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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우드-70화 (70/275)

070화

왕국의 기사단이라. 물론, 기사단이라고 해도 정말로 그 기사단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이 전부 심장에 이물질을 박아넣은 초인들은 아니다. 말을 타고 무장한 병사들과, 그들을 이끄는 기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구성비 자체는 기사 한 명에 기병 열다섯 정도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서류를 살피던 나는 클로에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수색대랑 기사단이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

내 말에 클로에가 하, 하는 소리를 내고 다소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말을 타고 평원에서 싸우면 기사단이 이기고, 고지대에서 산 타며 싸우면 수색대가 이기겠죠.”

정석적인 대답이군. 클로에는 대답을 마치고 내 옆에 두툼한 서류를 내려놓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전역하셨잖아요. 아직도 소속감이 있으세요?”

“소속감이 아니라. 기사단장과 싸우게 될 확률이 높아서 물어본 거야.”

전역한 조직에 소속감을 뭐하러 가져. 전투력이 얼마나 되는지가 궁금해서 물어본 거잖아.

“냉정하게 말하면, 기사단장 정도 된다면 마틴 님이 이기는 건 힘들 거예요.”

“너는?”

내 말에 클로에가 대답했다.

“저도 안될걸요. 과격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기사단장은 왕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람 가죽을 뒤집어쓴 병기에요.”

저런, 그럼 정체를 밝혀도 무작정 달려들면 장수하긴 힘들다는 소리다.

“엘렌 리버플로우가 조력한다면?”

내 말에 클로에가 잠시 이런저런 고민을 하나 싶더니 대답했다.

“마틴 님과 저, 그리고 엘렌 리버플로우 양까지 있다면 승산은 충분할 것 같아요.”

3대 1인데 이긴다라는 대답이 아니라 승산이 충분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별로 만족스럽지 않은 대답이긴 하네.

궁금증을 해결한 나는 계속해서 서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왕도에 주둔하고 있는 기사단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지.

이전에 엘렌이 말했던 것처럼, 왕도에 주둔하고 있는 기사단의 숫자는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었다.

“큰울림, 흰고래, 검은사자, 흔들바람.”

그리고 궁을 지키는 왕실 기사단까지. 왕도에는 도합 다섯 개의 기사단이 머무르고 있다.

“왕실 기사단도, 조사 대상에서 예외로 둘 수는 없겠죠?”

“당연하지.”

예외로 둘 만한 근거가 없는데 '에이, 그래도 설마 왕실을 지키는 기사단에 그런 녀석이 있겠어?' 같은 생각을 하며 멋대로 용의 선상에서 제외할 수는 없다.

“어찌 되었건 따로 만날 약속을 잡아야 할 텐데요. 기사단장과의 만남을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쉽게 만나주는 사람들도 아니고, 애초에 서로 초면이다. 무슨 모임 같은 곳에서 우연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니라면, 내 쪽에서 따로 자리를 마련해서 오라고 하기는 힘들 것이다.

잠깐 고민하던 나는 이내 누군가를 떠올리고 입을 열었다.

“어머니가 도움을 줄 수 있을지 한번 여쭤봐야겠어.”

이런 방면에서는 로델린이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로델린은 왕도에 아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으니까.

그들 중 한 명 정도는 어떻게든 기사단장에게 연락을 취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괜찮은 생각 같아요. 제가 가서 요청을 드려볼까요?”

“아니, 내가 직접 가서 부탁드릴게.”

말을 마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로델린이 머무르고 있는 저택의 거처로 향했다.

“뭐, 불편하신 건 없으세요?”

로델린은 침대와 옷가지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내가 건넨 말에 로델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족한 건 하나도 없다. 저택을 준비해주신 분이 배려를 많이 해주셨더구나. 나중에 따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을 정도야. 자리를 한번 마련해 줄 수 있겠니?”

“지금은 바쁜 것 같아서요. 나중에 한번 물어 보겠습니다.”

로델린이 고개를 끄덕인 다음 의자에 앉아 나를 바라본다.

“그래, 혹시 뭔가 필요한 게 있어서 온 거니?”

“에이, 그런 건 아니에요.”

내 말에 로델린이 대답했다.

“내가 둔하고 눈치가 없는 편이긴 하다만, 그래도 네가 지금 이유 없이 찾아온 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눈치가 없고 둔하다고 스스로를 평가했지만, 대충 분위기를 눈치챈 걸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그냥 일종의 겸양이겠지.

그럼, 바로 이야기에 들어가 볼까. 나는 가볍게 잔기침을 하고 로델린을 바라봤다.

“혹시, 왕도에 머무르는 기사단장님들과 만남을 가질 수 있을까요?”

“기사단장이라.”

로델린은 내 말을 듣고는 이런저런 고민을 하나 싶더니 대답했다.

“지금 당장 확답을 주기는 힘들구나. 하지만, 네가 세운 공이 있으니 만날 자리를 만드는 게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왕도의 지인들에게 이야기를 해보마.”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될 거에요.”

내 말에 로델린이 잠깐 나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왕도의 기사단에 소속되고 싶은 거니? 그렇다면 내가 지인에게도 살짝 귀띔을 해주마.”

“아, 그런 건 아니에요.”

로델린이 약간 오해를 한 모양이다. 왕도에 오자마자 로델린을 통해 왕도의 기사단장들에게 접촉하려고 하면 저런 오해를 하는 건 당연하지.

“그렇구나. 혹시 내가 들으면 곤란한 이유니?”

로델린의 말에 나는 으음, 하며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왕도로 오던 중 습격이 있었잖아요?”

“그래,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로델린이 자기도 모르게 가슴을 한 번 쓸어내린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던 나는 입을 열었다.

“관련해서 기사단장님들과 나눌 이야기가 조금 있어서요. 하지만, 제 목적을 다른 분들이 알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니? 알았다. 그렇다면 자리를 마련할 때 별다른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으마.”

잠깐 고민하던 나는 다시 로델린을 보고 말했다.

“차라리 그냥 처음에 말씀하셨던 것이 목적이라고 말하고 만남을 주선해주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실제 목적은 그게 아니라지만, 아무래도 기사단장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적당한 빌미가 필요할 것 같다.

“구체적으로 내 아들이 기사단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고 말하지는 않고?”

“네, 그냥 아무래도 그런 게 아닐까 한다는 식의 추측을 섞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내 말에 로델린이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떳떳하지 못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 ……미안하다, 이제 와서 어미 구실을 하려고 하는 게 웃기다는 건 나도 알지만.”

어미 구실이라니. 나는 그 말에 잠깐 로델린의 표정을 바라봤다.

로델린은 이전의 망나니 같던 마틴의 행동이 자신이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해서라는 자책감이 있는 모양이다.

사실 그렇게 틀린 생각은 아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어머니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저렇게 미안해하는 거겠지.

“그런 일은 하지 않아요. 그리고, 어머니가 저에게 그런 말을 해주시는 게 미안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몰래 한다고 해서 그게 꼭 떳떳하지 않은 일이라는 건 아니다. 그렇게 치면 경찰의 잠복근무도 몰래 하니까 나쁜 일인가? 그런 건 아니잖아.

“그렇게 말해주니 다행이구나. 아, 혹시 기사단장님들과의 만남이 잡히게 된다면, 너 혼자 갈 생각이니?”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제 시종인 클로에도 동행할 예정이에요.”

“그래, 알았다. 그나저나 엘렌 리버플로우라는 아가씨 말이다.”

로델린의 말에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엘렌 이야기는 갑자기 왜 꺼내는 거지?

“지금 왕도에 있니? 기회가 있다면 이전에 도움을 받아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데.”

“내일 중으로 왕도로 돌아온다고 알고 있어요.”

내 말에 로델린이 알았다, 라고 대답한 다음 방을 나서는 나를 배웅해주었다.

* * *

엘렌 리버플로우는 인상을 쓴 채로 그린모스 늪지대를 걸어가고 있었다.

“한겨울에도 이렇게 덥다니.”

엘렌의 말에 옆을 따라가던 남성 마법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선선해진 겁니다. 여름이 오면 더위 먹어 앓아눕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환장하겠네. 이게 선선해진 거라니. 절로 입으로 욕이 올라오는 것을 참으며, 엘렌은 이마의 땀을 손수건으로 훔쳤다. 이건 절대로 자연스러운 기온이 아니다. 그린모스 늪지대에는 거대한 마력이 작용하고 있다.

주변을 훑어보던 엘렌이 입을 열었다.

“발견한 유적에 대해 말해주세요.”

“날이 선선해진 틈을 타 늪지대 심부로 파견한 탐험대가 발견한 유적입니다. 적어도 4000년은 된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엘렌은 작게 감탄했다. 4000년이라.

“확실히, 왕도에 파견 요청을 할 만하네요.”

“사실, 전문가의 의견이라고는 하지만 믿기는 힘들었습니다.”

남자의 말에 엘렌이 그를 바라봤다.

“어째서?”

“육안으로 확인해 보았는데, 4000년 전의 유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보존 상태가 좋거든요. 일견으로는 사원 같아 보였습니다.”

“좋네요.”

4000년 전이라면 마법이 신앙으로부터 분리되기 전이다. 그 시대의 사원이라면 당연히 그 시대의 마법과 관련된 유물이나 기록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거의 다 왔습니다.”

마침내 늪지대 속에 숨어있던 거대한 사원이 엘렌의 눈앞에 드러났다. 수십 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돌탑이 열 개가 넘게 세워져 있다.

녹색 이끼에 뒤덮인 돌탑은 분명히 이 유적이 버텨온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그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심각하게 손상된 곳은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

엘렌은 입을 헤 벌리고 그 유적을 바라봤다. 그 와중에 망치 같은 것이 돌을 내려찍는 소리가 엘렌의 귀를 때렸다. 그녀의 표정이 확 변한다.

“방금 소리는?”

엘렌의 말에 남자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사원 지하에 또 공간이 있는 것 같아서, 지금 사람들을 시켜 바닥을 부수는 중입니다. 아마, 제 예상이 맞다면 매장물이 어마어마할 것으로…….”

엘렌이 그 말에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미쳤어요? 중지하세요!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엘렌의 말에 남자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엘렌이 복잡한 표정으로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이 자식 마법사가 맞는 건가.

“적어도 사천 년 전의 신비를 간직한 사원이에요. 당연히, 그 당시의 사원이라면 동시대의 마법과도 연관이 깊을 거예요. 알고 있잖아요?”

“네, 그렇기에 관련 연구를 진행하려면 어쩔 수 없이 땅을 파야 합니다. 중지하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엘렌이 한숨을 쉬고 남자를 바라봤다.

“멈추라고. 저 사원이 무슨 용도로 만들어졌는지 알고 있어?”

“……아직 모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닥치고 땅만 쑤시면 천하제일이지.”

다소 빈정거리는 말투로 쏘아붙인 엘렌이 땅을 파는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외쳤다.

“멈추라고! 그 이상 진행하지마!”

엘렌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4000년 전이다. 당시의 마법에는 윤리의식이 없었다. 지금과는 전혀 다르다.

이 유적 어딘가에, 지금의 마법사들로서는 감히 상상하기도 힘든 지독한 저주가 수천 년의 세월을 보내며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무작위로 파고 들어가다가 유적이나 유물에 걸린 저주를 건드리면,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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