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화
연회 뒤로, 나와 레온이 서로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레온 같은 경우에는 서로 시비를 틀어봤자 얻는 게 거의 없으니 그냥 버려두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 모양이었고, 나도 굳이 먼저 물겠다고 달려들지 않는데 시비를 걸 정도로 뒤틀린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아침에 밥 먹고, 도서관에서 시간 보내다가 때 되면 클로에와 싸우고, 로델린 찾아가서 안부를 물어보는 나날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레드우드 영지를 떠나 왕도로 향하는 중이었다. 레온은 마중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지.
“멀미 안 나냐?”
로델린은 나와 다른 마차를 쓰고 있었고, 클로에는 내 마차에 탑승한 채로 서류를 읽고 있었다. 덜컹이는 마차 안에서 저러면 속이 안 좋을 텐데.
“왜 안 나겠어요. 토할 것 같아요.”
클로에는 그렇게 말하고 눈언저리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른다. 그런 거치고는 굉장히 멀쩡해 보이는 안색인데. 첩보국에서는 저런 것도 나름대로 훈련시키나 보지.
“그래도 어떻게든 출발하기 전에 일정을 다 잡고, 합의를 끝내 놓아서 다행이에요.”
나는 편하게 시간을 보냈지만, 클로에는 그렇지 못했던 모양이다.
“아주 그냥, 성의 가신들이 어찌나 비협조적이든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요. 세상에, 답장이 왔는데 그걸 전해주지도 않고 그냥 가지고 있더라니까요? 직접 찾아가서 확인하지 않았으면 일이 확 꼬였을 뻔했어요.”
나는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레온이 뭐라고 따로 언질을 해두었던 모양이다. 거 사람 한번 쪼잔하네. 물론 내가 레온 입장이었다면 더 심한 일을 했겠지만.
“오늘은 야숙이라고 들었는데.”
내 말에 클로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죄송해요. 하지만, 폴리엔사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도무지 방법이 안 보이더라고요.”
죄송할 것까지는 없지. 레드우드 영지에서 왕도까지의 거리는 꽤 되는 편이다. 그 거리를 이동하는 와중에 야숙 한번 없이 일정을 짤 수는 없다.
“물론, 엄밀하게 말씀드리자면 머무를 거처를 구할 수는 있겠지만…….”
말을 마친 클로에가 서류에 동그라미 몇 개를 치고는 말을 이었다.
“장담하는데, 차라리 야숙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어지간한 작은 마을의 촌장 집보다는 지금 마차에 있는 품목으로 야숙 준비를 하는 편이 훨씬 더 쾌적하거든요.”
“니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애초에 왕도로 향하는 여행 일정은 거의 클로에 혼자 짜다시피 했다.
그녀가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 실력 있는 사람에게 일을 맡겨놓고 나중에 기어 와서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며 일을 다시 시키는 건 개 같은 상사가 되는 지름길 중 하나다.
말을 마친 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 마차 안에서 할 만한 일은 별로 없으니까. 그러고 있으려니 천천히 마차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한다. 나는 눈을 뜨고 클로에를 바라봤다.
“마차가 느려지는데, 벌써 야숙이야?”
마차의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에는 해가 쨍쨍하다. 내 말에 클로에가 으음, 하는 소리를 내고는 마차 문을 열고 밖으로 상반신을 내밀었다.
“무슨 일이죠?”
클로에의 말에 앞서가고 있던 사람이 외쳤다.
“앞에 짐 마차가 한 대 엎어져 있습니다! 치우기 전에는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것 같습니다!”
나는 그 말에 응? 하는 소리를 냈다. 마차가 엎어져 있다니.
“한번 보지.”
왜 엎어져 있는 거야. 나는 멈춘 마차에서 내려 전방을 확인했다.
“거참.”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엎어진 마차 쪽으로 다가갔다. 마차 바퀴 네 개 중 하나가 박살 나 있다.
“운전을 조금 거칠게 한 모양이네요.”
밖으로 따라 나와 쓰러진 마차를 확인하고 클로에가 한마디 한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마차 바퀴는 새로 간 거야.”
내 말에 클로에가 나를 바라봤다.
“확실한가요?”
내가 확실하지도 않으면서 단언했겠냐. 나는 턱짓으로 마차를 가리켰다.
“바퀴축을 봐, 새거잖아. 게다가 부러진 바퀴와 바퀴살도 벌레 먹거나 한 흔적은 없어.”
말을 마친 나는 주변을 훑어봤다. 도로 위에는 뒤집히며 박살 나 흩어진 마차의 파편들이 보인다.
“궤적을 보니, 마차를 왼쪽으로 꺾으려고 했어. 하지만, 이 길은 직선으로 쭉 이어진다.”
근데 마차를 뭐하러 왼쪽으로 꺾었을까. 앞에 뭔가가 있었던 거다.
“저기, 시체가 있습니다!”
나는 그 외침을 듣고 주변을 살폈다. 시체 하나가 곧게 누워있다. 그걸 확인한 나는 즉시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만지지마! 근처에 접근하지도 말고!”
내 말에 시체 쪽으로 다가가던 사람들이 동작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마차 사고를 당한 시체가 하늘을 보고 누워?”
즉사한 시체가 아니다. 마차에서 시체까지 남아있는 핏자국과 몸의 상처를 고려해보면 이 친구는 과다 출혈로 죽은 거다. 핏자국은 넓고, 질질 끌린 흔적이 남아있다.
이 시체는 죽기 전에 바닥을 기어서 마차를 빠져나갔다. 벗어나려고 발악하던 녀석이 갑자기 하늘을 보고 대자로 드러눕는다고? 왜, 뒤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푸른 하늘을 보고 싶어서? 그럴 리가 있나. 죽어가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악한다. 푸른 하늘을 보며 최후를 맞이하겠다는 근사한 생각을 하는 놈은 없다.
즉, 누가 의도적으로 죽은 사람을 저렇게 눕혀놓은 거다.
“우리를 노린 모양이군.”
내 말에 클로에가 옆에서 살짝 움찔했다.
“제가 짜놓은 여행 일정이 밖으로 흘러나간 걸까요?”
“아마도.”
하지만 이걸 클로에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마을에 들러서 어디에 머무를지, 식사는 어떻게 할지 같은 것들을 협의해서 계획을 짜다 보면 내가 왕도까지 가는 일정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가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엘렌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육안으로 보기에 시체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아마 마법으로 수작을 부렸을 가능성이 있는데…… 일행 중에 마법사가 없다 보니 도대체 저 시체에 무슨 수작을 부려놓은 건지 알 수가 없다.
“이게 도대체…….”
시체를 둔 채로 마차를 살펴보고 있으려니 그사이 로델린이 밖으로 나온 모양이다.
“짐 마차가 전복되어있어요. 아무래도 마차를 치우기 전까지는 더 나아가기 힘들 것 같네요.”
내 말에 로델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
시체를 뒤늦게 확인한 로델린의 표정이 약간 창백해진다. 곧바로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정상이지. 곱게 죽은 시체는 아니니까.
“마차에서 잠시 쉬고 계세요.”
내 말에 로델린이 작게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그래.”
로델린이 돌아가고, 나는 천천히 시체 쪽으로 접근했다.
“괜찮으시겠어요?”
“죽거나 살거나, 그래봤자 둘 중 하나잖아.”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시체에게 조금씩 접근했다.
남자의 등에 난 상처는 열상과 화상이 동시에 보인다. 상처는 소위 성상이라고 부르는 별 모양이다. 물론, 말이 별 모양이지 실제로 별 모양과는 큰 차이가 있긴 하다.
어쨌든, 상처를 보니 등 부근에서 뭔가 뜨거운 폭발이 일어난 거다. 땅을 살펴보자, 손가락이 파고 들어간 것 같은 자국과 함께 주변에 부러진 손톱이 보인다.
“부러진 손톱이라, 폭발로 척추가 작살나서 하반신은 쓰지 못한 모양이군.”
팔 힘만 가지고 기어가려고 악을 쓰다 보니 손톱이 부러진 거다.
마차가 전복된 건 사고가 아니다. 누가 의도적으로 이 마차를 습격한 거다. 나는 시선을 돌려 짐 마차의 부서진 부분을 살폈다. 안에는 곡물과 천 같은 것들이 가득 차 있다. 물건을 털어가지는 않았다.
강도는 아니군.
“바닥의 피도 안 굳었어.”
습격이 있었던 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대놓고 우리를 노렸다는 소린데.
“마차 여행 중에 습격이라.”
왜 아니겠어. 나는 따라붙은 호위병들을 향해 말했다.
“전원, 주변을 경계해.”
내 말에 호위병들이 주춤거리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무기를 든 채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한다.
“주변에 아직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클로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피가 굳는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5분을 넘지 않아.”
겨울이라 날이 추우니 차이가 조금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이 마차가 전복된 다음 아직도 피가 제대로 굳지 않았다는 건 이 일을 벌인 녀석들이 근처에 있다는 뜻이다.
“찾아볼까. 따라와.”
누가 길을 막았는지 얼굴을 한 번 봐야겠다. 내 말에 클로에가 레이피어를 뽑아 든 채 내 뒤를 따른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아세요? 마차 주변 길을 다 뒤져 볼 수는 없잖아요.”
“마차는 직진하는 도로에서 왼쪽으로 돌았어.”
마차를 공격한 녀석들은 오른쪽에서 덮친 거다.
“그럴듯하네요.”
“쓸데없는 이야기는 나중에 해.”
내가 다소 날카로운 어투로 쏘아붙이자 클로에는 곧장 입을 다물었다.
“여기에 숨어있었군.”
누렇게 말라붙은 갈대들이 누워있는 곳이 보인다. 이 근처에서 몸을 숨기고 있다가 덮친 거다. 남자 다섯. 나는 주변을 살펴보다가 근처 나무에 묻은 흙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위로 들었다.
“저 위에서 망을 보았고.”
흔적을 찾았으면 여기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여기에서 기다리다가 마차를 습격하고…….”
바로 빠진다면 어디로 빠졌을까. 주변을 살피던 와중 갑자기 뒤편에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들리고, 뭔가가 바닥에 퍽 하고 박혔다.
“단검?”
공격을 막아낸 클로에가 바닥을 살짝 눈길을 바닥으로 던지며 중얼거렸다. 단검? 하고 그냥 있을 때가 아니잖아. 이것아.
나는 본능적으로 가슴팍으로 손을 가져가 걸고 있던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불며 단검이 날아온 곳으로 달렸다.
“…….”
“무슨 말이라도 좀 해보는 건 어때.”
처음 뵙겠습니다, 같은 거 있잖아. 인사성이 그렇게 나빠서야 사회생활 하겠냐? 후드가 달린 망토를 뒤집어쓴 음침한 친구 하나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흔적으로 추정한 녀석들의 숫자는 다섯이다. 근데 한 명만 내 앞에 나타났다면…….
“나머지 네 명은 아직 낯을 좀 가리나 봐?”
숨어서 지켜보는 것도 범죄의 일종인 거 모르냐. 하긴, 이미 마차 뒤집고 사람 죽인 시점에서 스토킹은 죄로 쳐주기도 애매할 지경이긴 한데.
내 앞에 서 있는 녀석이 살짝 손을 들어 올렸다. 쉭, 하는 소리와 함께 맨 손이었던 녀석의 손에 갑자기 단검이 척 하고 나타난다.
“마술 좋아하나? 나도 좀 할 줄 아는데. 하나 보여줄까?”
머리통이 사라지는 마법이야. 녀석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놈이 단검을 내 쪽으로 던졌다.
저거, 나를 노린 게 아닌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 나는 곧바로 그 단검으로부터 멀리 떨어졌다. 단검이 떨어진 자리에 콰캉, 하는 폭음과 함께 흙기둥이 확 솟구쳤다.
“……이런 미친놈.”
저게 능력인가? 던져진 단검이 터지는 거? 후드를 눌러 쓴 녀석의 입꼬리가 씨익 하고 올라간다.
“웃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녀석이 확 하고 한 마리 바바리맨처럼 로브를 열어젖혔다. 보이는 건 알몸 대신 안쪽에 주렁주렁 걸려있는 무수한 단검들.
“안 무겁냐?”
아무리 단검이라도 해도 저렇게 한아름 로브에 숨겨두고 있으면 무게가 장난이 아닐 텐데.
“너는 여기서 죽는다.”
이야, 말을 할 줄은 알았구나? 검을 가볍게 몇 번 돌리며 스텝을 밟던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녀석을 응시했다.
“확실해? 함부로 결정 내리는 버릇은 좋은 게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