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화
도착한 장소에는 부상을 당한 호위병들과 함께 네 명의 후드쟁이들을 상대하는 클로에가 있었다.
“바쁘냐?”
내 말에 클로에가 내 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으며 외쳤다.
“네!”
“도와줄까?”
“네!”
네 말고는 할 줄 모르는 기계라도 된 건가. 나와 클로에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그녀와 호위병을 상대하고 있던 후드쟁이들의 움직임이 약간 둔해졌다.
내가 멀쩡히 살아 돌아왔다는 점이 꽤 충격인 모양이다.
“이 상황에 대한 대처법은 따로 생각해두지 않았나 봐?”
나는 뒤편에서 창백한 스파크가 튀는 검을 들고 있는 녀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검에 피카츄라도 달아놓은 것 같은 느낌인데. 부딪치면 전기가 검을 타고 몸으로 전달되겠지. 녀석이 검을 휘두르자 나는 분신을 던져 그 검을 막아내고는 옆으로 빠져 검을 휘둘렀다.
녀석이 급하게 바닥을 구른다.
“세탁비 아깝겠네.”
허공에 만들어진 분신이 바닥을 구르는 녀석을 향해 뚝 떨어지며 검을 내려찍는다. 그 모습을 확인한 녀석이 검을 들어 올려 분신의 검을 막아냈다. 파직거리는 스파크가 검을 타고 전달되며 분신이 흩어진다.
클로에가 발로 땅을 힘껏 차버리자, 흙과 돌이 팍 일어나며 바닥에 드러누운 녀석의 몸을 휩쓸고 지나간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가려진 사이 내 검이 녀석의 멱을 딴다.
“다음은?”
그렇게 30분 정도 지나고 나자, 마침내 마차를 뒤집어엎었던 다섯 명의 습격자를 정리하는 데 성공했다.
“조금만 더 빨리 오셨다면 더 빨리 처리할 수 있었을 텐데요. 혼자 싸우려니 외로웠어요.”
클로에가 슬쩍 부상입은 호위병들을 본 다음 나를 향해 던진 말이었다.
“너무 그러지 마, 저 친구들도 고생했어.”
내 말에 클로에가 쯔, 하고 혀를 찼다.
“그나저나, 발현점에 도달한 녀석이 다섯이나 습격할 줄은 몰랐어요.”
클로에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심장에 금속조각 박아넣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들었는데.
“우리가 상대하는 조직이 굉장히 크다는 증거겠지.”
내 말에 클로에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첩보국장님에게 오늘 있었던 습격에 대해서 보고해야겠네요.”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 덤으로 나와 로델린이 머무를 예정인 저택의 경비는 어떻게 할 건지도 좀 물어봐 줬으면 좋겠어.”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와중에 습격당한다면, 저택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얼마든지 습격당할 수 있다.
“전달할게요.”
말을 마친 나는 후우, 하고 숨을 내쉰 다음 아직도 쓰러져 있는 마차와, 그 옆의 시체를 확인하고는 머리를 긁었다.
“클로에, 좀 도와줘.”
내 말에 그녀가 대답했다.
“어떤 걸 하면 될까요?”
시체에는 누군가 접근하면 폭발하는 단검이 박혀 있을 거다. 근처로 누군가 접근하게 된다면 펑 하고 터지겠지.
“기가 막히네요.”
“그래서 네가 도움을 줘야 하는 거야.”
클로에는 능력을 사용한다면 가해지는 모든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저 자세라면 단검이 박혀 있을 만한 곳은 뻔하거든.”
재빠르게 움직인다면 단검이 폭발하기 전에 클로에가 먼저 단검을 잡을 수 있을 거다. 그러면 단검은 폭발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폭발하려고 뿜어낸 힘을 모두 클로에가 흡수하는 거겠지만.
“가능할 것 같아요. 다만,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좋은 꼴은 못 보겠네요.”
지뢰 해체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말을 마친 클로에는 시체를 바라보다가 그대로 팍 하고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순식간에 시체를 뒤집고, 곧바로 단검을 손에 꽉 쥐었다.
“후우.”
클로에는 작게 심호흡을 한 번 한 다음 마차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져 있던 마차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길 밖으로 쫙 밀려났다.
“장난 아니네요. 이거. 조금이라도 실수했으면 어디 하나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았겠는데요.”
“그래.”
나도 덕분에 어디 하나 날아갈 뻔했지. 젠장, 그 단검쟁이를 상대하는 게 클로에였으면 일이 훨씬 쉬워졌을 텐데. 아마 그 단검쟁이는 뭘 해보지도 못하고 클로에에게 두들겨 맞았을 거다.
역시 인생 살면서 내 맘대로 일이 풀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니까. 마차도 치워졌고, 시체에 박혀 있던 지뢰도 해결했으니…… 우리는 다시 마차에 올랐다.
“일정이 조금 꼬였네요.”
나는 그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계획을 분 단위로 짠 건 아니잖아?”
긴 여행의 계획을 짤 때는 시간 여유를 충분히 두어야 한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아침 6시 36분에 일어나 8시 21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12시 11분에 공항에 도착하는 버스를 타고 간다는 식의 계획은 정신병자가 아니면 짜지 않는다.
“도착에는 지장이 없을 거예요. 하지만, 이래서는 야숙을 하루 더 해야 할 수도 있겠는걸요.”
“힘내라.”
그렇게 대꾸한 다음 나는 부러졌던 팔을 살펴봤다. 왼쪽 팔은 여전히 뼈에 금이 간 정도의 부상과 시큰거리는 통증이 남아있었지만, 회복 속도를 고려해보면 한숨 푹 자고 나면 완전히 나을 것 같다.
“잠시 어머니 좀 보고 와야겠어.”
“그러세요. 아마 많이 불안해하실 것 같은데.”
마차 타고 가다가 시체를 본 것도 부족해서 호위병까지 부상을 입은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 집처럼 편하게 있으면 그건 무서운 사람이지.
문을 열고 마차에서 내린 나는 잠깐 달려서 로델린이 타고 있는 마차에 매달려 문을 두들겼다.
“누구지?”
“어머니, 마틴입니다.”
니 아들이야, 그렇게 덜덜 떨리는 소리로 물어보지 말고 문 열어. 로델린이 문을 열었다. 나는 로델린의 모습을 확인하고 희미하게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으세요? 많이 놀라셨을 것 같은데.”
내 말에 로델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 한 것도 없는데 놀라는 건 이상하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쉬이 진정되지 않는구나.”
나는 로델린의 옆에 앉았다.
“괜찮아요. 별문제 없이 지나갔잖아요.”
“……너를 노린 거였니?”
질문을 들은 나는 으음, 하는 소리를 냈다. 여기에서는 거짓을 말하는 것보다는 진실을 말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네.”
“네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렇게 중얼거린 로델린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아무리 레온이 너에게 실망했다고 하지만 설마하니 사람까지 보내서 너를 해치려 했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그런 건 아닙니다.”
아무리 그래도 레온이 자기 아들을 죽이는 비속 살해를 시도했겠냐.
“이건 다른 문제에요, 어머니.”
내 말에 로델린이 후우, 하고 숨을 내쉰 다음 나를 바라봤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너는, 내가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
로델린이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을 알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하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로티샤 호수에서 찾아냈던 정체불명의 녀석들, 그리고 쿠르스트 산맥에서 겪었던 일들을 간추려 말했다.
물론, 알버트나 국경 사령관의 제안 같은 건 빼놓았다. 이건 굳이 로델린이 알 필요가 없는 내용이니까.
“……그래서, 그 녀석들이 네 시신을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이냐.”
“그렇게 되었어요.”
내 말에 로델린이 잠깐 고민하다가 나를 바라봤다.
“네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뭔가 하고 있기를 바란다. 네가 처한 상황은 그냥 버텨서는 끝낼 수 없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그 녀석들의 정체가 뭔지 알아내기 위해 이런저런 도움을 받고 있어요.”
로델린이 내 대답을 들은 다음, 손으로 드레스의 앞섶을 꽉 쥐고 나를 바라봤다.
“알았다. 네가 그리 말하니 조금은 안심이 되는구나.”
말을 마친 로델린이 물을 한 모금 마신 다음 나를 바라봤다.
“이후 여행길은 조금 더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 같구나.”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한 번 공격했다면 또 공격할 수도 있다는 소리다.
“클로에라고 했니? 그 아이를 잠깐 불러다오. 나눌 이야기가 있으니.”
나는 그 말에 로델린을 바라봤다. 클로에?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나는 로델린의 마차에서 나와 원래 내가 타고 있던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다녀오셨어요?”
“어머니가 널 좀 보고 싶다고 하던데.”
내 말에 클로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를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클로에는 으음, 하는 소리를 내고는 마차의 문고리를 잡았다.
“알겠어요.”
클로에가 나가고, 나는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눈을 감았다. 오늘 습격은 위험했다. 무슨 코스 요리를 먹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차를 뒤엎고, 시체에 단검을 꽂아놓고 기다린다. 나는 주변을 수색하다가 아직 근처에 있을 거란 결론을 내린다. 자연스럽게 나는 근처에서 기다리는 녀석을 찾아내려 들 거다.
그리고 단검을 터뜨리는 능력을 가진 녀석과 마주하게 된다. 마차를 전복시키고 기다리고 있었으니 당연히 나는 단검이 터지는 능력은 사용하는 사람이 신호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오히려 그걸 노려서 단검을 지뢰 비슷하게 작동하도록 했고, 그 때문에 나는 큰 상처를 입었다.
“계획이 아주…….”
보통 사람은 마차가 전복된 걸 보고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마차 치우고 시체 치우려다가 갑작스러운 시체의 폭발에 당했겠지.
“맞춤 양복이었어.”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알고 거기에 맞춰 판을 짜놓았다. 나라면 당연히 마차 전복이 습격이라는 걸 알아챘을 테고, 당연히 마차를 전복시킨 녀석들이 근처에 있다는 것도 눈치챌 테고.
“하이랜더들의 대리석 기둥을 가지고 계획을 짰던 놈이 시도한 습격 같은데.”
다행히도, 두 번 다 내가 이겼다.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방어였다는 점이지.”
나를 습격한 녀석은 내 실력을 잘 모른다. 마찬가지로, 나도 상대하는 녀석의 실력을 잘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른다면, 방어하는 쪽이 더 유리하다.
나는 끄응, 하는 소리를 내고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거, 정말 속도 차이로 갈리겠는데.”
이렇게 계속 상대가 자신을 숨긴 채 공격을 이어가면 결국 입장이 변하게 된다.
상대는 점점 더 내 실력을 잘 알게 될 것이다. 반면, 나는 상대의 실력을 여전히 제대로 측정할 수 없겠지.
이건 선공을 취하는 상대의 특권이다. 그 특권으로 이득을 보지 못하게 하려면 나도 공격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를 제대로 짚어내는 게 우선이다.
“왕도에서 무조건.”
최대한 빨리 기사단장 사이에 숨어있는 칠색 내각의 머리 중 하나인 적색을 찾아내야 한다. 사실상 신년 행사는 그냥 곁다리 정도겠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사이 다시 클로에가 마차 문을 열고 휙 하고 뛰어 들어왔다.
“노크 좀 해라.”
내 말에 클로에가 대답했다.
“나쁜 일 하고 계셨던 건 아니잖아요?”
나는 혀를 한 번 차고 대답했다.
“네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서 왕국을 전복시킬 기가 막힌 계획을 완성 수 있었을 텐데.”
내 말에 클로에는 작게 한숨을 쉬고 나를 바라봤다.
“그럼 저는 국가 유공자네요. 나라에서 작위 하나 정도는 거저 주겠어요.”
시시껄렁한 개소리는 이쯤 해두고.
“어머니가 너를 부른 이유가 뭐야?”
내 말에 클로에가 뭔가를 내밀었다. 흔들리는 마차에서 써서 그런지 글씨가 다소 다르긴 하지만, 로델린이 쓴 편지였다.
“호위 병력의 보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에요. 이 편지를 인근의 영주에게 전해달라고 하시던데요.”
아하, 병력 보충인가.
“그렇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괜찮은데.”
내 말에 클로에가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머릿수가 많으면 좋잖아요. 백작부인께서 신경 써주시면 제가 더 편해질 거예요.”
“너 편하자고 내 엄마를 부려먹냐?”
“그걸 또 그렇게 표현하면 제가 너무 나쁜 년이 된 기분이에요.”
어쨌든, 로델린도 나름대로 이번 습격을 경험한 다음 그대로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긍정적인 일이지.
개인적으로는 습격이 한 번 더 이어질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이 만약을 대비할 수 있다면 나쁠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