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우드-20화 (20/275)

020화

그 뒤로, 나는 수색대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익히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피터가 나에게 짐을 건네주면서 확인할 수 있었던 그 커다란 효자손의 용도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덤으로, 내가 발현한 능력에 대해서도 충분히 실험해 볼 시간이 있었다.

예를 들어, 실체가 있는 분신은 유지 시간이 길어봤자 1.5초 정도지만 실체가 없는 분신은 유지 시간이 1분 정도는 된다는 것 같은 소소한 지식들 말이다.

“자세 잡고.”

오늘은 도리안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일종의 평가 같은 거다.

나는 서 있는 과녁을 바라보며 투창기에 재빠르게 작살을 끼웠다. 우리의 적 하이랜더의 맷집이 엄청나다는 건 이미 경험해 봐서 알고 있다.

어지간한 화살은 그 질긴 가죽을 뚫고 피해를 주지 못한다. 그래서 선택된 제식 장비가 바로 투척기에 끼울 수 있도록 개조한 쇠작살이다. 물론, 커다란 효자손은 작살을 던지기 위한 투창기였고.

물론, 투창기는 만능이 아니다. 애초에 작살이라는 물건이 많이 휴대할 수가 없는 물건이니까. 작전을 수행할 때 소지하는 작살의 개수는 딱 세 개다.

소지 개수가 너무 적은 거 아닙니까? 라고 질문을 해봤지만 돌아온 대답이 굉장히 설득력 있었다.

‘하이랜더를 마주치면 작살 세 개도 다 쓰지 못해. 기껏해야 하나 정도 던질 수 있을걸?’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투창기의 사정거리가 약 50m 정도인데. 그 정도 거리라면 작살을 던진 다음 다시 투창기에 작살을 끼우기 전에 하이랜더가 코앞으로 다가올 거다.

“좋아, 던져봐.”

“후우…….”

자세를 잡은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과녁을 향해 작살을 던졌다. 맹렬한 파공음과 함께 투창기에서 빠져나간 작살이 뻐억, 하는 소리와 함께 과녁을 박살 낸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감사합니다.”

내 말에 도리안이 픽 웃고는 대답했다.

“고마워할 필요 없다. 이제 집중 훈련 기간은 끝났다는 뜻이니까. 내 예상보다 훨씬 빨랐군.”

“그래서 감사하다는 겁니다.”

이제부터는 실전 투입이다. 이미 한 번 경험해 봤기에 하이랜더의 멱을 따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알게 되었지만…… 마주칠 기회조차 없다면 그 어려운 일을 시도할 수조차 없다.

“말은 잘하는군. 오늘 일정은 여기까지 하고, 일찍 쉬도록. 내일부터는 너도 바빠질…….”

도리안이 말을 하던 와중, 희미하게 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리안은 하던 말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신호라고 할 것도 없었다. 엄청나게 급박한 소리로, 삑삑삑삑 쉬지 않고 피리 소리가 들릴 뿐이다.

그리고, 그 미친 듯이 들리는 피리 소리가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하이랜더.”

원래, 피리 소리는 보안을 위해 주기적으로 그 의미가 바뀐다. 하이랜더가 피리를 부는 건 아니지만, 역으로 해석해서 수색대원들이 서로 주고받는 신호를 해석할 정도의 지능은 있는 모양이었으니까.

그 녀석들을 마주친다면 어지간한 실력의 병사들은 피리 신호를 떠올리고, 정해진 규칙에 맞게 피리를 불 여유와 정신머리가 없다. 그렇기에, 하이랜더를 의미하는 신호는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규칙 없이 미친 듯이 불어대는 피리 소리는 전부 다 하이랜더를 뜻한다.

“그나마 숫자는 적은 모양이군.”

수색대가 감당할 수 없는 숫자의 하이랜더나, 기타 괴물을 발견한다면 수색대는 피리를 불지 않는다. 냅다 본부까지 달려와서 보고한다. 보고를 들은 이후 수색대는 봉화를 지핀다.

봉화에 불이 오르면 산 아래의 관문을 담당하는 수비대는 방어를 준비하고, 다른 곳을 순찰하던 수색대는 전원 즉시 관문으로 향해 방어를 돕는다.

즉, 피리를 불었다는 건 수색대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다.

“에스칼 산머리 같던데, 맞습니까?”

쿠르스트 산맥의 열일곱 산머리 중 하나.

제7수색대의 작전 영역은 에스칼 산머리 일대 전부와 도노반 산머리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다.

“가서 준비하겠습니다.”

나는 도리안에게 인사를 하고 바로 본부 건물을 향해 달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남아있던 다른 대원들도 장비를 챙기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장비를 챙기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리안 대장이 문을 열고 들어와 외쳤다.

“피터, 앤더슨, 루치아노…….”

그렇게 일곱 명 정도의 이름을 부르던 도리안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마지막으로 마틴까지. 이름이 불린 인원은 여기에서 대기한다. 이후, 별도의 신호를 보내거나 내일 새벽까지 연락이 없는 경우, 에스칼 산머리에 지정된 접선지로 향하도록.”

나는 그 말에 시선을 도리안 쪽으로 향했다. 도리안이 지금 한 말은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도리안이 짐을 챙긴 사람들과 함께 바로 에스칼 산머리로 향했다. 피터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창고에서 의약품을 미리 꺼내두고…….”

잠깐 눈을 감고 있던 피터의 입이 열렸다.

“앤더슨, 너는 내려가서 관문 수비대 녀석들에게 군종 사제님을 불러두라고 해.”

사제. 여기에 남은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단어였다.

“가능하면, 군종 사제님께 전우를 데려갈 상황이 없게 되길 빌자.”

그 이후, 피터는 건물 안에 돌아온 사람들이 바로 쉴 수 있도록 침구를 준비하고, 마련된 약품을 한 곳에 정리해두었다. 이미, 봉화는 피리 소리가 들리자마자 대원 중 하나가 불을 밝혀놓은 모양이다. 쌓아놓은 장작과 기름이 타오르며 시커먼 연기를 피워올리고 있다. 불이 붙은 봉화는 하나. 따라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줄기도 하나다.

수색대의 담당 구역 안에서 하이랜더와의 교전 발생을 의미하는 신호다. 저게 연기 줄기가 두 개가 되면 하이랜더를 발견한 대원들에게서 연락이 없다는 뜻이 된다. 관문을 지키는 수비대는 이때부터 관문을 닫아걸고, 방어 준비를 한다.

“전원, 무장 상태로 대기한다. 밤이 되면 2명이 하나가 되어 교대로 밤을 지키며 신호를 기다리도록.”

피터는 빠르게 지시를 내렸고, 우리는 시킨 일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시간이 계속 흘러, 쿠르스트 산맥에 밤이 내려앉았다. 내려앉은 어둠이 점점 깊어지고, 기온은 점점 더 떨어진다.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우리는 어둠이 내려앉은 조용한 새벽을 맞이했다.

“부대장님.”

아직까지도 도리안과 함께 간 인원들이 복귀하지 않자, 대원들 중 하나가 피터를 불렀다. 잠깐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그래, 에스칼의 접선지로 향한다. 다들 준비해.”

곧바로 사람들이 일어나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가서 무슨 일이 있을지 아직 제대로 알지도 못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를 마치는 신속한 모습은 모두가 얼마나 대장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싶었는지를 대변해주었다.

준비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는 고민에 빠졌다. 대원 중 하나가 질문을 던졌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고 있습니까?”

“대장이 피리를 불지 못한 이유가 신경 쓰여.”

어째서? 그 질문이 머리를 자꾸 헤집는다.

피리는 작다. 목걸이처럼 목에 걸고 다닌다. 불고 싶었다면 언제든지 불 수 있다.

“혹시, 잃어버리거나 한 건……?”

그렇게 생각하면 편하기야 하지. 하지만 대장은 혼자 간 게 아니다. 전원이 모두 함께 피리를 잃어버렸다고? 그게 가능한 일인지가 더 궁금한데. 설사 자기 피리가 없다고 해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피리를 불게 하는 건 쉽다. 큰 목소리로 '불어!'라고 말하면 목에 피리를 걸고 있는 대원이 피리를 불었을 것이다.

게다가, 자기 입으로 말했다. 오늘 새벽까지 별다른 연락이 없다면 바로 접선지로 향하라고.

자신이 그렇게 명령을 내려놓고는 피리를 불지 않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못 불었던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다른 대원들과 함께 이동하기 시작했다. 도리안은 피리를 안 분 게 아니라 못 불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피리를 불지 못한 이유는 뭘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들이 결국은 나를 정답으로 끌고 갈 것이다.

항상 그래왔으니까.

“서둘러라!”

피터는 그렇게 말하고 빠르게 암벽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서 우리도 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정식으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은 물론 위태롭게나마 있지만, 우리는 지금 산책을 하러 나온 게 아니다.

“흔적들이 남아있군.”

산을 타고 움직이면서, 피터가 눈이 쌓인 땅에 찍힌 발자국을 확인하고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 산에는 수색대원들이 돌아다닌 발자국들이 뭉개진 채 남아있다.

“뒤쫓습니까?”

한 대원의 말에 피터가 입을 열었다.

“대장을 비롯한 사람들이 이미 접선지에 도착했을 가능성도 있어. 우선은 접선지 확보가 우선이다.”

피터의 말에 나는 뭐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일단 입을 다물었다. 그래, 접선지. 나도 거기는 확인해보고 싶으니까.

약 3시간 정도가 지나자, 우리는 도리안과 만나기로 했던 집결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없군.”

막사라는 이름의 오두막으로 들어간 피터가 주변을 훑어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아닙니다.”

내 말에 피터가 슬쩍 나를 보고 대답했다.

“사람이 왔다 간 흔적은 전혀 없어.”

“네, 전혀 없습니다. 마치 누가 치워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혹시, 이런 곳에 머무를 일이 생기면 신발 털고 들어와서 깨끗하게 사용하고, 나가기 전에 청소 싹 하고 나갑니까?”

내 말에 피터가 음, 하는 소리를 냈다.

“거기에 더해서, 페미컨을 보십시오.”

내 말에 피터의 시선이 오두막에 쌓여있는 페미컨으로 향했다.

“제가 처음 수색대 본부에 왔을 때, 부대장과 대장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3번 막사에 페미컨 10개와 물 한 통을 채워 넣어야 하고, 그 이외의 장소에는 모두 페미컨 30개와 물통 2개가 있다고.”

여기는 3번 막사가 아니다. 설사, 맞다고 해도 그렇게 보고를 한 이상 채워 넣었겠지.

“이곳에 남아있는 페미컨은 12개. 18개가 빕니다. 혹시, 제가 처음 여기에 오고 나서 훈련을 받는 동안 이 막사에서 누가 머물렀던 적이 있습니까?”

내 말에 다른 사람들이 침을 삼키며 피터를 바라봤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 막사에 머무른 사람은 없다.

“그럼 페미컨은 누가 가져갔다고 생각하십니까.”

유령이 배고파서? 그럴 리가. 사람이 왔다 간 거다.

“대장이 이 막사에 들렀을 수도 있습니다.”

한 대원의 말에 나는 푸후, 하는 소리를 냈다.

“대장이 함께 출발한 대원들과 함께 여기에 와서 페미컨만 꺼낸 다음, 방 청소를 깨끗하게 하고 떠났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

이상하잖아. 뭐하러? 수색대 대원들이 하이랜더와 마주친 상황이다.

페미컨은 챙길 수 있다. 다치고 싸움에 지친 수색대원들에게는 식량이 필요할 테니까. 하지만, 그런 필요로 인해 여기를 들렀다면 청소하고 떠났을 리가 없다.

“다른 녀석들이 왔다 간 겁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대원 중 하나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그게 중요한 겁니까?”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랜더는 피리를 불 수 없다고 쳐도, 사람이라면 불 수 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