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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307화 (완결) (307/307)

307화. 두 번의 후회는 없었다

녹스가 물었다.

“우리에게 뭘 원하시오?”

“한국에 군사 작전권을 넘겨주십시오.”

“그 문제라면 정말 잘못 오신 겁니다. 토마스가 하는 일이 전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일만은 적극 지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잃는다는 것은 동북아를 포기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한반도 인접국인 일본이 있고, 동남아시아에는 필리핀이 있잖습니까?”

“물론 그렇지만 두 나라 모두 섬나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사시 즉각적인 군사 개입에 한계를…….”

“지금은 4차 산업 시대입니다. 이는 거리와 시간 제약이 없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왜 아직도 눈에 보이는 지상군 투입만이 힘이라는 고전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시는 겁니까.”

진혁의 따끔한 지적에 녹스의 말문이 막혔다.

그의 말이 맞았다. 현대전에서 지상군의 규모는 더 이상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있었다.

첨단 무기와 신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미국은 백악관에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세계 어느 나라건 일 분 안에 지구상에서 지워 버릴 수 있는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

진혁이 말을 이었다.

“또한 군사 작전권 이양으로 한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사라진다는 주장은 잘못된 겁니다. 한국 국민들 사이에서도 미국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중국과 러시아, 일본의 패권주의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이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진심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이현국 대통령과 윤호열 주석도 같은 생각이십니다.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서는 미국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녹스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왜 그런 남북한의 의견이 전달 안 된 겁니까?”

“백악관이 일방적인 제시안을 받아들이라고 강요만 하고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대신 나서서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겁니다.”

진혁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들은 현재 한반도에서 남북한이 급격히 가까워지는 한편 두만강 합작구로 북한, 러시아, 중국이 공조를 다지고 있으니 조만간 한반도의 공산화로 자신들이 밀려날 거라는 위기감을 가지고 있었다.

녹스가 물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남북한이 분단되어 살아온 게 70년이 넘습니다. 급격한 통일은 오히려 혼란만 불러와서 실익이 없다는 두 정상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따라서 시작은 각기 체제를 유지한 상태로 연방제로 하고, 추후 영구 중립국으로 가고자 합니다.”

“영구 중립국요?”

“그렇습니다.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한민족의 독자적인 국가가 되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앤서니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충분히 이해하지만, 중립국은 선언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2차 대전 당시 벨기에는 중립국이었지만 나치 독일은 주저 없이 침공해 나라를 짓밟아 버렸습니다. 덴마크도 마찬가지였고요. 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중립은 의미 없습니다. 미군이 빠진 한반도는 거대 중국과 러시아의 침공을 버텨낼 수 없습니다.”

“틀린 말씀이 아닙니다. 하지만 히틀러는 스위스와 스웨덴도 침공하려 했지만 두 나라가 전 국민의 총동원으로 결사 항전을 뜻을 비치자 포기했습니다.”

“그렇긴 합니다만 그건 두 나라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지정학적으로 중요하지 않아 굳이 전쟁할 이유가 없어서였습니다. 하지만 한반도는 다릅니다. 태평양 진출을 위한 최적의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그 너머가 바로 미국입니다. 한반도가 스스로 지킬 힘을 갖추기 전에는 우리나라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곳입니다.”

“회장님이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한반도는 지금도 미군 없이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믿기 어렵습니다.”

녹스마저 동조하는 모습에 진혁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맺혔다.

“북한이 비록 비핵폐화를 선언하며 핵을 폐기했지만 그들이 보유한 기술이 어디 가는 것이 아닙니다.”

“……!”

“또한 한국은 탈원전 정책 이전에 발생한 막대한 핵폐기물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핵폭탄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습니다.”

너무 놀라 앤서니와 녹스는 입을 딱 벌린 채 말을 못했다.

진혁이 그들을 보고 말을 이었다.

“두만강 합작구는 중국과 러시아의 영토 내에 있고, 고려인과 조선족은 아무런 제재 없이 그 나라를 여행할 수 있습니다. 만일 중국과 러시아 중 한 곳이라도 한반도를 무력 침공한다면, 그들의 수도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옥으로 변할 겁니다.”

“지금 핵 공격을 하시겠다는 겁니까?”

“침략을 그저 지켜만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멀리 떨어진 미국이 오히려 더 안전하게 됩니다.”

녹스와 앤서니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런 상황이라면 한반도의 연방 체제가 미국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결정권은 토마스에게 있고, 그는 고집불통이었다.

그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진혁이 말했다.

“만일 토마스 행정부가 계속해서 한국 정부를 압박한다면 중국과 힘을 합쳐 같이 대항하게 될 겁니다.”

“한국과 중국이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적의 적은 동지니까요. 미중 무역 전쟁으로 어렵게 얻은 마지막 전리품마저 내놓아야 할 겁니다. 반도체는 한국의 기술력이 최고입니다.”

진혁의 마지막 말에 녹스와 앤서니의 눈이 다시 커졌다.

카이저는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면서 크게 세 가지 전략을 폈다.

관세 패권, 에너지 패권,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술 패권.

에너지 패권은 진혁의 저지로 무산됐고, 관세 패권은 마지막에 뉴트 때문에 카이저 스스로 무너져 무산됐다.

하지만 기술 패권만은 중국에 반도체 기술을 공급해 주던 대만 업체를 압박해 사업을 접게 함으로써 중국의 의지를 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더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한 한국이 중국과 손을 잡는다면, 미국 경제에서 유일하게 실적을 내고 있는 반도체 시장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진혁은 마지막 용건을 꺼냈다.

“알라딘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공장들도 각지에 산재되어 있고요. 한두 곳에서 문제가 생긴다고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공장들과 사업체에서 일하는 미국 국민들은 당장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또한 두만강 합작구 내에 진출해 있는 미국 기업이 200개가 넘습니다.”

“우리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토마스가 회장님의 사업체를 건드린 것은 잘못된 결정이었습니다.”

“테홍녠 회장이 저를 해하려 했지만 전 화교의 비자금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오히려 화인 기업가들을 끌어안고 함께 사업을 벌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택했습니다.”

“우리와도 사업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당연합니다.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제가 이번 동방경제포럼에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테라 스마트 전력망’을 제안했습니다. 세계 최대의 전력 생산국이며 소비국인 미국이 빠져서야 말이 안 되지요. 또한 저는 제안을 했을 뿐이지, 실행까지는 무리입니다. 앤서니 회장님 같으신 분이 나서서 그 일을 추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우리가 해야지요. 하하하.”

단순 무식한 앤서니라 표정을 숨길 줄 몰랐다.

만일 그 일을 자신들이 맡아 남아도는 셰일 에너지로 전력을 생산해 팔면 막대한 이득을 볼 수 있었다.

그간의 적자를 단숨에 만회할 수 있는 빅 프로젝트였다.

진혁은 녹스에게도 제안을 했다.

“현재의 미국의 달러화 약세와 주식 시장의 침체는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쳐 과도하게 저평가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투자할 타이밍으로 보고 있습니다. 조만간 JK모건을 통해 매수 의견을 내갰습니다.”

“회장님 뜻 충분히 알겠습니다. 원로원에 보고드리고 백악관을 설득할 방법을 찾아내겠습니다.”

녹스도 바로 반색했다.

세계적인 투자자 반열에 오른 검은 머리 짐의 투자 의견이라면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킬 게 틀림없었다. 더 이상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올 때와 달리 미국을 떠나는 진혁의 표정은 편안했다.

* * *

청와대에서 진혁의 보고를 받은 이현국이 크게 반색했다.

“정말 큰일을 하셨습니다. 서 회장님이 우리 민족의 큰 보배십니다.”

“아닙니다. 이 모든 게 저보다 앞선 선조님들이 기틀을 마련해 놓은 덕분입니다.”

진혁의 중립국 선언안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1885년 갑신정변 다음 해 조선 최초국비 유학생으로 미국에서 수학한 유길준이 집필한

에 나오는 내용이었다.

그는 책에서 조선의 영세 중립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외교 정책이라고 역설했다.

진혁은 그 책을 고려인 문화 센터의 서가에서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었다.

그 이후로 몇몇 뜻있는 이들이 같은 주장을 했지만, 남북한 이데올로기 투쟁과 이를 이용한 세계열강들의 이간질로 뜻을 이루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번이 아니면 언제 또 한반도 통일의 기회가 다시 찾아올지 모릅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통일을 이뤄내야 합니다.”“나나 윤호열 주석 모두 같은 생각입니다. 우리 세 사람이 합심해서 반드시 민족의 염원을 이뤄냅시다.”진혁과 이현국이 서로 손을 맞잡았다.

청와대를 나온 진혁은 김선혁 회장을 비롯한 몇몇 알라딘 식구들과 저녁과 술을 함께 했다.

잠은 호텔에서 자야 했다.

가족들이 전부 두만강 합작구로 이주해 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 * *

다음 날.

진혁은 일찍 일어나 서둘렀다.

서울역에서 경의선 KTX를 타고 평양역에 도착한 것은 두 시간 만이었다.

내리지 않고 계속 타고 가면 베이징까지 여섯 시간 만에 갈 수 있었다.

새벽에 출발해 베이징에서 중국 바이어를 만나 점심을 먹고 돌아와도 되니, 중국과도 일일 생활권이 되었다.

기차에서 내리자 리진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 바라본 평양 시내는 몰라볼 정도로 변해 있었다.

뻥 뚫린 도로에 고층 건물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고, 아직도 공사 중인 곳도 많았다.

“상전벽해라는 말이 이럴 때 쓰라고 있나 봅니다.”김상균도 같은 생각인지 감탄을 터트렸다.

“인민들의 삶이 많이 풍족해졌습니다. 이 모든 게 지도자 동지와 회장님 덕분이라며 고마워들 하고 있습니다.”리진수의 말에 진혁은 뿌듯함과 함께 책임감도 느꼈다. 민족의 염원을 반드시 이뤄 주고 싶었다.

대성산의 주석궁에 가서 윤호열과 점심을 겸해 그간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윤호열도 이현국과 마찬가지로 진혁의 노고를 치하하며 뜻을 같이하기로 약조했다.

원산역에서 동해선 열차로 갈아타서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만나는 두만강역에 내릴 때는 아직 해가 지기 전이었다.

한반도 전역을 반나절 만에 움직일 수 있게 됐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진 하루였다.

* * *

그로부터 며칠 후, 미군 합참의장이 한국군에 군사 작전권을 이양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그날은 AU 회장 하마드가 무혐의로 풀려난 날이기도 했다.

다음 날에는 JK모건에서 검은 머리 짐의 투자 전력을 내보냈다.

그리고 서울에서 열린 남북 정상 회담에서 이현국 대통령과 윤호열 주석이 한반도 연방제 합의서에 서명하는 역사적인 일을 이뤄냈다.

비록 반쪽이지만 남북한 통일을 위한 첫발을 내딛었다.

* * *

2040년 가을의 어느 날.

제주도에 세계 각국에서 주요 인사들이 대거 몰려왔다.

남북한 통일 국가 대한국의 초대 대통령인 서진혁의 영애 서혜주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몰려온 하객들이었다.

두만강 합작구의 행정청장에서 물러나며 진혁은 다시 한번 통 큰 결단을 내려 세계인들을 감동케 했다.

소유한 알라딘 그룹 주식 전부를 알라딘 복지 재단에 기중한 것이다.

AK만이 아니라 알라딘이 진출해 있는 모든 국가의 복지 재단 사무소에 배분해 그 국가의 어려운 국민들을 위해 쓰여지게 했다.

유엔 전체 회의 안건으로 올려진 대한국의 중립국 승인 신청이 만장일치로 가결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오희준, 카심, 마르와, 갈리, 하마드, 김선혁, 한지철 등 과거로 돌아온 자신을 믿어 주고 지지해 준 고마운 이들.

결혼행진곡 소리에 맞춰 혜주의 손을 잡고 식장으로 입장하는 진혁의 마음속으로는 온갖 상념들이 스쳐 지나갔다.

과거의 희수는 결혼식 통보만 한 채 눈물을 흘리며 돌아섰었다.

그때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딸을 붙잡지 못했었다.

자신의 손을 놓고 신랑이 될 남자의 손을 붙잡으며 환하게 미소 짓는 혜주의 모습이 지난 생에서의 딸 희수의 모습과 겹쳤다.

혜주가 활짝 웃는 모습에 진혁의 가슴 속에 내내 남아 있었던 응어리가 안개처럼 사라졌다.

진혁의 얼굴에도 한가득 웃음꽃이 피었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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