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화
나는 다나 힐베른에 대한 이야기를 도리안 대장에게 전달해주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도리안 대장의 표정이 약간 변했다.
“그래, 일부러 그런 거다 이거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도리안을 바라봤다.
“수상하지 않습니까?”
내 말에 도리안이 턱을 쓰다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에 일리가 있어. 의심 정도에서 멈출 만한 일이 아닌 것 같다.”
말을 마친 도리안은 의자를 책상 쪽으로 약간 당겨 앉은 다음 손깍지를 꼈다.
“그래서, 내가 뭘 해주길 바라지?”
어려운 부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는 다나 힐베른이 경보 마법을 설치할 때 동행할 예정입니다.”
이후 전략은 간단하다. 경보 마법을 설치하러 출발한 다음, 나는 그녀와 함께 에스칼 산머리 일대를 돌아다닌다.
“적당한 시기를 봐서 다나 힐베른을 심문할 생각입니다.”
심문 과정에서, 우리가 동굴에서 상대했던 깡통과 그녀를 보낸 녀석이 누구인지를 알아낼 수 있겠지. 도리안이 잠깐 주저하다가 어렵사리 한 마디를 건넨다.
“다나 힐베른은 다시 수색대 본부로 돌아오면 안 된다. 알고 있겠지?”
좋게 말해 심문이지, 나쁘게 표현하면 고문이 될 것이다. 그런 걸 당한 다음 다나 힐베른이 숨통이 붙어서 수색대 본부로 돌아온다면 문제가 생길 거다.
애초에, 하이랜더의 무덤이라는 거 자체가 왕국에서는 애들이나 믿을 법한 싸구려 전설로 취급된다.
고로, 다나 힐베른이 그걸 노리고 쿠르스트 산맥으로 왔다고 하는 이야기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겠지.
“실종으로 처리할 생각이냐?”
도리안의 말에 나는 머리를 긁었다.
“최악의 상황에는 그렇게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 저는 다나 힐베른의 소지품 중에서 수상한 물건이 있기를 바랍니다.”
내 말에 도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뭔가 발견된다면 실종으로 처리하지 않아도 되겠지.”
“거기에 더해서, 제가 다나 힐베른을 처리한 행위도 떳떳해집니다.”
하이랜더의 무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필요 없이 다나 힐베른의 소지품 중 수상한 물건이 튀어나오고, 그걸 문제 삼는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해 어쩔 수 없이 처리했다고 보고하는 전개.
이게 최선이긴 하다.
“하지만, 그녀의 소지품 중에서 수상한 물건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면 도리안 대장의 말대로 실종 처리할 생각입니다.”
죽이고 실종 처리한다.
“별로 떳떳한 방식이 아니긴 하군.”
도리안의 말대로, 누군가를 죽이고 실종 처리한다는 계획이 음침하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나는 이전 세상에서 고아원 봉사하고 독거노인 분들 찾아가서 연탄 봉사하며 살던 녀석은 아니거든.
이런 일을 하는 것도, 계획을 짜는 것도 익숙하다. 도리안도 떳떳하지 않은 방식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하지 않겠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기지는 않았다.
“다나 힐베른이 실종 처리된다면, 왕궁의 마법사들은 이 일에 대해 책임을 물으려 들 거야.”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그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그렇겠죠?”
원래 세상살이가 다 그딴 식이지. 무슨 일이 생기면 질책받는 건 현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다.
“감당하지 못할 일은 아니야. 애초에 왕궁에서도 쿠르스트 산맥이 어떤 곳인지 모르면서 마법사를 파견한 건 아닐 테니. 날아오는 질책은 내가 감당하마.”
윗사람 입에서 자기가 책임지겠다는 소리는 그렇게 자주 나오지 않는 편인데. 물론, 저렇게 말하고 그런 상황이 되면 그런 적 없다고 발뺌하는 녀석들도 있기는 하지만…….
“알겠습니다.”
책임지겠다고 한 말은 믿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믿음의 근거도 있다.
도리안이 그런 식으로 삥글뺑글하게 일 처리 하는 녀석이었다면 그 깡통에게 수색대원들이 납치되었을 때 그 친구들을 살려두기 위해 순순히 생포되었을 리가 없으니까.
“그럼, 다나 힐베른과 동행하는 수색대원은 너로 조정해 둘테니…….”
나는 그 말에 음, 하는 소리를 내고 고개를 저었다.
“제가 다나 힐베른을 만나서 미리 언질을 해두겠습니다. 아마, 내일 아침 식사 중에는 직접 저와 동행하고 싶다고 말할 겁니다.”
“그럼 나는 못 이기는 척 다나 힐베른의 부탁을 들어주면 되는 거군. 좋아,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도리안과의 대화는 그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이후 우리는 설치하기로 한 경보 마법진의 지역에 따른 맞춤 설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미 첫 번째 관문에서 다나 힐베른을 떠보는 과정에서 했던 말이 있으니까.
2시간 정도 지나고 나자 얼추 경보 마법의 설정에 대한 이야기도 완성이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섰다.
“이제 인수인계해야지.”
나는 평상시에 내가 일하던 방으로 들어갔다.
“망할, 왜 이렇게 늦었어?”
피터는 히죽 웃으면서 나를 보고 서류를 휙휙 흔들었다.
“함께 온 대원들은 좀 어떻습니까?”
내 말에 피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이랜더 네 마리를 마주하고 그 정도 상처면 양호하지. 아, 어차피 마법사들에게 하이랜더 처치 수는 큰 의미 없을 테니. 네 마리 모두 네가 처리한 걸로 처리했다.”
“감사합니다.”
딱히 말해두지 않아도 알아서 처리해주다니. 자리에서 일어난 피터는 기지개를 한 번 켜고 내 쪽으로 서류들을 내밀었다.
“자, 일 받으라고.”
그리고 약 2―3시간에 걸친 인수인계가 이어졌다.
“이상, 이걸로 끝이다. 내일부터 고생하라고.”
그것참, 슬픈 이야기이긴 한데. 인수인계를 해준 건 고맙지만 크게 의미가 없게 될 거야. 왜냐하면 내일부터 나는 다나 힐베른과 함께 경보 마법을 설치하러 돌아다닐 예정이거든.
말해주려고 한다면야 얼마든지 말해 줄 수 있지만, 이런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은 편이 좋다.
“감사합니다.”
돌아가려던 피터가 아, 하는 소리를 내고 다시 책상 맞은편의 의자에 앉았다.
“너, 다나 힐베른 이라는 마법사와 무슨 사이냐?”
나는 그 말에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피터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진지했다.
“그냥, 뭐…… 그분이 저를 많이 챙겨주고, 저도 많이 챙겨주는 정도입니다.”
역시, 자세한 내막을 말해줄 생각은 없다. 내 말에 피터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쉰 다음에 나를 바라봤다.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이다.
“그래, 시간 정도는 얼마든지 낼 수 있으니…… 혹시 술 한잔하고 싶어지면 말해라.”
말을 마친 피터가 돌아가고, 나는 서류를 정리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다나 힐베른의 숙소로 향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다나 힐베른이 반갑게 맞아주고, 나도 반갑게 맞아주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눈 이후 나는 입을 열었다.
“하이랜더의 무덤에 관해서 말인데.”
그 말이 나오자마자 다나 힐베른의 신경이 바짝 집중된다.
“네네, 무슨 일이에요?”
“내일 아침 식사 중에, 힐베른 양이 경보 마법의 설치에 동행할 사람이 저였으면 좋겠다고 직접 말을 꺼내주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내 말에 다나 힐베른이 웃었다.
“그러면 되는 건가요? 저야 너무 좋죠.”
“네, 경보 마법을 다 설치하고 난 다음에는 시간이 좀 남을 테니…… 그때 남들 몰래 제가 하이랜더의 무덤이라 추정하는 장소들을 조금 돌아다녀 보는 건 어떨까 합니다.”
내 말에 다나 힐베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분들은?”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어차피 제가 동행하게 된다면 다른 수색대원들의 호위는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그…….”
내 말에 다나 힐베른이 얇게 눈웃음을 짓고는 내 팔을 쿡 찔렀다.
“단둘이라는 소리네요. 저는 좋아요, 마틴.”
대충 그런 이야기였다.
“대충 세 곳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돌아보는데 일주일 정도는 걸릴 것 같아요.”
“아, 준비를 많이 해야겠네요. 일주일이라니. 벌써 내일이 기대되는걸요.”
물론, 내가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왜냐하면…….
나는 적당히 에스칼 산맥의 외진 곳에 도착했다 싶으면 바로 작업을 들어가지만, 다나 힐베른은 내가 세 곳이라고 말한 이상 세 곳을 모두 다녀보기 전까지는 나를 공격할 수 없다.
즉, 선빵권은 무조건 나에게 있다.
“그럼 내일 아침에 다시 봐요. 엘렌에게는 오늘 밤 중으로 이야기를 해둘게요.”
내 말에 다나 힐베른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꽉 안은 채로 작게 속삭였다.
“그래요, 내일 아침에 봐요.”
나와 다나 힐베른, 아가리에 꿀을 물고 등 뒤에 사시미칼을 숨긴 우리는 헤어졌다.
* * *
엘렌 리버플로우는 제7수색대에서 마련해준 방 안에서 다나 힐베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나, 제정신이야? 소문 못 들었어?”
엘렌의 말에 다나 힐베른이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별일 없었잖아요.”
다나 힐베른의 대꾸에 엘렌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그야, 보는 눈이 있었잖아. 경보 마법 설치에는 시간이 꽤 걸리고, 그동안 내내 그 녀석과 동행해야 할 거야. 심지어, 그때는 보는 눈도 없어!”
엘렌의 말에 다나 힐베른이 활짝 웃었다.
“맞아요.”
다나 힐베른의 반응을 보니 아주 그 마틴 레드우드라는 녀석에게 단단히 맛탱이가 간 모양이다. 엘렌은 그런 다나의 반응을 보고 있으려니 기가 막힌다.
“하녀고 뭐고 구분 없이 백작가 사람들 중에 조금이라도 자기 성격을 긁는 녀석이 있으면 목에 올가미를 걸어버리던 또라이야.”
“하지만, 저는 그런 걸 느끼지 못했어요. 오히려, 엄청 저에게 자상하게 대해줬고.”
이 여자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엘렌 리버플로우는 눈앞에서 마틴 레드우드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다나 힐베른을 굉장히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엘렌, 제발요. 별일 없을 거예요. 허락해주지 않으면 저 오늘 여기에서 안 나가요.”
저 꼴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다나 힐베른은 자신의 요청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과 정신병자 사이에는 종이 한 장의 차이밖에 없다고 누가 그랬었지.
엘렌의 시선에 보이는 다나 힐베른의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억지로 막는다고 막을 수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쿠르스트 산맥에 자원한 사람들은 하이랜더 50마리를 잡지 못하면 산에서 나오지 못해. 알고 있잖아.”
다나 힐베른이 그 말에 대답했다.
“제가 자주 찾아올 거예요. 면회도 못 하는 건 아니잖아요. 다만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상관없어요.”
다나의 말을 들은 엘렌이 순간적으로 할 말이 없어져서 입을 벙긋거렸다. 뭐지, 마틴 레드우드가 몰래 다나 힐베른의 음식에 사랑의 묘약 같은 거라도 풀어놓은 건가.
엘렌은 다나의 눈을 가만히 바라봤다.
가끔, 저런 눈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저히 설득할 엄두가 나지 않는 눈. 보통, 이런 경우 억지로 막으면 오히려 상황이 더 안 좋아진다.
“……알았어. 동행을 허락하면 되는 거지?”
결국, 엘렌의 입에서 허락이 떨어졌다. 그리고, 다나 힐베른이 그제서야 안심한 표정으로 엘렌을 바라봤다.
“정말이죠?”
“거짓말이면 어쩌려고?”
엘렌의 말에 다나가 좋다고 헤실거리며 웃는다.
“참말로 바뀔 때까지 여기 있어야죠.”
“거짓말 아니야. 아, 그리고 이 일을 마치고 왕궁으로 돌아가면 하고 싶은 연구가 있어. 네 도움을 조금 받을 수 있을까? 큰 도움이 될 텐데.”
엘렌의 말에 다나는 순간 움찔하고는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고맙죠, 엘렌. 열심히 도울게요.”
엘렌의 말에 다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문으로 다가간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엘렌이 살짝 양손을 포갰다. 오른손에 박힌 다이아몬드와 왼손에 박힌 금록석이 희미하게 빛난다.
촛불에 일렁거리던 엘렌의 그림자가 약간 떨어져 나와, 다나의 그림자에 섞여든다.
“잘 자요, 엘렌.”
그 후, 다나가 뒤를 돌아 인사를 한다.
“너도 잘 자.”
인사를 받아 준 엘렌은 닫히는 문을 보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보통은 추적 마법 따위에 연결점 두 개를 모두 사용하지는 않지만…….”
다나 힐베른도 썩 괜찮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 마법사다. 어중간한 추적 마법을 걸면 눈치챌 것이다.
저렇게 남자에 눈이 돌아간 상황이라면 추적 마법이 걸렸다는 걸 알자마자 곧바로 풀어버렸을 테니, 선택지가 없었다.
“미안, 하지만 걱정되는 걸 어쩌겠어.”
그렇게 문을 보고 중얼거린 엘렌은 침대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왕궁에 있을 걸 그랬나.”
두 개의 연결점을 감당할 수 있는 재능이 있는 마법사는 왕국에 그녀 말고는 없었다.
덕분에 사람들이 툭 하면 물고 빨기 일쑤여서 머리라도 식힐 겸 자원해서 왔더니 여기에서는 또 다른 문제로 머리가 아프다.
“완장질도 못해 먹겠다 진짜. 미행까지 하게 될 줄이야.”
잠깐 구시렁거리던 엘렌은 그대로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