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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우드-1화 (1/275)

001화

확, 머리 위에 물이 끼얹어짐과 동시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입 안을 타고 도는 짠맛이 먼저 느껴진다. 그리고 이어서 희미하게 들리는 파도치는 소리와 콧속을 누비는 물비린내.

손발은 의자에 줄로 묶여있다. 이리저리 바닥이 흔들리며 삐걱거리는 소리를 낸다.

배 안에 있는 건가. 고개를 들어 올리니 꽤나 흉악하게 생긴 친구가 누런 이를 드러낸 채 웃고 있었다.

옷 아래로 희미하게 알 수 있는 발달한 승모근과 팔 근육이 눈에 들어온다. 뺨에 나 있는 흉터는 칼에 찔려서 생긴 모양이다.

귀가 뭉개져 있는 걸 보니 이전에는 레슬링을 했던 모양이지. 왼쪽 다리에 붙은 근육이 오른쪽 근육에 비해 빈약한 걸 보니, 레슬링을 그만둔 이유는 왼쪽 다리 때문이다.

살펴보는 사이 녀석이 입을 열었다.

“누가 보냈냐?”

주르륵, 하고 머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짠물을 느끼며 나는 최대한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글쎄, 니 애비?”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곧바로 녀석이 주먹으로 내 뺨을 강타했다. 고개가 확 돌아가며 입 안으로 바닷물과는 또 다른 비릿하고 찝찝할 액체가 퍼진다.

“농담 따먹을 생각 없다.”

바닥에 침을 한 번 뱉은 다음 녀석을 바라본다.

“아쉽네.”

인생 즐겁게 살려면 적당히 농담도 따먹고 하며 살아야 하는데. 녀석이 내 턱주가리를 붙잡고 얼굴을 들이민다.

“냄새 하고는. 스켈링 좀 해라. 1년에 한 번이면 보험도 적용되는데.”

자기 전에 이빨에 담배꽁초를 비비는 것도 아니고.

“말로 할 때 순순히 누가 시킨 일인지 불면 좋게 끝난다.”

얼굴을 구긴 채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지랄, 딱 보니까 내 인생 종착역이 여기인 것 같은데. 말해도 뒤지고, 말 안 해도 뒤진다면야 조금 아파도 말 안 하고 죽을란다.”

나는 흥신소 일을 하고 있다. 똑같이 햄버거라고 불리는 음식도 편의점에서 파는 싸구려가 있고, 호텔에서 몇백 달러 받아가며 파는 햄버거가 있듯이, 이 업계도 같은 흥신소 이름을 달고 있다고 다 같은 수준의 일을 하는 건 아니다.

흥신소 일이 햄버거라면, 나는 몇천 달러짜리 햄버거였다.

호텔의 건설을 수주받기 위해 경쟁사의 예상 입찰가를 알아내 달라고 하는 고객도 있었고, 임원진 중에 산업 스파이로 의심되는 사람의 뒷조사를 부탁하던 회사 사장님도 있었다. 더 나아가 선거 출마 후보의 뒷조사를 의뢰한 경우도 있다. 떼인 돈이나 받아주며 푼돈 받는 흥신소와는 아예 하는 일의 격 자체가 다르다.

가격이 맞고, 내가 정한 규칙에 어긋나지 않고, 해낼 수 있는 일이라면 해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일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뭐가 좀 크게 잘못되었다. 맡아도 문제없는 일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뒷조사를 하다가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땐 이미 늦어있었다.

“서로 피곤하게 하지 말고 빨리 발에 콘크리트나 신겨서 바다로 던져.”

내가 이 짓거리 하면서 별별 일을 다 당해봤어. 흥신소 일 하면서 부자들도 즐겨 먹는 햄버거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는데. 내 입에서 유의미한 정보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그 뒤로 일주일 정도 휴식 시간 없는 구타와 회유가 이어졌다.

“……어르신이 이 새끼 그냥 정리하라고 하신다.”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검게 변했다 반복하는 와중에, 그 소리를 들은 나는 힘겹게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새끼들아.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했잖아.”

녀석들은 내 말에 대답이 없다. 대신, 내 발목에 커다란 쇠공이 묶였다. 자비도 없는 녀석들. 사람을 이렇게 두들겨 패놓고 소금물에 던져버리겠다니.

더 이상 뭐라고 말할 기운도 없다. 나는 후우, 하고 녀석들이 질질 끌고 가는 데로 끌려갔다. 뭐, 애초에 불법으로 규정된 일을 하고 있는 녀석 인생 종 치는 방식이 다 이따위지.

“바다군.”

거 참 겁나게 파랗네. 빠지면 어디 다른 곳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풍경이다.

“여기에 빠지면 시체도 못 건질 거다.”

“아 그러셔?”

어차피 장례 치러 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니 미련 없다. 양옆에서 내 팔을 붙들고 있던 녀석들이 그대로 나를 바다로 집어 던졌다. 발에 달린 거대한 쇠구가 나를 바다 밑바닥으로 끌어 내린다.

온몸을 뒤덮은 두들겨 맞아 터지고 찢어진 상처 속으로 차가운 짠물이 스며들며 지독한 고통을 선사한다. 나는 빠지기 전에 숨을 크게 몰아쉬지 않았다. 어차피 그래봤자 죽을 테니.

점점 바닷속으로 몸이 잠겨 들고, 산소가 부족해진 폐 속으로 공기 대신 바닷물이 채워지기 시작한다. 전신에 스며들던 소금물로 인한 통증이 옅어지기 시작한다. 아니, 오히려 몽롱한 와중에 쾌감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마치, 온몸의 때를 밀어내는 것 같은 시원함. 그리고, 차갑기만 하던 바닷물이 점점 따뜻하게 느껴진다.

물속에서 희미하게 눈을 뜬 나는 바닥에 박혀 있는 검의 형상을 본 것 같다. 죽을 때가 되니 헛것이 보이는 건가. 다시 시야가 검게 흐려진다.

몸의 안팎을 골고루 적시는 바다의 짠물 아래에서. 그렇게 나는 정신을 잃었다.

“……?”

뭐야. 나 아직도 안 죽었나. 몸은 점점 따뜻해지고, 심지어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 지금 숨도 쉬고 있다. 희미하게 장미 향기 같은 것도 나고 있고, 몸에 닿는 것들이 굉장히 푹신하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천장의 작은 샹들리에였다. 그리고 그 위에 타고 있는 양초가 보인다.

“히익.”

나는 그 소리가 들린 편으로 시선을 던졌다. 거기에는 눈을 그게 뜬 여자 한 명이 서 있었다. 이 여자는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하녀복 따위를 입고 있는 거야.

게다가 하녀복 주제에 치마는 또 왜 무릎 언저리에 머무르고 있는 거지. 남자친구 취향이 그런 쪽인가.

“아가씨는 누구?”

질문과 동시에 나는 여자를 살펴봤다. 키는 157cm 정도. 몸무게는 한 42-45kg 사이.

각질이 일어나고 갈라진 손은 주부습진이 원인이고, 무릎 관절이 부어 있다. 무릎점액낭염, 소위 하녀병이라고 불리는 병의 증상이다.

이거, 남자친구랑 좋은 시간 보내려고 하녀복을 입은 게 아니라 진짜 하녀인 모양인데. 여긴 어디고 이 집 주인은 누구지? 어떤 부러운 녀석이 21세기에 이렇게 젊은 하녀를 부리고 있는 거야.

여자는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누구시냐고 사람이 물어보고 있잖아. 대답이라도 좀 해주지?”

내 말에 여자가 몸을 한 번 부르르 떤 다음에 갑자기 확 하고 바닥에 엎드렸다.

“죄송합니다!”

가는 귀가 먹으신 건가. 그러던 와중 내 손으로 시선이 향했다. 온갖 개짓거리를 하느라 거칠어진 내 손은 온데간데없이, 뭐 하나 힘든 일 해본 적 없는 것 같은 뺀질한 손이 자리 잡고 있다.

잠깐, 이게 내 손이라고?

“미안한데, 거울 있나?”

내 말에 엎드려 있던 여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커다란 거울을 통째로 들고 내 앞에 섰다.

아니, 이런 식으로 거울을 보고 싶다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기껏해야 손거울 정도를 예상했지, 설마 벽에 걸려있는 거울을 가져올 줄은 몰랐다.

열정이 넘쳐서 한 일이라기보다는, 공포로 인해 이성을 놓아서 저지른 일 같다.

“…….”

그리고 거울 너머에 비친 형상을 바라본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키는 누워있어서 정확하게 특정하기 힘들다. 짙은 밤색의 머리카락은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다. 나이는 15-17세 사이. 마지막으로, 왼쪽 뺨에 자리 잡은 커다란 화상 자국. 입혀져 있는 옷의 감촉과 침대, 하얀 피부와 굳은살 하나 안 박힌 손을 생각해보면 꽤나 있는 집안의 자식인 것 같다.

결론. 이건 내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알고 있던 내 모습이 아니다.

“씨팔.”

거울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한 마디에, 거울을 지탱하고 있던 여자의 얼굴에서 핏기가 쫙 빠진다.

“더 받치고 있는 것도 고역일 것 같으니, 다시 돌려놓아 줘.”

“알겠습니다. 저기, 혹시 더 시키실 일이라도?”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거울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은 다음 여자는 방을 빠져나갔다. 혼자 남은 나는 방 안을 살펴봤다.

“벽난로가 있다니.”

방 안에 전기 콘센트는 따로 없다. 침대에서 살짝 움직인 나는 바닥에 손을 가져가 보았다. 차갑다. 보일러도 따로 태우지 않는 모양이다.

전기도 안 들어오고 보일러도 안 태우는 주제에 가구는 쓸데없이 고급이라.

“도대체 여긴 어디야.”

그렇게 방 안을 살펴보고 있으려니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남성 한 명이 처음 보는 30대 중후반의 여자와 함께 들어와 나에게 인사를 했다.

남자의 콧잔등에 눌린 자국이 보인다. 원래는 안경을 쓰는 모양이다. 손가락에 녹색 물이 약간 들어있다. 풀 같은 걸 다루면서 생긴 흔적이다. 소매 끝의 잉크 자국도 눈에 들어온다.

그것 참, 요즘에도 잉크 쓰는 사람이 있나?

한편, 여자에게서는 희미하게 용연향과 사향 냄새가 난다. 피부는 다소 창백한 느낌이 감돌 정도로 하얗다. 목에 걸린 목걸이와 왼손 약지에 끼워져 있는 반지가 눈에 들어온다. 하나 같이 고급품이다. 귀한 집 여식이다.

옆에 서 있는 50대 남성은 상대적으로 젊은 이 여자가 다소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높으신 분이군.

“저기, 누구십니까?”

내 말에 나를 보고 있던 남녀가 동시에 움찔했다. 내가 뭐 못 물어볼 걸 물어본 건가.

“도련님, 소인입니다. 레드우드 백작가의 주치의 베른.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의사라. 요즘 의사들이 손에 풀물이 든 채로 잉크로 문서를 쓸 일이 있기는 한가. 그런 의문을 가진 채로 나는 잠깐 눈앞의 자칭 의사를 바라봤다.

아는 척을 해야 할까, 모른 척을 해야 할까.

“미안한데, 전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속여도 금방 들킬 것이다. 의미 없다. 내 말을 들은 의사가 잠깐 안절부절못하다가 입을 열었다.

“도련님은 호수에서 뱃놀이를 하시다 빠지셨습니다. 그 후, 약 3일 정도 실신해 계셨습니다.”

뱃놀이하다가 익사라. 그거 참 기막힌 우연이네. 나도 마침 뱃놀이하다가 익사 당한 참이었거든. 엄밀히 말하면 뱃놀이는 아니었지만.

“도련님, 이름이 기억나시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의사가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옆에 서 있던 여성이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은 채 목이 멘 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얘야, 혹시 나는 알아보겠니?”

나는 그 말에 잠깐 침묵했다. 내가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 여자의 표정은 굉장히 좋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서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생각해보면 유부녀라는 것도 기정사실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 여자가 이 몸뚱아리의 어머니일 가능성이 높은데.

“……죄송합니다.”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기억이 없는 건 없는 거다. 살펴봐서 알아낸 사실과 원래 기억하고 있는 사실은 엄연히 다르니까. 게다가, 나는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여기에서 어설프게 뭔가 기억하고 있는 척하느니, 그냥 머릿속이 백지가 되었다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편이 좋다.

여자가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하더니 자기 이마를 짚고 신음했다. 그리고 옆에서 남자가 그런 여자를 조심스럽게 부축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기억상실이 아닐까 합니다.”

지랄한다. 이렇게 형편 좋은 기억상실이 세상에 어디 있냐. 너 인마 돌팔이지.

어쨌든 저 중년의 설명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느낄 수상한 점이 옅어질 테니, 나로서는 저 중년의 의견에 대찬성이다.

“혹시, 앞에 계신 아름다운 분께서 제 어머니라면…… 아버지는 어디에 계신 겁니까?”

내 말에 여자가 배 아래에서 긁어 올리는 것 같은 힘겨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머니라면, 이 아니라 어머니란다. 마틴.”

“아, 제 이름이 마틴이군요.”

내 대답에 두 사람이 서로 시선을 교환한다. 그리고, 여자가 입을 열었다.

“그래. 너는 선조들이 굽어살피는 자랑스러운 레드우드 백작가의 피를 이어받은 장남, 나의 아들 마틴 레드우드란다.”

백작가 장남이라. 잘 되어가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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