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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우드-30화 (30/275)

030화

해가 뜨고, 달이 뜨는 시간이 반복 끝에 우리는 에스칼 산머리로 가는 세 번째 관문을 넘었다.

“여기부터는 수색대의 작전구역입니다.”

내 말에 옆을 걷던 다나 힐베른이 주변을 둘러보고 말했다.

“하지만, 지키는 사람들은 따로 보이지 않는걸요.”

“인원이 적으니까요. 작전 구역이라고 해도 수비대처럼 철저하게 위협요소를 배제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내 말에 다나 힐베른이 내 쪽으로 약간 더 붙었다.

“그럼, 길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뜻인가요?”

나는 달라붙는 다나의 몸을 딱히 거절하지 않은 채 대답을 돌려주었다.

“원래는 그렇지요. 하지만, 마법사분들이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수색대에서도 최대한 길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입니다.”

나는 목에 걸어두고 있던 피리를 꺼내 입에 물고 신호에 맞춰 힘껏 불었다. 그리고, 5분 정도 뒤 저 멀리에서 희미하게 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 소리는?”

이건 뒤편에서 따라오고 있던 엘렌 리버플로우의 질문이다.

“안전하다는 신호입니다. 여기부터는 주기적으로 제가 피리를 불어 안전 여부를 확인할 겁니다.”

지금은 안전하다는 신호가 돌아왔으니 예정된 경로를 따라 이동하면 된다.

그 후 약 30분 뒤. 저 멀리에서 피리 소리가 들려온다.

“아, 망할.”

저절로 얼굴이 구겨진다. 그런 나를 보던 다나 힐베른이 물어본다.

“왜요?”

“아무래도 경로를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17번 도로를 사용하라고 하는군요.”

그리고 그 도로는 내가 잘 알고 있는 도로지. 도리안과 함께 이 산을 오를 때 이용했던 곳이다. 밧줄을 붙잡고 지나가야 하는 절벽과 맞닿은 좁은 샛길.

“일정이 하루 정도 늦어질 것 같은데, 괜찮습니까?”

그 길을 통해 이동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하루는 막사라는 이름의 오두막에 머물러야 한다. 내 질문을 들은 엘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억지를 부린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네요. 이동에 대해서는 수색대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할게요. 며칠 정도 늦어져도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글쎄다. 지금 되돌려준 그 흔쾌한 허락의 말을 나중에 후회하지 않길 빈다.

“감사합니다. 그럼, 17번 도로를 이용해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다시 이동 경로를 바꿔 마법사들을 인솔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우리 앞에, 도로라는 이름의 지옥길이 펼쳐졌다.

“……이게 도로라고요?”

다나 힐베른의 말에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길이 조금 험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 점 때문에 다른 위협요소는 없거든요.”

추락사의 공포만 극복할 수 있다면 가장 안전한 길이다. 나는 솔선수범의 정신으로 샛길에 고정되어있는 밧줄을 꽉 잡으며 말했다.

“이렇게 밧줄을 잡고 이동하시면 됩니다.”

쉽지? 그런 나를 보고 있는 마법사들의 표정이 그렇게까지 밝지는 않다. 다른 마법사들을 보고 있던 엘렌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 샛길, 짧은 편인가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나. 오늘 우리가 머무를 막사라는 이름의 오두막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쭉 이런 길이다. 오두막에 도착해서 하루 묵고 난 이후로도 한 3시간 정도는 더 이동해야 비로소 이 샛길을 벗어날 수 있을걸.

내 설명을 들은 엘렌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마법을 사용해 길을 안전하게 만들기도 부담되네요.”

말을 마친 엘렌이 자기 뺨을 양손으로 쫙 하고 때린 다음 히죽 웃었다.

“좋아요, 가죠. 앞장서 주세요. 그래봤자 추락사 정도잖아요? 죽거나 살거나. 확률은 50%라고 치죠.”

훌륭한 마음가짐이다. 밧줄을 잡은 나는 앞장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히이익.”

뒤를 따라 이동하던 마법사 한 명이 비틀거리며 균형을 잃었다. 나는 그를 슬쩍 보고는 바로 옆에 분신을 하나 만들어서 비틀거리는 녀석을 벽 쪽으로 바짝 밀었다.

“방금 그건?”

마법사들이 방금 전에 나타났던 분신을 보고 놀란 모양이다. 물론 그 와중에 내 시선은 다나 힐베른에게 향해 있었다. 다른 마법사들에 비해 놀라는 타이밍이 늦었다.

놀란 건 연기일 뿐이고, 이미 내 능력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거다.

당연하겠지. 이미 로티샤 호수와 동굴에서 사용했던 기술이니까. 그 조직에 속해있는 일원이라면 모를 리가 없다.

“발현점에 도달해서 얻은 능력입니다. 절벽 아래를 보지 말고, 밧줄에만 집중해서 움직이세요.”

그 와중에 들리는 피리 소리. 여기에서 굉장히 가깝다. 나는 피리 소리를 듣고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저 신호는…… 신호 같지 않은데요.”

그렇지? 한 마법사의 말에 나는 간단하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하이랜더를 마주쳤다는 겁니다.”

그 말에 샛길을 건너던 마법사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췄다. 엘렌이 잠깐 침을 삼키고 나를 바라봤다.

“소리가 들린 곳은 여기에서 멀지 않았어요.”

나도 알아. 하지만, 어쨌든 내 임무는 이 마법사들은 무사히 수색대 본부까지 데려가는 일이다.

“대충 1km 이내에서 마주쳤을 겁니다.”

그리고, 내 말에 대답이라도 해주는 것처럼 휘몰아치는 매서운 바람 소리를 타고 희미하게 짐승의 고함 같은 게 울려 퍼졌다.

“가죠.”

엘렌의 말에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엘렌 리버플로우 양, 제 임무는 동행하는 마법사분들을 무사히 수색대 본부로 안내해드리는 겁니다.”

내 말에 엘렌이 밧줄에 매달린 채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저 사람들은 다치거나 죽겠죠?”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내 말에 엘렌이 마음을 굳힌 모양이다.

“외면할 수는 없어요. 사람이 위기에 빠져서 보낸 신호잖아요. 이런 걸 외면하고 지나가기 위해 돈과 시간을 들여 마법을 공부한 줄 아세요?”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그건, 엘렌 리버플로우 양 개인의 생각이지 않습니까?”

내 말에 엘렌이 대답했다.

“제 판단이 여기에 있는 다섯 마법사 전원의 의견이에요.”

단호하고, 다소 고압적이기까지 한 대사였다. 마법사들은 그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이 맞다는 뜻이다. 이거, 내 생각보다 엘렌 리버플로우가 이 사람들 사이에서 차지하는 입지가 큰 모양이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 피리 소리가 들린 곳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절벽을 타고 올라가야 합니다.”

내 말에 엘렌이 왼손에 낀 장갑을 입으로 벗긴 다음 말했다.

“어려울 것도 없죠. 쓸데없는 곳에 마법을 쓰는 건 낭비라고 생각해서 쓰지 않았을 뿐이니까.”

그녀의 왼손에 박힌 건 대충 봐도 30캐럿은 되어 보이는 마퀴즈 컷 다이아였다. 단순히 크기만 커다란 게 아니다. 무색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투명하고, 불순물도 거의 없어 보인다. 저 정도면 손등에 아파트 두 채 정도를 박아놓고 다니는 수준인데.

“으……아?!”

다이아가 순간적으로 번쩍이고, 나를 포함한 여섯 명의 몸이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는 기운에 휘감겨 절벽 위를 향해 솟구친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우리는 샛길이 나 있던 절벽의 꼭대기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진작에 사용하시지.”

내 말에 엘렌이 하, 하는 소리를 내고는 입고 있는 두꺼운 외투를 한 번 여몄다.

“몸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을 조금 힘들다고 마법에 의존하면 사람이 나약해져요. 그것보다, 안내해 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마법사들과 함께 서둘러 이동하기 시작했다. 쿠쿵거리는 진동음이 다리를 타고 희미하게 전해진다.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 거대한 하이랜더의 모습과, 무기를 들고 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세 마리라.”

빡세겠는데. 나는 작살을 끼워 넣은 투창기를 손에 들고 마법사들을 바라봤다.

“기왕에 도와주신다고 했으니,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을 마친 나는 피리를 입에 물고 날뛰는 하이랜더를 향해 투창기를 겨눈 다음, 마력을 몸에 불어넣기 시작했다. 심장의 두근거림과 함께 심장에 쌓여있던 마력이 풀려나와 몸으로 스며든다.

투창기를 통해 집어던진 작살이 투쾅, 하는 굉음을 내면서 하이랜더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쏘아진 작살은 눈앞의 수색대원들을 공격하느라 정신이 팔려있던 하이랜더의 가슴팍을 쑤시고 들어갔다. 곧바로 검을 뽑아 든 나는 피리를 불어 지원군 도착을 알렸다. 입에 문 피리를 다시 뱉어낸 나는 곧바로 녀석들을 향해 달려든다.

“상천에서 고토로 침잠하는 벽력성. 갑절로 몰아쳐라.”

뒤편의 마법사 하나가 중얼거리자, 갑자기 내 손에 들린 검에서 창백한 스파크가 튀기 시작한다.

“으아아아아아!”

달려드는 나를 향해 고함과 휘둘러진 하이랜더의 거대한 몽둥이를 피한 나는 그대로 뛰어올라 녀석의 가슴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휘두른 검이 가죽을 뚫고 박혀 들었다.

“커…….”

가슴으로 검은 받은 하이랜더가 마치 충전된 제세동기에 때려 맞은 것처럼 뒤로 쫙 밀려 나간다. 녀석의 입에서 검은 연기가 희미하게 올라온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라기는 했지만, 치명상을 당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지원할게요.”

엘렌을 비롯한 마법사들도 그 틈에 다가와서 공격을 준비한다.

“저도!”

다나 힐베른이 그런 외침과 함께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손등에 박힌 시뻘건 카넬리안에서 붉은빛이 일렁인다.

“붉은 궁수, 시위는 다섯 개.”

다나 힐베른의 몸 주변에 떠오른 타오르는 불줄기 다섯 개가 그대로 쏘아져 나가 하이랜더 중 하나의 몸을 후려치고 폭발한다.

“무슨 마법 저항이…….”

화염 줄기를 얻어맞은 하이랜더는 가죽이 약간 그을리기는 했지만 멀쩡해 보인다.

“원래 그런 녀석들입니다. 적당한 걸로 공격하면 씨알도 안 먹혀요!”

하나하나 감탄하기 시작하면 1박 2일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감탄만 해야 할걸.

“망치질, 존나 쌔게 세 번 조져라!”

이 급박한 와중에도 귀에 착 하고 달라붙는 외침이 울려퍼졌다. 저 목소리는 엘렌 리버플로우인데.

그리고, 하이랜더의 머리 위의 공간이 일렁이더니 두웅, 하는 굉음과 함께 하이랜더에 내려꽂힌다. 얻어맞은 하이랜더의 눈이 순간적으로 풀렸다. 하지만 허공 위에 떠오른 일렁거림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녀석의 머리통 위에 두 번 더 때려 박혔다.

녀석의 얼굴을 보니 쌍코피가 터져 흐르는 중이다. 어지간히 충격이 심했던 모양인데. 머리를 맞았는데 코피가 터지려면 얼마나 아파야 하는 걸까.

휘청거리던 녀석이 코에서 흐르는 피를 훔치며 자세를 바로잡는다.

“세상에, 버텼어?”

엘렌의 황당하다는 중얼거림. 그 틈에 나는 녀석의 뒤로 돌아가 척추 부근에 칼을 쑤셔 박았다. 분신이 나타나 칼자루를 발로 힘껏 내려찍었다.

칼날이 가죽을 뚫고 경추의 틈으로 밀려 들어갔다. 잠깐 신음을 흘리던 하이랜더가 이내 풀썩 쓰러졌다. 좋아, 한 놈 돌아가셨고.

다시금, 다리 근육에 머무른 마력으로 폭발적으로 튀어 나간 나는 하이랜더를 상대하며 수색대원을 보고 외쳤다.

“공격은 우리에게 맡기고, 시선 끄는 데 집중해!”

내 말에 수색대원들이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무기를 든 채 최대한 하이랜더들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법 저항이 너무 높아요. 마무리는 레드우드 씨에게 맡기고, 동선을 방해하는 데 집중하세요.”

엘렌은 그렇게 말한 다음 다이아몬드가 박힌 손을 꽉 쥐었다.

“쾅쾅.”

짤막한 중얼거림과 함께 나를 향해 몽둥이를 휘두르던 녀석의 몸 주변에서 일렁거림이 팡팡 터지고 녀석이 순간 주춤한다. 몸에 마력을 돌리며 달려든 나는 녀석의 심장 부근을 칼로 쑤셨다.

“끄어어어어!”

가죽을 뚫고 박힌 칼날에 하이랜더가 순간적으로 비명을 지른다.

“아직 하나 남았지?”

이 친구들은 심장 하나 찔렀다고 끝나지 않는다. 박힌 검을 뽑아낸 나는 녀석의 가슴을 발로 박차며 뒤로 물러났다.

“아쿤다 다발리!”

하이랜더 중 하나의 외침에, 녀석들이 살짝 뒤로 물러난 다음 자세를 바로잡았다. 방금 뭐라고 외친 녀석이 작게 뭐라고 중얼거리자, 남은 하이랜더 두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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