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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우드-14화 (14/275)

014화

이틀에 걸쳐 다시 돌아온 레온 백작의 성. 성문 앞에는 로델린과 함께 하인, 하녀 몇 명이 서 있다. 마차에서 내리자 곧바로 로델린이 다가와서 나를 살펴본다.

“이야기 들었다. 몸은 괜찮은 것 같아서 다행이구나.”

나는 로델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소란이 있기는 했지만, 사지 멀쩡하게 붙어서 왔습니다.”

내 말에 로델린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옆에 서 있던 하인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백작님께서 도련님이 도착하시는 대로 자신의 집무실로 데려오라 하셨습니다.”

그 말에 로델린이 하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알고 있으니 더 말할 필요 없다.”

로델린은 쏘아붙이는 것처럼 대답하고 나서 잠깐 나를 바라보았다.

“나중에라도 몸이 좋지 않은 것 같다면 꼭 베른을 찾아가 보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해 줄 거다.”

그렇겠지. 그런대로 믿을 수 있을 만한 의사라고 생각하니까.

“알겠습니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요.”

말을 마친 나는 로델린에게 인사를 하고 하인에게 안내를 받아 레온 백작의 집무실로 향했다.

“마틴입니다.”

노크와 함께 말을 하자, 문 너머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레온 백작이 나를 살펴보고 입을 열었다.

“굳이 죽을 뻔한 호수를 또 찾아간 이유가 뭔가 했더니.”

나는 그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보낸 서신은 받으신 모양인데, 굳이 저를 부를 이유가 있으십니까?”

내 말에 레온이 대답했다.

“서신으로 알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는 법이다. 자세하게 듣고 싶어서 부른 것이다.”

나는 그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서신에 적은 내용이 전부입니다. 과장한 것도 없고, 축소한 것도 없습니다.”

나는 로티샤 호수에서 붉은 가지를 발견했다. 로티샤 호수는 바닥에 꽂혀있던 붉은 가지의 힘에 의해서 유지되는 중이다. 그 이외의 이야기는 딱히 레온 백작에게 이야기할 이유가 없었기에 말하지 않았다.

“확실한 이야기냐.”

나는 그 말에 하, 하는 소리를 내고 눈앞의 레온 백작을 바라봤다.

“이미 바닥에 꽂힌 검의 위치에 대해서는 동행했던 하인들도 알고 있습니다. 심심하면 직접 행차하셔서 자맥질 한 번 시원하게 하시지요.”

내 말을 믿지 않는다면 니가 가서 눈으로 확인해봐, 안 말린다. 내 말을 듣고 있던 백작이 후우, 하고 숨을 내쉬고는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수백 년 동안 보이지 않던 가보가 호수 아래에 잠들어 있었다니. 게다가, 영지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는 로티샤 호수가 그 검의 힘으로 인해 유지되고 있었을 줄이야. 선조들의 보살핌이 여기까지 닿았구나.”

그래, 참 감동적인 이야기네.

“붉은 가지의 힘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하나, 붉은 가지는 여전히 가문의 가보다. 사람을 호수로 보내 검을 찾아오겠다. 또한, 거기에 더해 네가 찾아냈다고 하는 어부의 살인 사건 또한 치안대를 보내 조사하지.”

“그러시던가요. 저에게 이야기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데이먼이라면 모를까.”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다. 이제 몇 주의 시간이 더 지나가면 나는 쿠르스트 산맥으로 향하게 된다.

“더 물어볼 거 없으시면 좀 돌아가서 자려고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내 말에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가가 떨어지자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나서 방으로 돌아갔다. 침대에 드러누운 나는 손을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분신이 하나 나타나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책을 한 권 집어 나에게 던져주고 사라졌다.

“야, 이거 겁나 편한데.”

어차피 이 능력의 사용에는 익숙해져야 할 테니까. 누워서 책을 살펴보던 나는 머리를 긁었다.

“마법사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책의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기사는 심장에 이물질을 박아넣는다. 마법사는 손발의 신경에 이물질을 박아넣는다.

기사는 심장에 구심점을 박아넣고, 쌓아놓은 마력을 혈관을 통해 체내에 공급해 육체를 강화한다.

마법사는 사지의 신경 중 하나에 연결점을 박아넣어, 대기 중의 마력을 손발처럼 다룬다.

기사는 심장에 마력을 모으다 실수하면 심장마비로 죽고, 마법사는 마법을 쓰다가 실수하면 온몸의 신경이 작살 난다.

“그거 참, 자살하고 싶어 환장한 사람들도 아니고.”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침대에서 일어나며 책을 휙 던졌다. 나타난 분신이 내가 던진 책을 받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사라졌다.

“향에 대해서 한번 물어봐야지.”

내가 어부의 집에서 맡았던 그 화장분의 향기를 확인해봐야 한다. 거기에 더해서, 겸사겸사 로델린에게 한 가지 더 확인하고 싶은 것도 있다.

“아, 몸은 좀 어떠니.”

로델린의 거소로 향하자,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다가왔다.

“몸은 괜찮아요. 뭐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내 말에 로델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들어보자.”

잠깐 고민하던 나는 입을 열었다.

“가지고 계신 향수 냄새를 한번 확인해 보고 싶은데요.”

내 말에 로델린이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향수 냄새? 뭐, 안될 건 딱히 없다만.”

로델린은 말을 마치고 나서 자신의 화장품이 모여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대충 봐도 40가지가 넘어가는 화장품들이 진열되어있다. 이야, 참 많기도 하다. 이 정도로 많다면 하나 정도는 얻어걸릴 수도 있겠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나씩 화장품의 냄새를 맡아보기 시작했다.

“……이거.”

그리고 마침내 27번째 화장품에서 비슷한 냄새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내 말에 로델린이 다가와 화장품을 확인하고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이전에 선물 받은 물건이란다. 테네스 공국 특산품인데.”

테네스 공국이라.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화장품에 쓰인 향료는 평민들이 쓸 수 있을 정도로 흔한 물건인가요?”

내 말에 로델린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은 걸로 안다. 대부분의 향료가 가격이 제법 나가는 편이지만, 이건 돈을 지불할 능력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물건이라서.”

심지어 백작 부인인 로델린도 아껴 쓸 정도의 향료라는 모양이다. 어지간한 수준의 귀족이 아닌 이상 구하기 힘든 물건이라는 건 확실하겠군. 그 여마법사는 이 나라의 사람이 아닐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알겠습니다.”

“하나 구해다 주련?”

나는 그 말에 로델린을 바라봤다.

“제가 향수를 구해서 어디에 쓰겠습니까.”

내 말에 로델린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머, 나는 선물 해줄 사람이라도 있어서 화장품에 관심을 보이는 줄 알았더니.”

나는 그 말에 휘휘 손을 저었다. 몇 주 뒤면 쿠르스트 산맥으로 끌려가는데 여자는 무슨 놈의 여자.

“이건 조금 함부로 물어보기 힘든 질문인데.”

나는 그렇게 말하고 로델린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결혼한 이유가 뭔가요?”

내 말에 화장대 위에 다시 화장품을 올려두던 로델린의 손길이 멈칫했다.

“물어보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구나.”

내가 먼저 질문했는데, 뭐 그렇다고 그걸 따지고 들 필요는 없겠지.

“그냥, 저는 남아있는 기억이 거의 없잖아요? 그래서 한 번 물어보는 겁니다.”

내 말에 로델린이 대답했다.

“정략결혼이지.”

나는 그 말에 아, 하는 소리를 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나쁜 사이는 아니었단다. 레온도 나에게 의무를 다했고, 나도 레온에게 의무를 다했지.”

그러기 위한 결혼이었으니까. 문제는 제인 부인이 둘째 아내로 들어오고 난 다음부터였다.

“레온이 제인을 둘째 부인으로 들인 건 별도의 목적이 있어서는 아니었단다.”

로델린과의 결혼은 정략결혼이었지만, 제인과의 결혼은 연애결혼이었던 모양이다. 말을 마치고 나서 약간 씁쓸한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봤다.

“그때는 그냥, 억울한 마음이 앞섰지.”

“아버지를 빼앗기는 것 같아서요?”

내 말에 로델린이 고개를 저었다.

“내 질투는 제인에게 향한 게 아니라 레온에게 향했단다. 나는 원치 않는 상대와 가문의 영광을 위해 결혼해야 했는데. 레온은 가문의 영광을 위해 나와 결혼하고 나서,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를 찾아서 그 사람과도 결혼했잖니.”

로델린은 한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했지만, 레온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버렸다. 안 부럽기가 힘든 상황이긴 하다.

“그냥 단순히 부러움에서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거기에서 끝나지 않아서 문제가 생겼던 모양이다. 로델린은 간단하게 말해서, 바가지를 좀 심하게 긁었다.

레온은 그런 로델린에게 정이 떨어져 버렸다. 그 와중에 태어난 나라는 녀석은 영 시원치 않은 놈이었고, 제인에게서 나온 데이먼은 썩 자질이 괜찮아 보이는 녀석이었으니까. 그 뒤로 이어진 찬밥신세는 변하지 않고 지금까지 쭉 이어진 거다.

“관계 회복은 힘들겠죠?”

내 말에 로델린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힘들겠지. 농사를 짓고 싶다면 최소한 밭에 농부라도 와야지 뭘 할 수 있는데. 농부가 밭에 올 생각이 없다. 로델린은 그렇게 십 년이 넘는 세월을 방치된 한 뙈기밭이다.

“궁금한 건, 더 없니?”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이야기를 마친 나는 인사를 하고 로델린의 방을 나와 연무장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군.”

나는 후우, 하고 숨을 내쉰 다음 연무장에 주저앉아 눈을 감고 마력을 조금씩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재수가 좋아서 한 번에 많은 양의 마력을 얻는데 성공했다. 아마, 단순히 마력의 양만 따지고 본다면 게롯에 비교해도 부족하긴커녕 더 많을 정도의 마력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있을 수는 없지.

더 많이 필요하다. 마력과 돈이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면 없어서 화나는 경우는 무지하게 많지만, 너무 많아서 화나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는 거다.

2-3시간 정도 마력을 끌어모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습용 검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눈앞에 분신이 하나씩 나타나 나에게 공격을 하기 시작한다. 나는 나타나는 분신들의 공격에 맞춰서 방어와 반격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후우.”

빠르게 움직일 필요 없다. 지금 눈앞에 나타나는 분신들은 적이 아니다. 게다가 내가 만든 분신이기 때문에 어디로 공격할지도 모를 수가 없다. 지금은 자세에 집중해야 한다.

나쁜 버릇이 몸에 익는데 필요한 시간은 5분이면 되지만, 그 버릇을 지우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은 랜덤박스와도 같아서,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거든.

“어걱.”

밀려드는 공격을 차분하게 막아내고, 제대로 자세를 잡고 방어를 할 수 없을 것 같으면 그냥 두들겨 맞았다. 실수했으니 벌 받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새벽이 깊어지고, 하인 몇 명이 나와서 불을 켜고 청소를 하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한 나는 기지개를 한 번 켜고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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