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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우드-40화 (40/275)

040화

마법사들은 돌아갔고, 마침내 쿠르스트 산맥의 제7수비대는 다시 평상시의 일과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더럽게 추운 날씨에, 더럽게 맛없는 음식을 먹으며 더럽게 힘든 일을 하는 더러운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추워 죽겠네.”

그래도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산을 싸돌아다니는 온갖 잡것들을 상대하는 게 이전보다는 많이 편해졌다는 점이다.

들고 있는 무기가 부서지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많이 없어지게 된다.

“뭐, 찾아내신 거 있습니까?”

불어닥치는 바람에 뒤집어쓰고 있는 후드를 여민 병사가 물어본다. 바람이 몰아치는 계속에 핏자국을 포함한 온갖 흔적들을 확인한 나는 입을 열었다.

“늑대네. 열다섯 마리 정도.”

내 말에 병사가 어? 하는 소리를 내고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여기는 녀석들이 사는 곳이 아닌 걸로 압니다.”

“배고파서 그래.”

시체가 남아 있지 않다. 그렇다고 끌고 간 흔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장소에서 사냥을 끝내고 나서 바로 뼈까지 남김없이 씹어먹은 거다.

쿠르스트 산맥을 돌아다니는 늑대들이 뼈까지 씹어먹는 경우는 없다. 보통은 살점과 내장 정도를 뜯어먹을 뿐이지.

“이 근방에는 도로가 두 개 정도 있습니다. 만약을 위해 이 짓을 벌인 늑대들을 찾아낼까요?”

“아니.”

이 근방에 늑대들이 돌아다닌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물론 도로가 만들어져 있긴 하지만, 늑대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그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늑대가 자기 영역을 벗어나서 굶주리다가 여기까지 기어들어 왔어. 원래 살던 곳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거다.”

늑대는 영역 동물이고, 영역 동물은 어지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사를 시도하지 않는다.

곰 만한 크기의 쿠르스트 늑대 열다섯 마리를 우습게 찜쪄먹고, 도리어 자기 영역에서 도망치게 만들 수 있는 게 과연 뭘까?

“……하이랜더라고 생각하십니까?”

수색대원의 긴장한 목소리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도. 마침 맞게 겨울이 깊어지면서 날씨도 점점 추워지고 있잖아.”

하이랜더들은 추위를 별로 타지 않는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따뜻한 곳보다 추운 곳을 선호하는 건 아니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쿠르스트 산맥의 지도는 기억해 두고 있다. 여기에서 가까운 늑대의 서식지라면…….

“알란디스 숲은 우리 담당 구역이 아닌데.”

“그렇습니다. 제5수색대 녀석들의 담당구역입니다. 녀석들에게 이야기를 넣어둘까요?”

그래야겠지. 같은 왕국 아래에서 일하고 있는 군대라고 하지만, 자신들의 작전구역에 다른 부대 녀석들이 기어들어 와서 설치는 걸 좋아하는 지휘관은 없다.

“대장에게 이야기해서 5수색대에 전갈을 넣으라고 해두자고.”

우리가 할 일은 여기까지다.

“돌아가자. 부지런히 움직이면 잠은 본부에서 잘 수 있을 거야.”

밤이 늦어서 본부로 복귀한 나는 곧바로 도리안 대장에게 찾아가서 확인한 내용에 대해 보고했다.

“또 5수색대 쪽이야? 그쪽 대장이 골치 아프겠는걸.”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또라니.”

내 말에 도리안이 하아, 하는 숨을 내쉬고 나를 바라봤다.

“녀석들이 담당하고 있는 작전구역 안에서 요 2주 동안 하이랜더 클랜이 세 번이나 발견되었어.”

2주 동안 세 번? 나는 그 말에 작게 감탄했다.

“잘 버티고 있답니까?’

내 말에 도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그중 한 번은 수색대로 처리 할 수 없어서 관문 쪽으로 내려가서 수비를 했지. 덕분에 수색대는 물론이고, 인근 관문의 수비대까지 머릿수를 다시 채우려 기를 쓰는 모양이야.”

저런, 수비대는 몰라도 수색대는 머릿수를 채우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그 와중에 하이랜더가 또 발견되었으니, 제5수색대 입장에서는 죽을 맛일 거다.

“이 정도면, 국경수비대 사령부에서 지시가 내려오겠는걸.”

“파견 말입니까?”

싸울 수 있는 머릿수는 적고, 적이 자꾸 보이면 결국 주변에서 인력 지원을 받는 수밖에 없다.

“그래. 만약을 대비해서 내부적으로 파견할 인원을 차출해두는 게 좋겠어.”

“아시겠지만, 저는 정상 업무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마법사들이 돌아가고,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한 지 고작 3주 정도가 지난 참이다. 내 말에 도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 1주 뒤에는 네 어머니가 찾아오지 않냐.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백작 부인을 헛걸음시킬 수는 없지. 파견 지시가 내려온다면 피터가 파견대를 인솔할 거다.”

생각해보니 로델린이 찾아오는 것도 있구나. 어차피 내가 거기로 갈 일은 없었겠네.

“아, 그리고 네 앞으로 두꺼운 서류철이 하나 왔어. 도대체 뭔가?”

지금 나한테 올 만한 거라고는…….

“얼마 전에 있었던 다나 힐베른 사건, 개인적으로 좀 궁금한 게 있어서 관련 자료를 보내 달라고 한 게 있습니다.”

내 말에 도리안이 음? 하는 소리를 냈다.

“공식적으로 끝난 사건이잖나.”

“그래도 궁금한 게 있다 보니. 뭐 별로 대단한 건 아닙니다.”

내 말에 도리안이 잠깐 나를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한다.

“뭐, 알겠네. 어차피 업무에 방해되지 않게 하라고.”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말을 마친 나는 인사를 하고 곧바로 집무실로 향했다. 도리안이 말했던 것처럼, 꽤 두툼해 보이는 봉투가 하나 있었다.

“엘렌 리버플로우.”

두터운 봉투를 바라보던 나는 잠깐 턱을 쓰다듬었다.

“지금 그녀가 조사를 할 여유가 있나?”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엘렌에게는 조사를 하라고 지시를 했지만, 일단 그녀는 지금 로델린의 마차를 호위하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왕궁에서 뭔가를 조사할 수 있는 여유는 없다. 결론을 내린 나는 잠깐 서류 봉투를 바라보다가, 창문을 열었다. 확 하고 밀어닥치는 쿠르스트의 밤공기.

나는 분신을 만들어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 봉투를 밖으로 집어던졌다. 날아간 서류 봉투는 밖에 쌓인 눈 위에 퍽 하고 떨어졌다. 여기까지는 별다른 일이 없다.

“한번 보자고.”

눈 위에 떨어진 서류 봉투 옆에 나타난 분신이 봉투의 밀납 봉인을 뜯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봉투 위로 마법진이 떠오르고…….

파파파팍 소리와 함께 서류가 담겨있던 봉투 주변에 시퍼런 스파크가 날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 3분 정도 마구 일어나던 스파크가 가라앉았다.

“뭐야, 방금 전 그건!”

본부 건물 안에서 난리가 나고, 수색대원들이 건물에서 뛰쳐나오는 게 보인다.

“나한테 보내진 거다!”

내 말에 밖으로 나온 수색대원들이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소란 피우지 마.”

그리고, 일찍 자려고 했던 내 계획은 저 서류뭉치 때문에 방해받게 되었다. 도리안이 검게 탄 서류 봉투를 앞에 둔 채 나를 바라본다.

“저런 걸 도대체 누가 보낸다는 말이야.”

“저를 엄청 싫어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누가 보냈는지보다, 저 서류를 보낸 녀석은 내가 뭔가를 조사 중이라는 점을 추측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무덤과 관련이 있나?”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내 말에 도리안이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서류를 배달한 사람은 관련 업무를 3년 전부터 하던 사람이야.”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지 알고 있습니다.”

이름이 토마스였나. 락밸리 동쪽에 사는 사람일 것이다. 쿠르스트 산맥으로 전달되는 편지나 소포 같은 것들을 전달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 중 하나다.

“지금 사람을 보내서 배달한 자를 데려오고 있네. 관문에서 쉬고 있었을 테니,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할 거야.”

토마스, 토마스. 옷 가슴팍에 쏟아진 애기 젖토를 문질러 닦은 흔적이 인상 깊었지. 신장 163cm에 몸무게는 57kg…….

그런 것들을 떠올리며 기다리고 있던 와중, 저 멀리에 자리 잡은 관문 쪽에서 피리 소리가 들렸다. 대상의 사망을 알리는 신호다.

도리안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죽었다니.”

“락밸리 마을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내 말에 도리안이 응? 하는 소리를 냈다.

“갑자기 거기는 왜.”

나는 옷을 챙겨 입으며 말했다.

“관문에서 발견된 토마스의 시체는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은 일단. 옷과 검을 챙긴 나는 곧바로 문을 나서기 시작했다.

“이봐, 이유는 말해줘야지.”

“토마스가 죽었다면 그 가족들도 죽었거나, 죽을 겁니다.”

락밸리 마을로 가야 한다. 본부 건물을 나온 나는 심장의 마력을 아낌없이 쏟아 넣으며 산을 달렸다.

“지름길을 써야겠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깎아내린 것 같은 쿠르스트 산맥의 암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쉬이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여기에서 다시 30분 정도 쭉 달리면 75도 정도 되는 경사의 암벽이 나타난다. 돌아가지 않고, 그냥 뛰어내리면 된다.

어차피 떨어지는 몸뚱어리의 가속도에는 한계가 있으니. 어떤 높이에서 떨어져도 결국 일정 높이 이상이라면 충격량은 같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바닥이 가까워진다. 마력으로 몸을 강화한 나는 그대로 몸으로 땅을 들이받았다. 쿠쿵, 하는 소리와 함께 충격이 몸을 타고 퍼진다. 이 정도는 문제없다.

이런 식으로 절벽을 돌아가지 않고 직선으로 이동한다면 락밸리 마을에 도착하는 건 3시간 정도면 된다. 물론, 돌아가는 길은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좋아.”

몸에 엉겨 붙은 눈을 털어내며 달리는 와중, 저 멀리에 락밸리 마을의 불빛이 보인다. 배달부 녀석의 집을 찾아낸 나는 순간적으로 주변을 훑었다. 안에 사람이 있군. 나는 발로 문을 차고 들어갔다.

“까야아?!”

뭔가를 나르고 있던 초췌한 여자가 당황하며 들고 있던 그릇을 떨어뜨린다. 그릇이 깨지는 소리에 놀란 젖먹이 아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시선을 돌리자, 테이블에 앉아있는 남자 세 명이 보인다. 나는 히죽 웃으며 입가를 훔쳤다.

“안녕 친구들. 밥 먹나?”

“당신, 당신 누구야!”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배달부 토마스 씨의 부인되나? 제7수색대 소속 마틴 레드우드다. 보호하러 온 거니 걱정하지마.”

내 말에 여자가 몸을 덜덜 떨면서 나를 바라본다.

“보호하다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신. 미쳤어?”

나는 그 말에 푸후, 하는 소리를 내고는 손을 휘휘 저었다.

“속도 좋지. 어떻게 당신 남편 죽인 녀석들에게 밥을 먹일 생각을 다 했어?”

내 말에 토마스의 부인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건,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를 기다리던 세 명의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저기, 아무래도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나는 그 말에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녀석들의 신발을 가리켰다.

“신발이 젖었군. 락밸리 마을 인근에는 눈이 쌓여있지 않은데. 신발은 어디에서 적셨을까? 그리고 내가 문을 박차고 들어오자 네놈들 중 하나가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지. 단검 같은 건가?”

손수건을 꺼내려는 건 아니었을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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