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화
레드우드 백작가에서 보내준 마차는 꽤 근사했다.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이전과는 달리 마치 이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이 레드우드 백작가의 일원이라는 것을 자랑하는 것처럼 큼지막하게 가문의 문장도 떡하니 박혀 있다.
심지어, 타고 가는 동안 불편하지 말라고 안에는 근사한 소파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마차 주변을 호위하는 병력과, 그 뒤를 따르는 시종까지. 이 정도 되면 금의환향이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부족할 지경이다.
“레온 백작님이 준비를 굉장히 많이 하신 모양이네요. 이렇게 좋은 마차는 처음 타보는 것 같아요.”
“그리고 너는 그 말을 매일 세 번 정도는 하고 싶은 모양이고.”
“그렇게 많이 했나요?”
니가 말해놓고는 왜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당사자가 제일 잘 알겠지.
원칙적으로는 클로에가 나와 함께 마차를 쓸 필요는 없다. 엄연히 시종이니까, 그냥 뒤따라오게 시키는 걸로도 충분하지.
“사과 하나 먹어도 되죠?’
마차 안에 놓여있는 과일을 뒤적거리던 클로에가 사과를 손에 쥐었다.
“과일 한 개 먹자고 허락까지 받을 필요는 없어.”
내 말에 클로에가 고개를 끄덕이고 사과를 한 입 씹었다.
“도착까지 얼마나 남았지?”
마차 밖으로는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마차에 타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벌써 며칠째다.
“오늘 하루 야숙을 하고 나면 내일 중으로 레드우드 영지로 진입할 거예요.”
순식간에 뼈다귀만 앙상하게 남은 사과를 접시 위에 툭 하고 올려놓으며 클로에가 대답을 돌려주었다. 잠시 뒤, 야숙을 위해 마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나는 멍하니 창밖의 석양을 바라보는 클로에를 향해 레이피어를 휙 던졌다.
“……이건 왜?”
클로에의 말에 나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검지로 툭 치고 말했다.
“실력 한번 구경해봐야지.”
사령부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서 클로에와 검을 부딪치지 않았지만,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레드우드 영지의 사람들이다.
클로에가 시종으로 뽑힌 내막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녀가 검을 휘두르더라도 그러려니 할 것이다.
내 말에 클로에가 받아든 레이피어를 슥 눈으로 훑는다.
“조금 봐 드리는 편이 좋을까요?”
“이야, 무서워라. 이거 레이피어가 아니라 이쑤시개를 들려줄 걸 그랬어. 그 정도는 되어야 서로 실력이 엇비슷해질 텐데, 그렇지?”
내 말에 클로에가 히죽 웃었다.
“이쑤시개까지는 조금 과하지 않아요? 송곳은 어떠려나.”
제법 꼴에 도발까지 할 줄 아네. 마차에서 내린 나와 클로에는 다른 사람들이 야숙 준비를 하는 동안 쌈박질하기 적당해 보이는 공간을 찾아냈다.
“이제 와서 이런 말 하는 것도 조금 웃기기는 하지만. 이래 봬도 칼로 사람 쑤시는 재능은 어디 가서 별로라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어요.”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든 나는 손목을 몇 번 돌리며 말했다.
“혓바닥 긴 거 봐. 붙잡아서 쭉 당기면 양탄자로 쓸 수도 있겠네.”
내 말에 클로에가 장난삼아 혀를 한 번 쭉 내밀어 보인 다음 레이피어를 곧게 세운 채 자세를 바로잡으며 질문을 던졌다.
“발현점은 사용하나요?”
“안 쓰고 싸우면 재미없잖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럼 도대체 뭐하러 물어본 거야.”
내 말에 클로에가 희미하게 미소를 띄웠다.
“사용 여부에 따라서 검로를 바꿔야 하니까요.”
서로 마주 보고 편안하게 나누던 대화는, 내가 클로에를 향해 튀어 나가면서 끝났다. 시커먼 광택이 도는 칼날이 클로에를 향해 내려 찍힌다.
레이피어의 내구도는 높은 편이 절대로 아니다. 이걸 막으려고 들었다가는 레이피어가 망가질 거다. 당연히 옆으로 피할 수밖에…….
“보필한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표정은 처음 보네요.”
내가 내려찍은 검은 클로에의 레이피어에 막혔다. 가느다란 레이피어의 날이 바스타드 소드의 칼날을 막아낸 지금의 광경은 마치 허깨비 같아서, 눈으로 보고도 믿기가 힘들 지경이다.
“뭐야 이게.”
게다가, 검과 검이 서로 부딪치면 응당 나야 하는 쇳소리도 나지 않았다.
레이피어와 닿아있는 흑색의 칼날은 마치 뭔가에 묶이기라도 한 것처럼 레이피어 위에 살포시 올려져 있을 뿐이다. 심지어, 검을 휘두른 내 손을 타고 전해지는 충격도 전혀 없다.
그 사이 레이피어를 거둔 클로에가 쉬쉭, 하는 소리와 함께 나를 향해 레이피어를 내지른다. 뒤로 물러나 공격을 피한 나는 분신을 만들어 클로에의 옆구리를 노렸다.
분신이 휘두른 검이 또다시 레이피어에 막혔다. 마찬가지로 레이피어가 분신의 검을 막을 때 어떤 소음도 나지 않았다.
“재주는 있네.”
“와, 칭찬받았다. 기왕에 받은 거, 한 번 더 받아볼까.”
클로에는 그렇게 싱거운 감탄사를 내뱉고는 나를 향해 레이피어를 내지른다. 다시금 내 검과 클로에의 검이 서로 부딪친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크으……!?”
투캉, 하는 굉음과 함께 검이 서로 부딪친 장소 아래에서 확 하고 흙먼지가 일어나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찌잉, 하는 소리와 함께 손을 타고 격렬한 진동이 전해지며 내 몸이 뒤로 쫙 밀려난다.
“그대로 서 있으시면 안 될 텐데요.”
레이피어를 휙휙 돌리던 클로에가 뒷짐을 지는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자연스럽게, 레이피어의 칼날이 등 뒤로 숨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직도 아릿한 둔통이 남아있는 손목을 살살 돌리며 복잡한 생각을 정리한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대충은 알 것 같은데.”
“허세는.”
허세라니, 말이 심하네. 나는 바닥에 굴러다니던 조약돌을 발로 차 클로에를 향해 쏘아냈다.
파공음을 내며 날아간 조약돌, 등 뒤에 칼날을 숨기고 있던 클로에가 자세를 바꾸며 칼날로 조약돌을 받아낸다. 칼날에 닿자마자, 조약돌은 툭 하고 맥없이 바닥에 떨어진다.
“역시. 가해진 충격을 빨아들이는 스펀지 같은 능력이군.”
클로에는 별다른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내가 제대로 짚었다고 확신한다.
첫 만남에서 내가 제일 먼저 떠올렸던 의문점이 이걸로 해소되거든. 어째서 이 여자의 몸은 검을 오랫동안 다룬 태가 나는데, 손은 굳은살 한 조각 없이 매끄러울까?
손에 가해지는 충격이 전혀 없으니, 굳은살도 생길 이유가 없는 거다. 방금 내가 뒤로 밀려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은 건 나와 부딪치면서 흡수했던 충격을 다시 짜낸 거라고 생각된다.
“고작, 검을 두 번 마주쳤는데 바로 눈치챈 사람은 없었는데.”
“그동안 싸운 상대가 다 장님이었던 모양이지?”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을 괴롭히면 쓰나. 내 말에 클로에가 어머, 하는 소리를 냈다.
“첩보국장님을 장님으로 만들어버리다니, 나중에 사적으로 만나면 꼭 사과하세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클로에의 발아래에서 쿵, 하는 살벌한 소리가 들리며 그녀가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힌다.
“사과는 무슨. 눈으로 보고도 눈치채지 못하면 그게 장님이랑 뭐가 달라.”
나를 향해 달려드는 클로에를 정면에서 맞서는 환상을 만들고 왼쪽으로 빠지며 머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그녀의 오른쪽 옆구리를 향해 검을 찌르는 분신을 하나 만든다.
“아니, 무슨……!”
순간적으로, 클로에는 자신의 앞에 나타난 세 명의 나를 보고 당황한다.
내지른 레이피어에 찔린 환상이 흩어지자, 즉시 클로에가 레이피어를 거두어 내 본체를 노리고 다시금 레이피어를 내지른다.
그래서, 분신은 어떻게 할 거야? 지금 이 공격에서 제일 중요한 게 바로 그걸 확인하는 거라서 말이야.
클로에는 옆구리를 찔러오는 분신의 검을 억지로 허리를 뒤틀며 피했다.
“좋아.”
레이피어에서 다시금 굉음과 함께 충격파가 뿜어져 나오며 내 몸을 뒤로 날려버린다. 튕겨 나간 나는 바닥을 한 번 구른 다음 자세를 바로잡고 입가에 흘러내린 침을 소매로 훔쳤다.
피했다 그거지? 그럼 능력을 사용할 때 온몸에 가해지는 모든 충격을 흡수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게 가능했다면 분신의 공격을 피했을 리가 없잖아. 다소 장난치는 것 같은 태도를 보이던 클로에의 표정이 굳어있다.
“왜, 생각대로 잘 안 되는 모양이지?”
내 말에 클로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쉬운 승부가 될 줄 알았거든요.”
클로에가 발을 구르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충격파가 퍼져나간다. 그 힘을 받아 쇄도한 클로에의 손끝에서 레이피어의 칼끝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린다.
순간순간 번뜩이는 섬광을 피하며, 나도 마찬가지로 있는 힘껏 땅에 발을 박아넣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발이 땅 아래로 확 파묻히고, 그대로 다리를 쓸어내자 클로에의 몸을 노리고 흙더미가 쏟아진다.
“으윽.”
퍼퍼퍼퍼퍽, 하는 소리와 함께 흙과 돌조각들이 클로에의 몸을 강타한다.
충격을 흡수해 방출하는 클로에의 능력은 분명히 유용하지만, 아무래도 그 능력을 걸 수 있는 범위가 그렇게 넓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렇게 흙더미 같은 게 쏟아지면 좁은 범위밖에 막아내지 못하는 클로에의 능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리고 하나 더.”
능력을 걸 수 있는 범위가 좁다는 건 공격을 제대로 볼 수 없다면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소리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흙먼지 속에서 나는 클로에가 서 있던 장소에 검을 휘두르는 분신을 만들었다.
부웅, 하는 공기 가르는 소리와 함께 분신이 허공을 가르고 사라진다. 안 맞았다. 피한 모양이지.
“짜증 나.”
클로에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어느 정도 가라앉은 모래 먼지 속에서 살짝 목을 꺾는다. 뚜둑, 하는 소리가 살벌하게 울려 퍼진다. 내가 괜히 성질을 긁은 건가.
나는 다시금 땅에 발을 박아넣고, 마당을 쓸듯이 다리를 노려 그녀를 향해 흙과 돌조각을 쏟아내고, 먼지를 일으켰다.
“으아아아아!”
그런 괴성과 함께 클로에가 왼손을 들어 허공을 향해 크게 휘둘렀다. 화악, 하고 그녀의 손을 타고 퍼져나간 바람이 그녀를 향해 쏟아지던 흙더미와 모래 먼지를 확 쓸어낸다.
“저기…… 미안해. 혹시 화났어?”
그 살벌한 광경을 본 나로서는 당장 할 수 있는 말이 사과 말고는 없었다.
“역시, 쿠르스트 산맥에서 하이랜더 수백 마리를 앞에 두고 싸울 만한 실력은 있으시네요. 하지만…….”
그리고, 클로에가 살짝 다리를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힘껏 땅을 내려찍었다. 하지만, 땅이 갈라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발로 땅을 내려찍으며 발생한 충격은 그대로 클로에의 몸 안에 저장되었을 거다.
그녀가 왼손을 들어 레이피어의 날을 한 번 쓸어내리고,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편다.
“저는 검을 적어도 10년은 휘둘렀어요.”
이야, 참 오래도 휘둘렀네. 나는 지금 기껏해야 몇 개월이 될까 말까 한데. 클로에가 나를 겨누고 손을 뻗었다.
퍼펑,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손을 타고 터져 나온 충격파가 내 몸을 휩쓸고 지나간다. 피해를 입은 건 아니지만, 온몸이 저릿하다.
초대형 스피커 삼십 개를 설치하고 최고 음량으로 데스메탈을 얻어맞으면 이런 느낌일까?
“씨팔, 이게 검을 10년 휘두른 거랑 무슨 상관이야.”
이건 그냥 손으로 장풍을 뿜어낸 거잖아. 검술이랑 관련이 조금도 없어 보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