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화
녀석이 가죽끈을 양손에 휘감은 채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어떻게든…… 딱 한 번만 피하면 된다. 녀석이 가죽끈을 잡은 채 손을 뻗자, 나는 쥐똥만 한 마력을 온몸으로 보내며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 그 손을 피했다. 녀석이 순간적으로 당황한다.
그 틈을 타 역으로 달려들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대로 녀석의 허리에 다리를 휘감고 몸을 바짝 붙였다. 오른팔을 녀석의 목 뒤로 넘기고, 왼손 주먹을 상대의 목젖 쪽에 가져다 붙인다. 오른손이 왼손의 옷깃을 꽉 잡고 그대로 당기며 녀석의 머리에 내 머리를 바짝 붙였다먹혀라, 먹혀야 한다.
“……?!”
오른손이 당기는 힘으로 왼손 주먹이 녀석의 목젖을 꽉 짓누른다.
곧바로 녀석이 물속에서 아등바등 몸부림을 치기 시작한다. 살기 위한 본능적인 몸부림. 저런, 너 이거 빠져나갈 줄 몰라? 이걸 어쩌지. 그럼 너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데.
주짓수의 장점은 간단하다. 풀 줄 모르면 끝이다. 아무리 기를 쓰고 몸부림쳐도, 빠져나가는 해법을 모르면 못 빠져나간다.
뒤늦게 녀석이 발버둥을 치지만, 벗어날 방법은 없다. 그 상태로 얼마나 지났을까. 녀석의 움직임이 뚝 그쳤다. 그 상태로 10초 정도 더 목을 짓누르고 있던 나는 녀석의 입에 물려 있던 정체불명의 도구를 잡아챘다.
“…….”
입에 물자 잠깐 푸쉬, 하는 느낌과 함께 입에 공기가 약간 차오르지만, 그 뿜어져 나오는 공기의 양이 너무 적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입에 물고 있던 도구를 빼서 확인해보니, 빨간불이 반짝반짝 점멸하는 중이다.
젠장, 설마 저장량이 다 떨어진 거야?! 오늘 일진 한번 기가 막히네.
눈앞이 아득하다. 이 도구에서 흘러나오는 공기의 양은 너무 적다. 어떻게 숨은 붙어있지만, 공급되는 공기가 너무 적어서 미쳐 버릴 것 같은 느낌이다. 목검까지는 얼마 안 남았다. 그리고, 호수 수면까지는 대충 10m 이상이 남았다.
젠장, 이렇게 된 이상……! 나는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목검을 향해 헤엄쳤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심정으로 목검을 잡자. 갑자기 주변의 물살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한다.
― 네 몸 안에 흐르는 레드우드의 피가 느껴지는구나.
목검을 중심으로, 거대한 공기 방울이 만들어졌다. 공기 방울은 호수 위로 떠오르는 일 없이 검을 감싸고 있었고, 나 또한 그 공기 방울 안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커허읍! 커흡, 쿨럭……!”
숨을 쉴 수 있다. 폐 속에 공기 대신 물이 채워지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나는 급하게 숨을 몇 번 들이켰다 내뱉은 다음, 앞에 떠 올라 있는 여자의 형상을 바라봤다. 형상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넌 뭐야.”
― 말을 조심하렴, 나의 후손아. 내 이름은 에린실. 아득히 먼 네 조상과 나는 평생을 이어질 가약으로 묶였다.
“……드라이어드?”
나는 물에 젖은 채 숨을 몰아쉬면서 눈앞에 떠오른 여자의 형상을 바라봤다.
― 정확히는, 에린실이 남기고 간 의지.
나는 그 말에 후우, 하고 숨을 내쉬고 그 빛나는 형상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에게 붉은 가지가 필요합니다.”
내 말에 그 형상이 고개를 저었다.
― 그럴 수는 없다.
나는 그 말에 인상을 팍 썼다. 그럴 수 없다니 무슨 소리야.
“붉은 가지는 레드우드 가문에게 전해진 가보로 압니다.”
내 말에 형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 분명히, 붉은 가지는 레드우드 가문의 번영과 후손의 안녕을 위해 전해진 에린실의 의지다.
“그렇다면 어째서……!”
내 말을 자르듯이 형상이 다시 말한다.
― 로티샤 호수가 유지되는 이유는 붉은 가지의 마력 덕분이다. 수백 년의 시간 동안 얼지 않고, 마르지 않으며 레드우드의 땅에 생명수를 공급하지. 검을 뽑아간다면, 호수는 마르게 될 것이다.
가문의 번영.
애초에 로티샤 호수 자체가 이 검으로 인해 유지되고 있었던 건가. 확실히, 레드우드 백작령의 농토 중 상당 부분은 이 호수의 물에 의존해 농사를 짓는다.
나는 그 말에 눈을 꽉 감고 있다가 대답했다.
“검이 없으면 저는 이 자리에서 죽을 겁니다. 지금 이 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요? 설사 살아남는다 해도, 나는 몇 주 뒤 쿠르스트 산맥으로 끌려가 하이랜더들과 싸워야 하는 상황입니다. 레드우드 가문의 후손인 마틴 레드우드는 지금 붉은 가지를 필요로 합니다. 설마, 저에게 정당한 권리가 없다 말하시진 않겠죠.”
내 말에 형상이 대답했다.
― 레드우드 가문의 후손은 마틴 레드우드, 너만 있는 것이 아니다. 너는 붉은 가지의 힘을 원하지만, 로티샤 호수의 유지를 원하는 후손도 있지. 알고 있지 않느냐?
데이먼과 레온 백작을 말하는 건가. 내 얼굴이 대번에 구겨졌다.
“그래서, 후손 중 하나 정도는 죽어도 된다?”
내가 그런 대답 듣고 싶어서 여기까지 찾아온 줄 아나.
단순히 목검을 뽑아내는 걸로 끝날 거라 생각했다. 이런 상황은 생각하지 않았다. 붉은 가지에 담겨있는 드라이어드의 의지라니. 내 말에 형상이 고개를 저었다.
― 로티샤 호수는 유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너 또한 분명히 에린실과 루온의 피를 이어받았지.
희미하게 파삭,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물기가 남아있던 목검의 한쪽 부분이 부서지며, 손으로 쥘 수 있는 크기의 뾰족한 나뭇조각이 떨어져 나온다.
― 로티샤 호수를 유지하는 선에서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것이다.
“이걸로 뭘 어쩌라는 겁니까. 상대를 찌르기라도 하라는 겁니까?”
손바닥만 한 나무 파편으로 뭘 어쩌라고. 내 말에 형상이 다가와 내 가슴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 찌르는 건 적이 아니다. 네 심장이다. 네 심장에 박혀 있는 미스릴이 느껴진다. 너는 그 대신 이 검의 조각을 박아넣어라. 수천 년을 산 위대한 드라이어드 에린실의 의지를 담은 마력이 너와 함께할 것이다.
나는 그 말에 멍하니 손에 들린 나뭇조각을 바라봤다.
“이미 마력이 가득한 물건을 심장에 박아넣으면 심장이 파괴되어 죽는다 알고 있습니다.”
게롯이 알려준 사실을 말하자, 내 말에 형상이 대답했다.
― 붉은 가지에 깃든 마력은 에린실의 의지에 따라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루온 레드우드의 피를 이어받은 자의 번영과 안녕. 너는 자격이 있으니. 이 조각에 담긴 마력은 너를 해치지 않는다.
“…….”
나는 손에 잡혀 있는 나무 파편을 한 번 보고, 다시 고개를 들어 희미하게 빛나는 여자의 형상을 바라봤다. 남자가 이런 대사를 던지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큰 게 제 안에 들어갈까요?”
나는 지금 굉장히 진지하다. 원래 크기는 상대적인 거다.
그냥 손에 쥐고 있는 거라면 고작 손바닥만 한 나무 파편일 뿐이지만, 이걸 심장에 박아넣는다고 생각하면 무려 손바닥만 한 나무 파편이라는 표현이 어울리게 된다.
― 수면 위에서 싸우는 기사가 위험하구나.
젠장맞을, 잔말 말고 박아넣으라는 건가. 나는 후우, 하고 숨을 내쉰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이 나무 파편을 가슴에 박아넣지 않는다면 확실히 죽는다. 이 나무 파편을 가슴에 박아넣으면 죽을지도 모른다.
두 선택지 말고 없다면, 확실히 죽는 선택지보다는 죽을지도 모르는 선택지가 나은 편이지. 심호흡을 마친 나는 물에 젖은 상의를 벗고 있는 힘껏 나뭇조각을 왼쪽 가슴 언저리에 박아넣었다.
“카…… 하…….”
통증으로 인해 눈앞이 순간적으로 아찔해진다. 그 와중에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
― 내가 너를 새롭게 하리.
심장에 박아넣은 나무 파편이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내 살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나는 무릎을 꿇은 채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심장을 타고 끔찍한 고통이 퍼진다. 얼굴에서 침과 눈물, 콧물이 줄줄 쏟아진다. 시야가 검게 변했다가 하얗게 변하기를 연거푸 반복한다.
“아아아아아악!”
온몸의 근육과 뼈가 자기 멋대로 춤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슴에서 날카로운 고통이 느껴진다. 나무 파편이 박혀 들어갔던 상처로 뭔가 작은 조각 하나가 툭 하고 튀어나와 바닥에 떨어진다. 희미한 빛을 머금은 하얀 조각.
― 더 이상, 네 몸에 있을 필요가 없는 금속이니, 뽑아냈다.
이게 심장에 박혀 있던 미스릴인가. 멋대로 꿈틀거리던 근육과, 으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뒤틀리던 뼈마디를 타고 전해지던 고통이 천천히 옅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심장에서 선명하게 느껴지는 뜨겁게 요동치는 거대한 마력.
“끝난 겁니까.”
내 중얼거림에 에린실의 형상이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나는 너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주었다. 너는 부디, 불평하지 말거라.
몸 상태를 살피던 나는 이상함을 느끼고 중얼거렸다.
“심장에 이물감이 전혀 없어…….”
내 중얼거림에 형상이 대답했다.
― 네 심장은 붉은 가지의 파편과 함께 반죽되어 새로 빚어졌다. 새롭게 만들어진 너의 심장은 그 자체로도 마력을 모을 수 있다.
심장에 구심점을 박아넣은 게 아니라, 심장이 구심점이 되었다. 당연히, 이물감이 있을 리 없다. 몸의 마력을 혈관을 통해 돌리며 주먹을 휘두르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공기가 터져나간다. 잠깐 멍하니 서 있던 나는 입을 열었다.
“혹시 뭐 좋아하는 음식이나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지금 말해주세요.”
감사 선물로 나중에 가져올게.
― 괜찮다. 필요한 것을 주었으니, 이제 돌아가라. 나는 해야 할 일을 하겠다.
“해야 할 일이라는 건?”
― 너는 내가 원했던 힘을 얻었다. 레드우드의 나머지 후손은 호수의 존속을 바란다. 그리고, 붉은 가지의 힘을 탐내는 자격 없는 자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붉은 가지에 남아있던 마력은 로티샤 호수로 녹아들어 지금의 로티샤 호수를 계속해서 유지할 것이다.
즉, 지금 호수에 박혀 있는 붉은 가지는 지금 이 시점을 기준으로 그냥 목검이 되어버린다는 뜻이다. 당연히, 붉은 가지를 탐내던 복면 친구들이 그 힘을 여전히 원한다면 로티샤 호수의 물을 전부 다 퍼내서 가져가야 하겠지.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
그 말을 끝으로 형상이 흐려지고, 주변에 만들어져 있던 공기 방울이 사라진다. 나는 다시 수면을 향해 헤엄쳐 올라갔다.
“도련님, 붉은 가지는?!”
돛단배로 건너가 수상한 녀석들과 쌈박질을 벌이던 게롯이 나를 보고 외쳤다. 나는 그 말에 대답 대신 배 위로 휙 하고 올라타며 말했다.
“그게, 이제는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못 가져가는 물건이다. 붉은 가지에 머무르는 의지 같은 게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허락 없이 멋대로 뽑아가서 쓰려고 해도 힘을 빌려주지 않을 가능성도 있고, 굳이 이미 얻을 수 있는 모든 걸 얻었는데 괜히 더 욕심부려 검을 뽑았다가 호수가 싹 마르면 굶어 죽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꼭 필요하다면 몰라도 그것도 아니면서 괜히 수많은 사람들을 집단 아사시킬 생각은 없다. 내가 무슨 사탄도 아니고.
“마틴 레드우드…….”
한 녀석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나는 고개를 돌려 녀석을 바라봤다.
“나를 아나?”
“레드우드 백작가에 미친놈이 하나 있다는 건 들었…….”
녀석의 등 뒤에 내 모습이 순간적으로 나타나 녀석이 검을 잡고 있는 손을 힘껏 올려 차고 사라진다.
발차기 때문에 놓친 검이 하늘 높이 떠오른다. 그리고 다시 허공에 나타난 내 모습이 그 검을 붙잡아 내 쪽으로 휙 던져주고 사라졌다.
“고마워.”
던져진 검을 받아든 나는 가볍게 손목을 이리저리 돌려보고는 녀석을 바라봤다.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이다. 근처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던 다른 녀석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발현점……? 이제 막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을 텐데. 어떻게 된 겁니까?”
옆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게롯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이야, 그 몰골을 하고도 호기심이 앞서다니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하십니다.”
나는 검을 든 채 앞으로 달렸다.
“이런 젠장……!”
목표로 점찍은 녀석이 그렇게 외치며 검을 휘두르려고 했지만, 갑자기 확 하고 앞에 나타난 내 모습이 녀석의 정강이를 한 번 차고 사라진다. 비틀거리는 사이, 내 검이 녀석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녀석 주변에서 무기를 들고 나를 향해 달려들던 세 명의 뒤쪽에 내 모습이 나타나 뒷목에 칼을 박아넣고 사라진다.
그 사이, 나는 게롯을 살펴보고 한마디 던졌다.
“그러고 보니,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요.”
몸의 여기저기에는 숯검댕 같은 것이 묻어있고, 왼팔에서는 피가 흘러내리는 중이다.
자기 입으로 당당하게 능력을 발현하면 공성추가 들이받아도 괜찮다고 한 것치고는 약간 쪽팔린 상황 같은데. 이래서 사람이 허세를 부리면 안 된다니까.
게롯이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검으로 복면을 쓴 사람 중 한 명을 가리켰다.
“마법사가 있습니다.”
그 말에 나는 표정을 약간 바꿨다. 마법사? 실물을 보게 되는 건 처음인데. 게롯이 고생을 엄청나게 한 모양이구나.
마법사가 게롯의 방해를 뚫고 호수로 잠수하는 데 성공했으면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을 거다. 게롯은 그 상황을 막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한 모양이고. 놀려서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