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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우드-6화 (6/275)

006화

잠을 제대로 자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은 맑다.

“한 일주일 휴가 받았었다고 생각하면 되겠지.”

내 인생, 언제부터 그렇게 편하게 굴러갔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해가 지고 밤이 오고 다시 아침이 찾아오는 동안 계속해서 책을 읽고 머리를 굴리면서 내린 결론이었다.

안젤라가 노크를 하고 들어와 인사를 한다.

“도련님, 아침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식당에서.”

말을 마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마련된 테이블에는 오늘도 데이먼이 먼저 와 앉아있었다.

“동생, 이야기 들었어.”

데이먼의 말에 나는 의자에 앉으며 대답했다.

“너무 기뻐서 공중제비를 열다섯 바퀴는 돌으셨겠군요.”

비꼬는 것 같은 내 말투에 데이먼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분명히 그 눈빛에는 승리자의 표정이 떠올라 있다.

“동생이 가문의 영광과 잘못에 대한 보석을 위해 먼 길을 떠나는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겠나.”

“지랄.”

코웃음이 절로 나오네.

“뭐라고?”

나는 그 말에 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대답했다.

“아무 말 안 했습니다. 환청이 들리다니, 요즘 많이 피곤하신 모양이군요.”

내 말에 데이먼은 약간 불편한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표정을 풀었다. 그래, 어차피 사라질 녀석이다 이거지.

그리고, 잠시 뒤 로델린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눈이 부어 있다. 아무래도 레온 백작에게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그녀는 잠깐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내 말에 로델린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 떨리는 손으로 의자에 앉았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다가 걱정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상태로 식사하시면 체합니다, 어머니.”

이 테이블에 앉는 사람 중에 유일하게 내 편인 사람이 있다면 로델린이다. 당연히 가는 말이 부드러울 수밖에 없다. 내 말에 로델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먹을 생각이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잠깐 있다가 입을 열었다.

“아버님에게 제 처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신 모양인데,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내 말에 로잘린이 침을 삼키고 나서 대답했다.

“미안하다, 내가 힘이 없어서…….”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제가 인생을 막살아서 받게 된 벌입니다. 돌아올 길이 없는 것도 아니니, 그런 표정 지으실 필요 없어요. 잠깐 아들이 어디 여행 갔다 온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로델린은 말하고 싶었던 게 있는 모양이었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국경 수비대에서 돌아오는 방법이라.”

데이먼의 말에 나는 그를 보며 대답했다.

“일반적으로 하이랜더 50마리를 잡으면 할당량이 끝난 것으로 쳐서 다시 귀가시킨다고 하던데요.”

내 말에 데이먼이 다소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코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하이랜더가 어떤 괴물인지는 알고 말하는 거냐?”

나는 데이먼의 말을 듣고 로델린을 돌아보며 웃음 지었다.

“어머니, 잠깐만 형님과 따로 이야기해도 괜찮을까요?”

내 말에 로델린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데이먼을 바라봤다.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나와 함께 문을 나섰다.

“형님, 머리에 든 게 없으면 눈치라도 좀 있는 편이 어떻습니까.”

내 말에 데이먼의 안색이 확 굳었다.

“형에게 못하는 말이…….”

“자식이 사지로 끌려가게 생겨서 긴 밤 내내 울고 있었을 어머니. 그 마음이라도 좀 편하게 해주려고 애쓰는 와중에 초 치는 새끼한테, 못할 말이 뭐가 있어.”

내 말에 데이먼이 입을 다물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잠깐 녀석을 위아래로 훑어본 다음에 후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내 어깨 위에 달려 있는 물건이 네 어깨 위에 달려 있는 것보다 몇 배는 성능이 좋아. 그러니 당연히 하이랜더가 뭐 하는 괴물인지도 알고, 그런 거 50마리 잡는 게 얼마나 힘든지도 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기에서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말을 하면서 녀석에게 한 걸음 다가가서 눈을 쳐다봤다.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니까, 그냥 입을 꽉 여물고 아침 식사 맛있게 해. 그리고 돌아가서 당신 어머니랑 함께 저녁에 와인이라도 한 잔 까면서 축배 올려. 옆집 장례식장에 와서 나팔 불지 말고. 아셨습니까, 형님?”

너 행복하고 기쁘고 즐거운 거 다 알아. 어차피 사지로 끌려가는 건 나고, 너는 내가 사지로 끌려가면 잃는 거 하나 없이 얻는 게 잔뜩이잖아?

알겠으니까 그냥 좀 닥치고 있어. 보고 있기 짜증 나니까. 나는 데이먼의 어깨를 툭툭 두들긴 다음 다시 식당으로 돌아갔다.

다시 안으로 들어온 나는 미소를 띤 채로 로델린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내가 다시 한번 네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해보마.”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 저는 괜찮아요. 무사히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국경 수비대 그거 뭐, 궁금해서 한번 찾아봤는데 별거 아니더라고요. 요즘 많이 편해졌다는 이야기도 있고.”

이건 무슨, 군대 끌려가기 전에 걱정하는 어머니를 위로하는 아들이 된 기분인데.

하긴, 크게 보면 그거랑 크게 다를 것도 없는 상황이지. 사실 위험도만 따지고 보면 지금 이 상황이 훨씬 더 위험하기도 하고. 로델린은 별다른 말 없이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미안하다.”

“그럴 필요 없어요. 금방 돌아올 테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잠깐 로델린의 손을 잡고 있었다. 잠시 뒤, 제인과 레온 백작이 문을 열고 식당에 들어왔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잠깐 나에게로 향했다.

“편히 주무셨습니까.”

별로 대답을 원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미안해요, 오늘은 먼저 일어나 볼게요.”

로델린은 잠깐 식사를 하는가 싶더니 물을 마시고 레온 백작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턱을 괸 채로 식사를 하는 세 명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다 먹었느냐.”

나는 레온 백작의 말에 대답 대신 턱을 괸 자세 그대로 수프를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밥 먹고 있어 인마. 레온 백작이 잠깐 나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네가 네 처분에 대해 불만이 있다는 사실은 안다. 하지만, 바꿀 수는 없다.”

“그거 아닌데요.”

나는 레온 백작을 보고 웃었다.

“내가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것도 아닌데요.”

“그럼 뭐냐.”

아, 말해줘야 알아듣나? 알았어, 말해줄게. 조금 있어 봐.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신 다음에 제인과 레온 백작을 번갈아 바라봤다.

“어머니의 눈이 부어 있더라고요. 아마 밤새 우신 것 같은데. 나의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님께서는 아들 걱정에 잠 못 이루는 아내는 버려두고 또 다른 아내와 밤을 보내셨네요. 분명히 제인 부인이 제 어머니가 지샌 밤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겠죠?”

감동적이기도 하지. 내가 쿠르스트 산맥으로 가는 데에는 별다른 불만이 없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아니지 않냐, 이게 가족이야?

나는 부모님을 엄청 어린 나이에 여의고 혼자 살아야 했다. 덕분에 흥신소 일을 하면서 남을 삶을 보내야 했지. 그래서 가끔은 그런 생각을 했거든. 만약 내 부모님이 지금까지 살아계셨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근데 막상 죽고 나서 다른 사람 몸에 들어가, 그 사람의 아버지를 보고 있으려니 영 아니올시다네. 아버지가 있는 것도 있는 거 나름대로 힘든 일이 있을 수 있겠구나.

뭐, 이 친구 같은 아버지가 세상에 그리 흔하겠느냐만.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물컵을 던지듯이 테이블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 참 맛있었습니다.”

얼마나 맛이 좋은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였어. 나는 식당 문을 나섰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신호줄을 당겨 안젤라를 불렀다.

“어제 아버지가 들인 기사가 있을 거야. 이름은 게롯 홀필드. 가능하면 빨리 성 내의 연무장으로 와달라고 전해줘.”

말을 마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편하게 갈아입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 저 멀리에서 누군가가 내 쪽으로 다가온다. 발달한 근육과 몸의 흉터. 손의 굳은살과 단단한 걸음걸이.

“게롯 홀필드 경 맞으신가요?”

내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마틴 도련님. 이번에 아버님의 요청을 받아 도련님에게 검의 길을 알려드릴 게롯 홀필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시간이 촉박합니다. 바로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서두르자고.

“알겠습니다.”

내 말에 수긍한 게롯이 손을 들어 연무장을 가리켰다.

“일단, 뛰시지요.”

긴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게롯이 시키는 대로 나는 뛰기 시작했다.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숨이 차기 시작한다. 환장하겠네. 이 몸뚱어리 왜 이렇게 썩었냐. 17살짜리가 어떻게 서른 넘은 아저씨만도 못한 체력을 가지고 있는 거야.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군.

점점 하늘이 노랗게 변하기 시작하고 구역질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몸에서 땀이 질질 흘러내리는 수준이 이건 땀이 흐르는 게 아니라 그냥 몸이 녹아내리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안 돌아가기 시작한 머리를 억지로 굴려 내가 얼마나 뛰었는지 대충 계산해보니 3분 30초다.

하, 컵라면도 아니고. 3분 30초 지났다고 이렇게 죽을 것처럼 헐떡여야 한다니.

“아직 더 할 수 있습니다.”

나도 알아 이놈아. 굳이 게롯이 언급하지 않아도 아직 더 뛸 수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리고, 어차피 아직 한참을 더 뛰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 뒤로도 게롯의 지시에 따라 나는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레온 백작. 씨팔 새끼. 레온 백작. 씨팔 새끼! 나는 그렇게 속으로 수없이 되뇌며 연무장을 달리고, 게롯이 시킨 운동을 소화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저 멀리 저무는 석양이 보인다. 나는 벌러덩 드러누워서 숨을 몰아쉬며 그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훌륭합니다. 기사의 길을 걷게 되어, 마력을 운용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육체 훈련은 게을리하시면 안 됩니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게롯의 말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마력?”

내 말에 게롯이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본격적으로 검술 교육을 받으신 적은 이번이 처음입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게 한숨을 쉰 게롯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잠시, 뭐 좀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리고 내 등에 게롯이 손을 올려놓았다.

“아마, 아프실 겁니다.”

아프다고? 뭘 하는데 아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소 긴장한 채로 이후의 일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허……억.”

나는 그런 소리를 내고 몸을 떨기 시작했다. 심장을 쥐어짜는 것 같은 고통.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가슴으로 가져가려 하자 게롯이 내 손을 막았다. 그리고 내 심장 부근에서 뭔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구더기가 심장을 파먹는 것 같은 느낌.

진땀을 흘리며 몸을 이리저리 뒤트는 날 꾹 누르고 있던 게롯이 이내 등에 가져갔던 손을 거두고 말했다.

“제대로 구심점은 박혀 있군요.”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가까스로 되물었다.

“방금 전에 그건?”

내 말에 게롯이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몸은 원래 마력을 담아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기사는 몸 안에 쌓아놓은 마력을 이용해 자신의 육체를 강화하지요.”

“이상한 논리군요.”

사람의 몸은 마력을 쌓아놓을 수 없는데, 몸에 마력을 쌓는다니. 내 말에 게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몸 안에 흘러들어왔다가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는 마력을 억지로 붙들어 놓을 구심점이 필요합니다.”

“구심점?”

내 말에 게롯이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마력을 축적하는 성질을 지닌 특정한 물질을 심장에 박아넣는 겁니다.”

미친 새끼들 아니야 이거.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멍하니 게롯을 바라봤다. 그럼, 지금 너도 심장에 이물질이 박혀 있다는 거야?

니들은 그런 걸 심장에 박아넣은 주제에 잘도 칼 휘두르면서 뛰어다니는구나.

게롯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무나 몸에 구심점을 박아넣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박아넣은 구심점에 축적되는 마력의 양은 개인의 노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구심점으로 삼기 위해 박아넣은 물질에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건 타고나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점을 무시하고 무작정 자기 몸 안에 금속을 박아넣었다가 죽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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