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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우드-10화 (10/275)

010화

얼마 가지 않아 마차가 서서히 느려지다가 멈췄다.

“로티샤 호수에 도착했습니다.”

좋아. 마차가 멈추고 난 다음 우리는 마차에서 내렸다.

“그거 참. 김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게 펼쳐진 호수는 꽤나 날이 추운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얼음 한 조각 떠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물에서 김이 올라오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물가로 다가간 나는 호수에 손을 넣어본 다음 어깨를 으쓱했다.

“물은 따뜻하지 않아.”

오히려 차가운 편이다. 게다가, 호수라기보다는 차라리 계곡물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물이 맑다. 어떻게 보면 호수도 고인 물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정도로 수질이 좋은 경우는 드문데. 주변을 둘러보던 와중, 근사하게 만들어진 송수로가 보인다.

“영지의 농사 용수는 어디에서 끌어오나 했더니.”

로티샤 호수가 레드우드 백작령의 주요 용수 공급처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냥 물이 고여서 만들어진 호수가 아니라, 어딘가 지하수가 용출되는 곳이 있거나 할 가능성이 높겠네. 로티샤 호수가 어디 강물과 이어져 있다는 내용은 책에서 보지 못했으니까.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너희와 함께 나룻배를 타고 호수로 향할 거다. 내가 빠진 곳 근처에 도착하면 바로 말해.”

내 말에 하인들이 대답을 돌려주고. 나는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호수를 살펴보면서 식사를 하고 있으려니, 꽤나 규모가 있는 돛단배가 호수 주변을 돌아다니는 게 보인다.

그냥 사람 몇 명이 탔다고 생각하기에는 돛단배의 흘수선이 지나치게 위로 올라와 있다. 짐을 많이 실었다는 뜻이다.

“기분이 영 찝찝한데.”

저 자식들은 도대체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그 와중에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 중 하나가 물 아래로 풍덩 빠지는 것이 보였다.

뭐 하는 거야 저거. 나는 갑작스럽게 이상한 점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하인을 바라봤다.

“저 배가 돌아다니는 장소, 내가 빠졌던 곳 근처냐?”

내 말에 하인이 내가 가리킨 돛단배를 확인하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이네. 나는 그 말을 듣고 나서 게롯을 바라봤다.

“게롯 경, 저 돛단배 위에 있는 사람들을 한번 확인해주세요. 혹시 무기 같은 걸 차고 있습니까?”

마력을 활용한다면 더 멀리 있는 물체도 또렷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내 말에 게롯이 음, 하는 소리를 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나는 그 말에 손에 들고 있던 빵을 내려놓고 말했다.

“식사는 여기까지.”

저 자식들이 뭐하러 이 호수에 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느낌이 좋지 않다. 나는 곧바로 물가에 묶어두었던 나룻배 쪽으로 향했고, 게롯을 비롯해 내가 데려온 사람들도 그 배 위에 올랐다.

“저 녀석들, 우리를 보고 있습니다.”

게롯의 말에 나는 후우, 하고 심호흡을 한 번 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게 된다면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게롯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지금 당장 나룻배를 돌리는 편이 어떨까 싶습니다.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여기에 오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게 무엇이 되었건 저는 반대입니다. 쓸데없는 분란은 피하는 편이 좋습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돛단배에 탄 녀석들이 내 얼굴을 확인하나 싶더니,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다 슬금슬금 배를 우리 쪽으로 돌리는 게 보인다. 나를 알아본 것 같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 호수에 온 것은 붉은 가지를 찾기 위해서니까.”

내 말에 게롯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원래는 이 사실을 밝힐 생각이 없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숨길 수도 없다. 게롯은 지금 당장이라도 배를 돌릴 생각인 모양이었으니까. 근데 나는 배를 돌릴 생각이 없다. 여기에서 살아 돌아가도 결국 나는 쿠르스트 산맥으로 끌려가 거기에서 평생을 살게 된다.

게다가, 저 녀석들이 배를 돌리기 시작한 시점은 내 얼굴을 확인한 직후다. 녀석들이 여기에 온 목적이 붉은 가지 때문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차라리 지금은 내가 온 이유를 밝히고, 이후에 정말로 붉은 가지를 발견한 다음 어떻게 대처할지는 나중에 생각하자.

“레드우드 가문이 수백 년 전에 잃어버렸다는 가보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거 말고 다른 붉은 가지가 있다면 좀 알려주세요.”

나는 그렇게 한마디 하고 난 다음 녀석들을 바라봤다.

“여튼, 붉은 가지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왔는데. 저 녀석들의 행동을 보아하니, 누군가 저와 같은 추측을 한 사람이 있는 모양입니다.”

내 말에 게롯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레드우드 백작가 자제의 목숨은 중요하지만, 붉은 가지가 판돈으로 걸려있는 상황이다 보니 게롯도 방금과 같이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하지 못하는 중이다.

“먼저 손에 넣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저는 어느 정도 위치를 짐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녀석들은 행동을 보아하니 정확한 위치까지는 모르는 모양이에요.”

호수를 돌아다니던 돛단배는 이제 우리의 뒤편을 따라오고 있었다. 게다가, 절반 정도 펴놓았던 배의 돛은 이제 완전히 펼쳐져 있었다.

“더 빨리 저어.”

내 말에 두려운 표정으로 따라오는 배들을 바라보던 녀석이 미친 듯이 노를 젓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나룻배가 돛단배의 속도를 이길 수는 없다.

“이리 다오.”

게롯이 하인에게서 노를 빼앗더니, 그대로 젓기 시작했다. 인상이 약간 구겨진 걸 보니, 마력을 사용하는 모양이다. 그 덕분인지 뭔지, 배는 속도를 받아 쭉쭉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 배가 움직이는 속도가 돛단배와 비슷하다. 따라잡힐 일은 없을 거다.

“감사합니다.”

내 말에 게롯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붉은 가지가 이 호수 어딘가에 있고, 도련님이 그 위치를 안다면 저도 돕고 싶습니다. 레드우드 가문의 붉은 가지에 대한 전설은 기사들 사이에서도 종종 회자될 정도니까요.”

그리고, 게롯이 도움을 준다면 레드우드 가문은 게롯에게 큰 빚을 진 게 된다. 그 정도는 계산을 해두고 움직이는 거겠지.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면, 게롯 경이 시간을 좀 벌어주셨으면 합니다.”

내 말에 게롯이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시선을 돌려 하인들을 바라봤다.

“너희는, 제대로 방향을 말하고 내가 빠진 위치에 도착하면 바로 말해.”

내 말에 하인들이 두려움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뒤 게롯이 크게 외쳤다.

“젠장, 석궁입니다!”

더 이상 거리를 좁히기 힘들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배의 옆면에 석궁 볼트가 박힌 채 부르르 떨린다.

“히에엑?!”

하인들이 기겁하며 괴상한 소리를 낸다.

“아가리 닥치고 집중해.”

나는 다소 거칠게 말하고 나서 녀석들을 노려봤다.

“내가 빠진 장소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배를 돌릴 생각 없다. 알아듣냐?”

내 말에 하인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도련님, 지금이라도 배를 돌리는게…….”

나는 그 말에 시선을 녀석에게로 향했다.

“맞아, 여기에서 그만두고 배를 물가 쪽으로 돌리면 우리 뒤를 쫓아오며 석궁을 날린 자식들도 그냥 돌아가겠지, 그치?”

나는 녀석에게 다가가서 시선을 마주쳤다.

“어깨 위에 머리통이 달려 있으면 그걸 가지고 생각을 좀 해보도록.”

우리가 녀석들을 수상하게 생각했던 것처럼, 녀석들도 이미 우리를 수상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제 와서 돌아간다고 해도 녀석들이 우리를 곱게 보내주지는 않을 거다.

“살길은 하나밖에 없어.”

“하지만, 저 녀석들이 찾고 있는 게 정말로 도련님이 말씀하신 레드우드 가문의 가보인지는……!”

아, 생각을 할 줄은 아는 친구가 하나 있었군.

“그래. 녀석들이 찾는 게 붉은 가지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의심을 사고 있는 이상, 따라잡히면 싸움은 필연이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지금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게롯 경 한 사람뿐이다.

“호수 아래에 붉은 가지가 잠들어 있다면, 그걸 꺼내서 바로 게롯 경에게 빌려줄 생각이다.”

제대로 전해지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붉은 가지는 대단한 힘을 지녔다는 건 알고 있다.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게롯에게 들려준다면 비록 싸울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적다고 해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긴장한 표정으로 하인들을 바라봤다.

“그러니, 긴장하고 제대로 내가 빠진 자리로 안내해. 그게 우리가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

하인들이 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인 다음 떨리는 눈으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저쪽, 저쪽으로 가야 합니다.”

하인들이 길을 안내하면, 게롯이 노를 저어 그 방향으로 향한다. 나는 그런 게롯을 보고 있다가 말했다.

“마력을 너무 많이 쓰지는 마세요.”

이전에 물에 빠지면서 봤던 검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을 벌어 줄 수 있는 건 게롯 말고는 없다.

“네, 그 점도 생각해서 마력과 체력을 안배하고 있습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그런 거겠지. 나는 후우 하고 숨을 내쉬며 따라오는 돛단배들을 바라봤다. 계속해서 석궁을 쏴붙이고는 있지만, 거리가 제법 있어서 그런지 제대로 사람을 맞추지는 못하고 있다.

“거의 다 왔습니다. 왼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하인의 말에 게롯이 다시 방향을 바꾸었다. 나는 계속해서 호흡을 가다듬으며 잠수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여깁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게롯을 보고 말했다.

“게롯 경, 뒤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노를 놓은 게롯이 입고 있던 갑옷을 벗고, 검을 뽑아 들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다음 다이빙했다.

동시에, 구심점에 쌓아놓았던 미약한 마력을 혈관을 통해 온몸으로 보내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물 아래로 들어가며 주변을 살펴보던 나는 이내 바닥에 박혀 있는 익숙한 형상을 확인하고 그쪽을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찾았다. 나는 입으로 공기 방울을 살짝 뱉어낸 다음 바닥에 박혀 있는 검의 형상을 확인했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못 알아봤지만, 분명히 저건 목검이다. 좋아. 내 입가에 미소가 퍼진다. 이제 저기로 헤엄쳐 가기만 한다면…….

무심코 시선을 돌려 머리 위를 보니, 남자 한 녀석이 수면 위에서 나를 향해 다가오는 중이었다.

망할.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속으로 생각했다. 녀석들 중에 하나가 이미 물에 빠져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처음 녀석들을 발견했을 때 사람이 호수로 다이빙하는 중이었지. 설마하니 그놈이 잠수한 상태로 배에 달라붙어 따라왔다고?

도대체 호흡은 뭘로 한 거야. 똥꼬에 아가미라도 달린 거냐?

그런 질문을 떠올리기 무섭게 녀석이 입에 물고 있는 정체불명의 장치에서 공기 방울이 부글거리며 솟구친다. 저걸로 숨을 쉬는 건가. 녀석은 긴 가죽끈 하나를 양손으로 꽉 말아 쥔 채 내 쪽을 향해 헤엄쳐 오는 중이었다.

물속에서 두 번이나 죽을 생각은 없다. 그 와중에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호수 위로 피가 퍼지는 광경도 눈에 들어온다.

녀석이 입을 크게 벌리고 부글부글 물거품을 피워올리며 내 쪽으로 돌진했다. 나는 손을 뻗어 녀석의 양손을 꽉 잡은 채로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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