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화
도리안이 가는 길은 점점 더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사실상 우리는 길이라고 할 수 없는 장소를 지나가는 중이었다. 화강암을 빚어 올려 만들어진 산의 경사는 가파르고, 거칠었다.
바람이 점점 거칠어지고, 무심코 뒤를 돌아보면 칼로 날카롭게 깎아내릴 것 같은 절벽 아래로 펼쳐진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는 조심해야 한다.”
도리안은 엄연히 내가 소속된 수색대의 지휘관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신병인 내 기강을 잡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지나가면서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여길 지나가는 겁니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가파른 절벽의 샛길을 바라봤다. 이건 샛길이라고 할 수도 없다. 등을 벽에 딱 붙이고, 게처럼 옆으로 걷지 않는다면 지나갈 수도 없어 보인다.
“줄을 잡고, 신속하고 신중하게 이동하도록.”
샛길과 닿아있는 벽에는 꼴에 이게 길이라고 말해주기라도 하고 싶었는지, 굵은 못에 박혀 고정된 밧줄이 쭉 이어져 있었다. 기가 막힌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 밧줄을 잡고 도리안의 뒤를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고소 공포증은 없는 것 같아서 다행이군.”
“담은 큰 편입니다.”
좁쌀만 한 담을 가지고는 할 수 없는 일을 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독한 샛길은 사람을 졸아들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아니, 애초에 이런 곳은 한밤중에 이동할 만한 곳이 아닌 것 같은데. 도리안은 손에 횃불을 쥔 채로 그 샛길을 부지런히 게걸음질 치며 입을 열었다.
“지금 지나가고 있는 곳이 17번 도로다. 지나갈 일이 종종 있을 테니, 잘 기억해두도록.”
“도로?”
나는 그렇게 한탄을 섞어 중얼거렸다. 이게 도로냐. 도리안이 그런 내 반응을 보고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 정도면 도로지. 조금 더 가다 보면 비슷한 샛길이지만, 중간에 길이 끊어져서 뛰어넘어야 하는 곳도 있다.”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제7수색대에 소속된 병력들, 1년에 몇 명이나 죽습니까?”
내 말에 그가 대답했다.
“실족사는 거의 없다. 대부분 이쯤 와서 여기를 건너라고 하면 포기하니까. 이곳은 아카데미가 아니다. 사람을 만들어 쓰는 게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사람을 쓰는 곳이지.”
그래, 애초에 사람을 가려 뽑으니 실족사하는 경우는 적다는 건가. 그거 참…… 좋은 일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화악, 하고 날카로운 바람이 불어닥치며 얼굴을 할퀴고 지나간다.
“조금만 더 가면 3번 막사가 나온다. 오늘은 거기에서 쉰다.”
막사라. 이 샛길을 도로라고 말하는 걸 들은 다음이라 그런지, 도저히 나는 그 막사라는 단어를 신뢰할 수가 없다.
“이건…….”
오두막이 하나 있었다. 절벽에 매달린 오두막이었다. 깎아낸 것 같은 절벽 위에 신기하게 툭 튀어나와 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 오두막은 그 위에 지어진 물건이다.
“들어가지.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막사다.”
수십 년이라. 안전한 거 맞아?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중앙에 놓인 작은 화로 하나와, 바닥이 전부인 작은 오두막의 한편에는 이런저런 물자들이 쌓여있다. 주로 말려놓은 육포와 같은 식량, 장작 따위였다. 잘 찾아보니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인지 아이젠 같은 것도 보인다.
“물자의 보급은 누가 하는 겁니까?”
내 말에 도리안이 대답을 돌려준다.
“보급을 담당하는 부대에서는 이곳까지 오고 싶어 하지는 않더군.”
그 마음, 이해한다. 수색대가 직접 관리하며 채워 넣는 모양이다. 나는 오두막 안에 있는 장작을 끌어모아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화장실이 따로 없는데…….”
내 말에 도리안이 대답했다.
“오두막을 나가면 바로 절벽이지. 바닥에 고정시켜 놓은 밧줄이 있다. 소변은 그냥 서서 싸고, 대변은 그 밧줄을 붙잡고 엉덩이를 절벽 밖으로 내밀어.”
그래서, 그거 붙잡고 절벽을 향해서 똥을 싸라는 건가.
“똥 치울 필요가 없다니, 행복하기도 해라.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도리안이 오두막을 뒤적거려 모포를 꺼내더니 하나를 내 쪽으로 던졌다.
“잠을 충분히 자 두도록. 내일부터는 길이 더 험해진다.”
여기에서 더 험해진다니.
“기대돼서 잠이 안 옵니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바닥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얼마나 잠을 잔 걸까. 희미하게 눈을 떠보니 화로의 불길이 많이 잦아들어 있었다. 남은 불을 보니 한 2시간 정도 잔 것 같은데.
잠에서 깬 나는 누워서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한두 시간 정도 마력을 모으고 난 다음, 나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옆에서 도리안이 부스럭거리더니, 화로에 물을 데워서 차를 한 잔 만들어 내밀었다.
“마력의 축적은 끝난 모양이군.”
“주무시는 줄 알았습니다.”
내 말에 도리안이 픽 웃고 대답했다.
“제법 체력도 쓸만한 것 같아서 다행이야. 대부분 여기까지 오면 깨우기 전까지는 시체처럼 곯아떨어지던데.”
나는 그 말에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정신력이 좀 강한 편입니다.”
내 말에 도리안이 대답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백작가의 장남이 끌려와서 신분도 낮은 녀석들에게 반말을 듣고 있으면 열이 뻗칠 만도 한데 말이지.”
나는 그 말에 흐흐, 하고 웃었다.
“어차피 귀족 주제에 여기까지 끌려왔다는 건 쫓겨났다는 건데, 가문으로부터 버림받은 녀석이 자기가 이래 봬도 귀족이었다고 하면서 뻗대는 것도 추합니다.”
쫓겨난 게 자랑은 아니잖아?
“돌아가고 싶지는 않나?”
나는 도리안의 말에 대답했다.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도리안 경이 저에게 수색대에 들어오라고 했을 때는 기뻐 죽는 줄 알았지요.”
내 말에 도리안이 잠깐 나를 바라보다가 허, 하는 소리를 내고 혀를 몇 번 찬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은 모양이다. 전역 기준, 하이랜더 50마리.
“하이랜더를 직접 두 눈으로 보고 나서도 그 녀석 50마리를 잡겠다는 말이 그 입에서 튀어나오는지 한번 보마.”
차를 마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식사는 저걸로 하는 겁니까?”
한옆의 상자 안에는 짐승의 고기를 말려 빻은 다음, 기름에 반죽한 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내 배낭 안을 뒤져보면 곡물가루가 들어있다.”
도리안의 배낭을 뒤져 가루를 찾아낸 나는 도리안을 바라보았다.
“끓는 물에 풀어 넣고 끓여.”
우리는 고기 반죽 덩어리와 곡물가루를 끓여 만들어낸 죽으로 식사를 마쳤다.
“비위가 좋군.”
나는 빈 그릇을 대충 마른 짚단을 비벼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음식이라는 게 어떻게든 목구멍 뒤로 넘기는 데 성공하고 나면 다 똑같다. 게다가, 뭐라도 주워 먹지 않으면 이후에 이어질 여정을 버틸 자신도 없었다.
“먹는 건 어떻게 먹었는데, 몸이 받아줄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조금 걱정이긴 하다. 귀하게 자라서 좋은 것만 처먹다가 갑자기 이런 거 먹으면…….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넘겼는데 몸에서 안 받을 수도 있잖아.
“며칠 고생하면 되겠지.”
간단하게 대답을 돌려준 도라인이 짐을 챙기기 시작한다. 나도 마찬가지로 짐을 쌌다.
“잠자고 밥 먹었으면 다시 이동한다.”
우리는 그 오두막을 나와 다시금 그 가파르기 짝이 없는 길을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은 서서히 그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점점 기온이 떨어지고, 근처에 드문드문 녹아내리다 만 눈과 얼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거기에 더해서, 본격적으로 입에서 입김이 흘러나올 정도의 추위가 우리를 반기기 시작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수색 작전을 수행할 때는 이런 정규 이동로를 따라 이동하지 않는다.”
그는 말을 마치고 나서 시범이라도 보이는 것처럼 절벽으로 손을 뻗어, 그 벽을 타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경사가 70도가 넘어가는 절벽을, 손과 발을 사용해 기어 올라가는 걸 보고 있던 나는 작게 탄식했다.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습니다.”
한 30m 정도를 순식간에 기어 올라갔던 도리안이 그대로 다시 주르르 절벽을 타고 내려온 다음 나를 바라봤다.
“지금 너는 등에 짊어진 군낭이 제법 무겁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규 루트를 밟는 것뿐이야.”
즉, 이 수비대의 근거지에 도착해서 짐을 풀어놓고 난 다음에는 나도 제대로 된 길로 돌아다닐 거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점점 더 기온이 떨어지고, 발 한번 잘못 디디면 그대로 떨어져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샛길에는 얼음과 눈이 엉겨 붙어있다.
“제발 죽어달라고 애원이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뭐, 길이?”
도리안은 말을 마치고 나서 슬쩍 길을 보고 한마디 했다.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인데. 어쨌든 안 미끄러지게 조심해라, 시체도 못 찾는다.”
양호하지 않을 때 길이 어떤 모양인지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군. 게걸음을 쳐 가까스로 샛길을 빠져나온 나는 뒤를 돌아보고 기가 차서 탄식했다.
씨, 저걸 어떻게 지나왔는지 믿기지 않을 지경이군. 도리안이 말했던 것처럼, 길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었다. 샛길과 비탈길을 얼마나 올랐을까.
“바람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은데, 기분 탓입니까?”
내 말에 도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눈보라가 올 모양이다.”
나는 그 말에 허, 하는 소리를 냈고, 도리안이 탁 하고 내 등을 때렸다.
“신고식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30분 정도 지났을까. 미친 듯이 날뛰는 바람이 이제는 혼자 오기 심심했는지 눈까지 데려와서 함께 분탕질을 친다.
눈보라, 다른 말로는 블리자드.
코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진다. 소매로 얼굴을 가린 나는 힘겹게 외쳤다.
“이거, 신고식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빡세지 않습니까?”
이 정도면 신고식 받다가 죽을 것 같은데! 내 말에 도리안이 대답을 돌려주었다.
“계속 걸어라!”
눈보라가 심하다고 멈춰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사무치는 바람을 견디며 걷는 수밖에 없다.
“얼마나 더 가야 합니까?”
너 길은 알고 가는 거 맞지? 갑작스런 불안감에 물어보자 도리안이 대답했다.
“아직, 이 속도라면 4시간은 더 걸어야 할 거다! 다행히도, 여기부터는 길이 좀 거칠어도 샛길은 없어!”
다행 같은 소리하네. 일 참 잘 굴러간다. 이거, 오늘 재수 좋으면 시체 두 구 치우겠는데?
“이제…….”
눈보라 속에서 얼마나 걸었을까. 도리안이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뭔데 저게, 멈추라는 건가.
“발자국이다.”
나는 그 말에 얼굴을 구겼다.
“발자국이라니, 무슨 발자국을 말하시는 겁…….”
말을 이어가던 나는 도리안이 바라보고 있는 발자국의 크기를 보고 하던 말을 멈췄다. 360-390mm 정도 되는 발자국?
성장 호르몬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도, 사람의 발자국이 이렇게까지 커질 수는 없다.
예티가 출장이라도 온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도리안이 입을 열었다.
“하이랜더다.”
나는 그 말에 안색을 굳혔다.
“그렇다면 우리, 지금 위험한 상황 아닙니까?”
이렇게 눈과 바람이 쏟아지고 있는데, 발자국이 몇 시간이고 멀쩡하게 남아있을 리가 없다. 즉, 찍힌 지 얼마 되지 않는 발자국이다.
다른 말로는, 하이랜더가 우리 주위에 있다.
― 후욱…… 후욱…….
뭐야 이 씹덕 같은 숨소리는.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대충 봐도 3미터는 훌쩍 넘어가는 잿빛의 거인이 대충 깎아 몽둥이 비슷하게 만든 돌덩이를 하나 들고 새하얀 콧김을 훅훅 뿜어내고 있었다.
“염병,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도리안이 말해주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링거로 스테로이드 맞은 것처럼 생긴 잿빛의 근육덩어리가 바로 하이랜더구나.
눈보라로는 좀 부족했냐? 이 산에 온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 저딴 게 튀어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