사해서 그 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결국 테홍녠은 축출당했지만 진혁은 오히려 탕분헝 총리로부터 신임을 얻어 그 이후로 승승장구하게 됐었다.

“지금 빅브라더는 테홍녠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우리를 그깟 화교 조무래기와 비교하지 마시오!”

다시 소리치는 앤서니 회장을 노려보며 진혁이 물었다.

“그 말씀은 지금 백악관에서 벌이는 일들을 빅브라더가 승인했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그건…….”

“만일 그렇다면 오늘 제가 두 분을 뵙자고 한 것은 의미 없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이대로 일어나서 각자 방식대로 끝까지 싸우길 원하십니까?”

진혁의 추궁에 앤서니가 답을 못 했다.

그들 역시 최근 백악관의 행태를 못마땅해하고 있었다.

미중 무역 전쟁은 서로에게 큰 상처만 남긴 채 흐지부지 끝났다.

양국 모두 전쟁의 후유증으로 극심한 내수 경기 침체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나마 중국은 두만강 합작구의 효과를 보기라도 하고 있지만, 미국은 오히려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겪어야 했다.

상황이 그러다 보니 록펠러 가나 로스차일드 가 모두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았다.

거기에 베어링 가는 거의 풍비박산이 나서 그 존립마저 위협받고 있었다.

빅브라더 최대의 위기였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만 이어졌다. 하지만 진혁은 그 모습에 오히려 희망을 봤다.

누구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이 자리를 깨고 싶지 않다는 반증이었다.

이 자리에서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느냐에 따라서 한반도의 미래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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