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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우드-31화 (31/275)

031화

이후, 곧바로 녀석들이 흩어진다. 두 마리는 마법사를 노리고, 남은 한 마리는 나를 노리고 천천히 조여든다.

“이 녀석들, 설마.”

엘렌이 자신을 향해 휘둘러진 몽둥이를 정체불명의 일렁임으로 막아낸 다음 당황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네, 머리 위에 올려놓은 거 굴릴 줄도 압니다!”

신기하냐?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마법사들을 커버쳐 줄 수가 없다.

“버티는 데 집중하세요!”

어떻게든 하나 멱을 따놓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쉬워진다.

“수색대는 언제 옵니까?”

마법사 중 하나의 급박한 외침이었다.

“빨라도 40분!”

어쩔 수 없다. 거리가 그 정도는 될 테니까. 지원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을걸?

녀석 중 하나가 바닥을 향해 몽둥이를 처박고, 빗자루로 마당을 쓸어내듯 몽둥이를 휘둘렀다.

쌓여있던 눈이 확 일어나며 순간적으로 사람들의 시야를 가린다.

“싸대기!”

엘렌의 외침과 함께 그녀에게 달려들던 하이랜더의 뺨이 확 돌아간다. 문자 그대로 싸대기라도 한 대 후려맞은 것처럼.

“으아아아아!”

곧바로 엘렌이 손을 꽉 쥐고 괴성을 지르자, 싸대기를 맞은 하이랜더의 손에 들려 있던 몽둥이가 쑥 빠져나와 허공에 뜬다.

그리고, 타자석에 선 야구선수 같은 자세를 취한 엘렌이 그대로 양손을 휘두르자 거대한 몽둥이가 뻐억, 하는 소리와 함께 하이랜더의 골통을 후려쳤다.

순간적인 충격에 비틀거리던 하이랜더가 이내 재빨리 손을 뻗어 허공에 떠 있는 몽둥이를 잡았고. 결국 소유권은 다시 원래 주인에게 넘어갔다.

물론, 머리통이 깨졌는지 피가 흐르기는 하지만, 그걸로는 멈출 수 없는 녀석들이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죽는 거야?”

엘렌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하이랜더의 위용에 감탄한다. 그래, 나도 처음 봤을 때 비슷한 감정을 느꼈지.

“괴물 자식들.”

나를 전담하기로 한 녀석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몽둥이를 피하자, 주먹이 나를 노리고 휘둘러진다.

“크으으……!”

몸에 마력을 최대한 돌리며 주먹을 어깨로 받아내자, 전신을 타고 아릿한 충격이 퍼진다.

동시에 바닥에 쌓인 눈이 그 충격파를 이기지 못하고 쫙 쓸려나간다.

이를 악물고 주먹질을 견딘 나는 하이랜더의 손등에 검을 박아넣고, 힘껏 내리 긁었다. 하이랜더의 주먹에서 힘이 확 빠진다.

손가락 힘줄이 다 날아갔으니 별수 있나.

“니들은 어지간해서는 한 방에 안 죽더라.”

아까는 경추를 노릴 수 있었던 게 운이 좋았던 거다. 보통은 그렇게 쉽게 처리되지 않는다.

하이랜더는 사탕으로 치면 씹어먹으려고 들면 턱이 나가는 종류의 사탕이다. 녹여 먹어야 한다.

마법사들을 공격하던 하이랜더 하나가 그 상황을 보고는 뭐라고 말을 하면서 내 쪽으로 달려든다. 뭔데 저 새끼는, 교대라도 하겠다는 건가?

“지랄하지마!”

엘렌 리버플로우의 외침과 함께, 내 쪽으로 향하던 하이랜더 발아래가 폭발한다.

순간적으로 녀석이 주춤한다. 그리고, 녀석이 자리를 비운 덕분에 녀석이 전담하던 마법사들에게 약간의 틈이 생겼다.

마법사들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내가 담당하던 하이랜더를 향해 마법을 쏟아낸다. 창백한 번개 줄기와 화염, 얼음 같은 것들이 녀석의 몸을 때린다.

녀석이 오른팔을 들어 얼굴로 쏟아지는 마법을 막아낸다.

그 틈에, 나는 팔이 들어 올려져 드러난 겨드랑이에 칼날을 밀어 넣었다. 분명히, 근골격 자체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분명히 여기에…….

“그렇지!”

소원건이 있어야 한다. 회전근개라는 이름으로 묶인 힘줄 중 하나. 제대로 썰리면 팔을 들지 못한다.

녀석이 들어 올린 팔이 다시 축 늘어졌다. 물론 마법으로 입은 큰 피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양손이 다 삐꾸가 되었다. 양손을 못 쓰는 녀석을 요리하는 건 그렇게 힘들지 않다.

“크르륵…….”

마침내 녀석의 가슴을 밟고 올라 목줄기에 칼을 박아넣자. 기도가 썰려 나간 녀석이 그런 소리를 내며 입으로 피를 쏟아낸다. 이제 숨을 쉬지 못할 테니, 자연스럽게 죽을 거다.

“하아, 둘 남았나.”

마법사들의 지원을 받아 틈을 노려 공격하자, 얼마 뒤, 하이랜더 두 마리도 마저 정리할 수 있었다.

“오늘 전과 좋은데.”

매일 이렇게 네 마리씩 조질 수 있으면 대충 2주 뒤에는 전역하겠는걸? 행복해라.

나는 그런 희망적인 생각을 하며 입가에 흐르는 피를 훔쳤다.

역시 그 무식한 주먹을 어깨로 받아낸 게 무리였던 모양이다. 삭신이 쑤시고 눈앞에 어지럽다.

“괜찮으십니까?”

도움을 받은 수색대의 병사들이 내 쪽으로 달려온다.

“안 괜찮아. 보면 알잖아. 내가 지금 입으로 흘리는 게 케찹으로 보이냐?”

내 말에 수색대 병사들이 하아, 하고 숨을 내쉬었다.

“다행입니다.”

안 괜찮다고 말했는데 다행이라고 말하다니.

“피리나 불어. 상황 종료되었고, 사람 살려달라고.”

내 말에 병사 하나가 곧장 입에 피리를 물고 불었다. 곧이어 대답이 돌아왔다. 거의 다 온 모양인지 피리 소리가 크다. 다행이네.

“그리고 가서 마법사들에게 감사 인사 전해. 저 친구들이 고집 안 부렸으면 그냥 가던 길 가려고 했으니.”

내 말에 녀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법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한다. 잠깐 그 꼴을 보고 있으려니 다나 힐베른이 다가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마틴, 괜찮아요?”

나는 그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문제없어요. 고마워요.”

다나 힐베른이 지금 내 명줄을 딸 생각을 하지는 않을 거다.

보는 눈도 많고, 지금 약해진 나를 죽이는 건 바보 같은 생각이거든. 하이랜더 무덤을 찾는 가장 쉬운 길이잖아.

“그나저나, 정말 죽은 시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네요.”

하이랜더와 싸우고 난 공간에는 흘렀던 피와 버려진 몽둥이 따위는 남아있지만,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 녀석들이니까요.”

상태를 보기 위해 다가왔던 마법사들은 다나 힐베른이 옆에 딱 붙어있는 걸 보고는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잠시 쉬고 있으려니 피터가 수색대의 병력과 함께 다가왔다.

“이번에는 부대장이 오신 겁니까? 간만에 보니 반갑네요. 몸무게가 좀 느신 것 같은데.”

피터가 내 얼굴을 보고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염병. 그것보다, 니가 여기서 왜 나와?”

그러게 말이다.

“17번 도로 타고 가는 길에 피리 소리를 들었습니다.”

내 말에 피터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자식아, 네 임무가 뭔지 알고 있잖아. 아무리 신호를 들었다고 해도…….”

하는 말은 질책하는 느낌이지만, 어투는 질책하는 기색이 없다. 그렇겠지, 어쨌든 죽을 뻔한 수색대 병사들이 살아났으니까.

“제가 가자고 한 거 아닙니다. 마법사들이 그냥 두고 갈 수는 없다고 하더군요.”

내 말에 피터가 후우, 하고 숨을 내쉰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마법사들에게 다가갔다.

대충 보니, 피터가 고맙다고 말하자 엘렌 리버플로우가 당연한 일을 했다고 말하는 것 같은 풍경이었다.

감동적이군. 아마, 여기부터는 파견 나온 수색대 사람들의 호위 하에 본부까지 이동하면 될 것 같다.

“넌, 치료 필요 없나?”

피터가 부상당했던 수색대원들을 치료하기 전에 나에게 와서 물어봤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입으로 케찹 짜냈다고 하던데.”

나는 그 말에 픽 웃었다.

“지금은 다 짜냈습니다.”

붉은 가지의 심장이 회복력 강화에도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잠깐 쉰 것만으로도 많이 괜찮아졌다.

하긴, 원래 품고 있는 마력의 방향성이 레드우드 가문의 안녕과 번영이잖아. 아마, 방향성이 회복에도 도움을 주는 모양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나는 다른 수색대 사람들과 함께 본부로 향하기 시작했다.

“마틴, 어깨 빌려드릴게요.”

“그래도 될까요?

다나 힐베른이 나를 부축한다. 노리는 게 있는 나도 그 제안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걸 보는 수색대 사람들의 표정이 참 이상했다. 이유는 알 것 같다. 걱정하지마 친구들아. 나와 이 여자는 그런 사이가 아니란다.

수백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눈초리와 다나 힐베른의 부축을 받으며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는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었다.

원래는 하루 더 걸렸어야 하지만, 엘렌 리버플로우가 절벽을 훌쩍 뛰어넘어버린 덕분에 거리가 확 단축되었다.

“제7수색대 본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도리안이 다른 병사들과 함께 마중 나와 있었다. 마법사들은 멍하니 본부 건물을 바라봤다. 기분이 묘하지? 나도 처음에 그랬거든.

“이제 시작이라니.”

다나 힐베른이 나를 부축한 채로 작게 중얼거렸다. 저 말에는 나도 동의한다.

망할, 이제 시작이다. 아직 경보 마법은 설치도 못 했다.

“대장, 저 본부 건물 하나 짓기 위해서 수십 년이 걸렸다는 말을 이전까지는 머리로 이해했을 뿐이지 가슴으로는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내 말에 도리안이 내 쪽으로 시선을 던진다.

“근데 이제는 아닙니다. 저거 짓는데 수십 년밖에 안 걸린 게 용할 지경입니다.”

거의 피라미드급 불가사의 같은데. 여기까지 도대체 어떻게 건축 자재를 옮긴 거야? 포탈건이라도 사용한 건가.

내 말에 도리안이 흐흐, 하고 웃음을 흘렸다.

“흰소리 말고 밥이나 먹어라. 마법사분들도, 식사하시지요.”

메뉴에 대한 언급을 굳이 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뭐, 나름대로 정성을 들이기는 했겠지만 관문에서 먹던 것보다 더 수준 낮은 요리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식사를 하고 있으려니 도리안이 나에게 물잔을 건네주며 말했다.

“고생 많았다. 식사 끝내고 나면 좀 쉬고, 저녁 중으로 피터에게 인수인계해라.”

“그러겠습니다.”

어차피 피터는 돌아온 병사들의 치료에 매진하느라 당장은 인수인계를 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닐 것이다.

어쩌겠어, 발현점에 도달해서 얻은 능력이 회복인 이상 피터는 부대장 겸 의무병이잖아.

“뭐, 저 없는 사이 별다른 일 있었습니까?”

“정확히는 네가 벌여놓은 일이 문제였지.”

아, 그 조사? 그 주제는 지금 꺼내는 게 별로 좋지 않은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마법사들은 다나 힐베른을 포함해서 모두, 내가 쿠르스트 산맥의 조사를 마쳤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내가 아직 쿠르스트 산맥의 생태계와 토양의 특징을 분석 중이라는 걸 다나 힐베른이 알게 되면 하이랜더의 무덤 위치를 특정 지었다고 하는 내 말의 진위 여부를 의심할 거다.

“뭐, 제가 벌여놓은 일이니 알아서 수습하겠습니다.”

나는 웃으며 말을 마치고, 포크로 나무 접시를 가볍게 몇 번 때렸다.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도리안이 내 신호를 눈치채고는 더 이상 관련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았다. 잠깐 눈치를 보고 있던 다나 힐베른이 내 쪽으로 자기 몫의 음식을 덜어준다.

“여기, 조금 더 드세요. 마틴.”

“아, 고마워요, 다나.”

그 이후로 한동안 우리의 대화와 행동을 지켜보던 도리안의 표정이 뭔가 애매하게 변한다. 그리고, 빠르게 눈동자가 다른 마법사들 쪽으로 향한다.

나름대로 나와 다나 힐베른 사이의 관계에 대한 어떤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아마, 그 결론은 다른 마법사들이 내렸던 결론과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다.

“도리안 대장.”

식사를 마치고 나서 마법사들의 숙소 안내를 마치고 나서, 나는 도리안 대장의 방으로 돌아왔다.

“안 그래도 부르려고 했다 마틴.”

“왜 부르려고 했는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우선 제 이야기부터.”

도리안은 알아야 하는 일이다. 다른 곳으로 흘러나갈 걱정은 하지 않는다.

하이랜더의 무덤에 대해서 왕국에 보고하고 난 다음 입을 몇 년 동안이나 다물고 있었고, 곁에 두고 가까이 지내던 피터조차도 무덤에 대해서는 습격 전까지는 몰랐잖아.

그 정도면 입이 무겁다고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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