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화
다음 날, 예정처럼 다나 힐베른은 아침 식사를 하면서 도리안 대장에게 나와 동행하겠다는 강철같은 의지를 어필했다.
“하지만, 마틴 레드우드는 수색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함부로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울 수는 없어요.”
도리안의 난처하다는 표정을 보고 있던 다나 힐베른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럼, 저희의 호위는 어떻게 수행한 건가요? 게다가, 이미 동행한 마법사들의 대표인 엘렌 리버플로우 양은 허락했어요.”
곧바로 동석하고 있던 피터의 표정이 서글퍼진다. 대충 이 대화의 끝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마틴이 호위를 해준다면 구태여 추가로 병력을 붙일 필요가 없어요. 그렇잖아요?”
아침 식사 자리는 끝나기 전까지 다나 힐베른의 끈질긴 요청과 도리안의 난처하다는 듯한 대답으로 점철되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나 힐베른 양의 경보 마법 설치 간 호위는 마틴 레드우드가 동행하는 것으로 해두겠습니다.”
그리고, 식사가 거의 다 끝날 때쯤이 되어서야 도리안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허락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도리안 수색대장님.”
다나 힐베른이 인사를 마치고 나서 나를 보고 웃는다. 좋냐? 나도 좋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바라보는 엘렌의 표정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질투 따위는 아니다. 애초에, 산속에 처박혀서 썩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쿠르스트 산맥의 수색대 사람을 남자로 여길 만한 여자는 거의 없으니까.
“다나 힐베른, 무사히 잘 다녀오세요. 그리고, 마틴 레드우드 씨 같은 경우…….”
엘렌 리버플로우가 나를 응시한다.
“다나 힐베른 양을 잘 부탁드릴게요. 산이 많이 위험하다지만 꼭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해요.”
엘렌 리버플로우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내 말에 엘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길 바래요. 그럼…….”
말을 마친 엘렌이 다른 마법사들을 슥 훑어보고 말했다.
“각자 동행하기로 된 호위와 함께 바로 경보 마법의 설치를 진행하도록 하죠. 시간은 넉넉하니, 서두를 필요는 없어요. 각자의 일정을 충분히 조율해 진행하세요.”
말을 마친 엘렌은 바로 출발 준비를 하기 위해 인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우리도 서둘러요.”
다나 힐베른도 마찬가지로 서두를 생각인 모양이다. 그렇겠지. 서두를수록 하이랜더의 무덤을 조사할 시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으니.
“준비하고 나올게요.”
누가 보면 신혼여행이라도 가는 줄 착각할 만한 분위기다. 물론 쿠르스트 산맥으로 신혼여행을 떠나겠다는 건 소말리아로 허니문 가는 것만큼이나 멍청한 짓이긴 하지만.
필요한 장비를 챙겨야 한다. 칼과, 투창용 작살을 비롯한 필요한 물자를 챙긴 나는 곧바로 다나 힐베른과 함께 수색대 본부를 떠나 에스칼 산맥으로 향했다.
“조용하네요.”
“원래 사람이 없는 곳이니까요. 다른 마법사분들과의 동선도 겹치지 않을 겁니다.”
내 말에 다나 힐베른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손을 잡았다.
“경보 마법 설치는 빨리 끝내고, 조금 여유롭게 다녀요. 할 일이 남아있으면 아무래도 마음이 그쪽에 몰리는 성격이라서. 지금에 집중하기가 힘들어요.”
그러시겠지. 그리고 경보 마법 설치 끝나면 하이랜더 무덤도 빨리 돌아보려고 할 거지? 이유는 방금 그 대사에서 토씨 하나 안 틀릴 테고.
대부분의 불행한 고딩들이 저 비슷한 말에 속아 넘어가곤 하잖아.
수능 끝나면 더 이상 힘들 일이 뭐가 있겠니?
맞아, 수능만 끝나면 이 세상에 힘들 일 따위는 전혀 없지. 취업 준비, 야근, 결혼 자금 준비, 내 집 마련, 아이 키우기 같은…… 아주, 정말로 소소한 것들만 빼면.
“알겠습니다. 서두르죠.”
말을 마친 나는 다나 힐베른과 함께 걸음걸이를 빠르게 했다. 다나 힐베른도 그전까지 툭 하면 헥헥거리며 내 옆에 딱 붙어있던 것과 다르게 전혀 힘든 기색이 없다.
오히려 약간 앞에 서서 잡은 손으로 계속 나를 잡아끌며 재촉한다.
“여기는 설치 끝났어요.”
쉬지도 않고 걷고 걸어 우리는 예정된 장소에 도착했고, 다나 힐베른은 순식간에 경보 마법 설치를 끝냈다.
“작동은 문제없이 되는 거죠?”
내 말에 다나 힐베른이 웃으면서 내 옆으로 다가온다.
“저, 이래 봬도 실력 나쁘지 않아요. 아마 깜짝 놀랄걸요.”
“점심 식사하셔야죠.”
내 말에 다나 힐베른이 고개를 저었다.
“하나만 더 하고.”
“아무리 그래도 식사는 해야 하지 않아요?”
내 말에 다나 힐베른이 고개를 저으며 팔짱을 낀다.
“조금만 더 힘내요, 마틴.”
마음이 급하군. 팔짱까지 껴가면서 저렇게 재촉하는 건 내 말대로 하라는 뜻이다. 그러지 뭐. 나도 어쩐지 이런 식으로 반응할 것 같아서 한번 떠본 거니까.
그렇게 우리는 식사도 거르면서 경보 마법을 설치 못 해 환장한 사람들처럼 에스칼 산머리 일대를 돌아다녔다.
“하아…….”
육체에 쌓인 피로는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없다.
하면 된다 어쩌구 하는 머저리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자식들은 낙하산 없이 비행기에서 밀어버린 다음 정신력으로 극복하라고 한번 해보고 싶다. 그게 되나.
당연히 그렇게 뽈뽈거리며 돌아다닌 다나 힐베른의 육체는 한계점에 도달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다시 본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애초에 그렇게 계획하고 진행했던 일이 아니니까. 주변에서 동굴을 발견한 나는 주변을 훑어봤다.
눈여겨볼 만한 흔적은 없다. 이전에 쿠르스트 산맥의 동물들이 머물렀던 흔적이 있지만…… 최소한 2개월 정도는 이 동굴에 뭔가가 머물렀던 흔적이 없다. 여기로 하면 적당하겠군.
바로 동굴 안에 들어가 부싯돌을 들고 모닥불을 피우자 다나 힐베른이 질문을 던진다.
“몇 개 남았죠?”
“15개 중 5개를 끝냈네요.”
하루에 2―3개 정도를 한다는 전제하에 만들어 놓은 계획이었는데, 다나 힐베른은 오늘 하루 정해진 할당량의 두 배를 성공시켰다. 지독하게 열정적이네.
“식사 준비할게요.”
“그, 저도 도울게요.”
그러시겠지. 그 몰골로 도우면 도움이 정말 많이 될 것 같네. 나는 손을 휘휘 저은 다음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너무 바쁘게 움직여서 식재료로 삼을 만한 동물을 잡지 못했어요.”
고로, 오늘 메뉴는 제7수색대 순찰 시 표준 식단이 될 예정이다. 물론 이건 댁이 경보 마법진에 미친 사람처럼 설치를 서두른 덕분이기 때문에 내 잘못이 아니야.
“…….”
그릇 안에 끓고 있는 지옥과도 같은 걸쭉한 갈색의 유동식을 바라보는 다나 힐베른의 표정이 참 엄청나다. 한 숟갈 입에 넣은 다나 힐베른이 경련과 비슷한 몸부림을 치고 입을 열었다.
“마틴. 내일부터는 조금, 천천히 할까요? 식재료를 마련할 시간 정도는 있는 편이…….”
맛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맛없다는 뜻을 전달하는 참으로 고상한 방법이군.
“으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사는 계속되고 있었다. 다나 힐베른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다.
아무리 맛이 없어도 하루 종일 굶은 상황에서 이것도 안 먹으면 사실상 오늘 쫄쫄 굶게 된다. 그럼 내일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다.
맛은 없어도 영양적으로 문제는 없을 거다. 비타민이나 무기질 따위는 크게 기대할 만한 물건이 아니지만.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은 충분히 있으니까.
나는 빠르게 식사를 마쳤지만 다나 힐베른에게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럼, 자리 마련하고 있겠습니다.”
잠자리를 만들고 있으려니 다나 힐베른이 어떻게든 식사를 마치는 데 성공한 모양이다.
“피곤해 죽겠어요.”
다른 생각하지 말고 잠이나 자라는 소리겠지. 먹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떡 줄 사람이 김칫국을 준비하고 있네.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남자가 꽃뱀에게 당하는 이유는 꽃뱀인 줄 몰라서 당하는 게 아니니까.
다행인 건, 내가 나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척하면서 다른 꿍꿍이가 있는 여자에게 성욕을 느낄 정도로 굶주리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빨리 자고, 내일 일찍 일어나죠.”
어려운 점은, 먹을 생각이 없다고 해도 떡 줄 사람의 의심을 사지 않으려면 어쨌든 관심이 있는 척을 해야 한다는 점이지.
어쨌든 서로 속고 속이는 싸움을 하고 있는데, 조금이라도 의심의 빌미를 주는 건 좋지 않잖아.
그래서 일부러 마련된 잠자리는 굉장히 가깝게 해두었다.
“그럼, 내일 아침 봐요. 마틴. 아, 동굴 입구에는 임시로 경보 마법을 설치해 두었으니 따로 깨 있을 필요는 없을 거예요.”
그거 다행이군.
말을 마친 다나 힐베른이 눈을 감았다. 물론 나도 그냥 잠이나 때려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잠을 잘 수는 없다.
일부러 몇 번 뒤척거리고, 작게 한숨을 쉬고 하면서 지금 내가 다른 일이 겁나게 하고 싶은데 소심해서 하지 못하고 있어! 라는 신호를 몇 번 보내주어야 한다.
“크으…… 크으…….”
그렇게 조금 시간이 지나자 다나 힐베른이 작게 코를 골기 시작한다. 물론 진짜로 잠들어서 코를 고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소리를 듣고 포기하라는 거겠지.
그 신호를 받고 나서야 나는 눈을 감고 마력을 심장에 끌어모으다가 잠들 수 있었다.
그대로 죽은 것처럼 다음 날 아침까지 잠들었던 나는 부스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났어요?”
누워있던 다나 힐베른이 눈을 비비며 말을 걸었다.
“네, 조금 쉬고 계세요. 주변에서 먹을 만한 걸 좀 찾아볼 테니.”
내 말에 다나 힐베른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는 필요한 장비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1시간 정도의 추적 끝에 나는 토끼굴을 찾아내, 두 마리 토끼의 멱을 따는 데 성공했다. 동굴로 가지고 와서 해체하면 괜히 산맥의 들짐승들이 냄새를 맡는 수가 있다.
곧바로 해체해서 가죽과 내장을 긁어내고 피를 뽑은 나는, 고기만을 챙긴 다음 동굴로 돌아왔다.
“아, 다녀왔어요?”
다 꺼져가던 불씨가 다시 살아나 있었다. 뭐, 놀고 있지는 않았던 모양이네.
“토끼입니다. 맛은 보장하지 못하지만, 어제저녁 메뉴보다는 나을 겁니다.”
내 말에 다나 힐베른이 어휴, 하는 소리를 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충분히 만족해요.”
곧바로 식사를 준비하던 나는 동굴 안에 놓인 다나 힐베른의 가방을 살짝 살폈다.
나가기 전에 놓여있던 것과는 방향과 위치가 다르다. 내가 아침 식사를 구하러 나간 사이 뭔가를 한 모양이지.
당연히, 그 뭔가는 내가 있는 상황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즉, 저 가방 안에는 분명히 뭔가가 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약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실종 처리까지는 하지 않아도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좋아진다.
“다 구웠습니다.”
식사 준비를 마친 나는 다나 힐베른의 몫으로 고기를 나누어 주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다나, 몸은 좀 어때요?”
고기를 뜯으면서 물어보자, 다나 힐베른이 고기를 후후 불고 있다가 아, 하는 소리를 내고 희미하게 웃었다.
“다행히 어떻게든 버틸 만하네요. 고마워요. 마틴.”
“너무 서두르다가 몸이 상하면 안 되니, 무리하지 마세요.”
“그럴게요.”
물론, 말은 이렇게 해도 나도 빨리 이 일을 마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벌써 며칠째 이 여자한테 반한 연기를 하고 있으려니 참 고역이거든.
식사를 마친 우리는 짐을 싸서 다시 어제 하던 일과 비슷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마법진을 설치하고 하는 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