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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우드-12화 (12/275)

012화

녀석의 키는 한 165cm 정도 되어 보인다. 입고 있는 후드가 몸을 가리고 있어서 구체적으로 성별을 특정 지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서 있는 위치나 마법사라고 하는 지위를 고려해보면 아무래도 이 녀석이 이 돛단배의 책임자인 모양이다.

“아, 붉은 가지는 이제 못 쓰게 되었군. 이러면 돌아가야겠는걸.”

노인의 목소리. 나는 빠르게 녀석의 몸과 갑판 위를 훑어보면서 입을 열었다.

“얼씨구, 누가 보내준다고 했나?”

키는 165cm 정도. 배 한쪽 구석에 치워져 있는 그물망이 보인다. 후드가 달린 긴 망토를 단단히 여며 입고 있어서 체형을 짐작할 수는 없다. 손에는 악어가죽으로 만든 장갑을 끼고 있다.

“네 녀석 따위의 허락은 필요 없다. 마틴 레드우드, 분에 넘치는 힘을 가진 어린 녀석아.”

대답과 동시에, 녀석이 작은 종잇조각 하나를 꺼내 들었다. 종잇조각이 불타면서, 녀석의 몸이 함께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저건 또 뭐야. 나는 약간 당황하면서 불타오르는 녀석 코앞에 분신을 만들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것보다 녀석의 모습이 완전히 불타 사라지는 게 더 빨랐다. 분신이 휘두른 검은 허공을 갈라야 했다.

그 와중에, 대기 중에 흩어져 있던 마력이 돛단배의 중심으로 마구 끌어모아지면서 바닥에 시뻘건 문양이 떠오른다.

“저건……!”

게롯이 그런 외침과 함께 나를 확 끌어안고 호수로 몸을 던졌다. 게롯의 몸이 이전에 본 것과 같이 돌덩이 같은 색깔로 변하고, 그런 게롯의 몸을 타고 내 몸으로 강렬한 충격이 전달된다.

“무사하십니까?”

“덕분에 죽지는 않았네요.”

게롯이 아니었으면 저기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모르는 게 아니구나. 확실히 죽었겠구나. 나는 둥둥 떠오르는 시체들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미친 새끼 아니야 이거.

물 위로 떨어진 우리는 박살 난 배의 파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원래 우리가 타고 온 나룻배에 다시 올라탔다.

“이전에, 저런 문양이 떠오르는 마법을 본 적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만약 게롯이 그 문양이 떠오를 때 일어나는 일을 몰랐다면 나와 게롯은 꼼짝없이 저 배의 폭발과 함께 죽었을 것이다. 안에 타고 있던 다른 녀석들처럼.

“결국, 누구였는지는 전혀 감을 잡지 못했군요.

게롯의 아쉬운 것 같은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직 모를 일이지요.”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모를 때,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꼭 '누구세요?' 라고 물어보는 것만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배가 산산조각 났습니다. 증거가 남아있을 리가…….”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여기까지 배를 끌고 왔을 리는 없죠.”

호수는 바다가 아니다. 자재를 들고 와서 배를 조립할 생각이 아니라면 호수에 도착한 다음 배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배는 어선이었습니다.”

갑판을 살피면서 한쪽 구석에 치워진 그물망을 확인했다. 나룻배는 물가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게롯 경은 그 배의 바닥에 떠오른 문양을 알고 있다고 하셨죠.”

내 말에 게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보고를 받은 겁니다. 수도 치안대가 인근 마을에서 발생한 연쇄 살인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살인마의 거처를 찾아내 습격했는데, 저런 문양이 바닥에 떠오르고, 장소를 급습했던 대부분의 치안대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살아남은 한 명도, 심각한 부상 때문에 결국 치안대 일을 그만둔 모양이다. 게롯의 표정이 상당히 어둡다.

“그 마법은 위력이 굉장하지만, 사용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재료가 필요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부모의 피와 자식의 피. 최소한 세 명의 피를 재료 삼아 발동하는 마법이라고 한다. 적은 양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각 5리터씩 총 15리터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재료로 사용된 사람은 백퍼센트 죽는다는 뜻이다.

“배를 빌린 게 아닐지도 모르겠군요.”

내 말에 게롯이 나를 바라보다가 침을 삼켰다.

“설마.”

설마는 무슨 설마야. 그 마법사에게 배를 빌려준 어부, 과연 정말로 배를 빌려줬던 걸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로티샤 호수의 어업은 허가받지 않은 사람들은 할 수 없죠.”

어족자원의 보호 뭐 이런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세금을 걷기 위해서다. 영지의 모든 것은 영주의 물건이고, 거기에서 생산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내야 한다. 하다못해 방앗간을 사용할 때도 영주가 사용료를 걷는 세상이니까.

“그렇군요. 어업 활동을 허가받은 사람들의 명단이 있을 겁니다.”

그 명단에 적힌 사는 곳을 확인하고 나서, 하나씩 살펴보면 금방 찾을 수 있겠지.

“뭐, 이후에는 아버님께서 알아서 잘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돌아가죠.”

이 이상 우리가 신경 써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내 말에 게롯이 나를 바라봤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나는 게롯의 말에 간단하게 대답했다.

“게롯 경, 저는 당신에게 검술과 마력의 축적에 대해 가르침을 받는 중이고, 게롯 경은 그 때문에 이 영지로 오셨습니다.”

이후의 일은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내 말에 게롯이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멀쩡히 살던 어부 일가를 죽인 녀석입니다. 그냥 넘어간다니……!”

아하, 발현점을 넘는 양의 마력을 축적하고 나면 얻게 되는 능력은 영혼을 닮는다고 했나. 강직하다는 뜻이 이런 거였구나. 나는 그 말에 한숨을 쉬고 그를 바라봤다.

“게롯 경, 제가 이 일에 신경 써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애초에 쿠르스트 산맥으로 나를 내쫓아 버리는 레온 백작의 영지에서 일어난 일이다. 신경 쓰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하지만, 도련님과 제가 살아있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마법사가 또다시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그게 정체를 밝히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거죠? 어차피 우리는 녀석의 모습을 보지 못했어요.”

녀석도 그 정도 머리는 돌아갈 것이다. 얼굴을 봤다면 모를까, 어차피 녀석의 정체도 모르는 우리에게 굳이 찾아와서 공격할 이유가 없다. 게롯이 으음, 하는 소리를 내고 나를 바라봤다.

“그렇다면 저 혼자라도 하겠습니다.”

“그럼 내 교육은 누가 합니까?”

내 말에 게롯이 대답했다.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것도 일가족이 죽었을 겁니다. 영문도 모른 채 말입니다.”

“슬픈 일이군요.”

하루에 죽어 나가는 사람이 적어도 수천은 될 텐데. 너는 그럼 매일 수천 번 화가 나 있을 생각이냐? 헐크도 아니고.

“마틴 도련님!”

나는 게롯의 말을 중간에 잘랐다.

“방치하자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아니라도 이 일을 할 사람이 있다는 거죠. 게롯 경이 화가 나신 건 이해하지 못할 게 아니지만, 달리 이 일에 집중할 사람이 있는데 이미 할 일이 산더미인 저와 게롯 경이 이 일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당장 나는 한 달 뒤에 쿠르스트 산맥으로 끌려가게 생겼다. 내 코가 석 자인데 거기에 더해서 후드를 뒤집어쓴 마법사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시간을 쓰라고? 그럴 수는 없다.

그리고, 게롯이 레온 백작의 성에 머무르는 이유도 그런 입장에 있는 나에게 검술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만약 혼자서라도 살펴보겠다고 고집을 부리신다면, 저 또한 아버님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게롯이 내 말을 듣고 잠깐 있다가 끄응, 하는 소리를 내고 나를 바라봤다.

“쿠르스트 산맥 국경 수비대에는 지인이 하나 있습니다.”

오, 그래? 약간 흥미가 생길지도 모르겠는데, 계속 말해봐.

“저와는 막역한 사이였습니다. 사실, 지금도 그 녀석의 가족은 제가 보살펴 주고 있습니다. 분명히, 제가 부탁한다면 쿠르스트 산맥에서의 생활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거 참, 이렇게 나온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좋습니다. 가시지요.”

정의감에 불타는 강직한 외골수라고 생각했는데. 외골수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상대방과 협상을 할 정도의 유연성은 겸비하고 있었군.

“저 혼자만 보내주셔도 됩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쿠르스트 산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수도 있어요. 머무르는 동안 편의를 봐줄 사람 한 명을 소개받을 수 있다면, 저도 함께 움직여 줘야 게롯 경도 손해를 보지 않죠.”

대가 없이 움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양아치처럼 등골을 빼먹을 생각은 없다. 해준 일에 비해 받는 게 너무 많으면 나중에 문제가 생기는 법이니까. 보수가 약속된 이상 소극적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이런 분야에서는 제법 경험이 많으니까.

“배를 처음 확인한 곳은 땅과 그렇게 멀지 않았습니다. 그 일대에 있는 어부의 집을 살펴보는 게 좋겠죠.”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말을 마친 나는 땅에 내리자마자 하인들에게 노숙 준비를 시키고, 게롯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어떻게 된 겁니까. 도련님이 몸 안에 모은 마력으로는 절대로 발현점에 닿을 수 없었습니다.”

어차피 한동안 걸어야 할 테니. 나는 게롯에게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그렇군요…… 로티샤 호수가 붉은 가지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었다니.”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얼마나 걸었을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민가 하나가 보인다.

“저긴 아니네요. 다음으로 가보죠.”

집에서 연기가 올라온다. 날이 추우니 불을 때는 중인 모양이다. 안에 사람이 있다는 뜻이지. 굳이 들어가 볼 필요도 없다. 다음으로 발견한 집.

“연기가 올라오지 않습니다. 저기인 것 같습니다.”

나는 게롯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렇습니까? 이유가…….”

나는 그 말에 집 옆에 걸려있는 물고기들을 가리켰다.

“걸어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날씨가 추운데, 맺혀 있는 물방울이 아직 얼지 않았다. 여기도 아니다. 우리는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실제로 피해를 줄 수 있는 분신이라니.”

게롯은 호수 근처의 울창한 숲을 걸어가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드문 편입니까?”

내 말에 게롯이 대답했다.

“단순히 자신의 모습을 복제한 허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몇 번 견식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허상들이 실제로 피해를 주는 경우는 처음 봅니다.”

그야 그렇겠지. 내가 발현점에 도달하면서 얻게 된 능력은 세 가지다. 사실, 나는 발현점에 도달했을 때 한 개의 능력이 아니라 두 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기는 했었다.

내 몸은 어린애의 육체지만, 안에 들어있는 영혼은 서른 중반이 넘었잖아. 발현점에 도달해 얻게 되는 능력은 육체가 아니라 영혼에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고, 결국 내 짐작대로 발현점에 도달했을 때 얻은 능력은 두 가지다.

내 모습이 다른 자들에게 보이지 않게 되는 은신과 내 모습을 복제한 허상을 만들어내는 능력.

원래 피해를 줄 수 없는 허깨비에 불과한 분신이 실제로 피해를 줄 수 있게 된 것은 지금 이전의 심장을 대체하며 얻게 된 드라이어드의 마력이 가진 성질 덕분이다.

생명 부여. 드라이어드의 마력은 기본적으로 생명의 탄생에 관여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덕분에, 분신을 만들어 낼 때 내 마력뿐이 아니라 심장에 머무른 드라이어드의 마력을 함께 사용하면 분신에 생명이 부여된다. 다른 말로는, 허깨비가 순간적으로나마 실체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봤자 실체를 가진 분신의 유지 시간은 1.5초 정도로 짧지만, 그걸로도 충분하다. 또 다른 능력인 은신에 대해서는 비밀로 숨겨둘 생각이다. 몰래 숨어서 돌아다닐 수 있는 능력은 아무도 모를 때 진가를 발휘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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