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화
구심점에 대한 거부반응의 경중은 혈통을 타고 나는 모양이다. 레드우드 가문을 비롯한 많은 귀족 가문은 오랜 시간 결혼 상대를 정하는 과정에서 그 점을 신경 썼고, 덕분에 그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대부분 구심점에 대한 거부반응이 거의 없다.
물론 돌연변이처럼 이물 반응이 약한 평민이 태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굉장히 드문 모양이다. 평생 모르고 사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이미 마력이 축적된 물질을 박아넣으면 될 텐데.”
어차피 박아넣어야 한다면 미리 마력이 한가득 모여있는 물질을 박아넣으면 될 거 아니야. 내 말에 게롯이 고개를 저었다.
“견디지 못할 겁니다. 대기 중의 순수한 마력은 기본적으로 사물을 파괴하는 성질을 띠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구심점을 박아넣은 다음 거기에 마력을 쌓을 때도 한꺼번에 잔뜩 축적할 수 없다고 한다. 조금씩 끌어모아, 구심점에 가둬진 마력이 육체의 환경에 적응해, 파괴 대상에서 사용자의 육체를 제외할 수 있도록 길들여야 한다.
“제가 가진 마력 중 극히 일부를 도련님의 심장에 박혀 있는 구심점으로 옮겼습니다. 아마, 지금은 왼쪽 가슴에 이물감이 느껴질 겁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말대로, 심장이 뛸 때마다 사람 기분을 더럽게 만드는 이물감이 가슴을 괴롭히고 있다.
“마력을 과도하게 사용하거나, 마력을 축적할 때 조금이라도 욕심을 부린다면 그 이물감은 단순한 불쾌함의 정도를 넘어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해로 이어진다고 한다. 자신의 심장에 박힌 금속의 이물감을 견디지 못해 헤집어 뽑아내려고 하다, 결국 목숨을 잃는 거다.
“왜 하필 심장에 박아넣는 거야.”
다른 곳도 많잖아. 뭐가 잘못되어도 좀 치명적이지 않은 곳들 말이야. 뭐 허벅지 같은 곳.
“심장이 뛰는 타이밍에 맞춰, 구심점에 축적한 마력을 움직이면 혈관을 타고 마력이 함께 퍼져나갑니다. 그리고, 사용된 마력은 마찬가지로 혈관을 타고 다시 심장으로 돌아오죠.”
그렇게 혈관을 타고 도는 마력을 이용해 기사들은 폭발적인 힘을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그 대가는 지독하다. 평생을 짊어지고 가게 되는 불쾌한 이물감. 심장에 이물질이 박혀 있다는 두려움. 조금만 실수해도 죽을 수 있다는 리스크.
“도련님이 기사의 길을 걷고 싶다면 익숙해져야 할 감각입니다.”
나는 그 말에 게롯을 바라봤다.
“말이 나와서 그런데 게롯 경. 뭐 좀 물어보겠습니다. 꽤 중요한 질문입니다.”
“듣고 있습니다.”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한 나는 내 손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한 달 뒤에 국경 수비대에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정도가 될 거라 생각하십니까?”
내 말에 게롯이 잠깐 움찔하고는 대답했다.
“백작님의 말씀에 따르면 도련님은 이미 15살이 되셨을 때 심장에 미스릴을 박아넣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꾸준히 체력을 단련하시고, 제가 도련님이 심장에 박힌 미스릴에 마력을 모으는 방법을 계속해서 느끼게 해준다면 충분히 임무를 수행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약간 건조해진 목소리로 살짝 게롯을 떠보았다.
“평생?”
“그렇습니다. 공명심에 눈이 멀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으신다면, 문제는 딱히 없습니다.”
그렇군. 이대로 게롯의 도움을 받아 한 달 동안 훈련을 하면, 죽지는 않겠지만 평생 국경수비대를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 대답을 들은 나는 눈을 꾹 감았다.
레온 백작이 죽일 생각으로 보내지는 않았다는 게 이런 뜻이었나.
그런 걸로는 안된다. 부족하다. 내가 지금 이 개고생을 하는 이유는 쿠르스트 산맥에서 죽지 않고 평생 동안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이것도 충실히 수행해야겠지만, 뭔가가 더 있어야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게롯은 내가 눈을 감고 있자 피곤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 방으로 향했다. 걸어가던 중, 영주의 권좌 뒤편에 놓인 진열함이 보인다.
“붉은 가지라.”
문득 무슨 생각이 들어 나는 그 진열함 쪽으로 향했다. 진열함 안에는 검이 놓여있던 장소가 움푹 파여 있다. 그 흔적만으로도 대충 목검의 형상을 짐작할 수 있다. 길이는 85cm 정도, 폭은 2.3cm. 한 손으로 잡고 휘두르기 좋을 것 같은 물건이었겠지.
“후손의 번영과 안녕.”
슬프게도 그 후손이라는 개념에 아무래도 나는 포함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뒤를 돌았던 나는 걸음을 다시 멈추고 그 진열함 쪽으로 다가가 눈을 가늘게 뜬 채 여기에 놓여있었을 검의 형태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나는 이내 작은 탄성과 함께 중얼거렸다.
“잠깐만.”
확실하지는 않다. 하지만 분명히 나는 발목에 철구를 달고 바다에 빠진 이후, 정신을 잃기 전에 바닥에 박힌 검의 형상을 본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때 본 검의 형상을 떠올려 보면.
“저 진열함에 딱 들어가겠는데.”
물론, 세상에 길이 85cm에 폭 2.3cm 정도 되는 검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내가 물속에서 본 검은 바닥에 꽂혀있었다. 망할 놈의 바닥에 꽂혀있었다고.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나는 바다에 떨어졌어.”
그것도 시체도 찾기 힘들 거라고 말할 정도로 물이 깊은 바다다. 동해만 해도 평균 수심이 1.7km는 되는데? 더 물이 깊은 태평양 같은 곳이라고 한다면 평균 수심이 대충 5km에 달한다.
근데 익사하기 전에 바닥을 본다고? 그게 가능하겠냐. 바닥 보기 전에 수압에 찌그러져 뒤진다. 갑자기 바뀐 환경에 적응하느라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럴 리가 없잖아.
나는 그 진열함을 노려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내가 검을 본 건.”
바다로 떨어졌을 때가 아니다. 내가 이 몸뚱어리를 차지하게 된 것도 호수에 빠졌다가 건져 올려진 이후가 아니다. 호수에 빠졌을 당시 바뀐 거다.
“내가 익사하며 본 검은 그 호수 바닥에 꽂혀있었을 거고.”
그러면 바닥에 꽂혀있던 검을 본 게 말이 된다. 호수라면 빠져서 익사하기 전에 바닥에 닿는 게 충분히 가능할 테니까. 생각을 정리한 나는 신호줄을 당겼다. 안젤라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혹시, 내가 빠졌던 호수 이름 알고 있나?”
내 말에 안젤라가 잠깐 고개를 갸웃한 다음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내 대답을 돌려주었다.
“예, 로티샤 호수입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알았어, 가서 차 한 잔 내와 줘.”
말을 마친 나는 손을 휙휙 저어 그녀를 내보낸 다음 쌓여있던 책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왕국 지리와 관련된 책이 있었던 것 같은데. 쿠르스트 산맥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서 봤던 책이다.
“찾았다.”
나는 곧바로 책을 펼쳐 목차를 살폈다.
부동호(不凍湖) 로티샤 호수. 레드우드 백작가 영지의 동북쪽에 위치. 면적은 약 75제곱 킬로미터에 평균 수심 약 11m, 최대 수심은 25m. 전형적인 수심이 얇은 대신 면적이 넓은 호수인 모양이다. 점점 더 가능성이 높아진다.
“면적이 저 정도로 넓다면 못 찾을 만도 하네.”
더럽게 넓잖아. 대충 축구장 1500개 정도의 면적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호수의 바닥을 뒤져보는 바보가 있을 리 없지.
“내가 빠진 위치를 알아내야겠어.”
어차피 호수 바닥을 다 뒤져 볼 필요는 없다. 내가 빠진 위치만 알아내면 된다. 귀족씩이나 돼서 혼자 배 타고 나갔을 리는 없으니, 뒤따라 붙은 사람들이 꽤 있겠지. 그 녀석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내가 본 검이 누가 버린 흔해 빠진 검일 지도 모르겠지만, 아니라면…… 그 가능성만으로도 지금 내 상황에서는 찾아가 볼 이유가 충분하다. 어차피 내버린 자식 새끼니 내가 호수로 가는 것에 레온 백작이 딱히 딴지 걸지는 않겠지.
신호줄을 당기자 안젤라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물에 빠질 당시에, 수행하고 있던 사람들을 방으로 불러줘.”
“알겠습니다.”
안젤라는 잠시 뒤 다섯 명 정도의 사람을 데리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뭔데 도살장에 끌려 온 표정을 짓고 있냐.
“도련님, 죄송합니다!”
갑자기 튀어나온 한마디. 나는 표정을 짓고 그 말을 한 녀석을 바라봤다.
“뭐가 죄송한 건데. 니들이 나를 배 위에서 밀기라도 했나 봐?”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불경한 생각을…….”
내 말에 그가 재빠르게 부인한다. 그럼 잘못한 거 없는데 사과는 뭐 하러 하는 거야. 나는 다리를 꼰 채 녀석을 뚱하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로티샤 호수에 갔을 당시, 내가 빠진 장소를 알고 있나?”
내 말에 그가 네? 하는 소리를 낸 다음에 잠깐 고개를 들어 올리려고 했다가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좋아.”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난 다음에 그 사람들을 바라봤다.
“사흘 뒤, 그 호수로 가볼 생각이다.”
내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녀석들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외출 전에는, 백작님의 허락을 받으셔야 합니다.”
아, 귀찮게 되었네. 나는 그 말에 손을 휘휘 저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너희는 준비나 해. 놀러 갈 생각은 아니니 짐을 크게 꾸릴 필요 없다.”
말을 마친 나는 녀석들의 이름을 종이에 받아 적은 다음에 다시 내보내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차를 한 잔 올릴까요?”
“괜찮다. 가서 쉬어.”
내 말에 안젤라가 잠깐 머뭇거린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말했다.
“뭔데? 할 말 있으면 해봐.”
안젤라는 요 며칠 동안 계속 내 붙박이로 있으면서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 많이 두려움이 빠진 상황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겠지.
내 말에 잠깐 주저하던 안젤라가 약간 걱정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은…… 도련님의 붙박이로 있는 하녀들은 6일간 도련님의 붙박이 하녀 업무를 수행한 다음에 6일간의 휴식을 가집니다.”
나는 그 말에 얼굴을 약간 구겼다. 교환 비율로 따지면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수준이잖아.
“왜?”
내 말에 안젤라가 음, 하는 소리를 내고 잠깐 내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잘 모르지만, 도련님께서는 자신의 얼굴을 누군가 쳐다보면 그 사람의 목에 올가미를 걸고 기절할 때까지 목을 조르는 걸 즐기셨다고…….”
뭐 하는 또라이야 그건. 얼굴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인가? 사람이 살다 보면 얼굴에 화상 정도 입을 수 있고 그렇지 뭘 그거 좀 쳐다봤다고 사람 목을 조르고 있냐.
하인이나 하녀들이 내 얼굴을 안 보려고 기를 쓰는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군.
“그거랑 6일 일하고 6일 쉬는 게 무슨 관련이 있지?”
내 말에 안젤라가 작게 호흡을 내쉰 다음에 말했다.
“도련님의 붙박이 하녀를 하고 난 다음에는…… 보통 몸에 이런저런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아서…….”
그래서, 그걸 치료하라고 6일의 휴가를 준다는 건가. 이제 이해가 된다.
“너도 그래서 휴가를 달라 그건가?”
내 말에 안젤라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만 하루만이라도 주실 수 없을까요. 사실, 가족이 정말 보고 싶어서…….”
목이 졸릴 각오를 하고 지원한 이유는 가족을 보고 싶다는 일념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 말에 잠깐 안젤라를 보다가 말했다.
“호수로 가게 되면 어차피 따로 붙박이 하녀가 필요할 일은 없겠지. 그럼 그때 맞춰서 한 3일 쉬다 와.”
안젤라가 나에게 말했다는 건 붙박이 하녀에게 휴가를 주고 안 주고는 내 권한이라는 뜻이다.
“아, 감사합니다!”
“근데, 너는 내 붙박이 하녀로 있은 지 벌써 6일이 넘었는데. 어떻게 된 거야?”
내 말에 안젤라가 대답했다.
“그, 제가 아무 상처 없이 6일을 보내자. 도련님이 저에게는 별로 손을 대지 않는 모양이니, 아예 쭉 붙박이로 있는 편이 어떠냐면서…….”
그렇군, 대충 어떤 식으로 일이 처리되었는지 알겠다. 뭐, 그런 거야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지. 어차피 나도 한 달 뒤에는 먼 길을 떠나게 생겼으니.
“알았어. 그럼 그렇게 알고 있을 테니 이제 돌아가.”
말을 마친 나는 손을 휘휘 저었고, 안젤라는 인사를 한 다음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